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국의 지도력에 매달리는 것은 우주가 무한하기 때문이라고요. 자신들을 결합시켜 주는 상징이 없으면 외로움을 느낀다는 겁니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황제는 분명하게 정해진 장소가 됩니다. 사람들이 황제를 바라보며 〈봐, 저기 그분이 계신다. 그분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신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어쩌면 종교도 같은 역할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폐하」 - P178

경계의 바깥은 괜찮았다. 그리고 경계의 안쪽. 여기에 진정한 공포가 있었다. 그가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 적들은 분명히 그가 스스로를 파멸시키도록 그를 함정에 빠뜨리고 있었다. - P180

<달! 달! 달!>
좌절감이 그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는 다중의 무의식이 주는 압박, 그의 우주를 가로지르며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려고 하는 인류의 움직임을 느꼈다. 그들이 거대한 해일 같은 힘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인간사의 거대한 움직임을 느꼈다. 그것은 회오리바람이었고 조류였고 유전자의 흐름이었다. 금욕이라는 댐도, 성불능의 발작도, 저주도 그것을 멈추지 못했다.
이 커다란 움직임 속에서 무앗딥의 지하드는 눈을 한 번 깜박하는 것만큼도 되지 않았다. 이 흐름 속에서 헤엄치며 유전자를 거래하는 베네 게세리트도 그와 마찬가지로 흐름 속에 갇혀 있었다. 추락하는 달의 환영은 다른 전설들, 즉 겉으로 보기에는 영원해 보이는 별들조차 이지러지고 깜박거리며 죽어가는 우주의 다른 환영들과 반드시 견주어 생각해 보아야 했다.
그런 우주에서 달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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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은 뒷모습만 보인다. 일종의 무대연출에 따라서 숭고가 무대를 차지하고 인물은 무대 전면에 놓인다. 그는 장면 안에 있으면서도—관객의 입장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장면 밖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우리는 그를 통해 보고, 그의 자리에서 보며, 그가 보는 것을 보기 때문에 장면과 거리를 두게 된다. 이로써 우리 자신도 그 인물처럼 대자연 앞에서는 미미한 존재임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를 위협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자연의 힘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렇다, 나는 유구한 세월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늘 이런 식으로 체험되었다고 생각한다. 뒤돌아서서, 우리에게 속하지 않고 어떻게든 소유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을 마주하면서 바로 이 거리에 미의 경험과 다른 종류의 정념(情念)을 구분하는 희미한 선이 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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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환영의 생생한 힘에 자신이 소진되는 것이 느껴졌다. 끔찍한 목적! 이 순간 그의 온 인생은 자리를 떠나는 새의 움직임 때문에 흔들린 나뭇가지와 같았다………. 그리고 그 새는 기회였다. 자유 의지였다.
〈난 예지력이라는 미끼에 굴복해 버렸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미끼에 굴복했기 때문에 길이 하나밖에 없는 삶에 자신이 고착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예지력이 미래를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닐까? 어쩌면 예지력이 미래를 〈만든〉 건 아닐까? 그가 그 옛날의 각성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리고 미래의 거미줄에 자신을 노출시켜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입을 벌리고 그를 향해 다가오는 미래의 거미줄에 희생자가 되어버린 걸까?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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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단한 서장에서 사상과 경험의 역사가라면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을 연구 테마들을 개괄했다. 이제 우리는 이미지, 그러니까 몽상을 고정시킬 만큼 매력적인 이미지의 연구자로서의 우리의 단순한 직무로 되돌아가겠다. 촛불의 불꽃은 기억의 몽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우리에게 고독하게 밤샘했던 상황들을 아득한 추억으로 되돌려 준다. - P49

나의 책이 내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면, 내가 시인들을 읽으면서 충분한 몽상의 위업을 달성해 시인의 왕국 앞에서 우리를 멈추게 하는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나는 모든 단락의 마지막에, 기나긴 일련의 이미지들의 끝에, 진정으로 마지막이 되는 이미지, 즉 합리적 사고의 판단에서 보면 과도한 이미지라고 지칭되는 이미지를 발견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에 도움을 받아 나의 몽상은 내 자신의 꿈들을 넘어서 나아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P56

촛불 앞에서 고독하고 한가하게 몽상을 하고 있으면 우리가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은 빛을 발하는 이 생명이 또한 이야기하는 생명이라는 점이다. 여기서도 시인들은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게 된다.
불꽃은 소리를 내고 신음한다. 불꽃은 괴로워하는 존재이다. 어두운 중얼거림이 이 극심한 고통에서 나온다. 모든 작은 고통은 세계의 고통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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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악마가 돼버렸어."
그러자 아예샤가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아니야. 다만 신의 심부름꾼일 뿐이야."
오스만은 분개했다.
"그렇다면 너의 신은 왜 하필 죄없는 것들만 열심히 죽이는지 말 좀해봐.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자신감이 부족해서 우리가 죽음으로 사랑을 증명해주길 바라는 거야?"
이 불경스러운 발언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아예샤는 더욱 엄격한 규율을 요구했다. - P284

참차는 눈을 감고 생각을 아버지에게 집중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평생에 단 하루라도 아버지 창게즈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날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것은 한 사람의 아버지라는 용서할 수 없는 죄도 막판에 가서는 결국 용서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 P323

그러나 비록 감추고 있었지만 살라딘은 시간이 갈수록 일찍 거부했던 예전의 자기 모습으로, 즉 수많은 살라딘 — 아니, 살라후딘 — 으로 점점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자아들은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할 때마다 하나둘씩 떨어져나갔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 P339

죽음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훌륭한 부분들을 이끌어냈다. 인간에게 그런 일면도 있음을 목격하는 것은 — 살라후딘은 느꼈다 — 참으로 멋진 일이었다: 사려깊고 다정하고 고귀하기까지 한 모습들. 우리는 아직도 숭고해질 수 있는 존재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는 축제 기분에 빠져들었다. 온갖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는 아직도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다. - P345

누군가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은 우리가 죽을 때 비로소 현실임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 P354

그렇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국면의 시작인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세상도 확고 부동한 현실일 테고, 이제는 자신과 저 피할 수 없는 무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든든한 아버지도 없었다. 고아의 삶, 무하마드가 그랬듯이, 누구나 그렇듯이 기이하게 찬란한 죽음에 의해 비로소 훤히 밝혀진 삶이었다. 이 죽음은 그의 마음속에서 마술 램프처럼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 P356

그는 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지브릴은 자기 내면의 악마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이제 보니 살라딘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순진한 착각이었다: 그는 지브릴이 자기 목숨을 구해주었던 브릭홀 화재 당시의 일로 두 사람이 깨끗이 정화되었다고 믿었고, 그렇게 쫓겨난 악마들은 불길에 휩싸여 타버렸다고 믿었고, 그리하여 사랑도 증오 못지않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큰 힘을 가졌으며 미덕도 악덕 못지않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완벽한 치유는 불가능한 모양이다.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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