역사대논쟁 서구의 흥기 바다인문학번역총서 1
조너선 데일리 지음, 현재열 옮김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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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대논쟁: 서구의 흥기』는 시카고 소재 일리노이 대학의 역사학자 조너선 데일리가 집필한 책으로, 어째서 서구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었는가에 관해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서양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려 시도한 학자들의 주장을 요약한 책이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머리말에서 몽테스키외, 볼테르에서 시작해 21세기까지 서양권 학자들의 여러 주장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핵심적인 논지만을 제시하고 있다.


머리말에서 간단히 제시되는 인물들은 몽테스키외에서 막스 베버 까지이며, 본문에서는 대체로 20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서양권 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제목은 "역사대논쟁"이기에 역사학자들만의 주장이 소개될 것 같지만, 막상 저자가 요약한 학자들 중에는 역사학자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도 다소 포함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사회학자이고,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학자이며 첸원이엔은 이론물리학자다.


저자는 여러 경제사가들을 포함해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크게 5가지 항목으로 분류하고 이를 그대로 본문의 장으로 활용한다. 책 본문의 구성은 각각 "1. 서구의 기적," "2. 세계사," "3. 제국주의와 수탈," "4. 아시아의 위대함," "5. 왜 중국이 아니었나?"로 이루어져 있다. 


1-5장에 이르기까지 각 장의 구성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먼저 각 장의 항목에 분류된 학자들이 어떤 경향을 띠는지 서술하고, 이어서 각 연구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을 압축한 한 문장으로 제시한다. 이어서 해당 연구자가 어떤 논리에서 그런 핵심적인 주장을 내세웠는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무엇이 있는지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며,그 과정에서 해당 저자들의 인용문과 지도 자료도 간간히 제시된다. 본문에서 저자의 주석은 모두 미주인 반면, 각주에서는 번역자가 독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저자가 다루는 학자들 및 개념이나 용어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첨부해 놓았다. 본문에서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저자는 본문의 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개진하였는지 다시 간단히 정리하는 결론을 보여주며, 이어서 "더 읽을 거리"와 미주가 나온다. 


1장 서구의 기적에 포함되는 학자들은 대체로 기독교, 서구만의 제도들, 기술 진보, 체계화된 지식의 축적과 같은 유럽 "내적" 특징들이 서구의 흥기를 추동했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20세기 중반에 활발히 활동한 학자들이 많지만 21세기 현재에도 이 같은 주장을 내세우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2장부터 4장까지는 유럽 "외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모아놓은 항목들이다. 이중 2장 세계사는 "1장 서구의 기적"에 소개된 학자들을 "유럽중심주의"적이라 비판하며 유럽을 보다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유럽을 "탈중심화"하여 비유럽권과의 상호관계나 영향, 유럽의 비유럽에 대한 수탈이나 식민화 등에 중점을 둔다. 다만 3장과 비교했을 때 2장에 수록된 학자들은 수탈을 중심으로 삼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인다.


3장 제국주의와 수탈에서 다뤄지는 학자들은 서구가 흥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유럽인들의 비유럽권에 대한 지배로 돌린다. 대체로 이러한 분석은 북서유럽이 중심이 된 전지구적 분업 구조와 경제적 지배의 위계를 강조하는데, 북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산업화가 이어지면서 비유럽권 사람들은 북서유럽에 노동과 자원을 넘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라 그러한 체제가 등장한 시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월러스틴은 16세기, 에릭 밀란츠는 13세기로 추정한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처럼 5000년에 이르는 세계 경제의 순환 속에서 유럽이 운이 좋아 패권을 잡았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저자가 말하듯이 3장의 연구자들은 "서구의 흥기에는 이례적인 폭력과 침략, 수탈이 수반되었다"는데 이견이 없다.


4장 아시아의 위대함은 유럽의 성취는 아시아 덕분에 가능했다거나 19세기까지 아시아가 유럽을 앞섰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요약한 장이다. 결론에서 저자가 이들의 주장을 요약할 때 각 연구자들의 주장은 다른 편이지만, 공통적인 지점을 하나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유라시아의 여러 문화들은 수천 년은 아니라하더라도 수백 년 동안 서로에게서 차용하면서 큰 이익을 누렸다. 그러나 서로 의존하여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이 연회(宴會)에 유럽이 참여학 ㅔ된 것은 상당히 늦은 일이었다."(p. 241)


