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짐승을 너희들이 사냥을 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가소로운 일이야!」 하고 그 돼지머리는 말하였다. 그러자 순간 숲과 흐릿하게 식별할 수 있는 장소들이 웃음소리를 흉내내듯 하면서 메아리쳤다.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란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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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원주민을 밀어내고 만들어진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들이 스스로를 원주민 · 토박이라고 생각하는 구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과천에서뿐 아니라 분당,판교, 일산 등 서울시 외곽의 신도시는 물론, 목동·둔촌·잠실 등 20세기 후반에 서울시에 편입된 옛 경기도 지역에 조성된 아파트 단지들에서도 보편적으로 확인됩니다. - P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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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이전의 생활의 터부가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웅크리고 앉은 어린이의 주위에는 부모와 학교와 경찰관과 법률의 보호가 있었다. 팔매질하는 로저의 팔은 로저를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제는 파멸한 문명 세계에 의해서 규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 P89

마스크는 이제 하나의 독립한 물체였다. 그 배후로 수치감과 자의식에서 해방된 잭이 숨어버린 것이었다. - P91

행복스러운 기분에젖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너그럽게 가질 수 있었던 그는 사냥의 경험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의 마음속엔 갖가지 기억이 가득 남아 있었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멧돼지를 모두가 둘러쌌을 때 그들이 알게 된 사실, 한 살아 있는 생물을 속이고, 자기들의 의지를 거기에 관통시키고, 맛있는 술을 오랫동안 빨듯이 그 목숨을 빼앗아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생생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 P101

두 소년은 얼굴을 맞바라 보았다. 한쪽에는 사냥과 술책과 신나는 흥겨움과 솜씨의 멋있는 세계가 있었고, 다른 한쪽엔 동경과 좌절된 상식의 세계가 있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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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知性)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준 것은 돼지였고, 한편 누가 보아도 지도자다운 소년은 잭이었다. 그러나 앉아 있는 랠프에게는 그를 두드러지게 하는 조용함이 있었다. 몸집이 크고 매력 있는 풍채였다. 뿐만 아니라 은연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소라였다. 그것을 불고 그 정교한 물건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화강암 고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그런 존재는 별난 존재였던 것이다. - P30

세 소년은 모두 잭이 어째서 죽이지 않았는가를 알고 있었다. 칼을 내리쳐서 산 짐승의 살을 베는 것이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용솟음칠 피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 P43

지켜보고 있노라니, 한 덩어리의 나무밑께서 불꽃이 일어나고 연기도 시꺼메졌다. 조그만 불꽃이 나무줄기 하나를 휘어잡더니 나뭇잎과 가시덤불 사이를 헤쳐나가면서 일변 갈라지고 일변 기세를돋구었다. 어떤 불꽃은 나무줄기에 가 닿았는가 했더니 이내 빨간 다람쥐 모양 기어 올라갔다. 연기가 뭉게뭉게 진하게 피어오르더니 일변 파들어 가고 일변 바깥으로 번졌다. 다람쥐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곁에 서 있는 나무로 달라붙다가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나뭇잎과 검은 연기가 이루어놓은 캄캄한 천개(天蓋) 밑으로 불길은 수풀의 멱살을 잡고 파먹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몇 마장이나 되는 검고 누런 연기가 늠름하게 바다 쪽으로 소용돌이쳐 갔다. 불꽃과 거역할 수 없는 불길의 방향을 보고 소년들은 날카롭게 신나는 환성을 질러댔다. 불꽃은 마치 일종의 야생동물이기나 한 것처럼 아메리카 표범이 배때기로 땅위를 기어가듯이 분홍색 바위의 노출부 주변에 한 줄로 서 있는자작나무 비슷한 유목 쪽으로 기어갔다. 맨 앞의 유목을 가볍게두드렸는가 했더니 이내 그 나뭇가지는 불길에 싸였다. 불길의 심지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틈바귀를 날렵하게 뛰어넘고 줄지어 있는 나무 전체를 따라서 요동하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깡총깡총 뛰고 있는 소년들의 저 밑으로 1평방 마일의 숲은 연기와 불길의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제가끔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불길의 소음은 합세를 해서 온 산을 진동시키는 폭음으로 변하였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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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일본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한국에서 일본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 쉽게 공격에 노출됩니다. - P123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조선 시대에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대 한국 시기에 이르기까지 <민족 감정>과는 무관하게 면면히 이어지는 행정의 연속성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80~90년 전에 식민지 당국이 만들어 낸 도시 구조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살아 있는 상황에서, 조선 총독부나 일식 가옥 같은 건물 몇 채를 철거하고는 〈일제 잔재 청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P147

대서울을 답사하다 보면, 곳곳에서 재개발·재건축을 둘러싸고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건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현대 한국 초기의 개발 방식이 21세기 초에도 답습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 P152

현대 한국에서 유독 아파트 단지가 발달한 것은, 원래라면 국가가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각종 기반 시설을 아파트 단지에 입주하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국가 입장에서도 이른바 <낙후 지역>을 손쉽게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두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남서울 아파트의 놀이터는, 못 미더운 정부를 둔 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 기반을 만들어 나간 현대 한국의 역사를 보여 주는 유산입니다. - P155

즉 부군당은 기존의 양반 계층이 아닌 신흥 자본가 계급이 모신 신앙 대상으로서, 마치 유럽의 부르주아지가 기존 귀족 계급의 신앙인 가톨릭이 아닌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자신들의 정체성을 수립한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 초기에 부군당을 섬긴 아전·하인·노비, 그리고 조선 후기에 부군당을 섬긴 신흥 중간 계급이 오늘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축이되는 시민의 원형에 해당하며, 거칠게 말하자면 부군당 신앙은 민주공화국 한국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원류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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