5장 왜 중국이 아니었나?는 2-4장, 특히 4장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19세기에 들어서서야 유럽이 중국을 추월하였다면, 왜 중국은 유럽에게 추월당했는가?라는 의문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여러 연구자들은 어째서 중국이 19세기까지 유럽보다 앞서나갔음에도 유럽처럼 과학혁명이나 산업혁명을 맞이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중국의 제국 체제, 중국의 기술적 정체, 중국 엘리트들의 과학 및 상업 천대, 식민지의 부재, 2,000년에 걸친 중국 특유의 지배 문화 등등. 저자는 "왜 중국이 아니었나?"라는 의문이 "왜 서구였나?"라는 의문 만큼 많은 연구를 낳았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왜 서구인가?," 보다 정확히는 "왜 중국이 아니라 서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저자들이 내놓은 핵심적인 주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연구들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여러 저자들의 주장 중 누가 옳고 그른지 판별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주장을 항목별로 분류하여 제시할 뿐이다. 누구의 주장이 현재의 상황을 더 적실하게 설명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서구의 흥기라는 주제에 관해 큰 흐름을 파악할 때 유용하다. 서구의 흥기, 혹은 유럽의 중국 추월과 같은 논쟁거리는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사로 잡는 주제이며 그에 관해 방대한 연구가 지금껏 누적되어 왔다. 해당 분야의 관련 서적만 읽는 전문가도 관련 연구들을 섭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일반 독자가 만약 이 분야에 관심을 지닌다면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막막함부터 느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 책에 등장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대표적인 연구서가 바로 『근대세계체제』인데, 총 4권으로 이루어지며 국내 번역서 기준으로 각권마다 분량이 최소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또 다른 연구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600페이지가 넘는다. 포머란츠의 『대분기』도 686페이지나 되는 벽돌책이다. 게다가 이런 책들이 한두 권 있는게 아니다. "서구의 흥기"라는 논쟁거리가 '논쟁'으로서 유효성을 지니는 한, 새롭고 두꺼운 연구서들(과 번역서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왜 중국이 아니고 유럽이었는가?"라는 역사학적 논쟁에 대해 그동안의 많은 연구자들이 어떤 측면에서 주목했고 그에 맞춰 어떤 논리에서 어떤 근거에 맞춰 어떤 주장을 했는지 잘 보여준다. 나아가 이 책은 특정 연구자의 책만 읽어서는 알 수 없는 외부적 요소들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컨대 책이 출간될 당시의 연구 트랜드, 특정 서적이 불러온 논쟁, 책이 출간될 당시와 현재의 반응에서 나타나는 차이와 같은 지점들 말이다. 예를 들어 1장에 소개된 학자들은 '유럽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는 연구 트랜드의 차이를 드러내며, 3장 제국주의와 수탈에서 소개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같은 장에서 소개되는 다른 후속 연구자들을 자극하여 새로운 연구 성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는데 저자가 미국인 역사학자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대체로 저자가 다루는 학자들도 서구권 학자들로 한정되고 만다는 점이다. 총 5개의 항목에서 아시아권 출신 학자는 단 둘, 첸원이엔과 켄트 G. 등 뿐이며 그마저도 5장 왜 중국이 아니었나?에서만 다루지며, 서구권에서 활동했거나 활동하는 중국인 연구자들이다. 이 영역은 지금도 새로운 연구가 쏟아지고 있을텐데 2010년대 초라고 아시아권 학자들의 연구가 드물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아울러 저자가 이 책에서 자기 주장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저자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겠다.


유럽이 흥기한 이유는 그 사회가 모든 사람이 지닌 놀랄 만한 창조성을 보다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가 가진 제도와 전통이 그런 창조성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반드시 번창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7, 


나는 특별히 유럽에서 인간의 정신적 힘이 마음껏 펼쳐진 것이 근대 세계의 형성에 핵심적 요소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다른 문화들로부터 배우는 데 유달리 열려있었다는 점에 이런 발전이 가진 핵심적 특징이 있으며, 최근에는 일본인과 한국인, 그 외 아시아 사람들이 유럽인들의 뒤를 이어 이런 열린 자세를 가졌던 것이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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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대논쟁: 서구의 흥기』는 2014년 출간된 미국의 역사학자 조너선 데일리의 저작을 번역한 것으로, 어째서 서구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의 패권을 쥐었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정리한 책이다. 각각의 장에서 저자가 제시한 참고문헌 및 더 읽을 거리 중 역자가 첨부한 국내번역서들을 정리하려 한다. 2020년에 국내에 소개된 책이다보니 그 후에 나온 번역서들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예를 들어 『법의 정신』) 오래되어 품절/절판되거나 값이 비싼 책들은 도서관의 도움을 빌려야할 것 같다.


서론


참고문헌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I』전2권, 강신준 옮김, 길, 2008.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책세상, 2018.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고봉만 옮김, 책세상, 2006.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전2권, 김수행, 비봉출판사, 2007.


조너선 D. 스펜스, 『현대 중국을 찾아서』, 전2권, 김희교 옮김, 이산, 1998.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김덕영 옮김, 길, 2010.


허버트 조지 웰스, 『H. G. 웰스의 세계사산책』, 김희주, 전경훈 옮김, 옥당, 2017.



더 읽을 거리


프랑수아 기조, 『유럽 문명의 역사』, 임승휘 옮김, 아카넷, 2014.


앙리 피렌, 『마호메트와 샤를마뉴』, 강일휴 옮김, 삼천리, 2010.



오스발트 슈펭글러, 『서구의 몰락』전3권, 박광순 옮김, 범우사, 1995.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전2권, 홍사중 옮김, 동서문화사, 2016.



1. 서구의 기적


참고문헌


카를로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2010.



윌리엄 맥닐, 『전쟁의 세계사』, 신미원 옮김, 이산, 2005.



린 화이트 주니어, 『중세의 기술과 사회변화』, 강일휴 옮김, 지식의 풍경, 2005.



더 읽을 거리


니얼 퍼거슨,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구세희, 김정희 옮김, 21세기 북스, 2011.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허성식 옮김, 새물결플러스, 2020.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시공사, 2012.


토비 E. 하프, 『사회 · 법 체계로 본 근대과학사강의』, 김병순 옮김, 모티브북, 2008.


더글러스 노스, 『제도, 제도변화, 경제적 성과』, 이병기 옮김, 자유기업센터, 1997


앨프리드 크로스비, 『수량화 혁명』, 김병화 옮김, 심산, 2005.


잭 골드스톤, 『왜 유럽인가』, 조지형, 김서형 옮김, 서해문집, 2011.



2. 세계사


참고문헌



마셜 호지슨,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이은정 옮김, 사계절, 2006.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생태제국주의』, 지식의



더 읽을 거리


로버트 B. 마르크스, 『다시쓰는 근대세계사 이야기』, 윤영호 옮김, 코나투스, 2007.


앨프리드 W. 크로스비,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 김기윤 옮김, 지식의숲, 2006.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최파일 옮김, 글항아리, 2013.


존 맥닐, 윌리엄 맥닐, 『휴먼 웹』, 유정희, 김우영 옮김, 이산, 2007.



3. 제국주의와 수탈


참고문헌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나종일 외 옮김, 전4권, 까치, 2013.


에릭 밀랜츠, 『자본주의의 기원과 서양의 발흥』, 김병순 옮김, 글항아리, 2012.


재닛 아부-루고드, 『유러 패권 이전』, 박흥식, 이은정 옮김, 까치, 2006. 



참고문헌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이정인 옮김, 아고라, 2017.


더 읽을 거리


R. 브레너 외 지음, T.H. 이스톤, C.H.E. 필핀 엮음, 『농업계급구조와 경제발전-브레너 논쟁-』, 이연구 옮김, 집문당, 1991.


에릭 R. 울프,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 박광식 옮김, 뿌리와이파리, 2015.


제임스 M. 블라우트, 『식민주의자의 세계모델』, 김동택 옮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8.


클라이브 폰팅,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 이진아, 김정민 옮김, 2019


조반니 아리기, 『장기 20세기』, 백승옥 옮김, 그린비, 2008.



4. 아시아의 위대함


참고문헌


안드레 군더 프랑크,『리오리엔트』, 이희재 옮김, 이산, 2003.



케네스 포메란츠, 『대분기』, 김규태, 이남희, 심은경 옮김, 에코리브르, 2016.



존 M. 홉슨, 『t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정경옥 옮김, 에코리브르, 2005.


더 읽을 거리


쵸두리, 『유럽 이전의 아시아』, 임민자 옮김, 심산, 2011.



5. 왜 중국이 아니었나?


참고문헌


데이비드 랜즈, 『국가의 부와 빈곤』, 안진환, 최소영 옮김, 한국경제신문, 2009.



사이먼 윈첸스터, 『중국을 사랑한 남자』,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9.



더 읽을 거리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전2권, 주경철 옮김, 까치,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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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소통 -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
김주환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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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그런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든다. 습관, 가정환경, 양육환경, 경험, 지리, 문화, 종교, 유전자 등등. 더 나아가 '사람은 선천적으로 유전자가 다 정해진 채로 태어나니 후천적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뉘앙스로 말하는 사람도 자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런 관점은 인간으로서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과의 관계에서 '나'라는 인간은 주변 요소들에 결정되고 마는 존재로 간주하는 관점이다. 이는 저자도 책에서 지적하는 내용이다. 이런 관점은 흔히 'XX결정론'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 이 XX의 자리에는 뭐든 다 들어간다. '유전자,' '경제,' '지리,' '기술,' '가정,' '환경,' '구조,' '혈액형,' '성격,' 'MBTI,' 더 넣자면 '국가,' '종교,' '문화,' 등등, 판단하는 사람이 무엇을 넣고 싶느냐 명칭은 따라 달라지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다. "인간은 'XX'로 인해 결정된 존재이다." 이것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XX'결정론자들의 주장인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내면소통』의 저자가 가장 반박하고 싶어 하는 관점이라 할 수 있겠다.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내면소통』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께에 걸맞게 가격도 상당하다. 책을 펼쳐 읽어가다보면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사실과 연구성과들이 가득하다. 두께, 내용, 가격 이 모두 잠재적 독자들을 압도하는 요소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책 저자의 주장은 사실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 '명상을 하세요.'


『내면소통』의 저자 이력은 독특하다.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며, 그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에게 기호학을 사사받았을 뿐만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와 헝가리 출신의 기호학자 토마스 세벅이 편집한 저작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나다』의 번역자이기도 하다(책에서 언급되지만, 저자는 자신이 퍼스의 개념 중 abduction의 번역어로 '가추법'을 도입하였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내면소통』에서 뉴턴의 고전역학은 물론, 양자역학과 같은 물리학, 뇌의 각종 부위별 기능과 종합적인 뇌의 기능에 관해 다루는 뇌과학,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감정과 같은 정신건강 및 심리학을 포함하는 과학의 영역에서, 인간의 의식, 인간의 자아와 같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선에 서 있는 영역, 나아가 불교의 명상법, 유교의 수양법, 인도의 요가, 근현대 수행법과 같은 종교적 영역까지 '전문 영역'의 벽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나아간다.


이 책에서 저자의 논거로 제시되는 다양한 사항들을 요약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할 것이며 크게 의미도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의 주장은 '명상을 하세요'이며 이 책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논거들은 종교적 색채를 최대한 배제하고 뇌과학적 측면에서 여러 명상기법들의 과학적 특성과 명상이 생리학적 측면에서 어떤 이득이 있느냐를 입증하기 위한 근거들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명상기법을 알려주는 실용서적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페르시안밀과 같은 고대의 수행법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명상'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명상법들, 나아가 알렉산더테크닉 같은 현대적인 수행법까지 접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단순히 책만 읽어서는 명상의 자세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참고용 온라인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QR코드를 첨부해놓았다. 아마 이 책을 읽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 책을 읽고 어떻게 명상을 일상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느냐 일 것이다. 이 문제는 지식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지와 실천에 달린 문제여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문이 들 것이다. '명상하는 법에 대한 책자를 쓰면 될 것을, 왜 이리 두꺼운 책을 내놓는단 말인가?' 실제로 그렇다. 스마트폰 어플에서 명상만 검색해도 다양한 명상앱이 나온다. 더 나아가 넷플릭스에서는 명상에 관한 스트리밍도 찾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을 경우, 명상 기법을 다룬 7-11장 정도만 읽어도 명상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여러장에 걸쳐 편도체와 전전두피질의 기능과 관계, 좌뇌와 우뇌의 관계, 경험자아와 배경자아를 비롯한 인간의 다양한 자아들, 후성유전학의 실제 발현 과정,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고전물리학 설명하기, 기계론적 우주론 대신 유기체론적 우주론 속에서 우주와 '나'의 관계, 각종 뇌의 기능에 관한 실험과 그 덕분에 밝혀진 뇌의 기능들을 자세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다. 데카르트 이래 근대의 철학과 과학이 당연하다 상정한 '주체'로서의 나와 '객체'로서의 세계라는 이원론적 가정,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상식으로 남아 있지만 그 패러다임은 이미 구식이 된 요소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양자역학을 포함한 최신 과학 연구성과들을 언급하면서, 해당 분야들이 우리의 '직관'과 어긋남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고전물리학이 양자역학보다 더 그럴듯해보인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임에도. 


저자는 인간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먼저 인간의 의식은 인간 신체의 주인이 아니다. 단지 몸의 일부이자 진화 과정 중에 우리 몸이 발명한 발명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의 의식은 인간의 신체는 고사하고 당장 뇌에서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마저도 조절하지 못한다. 5분후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내 의식은 예측도 못하고 그때 무엇을 생각할 지도 결정할 수도 없다. 인간의 자아는 지금의 경험을 느끼는 경험자아와 이를 조용히 바라보는 배경자아로 나뉜다. 인간은 의식 밖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받아들일 때 이야기로 만들어 받아들인다. 인간이 품는 생각, 감정, 의식 등등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에게 전달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누적된, 달리 말해 여러 일화기억들의 집적물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적당히 떠오르는대로 고치자면 코페르니쿠스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서 밀어냈고, 다윈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에서 밀어냈다면 인간은 자기 내면 속에서도 밀려나있다. '나'조차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그렇기에 인간은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여기서 책의 제목인 '내면소통'의 의미가 드러난다. 인간은 늘 대화하는 존재이며 그 대화 상대에는 '나'가 포함하는 '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고쳐쓸 수 없다'라거나 인간의 일생은 이미 'XX'로 정해져 있다는 'XX'결정론이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나'의 일부인 의식이 나의 몸이나 나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라는 전체가 점차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가 바뀌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 유기체적인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서는 뇌의 구조를, 의식을, 사고방식을 바꿔나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을 위한 것이 바로 명상이다. 


이처럼 명상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 드러난다. 저자가 의도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뇌과학, 우주론, 양자역학,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들을 유기적인 전체로서 종합하여 독자에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실용서적으로서 명상하는 법에 다룬 책이긴 하나, 다양한 과학적 설명들을 종합하여 유기체적인 우주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기계론적인 우주관, 또는 이미 인간은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XX'결정론을 반박하는 이론서적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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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이 적어서 부담이 덜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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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심주의 서강번역총서 3
사미르 아민 지음, 최일성.조현수 옮김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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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에서 활동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 사미르 아민(سمير أمين)은 1988년의 저작 『유럽중심주의』에서 유럽중심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해당 개념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 『유럽중심주의』는 2000년 국내에 번역되었다.


한편, 이 글에서 다루는 『유럽중심주의』(2023)는 2008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근대성, 종교와 민주주의: 유럽중심주의 및 문화주의 비판』(Modernité, religion et démocratie : Critique de l'eurocentrisme et critique des culturalismes, Parangon, 2008)을 번역한 것으로 역자들이 역자 서문에서 밝히길 옮기는 과정에서 『유럽중심주의』로 의역하였으며 그 이유는 저자 아민이 1988년 『유럽중심주의』의 2부와 3부를 『유럽중심주의』(2023)에 그대로 싣고 있고 이 책은 『유럽중심주의』(1988)의 완결판이라 볼 수 있기에 그리 하였다고 들고 있다. 2010년에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출간된 영문 번역판도 국내 번역판처럼 『유럽중심주의』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2023)은 1부 근대성과 종교적 해석들, 2부 공납제 문화의 중심부와 주변부, 3부 자본주의 문화, 4부 역사의 비유럽중심적 전망을 위하여, 이렇게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 아민은 근대성의 개념을 밝히고 이러한 근대성이 과연 기독교 유럽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로인지 의심하며, 나아가 근본주의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 이슬람 문화권에서 이슬람 근본주의(혹은 원리주의)가 발흥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 한계를 분석한다. 


2부에서는 자본주의 이전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전역에 존재한 다양한 문화권들의 정치, 경제, 사회가 지닌 공통점을 한데 묶은 '공납제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아민에 따르면 현재의 동아시아, 인도, 중근동은 유럽보다 앞선 선진적인 공납제 사회였으며 공납제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공납제 이데올로기(이슬람교나 유교가 이에 해당한다)를 발전시켰다고 본다. 반면 봉건제가 대표적인 유럽은 공납제라는 측면에서는 주변부 사회에 속한 사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봉건제 유럽은 공납제라는 측면에서 다른 유라시아 지역들보다 뒤처졌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3부에서 아민은 자본주의를 유럽만의 전유물로 여기고 다른 문화권 혹은 대륙들에게 유럽 대륙의 발전 경로를 따라야만 현재의 빈곤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고 현혹하는 유럽중심주의적 주장들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시키며 문제가 되는지를 폭로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아민이 앞서 제시한 논지들에 맞추어 유럽중심주의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으며, 그 대안으로서 자신의 가설들이 어떻게 유럽중심주의가 왜곡한 현실을 설명하고 보다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지점들이 무엇인가를 검토해본다.


이 책에서 저자 아민의 주장을 몇 가지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머리말에서 제시되듯이 문화주의 비판이다. 아민이 이 책에서 규정하는 문화주의는 문화를 초역사적 요소로 환원시키는 관점으로, 현실의 여러 사회들은 각각의 특유한 초역사적 문화적 요소를 지닌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현실의 여러 사회들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으로부터 보편적인 일반법칙을 추론하는 것이 방해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 아민이 주장하는 바는 바로 이 문화주의 비판을 기본 전제로 깔고 진행된다.


이어서 이 책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2, 3부에서 아민은 이러한 문화주의에 맞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명권들로부터 공통점을 추출하여 보편성이라할 법칙을 추론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는 '공납제 생산양식'이라는 가설로 이어진다. 앞서 2부를 요약할 때 설명했듯이,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나타나 전 세계적으로 팽창하여 병합시키기 이전,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나아가 아메리카까지도 공납제 생산양식이 존재했으며 각각의 사회에는 공납제라는 해당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 여러 이데올로기가 존재했다. 공납제 생산양식이 가장 완성에 다다른 지역은 중국, 인도, 중동권이었고 봉건제 유럽은 이런 공납제 생산양식에서 볼 때 오히려 그 완성도가 떨어지는, 후진적인 지역이었다. 


이러한 아민의 주장은 흔히 마르크스주의(실제로는 레닌과 스탈린을 거치며 변형되어 전파된) 5단계 역사발전단계론, 원시 공산제-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근대 부르주아 자본주의-미래에 도래할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라는 유럽중심주의적 역사 발전 단계론을 벗어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 역사발전 5단계론은 유럽, 그중에서도 산업혁명을 제일 먼저 겪은 영국의 사례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때문에 소련의 레닌과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은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공산주의로 이행한 소련과 중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법칙'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역사발전 5단계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아시아 사회들을 이른바 정체된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규정하고 말았다. 이와 비교했을 때, 아민이 제기하는 역사 단계론은 원시 공산제 혹은 공동체적 단계-공납제-자본주의-향후 도래할 사회주의로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아민의 시도는 유럽의 사례를 벗어나 다양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문화권들을 역사발전의 법칙에 포함시키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민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 지점은 유럽중심주의가 자본주의를 내세워 다른 국가들에게 유럽의 발전 경로를 따르라는 거짓된 신화를 주입시킨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이 거친 진보의 단계를 비유럽권이 따라갈 때에만 유럽처럼 선진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민은 이를 '따라잡기'라고 간결히 표현한다. 그러면서 각 사회의 생산양식을 분석하여 유럽이 아닌 보편적인 사회 발전 단계를 제기할 수도 있었을 마르크스주의조차도 앞서 역사발전 5단계론이 보여주듯이 유럽중심주의적라는 덫에 빠지고 말았고, 제3세계의 발전이 지체된 이유도 유럽중심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대안으로 삼았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그러나 아민에 따르면 이 같은 유럽중심주의의 모델은 허상이다. 


아민은 유럽중심주의가 중심부/주변부로 나뉘어 주변부(대체로 비유럽권)로부터 이익을 이전받아 자본을 축적하는 중심부(유럽권, 미국, 일본)의 착취적인 현재의 세계체제를 은폐해왔음을 폭로한다. 중심부와 주변부의 부르주아들은 국경을 넘어선 계급동맹을 통해 국가를 지배하고 주변부의 민중을 억압해왔으며, 중심부의 노동자계급조차도 주변부로 부터 이전받은 이익 덕분에 높은 소득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하여 발전을 이루었던 것과 달리 비유럽권의 각 국가들의 내부적 요인(예컨대 민족성이나 지리 등등)을 저발전의 탓으로 돌리며 이런 세계체제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아민은 현재 상황에서 '따라잡기' 모델을 제시하여 비유럽권 국가들을 현혹하는 유럽중심주의적 모델이 아예 불가능한 기획이라 말한다. 전 세계인구가 서구인들의 생활 혹은 소비수준을 누린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렇기에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를 넘어설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 대안은 사회주의이며 그렇기에 실패로 돌아간 사회주의 기획들은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아민은 과거 공납제 생산양식에서는 그 어느 사회보다 뒤처졌던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흥하였던 것처럼,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측면에서 세계경제체제에서 뒤처진 주변부에서 오히려 새로운 체제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진단한다. 요컨대 주변부에서 현 세계경제체제와 '절연'함으로써 그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민은 유럽중심주의에 가려진 역사 발전의 보편성을 강구한다. 저자는 그 유명한 막스 베버의 주장처럼 기독교, 그 중에서도 개신교만이 자본주의의 등장을 낳은 토대가 될 수 있었는지 묻는다. 그 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한때 중국의 퇴보를 설명한 유교가 오히려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에 따라 해당 국가들의 성장을 견인한 요인으로 설명된 것처럼, 다른 문화권들의 이데올로기들(이슬람교, 힌두교, 애니미즘 등등)도 언제든 공납제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견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유럽에서 나타난 부르주아 자본주의 문화는 그 이전의 그리스-로마와도, 기독교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유럽중심주의적 기획은 자신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 로마와 기독교와 결부지었다. 그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노예제가 역사적으로 거치는 보편적인 단계의 생산양식으로 둔갑했고 그리스는 동방과의 연결 없이 순수하게 독자적으로 발달한 문화가 되었으며 동방에서 등장한 기독교는 서구만의 종교적 토대가 되었다.  


이 책에서 아민의 비판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이슬람교의 특징을 먼저 설명한다. 비잔티움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기독교를 수용할 수 없었던(그랬다간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아랍 부족들은 유대교를 변용하여 수용하였다. 아민은 이슬람교가 태생부터 '종교기획'이었지 사회를 개혁시키는 '사회기획'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예언자는 아랍 부족 사회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어쩌면 '아랍 민족의 유대교'가 될 수도 있었던 이슬람교는 아랍 부족 사회보다 월등히 발달한 동방 기독교 사회를 정복하면서 손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꿔말해, 현재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바로 이 헤지라가 시작된 시기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에는 사회를 바꾸는 '사회기획'이라는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아민이 지적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2세기 이후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권 지역에 전사 계급(예컨대 맘루크)가 정치 권력을 쥐고 신학자들에게 샤리아를 주재할 권한을 용인하는 이른바 '맘루크' 모델이 출현하여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민이 보기에 현재(2008년 당시겠지만) 이슬람권의 맘루크 체제는 군인, 신학자, 그리고 현지의 매판 부르주아들이 결탁하여 세계경제체제를 지배하는 현실자본주의와 동맹을 맺어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이들은 단순히 일상생활의 의례적 측면(예컨대 여성에게 각종 의복을 강제하는)을 규제하는 데 그칠뿐이지, 세계체제로부터의 절연을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설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려는 역량도, 의도도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서적에 가까운데, 저자가 '세계체제'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점에서 이메뉴얼 월러스틴의 『근대 세계체제』를 연상시키는 점이 있기에, 그리고 '공납제 생산양식'처럼 과거 역사에 대한 분석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주목할만한 지점들이 있다. 


첫째는 공납제 생산양식이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해 전(前)자본주의 시대 각 문화권으로부터 '공납제 생산양식'과 이를 정당화하는 '공납제 이데올로기'를 추출하려는 아민의 기획은 어떻게 보면 대담한 역사학적 기획이라 할 수 있다. 아민의 주장에 화답하는 길은 역사학자들이 정말 그게 가능한지 따져보는 것일 것이다. 이 같은 아민의 주장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각지의 문화권들을 직접 비교하면서 과연 이론적 틀로서 기능할 수 있을지를 따지며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아민이 제시한 중심부/주변부를 바탕으로 삼는 현실자본주의와 세계경제체제를 다른 세계체제론자들이 내세운 세계체제, 예컨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세계체제론과 비교하면서 이론에 대한 비교를 진행해보는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보다는, 이러한 비교를 통해 보다 정합성있고 현실을 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세 번째는 기존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아민은 근대에 들어 사회생활 전반을 경제로 환원하는 점을 지적한다. 아민의 비판점은 특히 경제학을 향한다. 속류 경제학은 균형 잡힌 허구의 자본주의만을 상정하나 현실적으로 그 결말은 마르크스와 케인즈가 이미 내린 결론, 즉 시장에는 불균형만이 존재한다에 이른다는 것이다. 세계체제를 아우르는 현실자본주의는 속류 경제학이 간과하고 다루지 못한 지점이며,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조차도 유럽중심주의를 포용하는 과정에서 제3세계나 주변부를 위한 대안적 의미를 상실하였다는 것이 아민의 요지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은 현실을 달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네번 째로 세계사와 관련해서 조금 길게 짚고 넘어갈 지점들이 있다. 아민은 서양사, 나아가 세계사의 시대발전 도식으로 익숙한 고대-중세-근대의 시대구분을 조금 다르게 본다. 아민은 중세를 헬레니즘 시대로 앞당긴다. 적어도 중근동 지역에서 고대는 고대 그리스로 끝나고, 그리스의 각 폴리스들이 마케도니아에 굴복한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이 세워진 시점부터 중세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아민이 내세우는 바는 고대 그리스 말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부터 출현해 헬레니즘 시대에 개화한 형이상학이다. 이성의 연역을 내세우는 헬레니즘 형이상학은 이집트의 플라티노스에 이르러 신플라톤주의로 완성되면서 지배계급을 만족시켰다면, 토착 종교(그리스, 로마의 다신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에 불만을 품은 일반 민중들을 만족시킨 것은 동방의 기독교와 이슬람교이며, 두 종교는 이성을 내세우는 헬레니즘 철학을 신앙과 화해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동방)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헬레니즘의 유산을 이어받은 쌍둥이이다. 나아가 이슬람교의 철학은 고스란히 서구 기독교권에 전해져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신학자들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중세를 앞당긴 것은 (얼마나 사실에 적합한지를 떠나) 서양사의 고대-중세-근대의 도식을 달리 볼 수 있는 한 가지 가능한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지적도 눈여겨볼 점이다. 아민은 유럽 국가들이 노동자계급이 형성되면서 시민사회로 가는 길이 열린 반면, 미국은 근본주의적인 개신교도들이 정착한 이래 끊임없는 이주의 물결 속에서 공동체주의가 주도권을 쥐었다고 본다. 기존의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몰려와 자리를 잡을만 하면 새로운 이주민들이 미국에 몰려오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민자 집단 끼리 뭉쳐 세력을 형성하여 이민자 끼리 다투고 지배계급은 그러한 상황을 이용했다는 점을 꼬집는다. 아울러 미국의 독립전쟁이 혁명으로 많이 연구되긴 하나 미국의 이데올로기에는 프랑스처럼 자유, 평등, 형제애(박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최우선시하는 의미에서의 자유와 소유만이 있을 뿐이며, 정치의 시장에 대한 개입을 중단시켜 미국에서 노동자 정당 대신 '자본주의 정당'을 출현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러한 미국화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로 한정지어 말하자면, 아민의 『유럽중심주의』(2023)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주지했듯이 아민은 중심부/주변부로 나뉘는 현실자본주의의 구조 내에서 주변부가 중심부를 따라잡기는 불가능한데 유럽중심주의는 이런 불가능한 기획이 마치 가능한 것처럼 포장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아민은 '공납제 생산양식'에서 중심부였던 중국에 비해 주변부에 해당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한 점에 주목하고, 중국이 '따라잡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품는 반면, 한국 근현대사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틀어 한국은 두 어차례 언급되는데 그친다. 여기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은 아민의 주장을 약화시킬 수도, 강화시킬 수도 있는 헐거운 연결고리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19세기 말 일찍이 중심부로 도약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음에도 20세기 중반 해방 이후 우여곡절 끝에 21세기 현재에 이르러 중심부 국가이거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 특히 20세기 후반 한국의 경제발전사는 유럽중심주의의 '따라잡기' 모델을 정당화하여 아민의 논증을 무너뜨리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따라잡기' 모델의 허구를 입증하여 아민의 주장을 강화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중국의 근현대사와 유사성과 차이점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비록 시작은 일본보다 늦었지만, 중국보다 먼저 '따라잡기'에 성공했거나 그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이는 한국의 경제발전사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찬 모델이 될수도, 아니면 발전의 기회를 혼자 독차지하고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의 사다리를 걷어찬 선두주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보다 엄밀하게 평가하기 위해, 그리고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인간과 자연이 동시에 처한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한국 근현대사를 세계사 속에서 재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연구범위를 한국의 경제 발전을 한국 사회 내부의 내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 동아시아 및 태평앙의 주변국가들의 관계 속에서, 나아가 이러한 주변국가들과 세계를 한데 묶는 세계체제라는 분석단위로 넓힐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 더해 유럽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 세계사를 보편적이고 대안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위치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한국 사회의 경제 발전은 유럽중심주의에 충실히 따라간 결과인지, 아니면 유럽중심적인 발전경로를 벗어나면서도 근대와 근대 너머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럽중심주의』(2023)는 단순히 유럽중심주의 비판을 떠나 인문사회과학이라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있다. 지금 보기에 아민의 가설들은 어떤 것은 옳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완전히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민의 가설은 옳고 그름을 떠나 독자들에게(유럽권이든 비유럽권이든) 현실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여 현실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동안 알지 못한 현실에 눈뜨게 만드는 것, 혹은 그러한 통찰력을 길러주는 것, 그것이 아마 현실 사회를 엄청난 속도로 변화시키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맡아야할 여러 역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유럽중심주의』(2023)는 2008년, 좀 더 거슬러가자면 1988년의 진단임에도 과거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지배한 구조 속에서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이상, 항상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으로서 앞으로도 시의성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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