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은 확실히 그의 작품의 이원화된 형식이 그것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게임의 문학적인 규칙과 결별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무더기처럼 쌓인 온갖 것 속에서 이중의 개성, 곧 역사가의 개성과 해설자의 개성을" 유지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역사가로서 그는 텍스트에서 수천 명 개인의 삶과 죽음, 시각과 기행에 관해 잘못 선택되고 기이한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려주었다. "해설에서" 그는 독자에게 자신이 "충실한 보고자의 불편부당함으로 어떤 것을 지지하는 주장과 반대하는 주장을 비교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벨은 이원적인 형식의 서사를 고안하고 방어했다. 최종 결과를 언급했고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여정을 설명했다. - P261

무엇보다도 17세기에는 베이컨, 데카르트, 보일, 파스칼이 고대의 과학적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 목도되었다. 프랑스의 프롱드와 영국의 청교도가 왕의 정치적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 목격되었고, 라 페레르Isaac La Peyrère와 스피노자가 성서의 역사적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권위와 증거의 문제가 모든 면에서 대두했다. - P267

기번과 뫼저, 로버트슨과 볼프는 여러 세대의 역사가와 호고가의 관행뿐만 아니라 르클레르크가 박식한 편찬물의 사용자를 위해 마련한 지침을 염두에 두고서 벨이 각 글에 소규모로 구축했던 구조물을 전문 길이의 서사로 복제했다. 그래서 근대적인 종류의 비판적 역사가 가능해졌다. 랑케는 단지 두 가지 요소를 더했을 뿐이다. 그러나 두 요소 모두 결정적이었다. 랑케는 거의 자신의 의지와 달리 각주와 비판적 부록을 변명의 기회보다는 즐거움의 원천으로 만들면서 연구조사와 비평의 과정에 새로운 문학적 생명을 부여했다. - P289

각주의 이야기는 또한 근대의 지적인 학문분과들에서 있었던 모든 의미 있는 변화가 예컨대 근대 과학의 부상을 설명하는 데 그토록 자주 환기되었던 개인이나 제도의 힘을 추구한 데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확실히 역사학의 문화가 부상하는 데에서 특징적인 몇몇 단계들은 권력 투쟁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기록증거와 엄밀한 증명에 대한 열정이 16세기 후반의 역사 연구와 19세기 초의 역사 연구를 특징지었다. 그 두 시기는 장기지속적인 제도와 급진적인 공격자 사이에서 대규모의 대립이 목격된 시기였다. - P297

최종적으로 각주의 이야기는 문학 기획의 하나라는 역사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했다. 최근에 일부 학자는 역사가 허구적인 하나의 문학 형식—소설과 같은 서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폈고 그들의 주장은 영향력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역사가가 우아한 산문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학구적인 연구조사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들을 반박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본질적인 문제로 보이는 것에 답하지 않았다. 바로 연구조사는 역사적 서사를 쓰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 P298

역사학의 텍스트는 각주가 기록하는 연구조사와 비평적 주장의 형식에서 비롯된다. 그런 주를 만드는 문학적 작업을 통해서만 역사가는 텍스트를 뒷받침하는 연구조사를 불완전하나마 표상할 수 있다. 각주를 연구하는 일은 예술로서의 역사를 과학으로서의 역사와 엄격히 구별하려는 노력에서 추천할 만한 것이라고는 말끔함뿐임을 이해하는 일이다. 결국 그런 노력은 근대 역사서술의 실질적 발전을 거의 조명하지 못한다. 근대 역사학의 글쓰기에 대한 전면적인 문학적 분석에는 어떤 형태이든 서사하기narration의 기존 수사법뿐 아니라 주석달기annotation 의 수사법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 P300

각주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다. 진실의 적은—그리고 진실에는 많은 적이 있다—정직한 역사가가 각주를 사용해옹호할 바로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각주를 사용할 수 있다. 관념의 적은—그리고 관념에도 역시 많은 적이 있다—독자가 전혀 흥미롭게 여기지 않는 간접인용과 직접인용을 그러모으거나 새로운 명제 비슷한 것을 공격하기 위해 각주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주는 예술과 과학의 불가피하고 혼란스러운 혼합, 곧 근대 역사학의 혼란스럽지만 불가피한 일부를 형성한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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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1월 달이었다. 결산도 이틀이나 늦고.



올해 처음 읽은 점에서 기념비적(?)이라 할까. 쉽게 읽히는 책이며 메타버스, AI 같은 최신 트렌드와 해당 트렌드의 맥락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분량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얇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ChatGPT를 접할 때 이 책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신장판은 6권이지만 구판은 무려 18권. 2부 6권까지는 폴 아트레이데스가 주인공이다. 폴 아트레이데스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지만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2부 6권 마지막에 그려지는 폴의 모습은 씁쓸하다.



"듄의 아이들"이라는 제목 답게 이야기의 주역이 폴의 아이들, 레토 2세와 가니마에게로 옮겨갔다. 빨리 8, 9권도 읽어야 할텐데. 




요즘 핫한 ChatGPT를 쓰다 보면 이 글에서 제일 먼저 언급된 메타버스 사피엔스가 아니라 이 책부터 생각난다. 구글 검색을 할 때는, 구글이 엄청난 정보를 툭 던져 놓으면 사용자가 일일이 구글이 던져놓은 정보와 지식을 검토해야 했다. 그런데 ChatGPT를 써보면 (아직 한계가 있다지만) AI가 알아서 정보를 다 찾아와 입에 떠 먹여주는 수준이다. 그 점에서 단순 정보나 지식을 획득하는 수준을 넘어, 지혜에 이르는 공부를 일찍부터 강조한 이 책은 지금 시대, 다가오는 시대에 더 필요하다 해야 할까. 


 


20세기를 넘어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열렬한 호응(?)을 받는 작가 살만 루슈디의 문제작. 이 작품을 통해 루슈디라는 작가에게 매혹되고 루슈디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한데 아쉽게도 루슈디의 다른 작품을 읽을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덧붙여 문학동네 개정판이 아니라 구판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을 빌릴 때 도서관에는 2022년 문학동네 개정판 2권이 없어서였다. 이번 2월 달에 "Victory City"라는 루슈디의 신작도 나온다고 하는데 과연 국내에는 언제 출간될지?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일으킨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마지막 저서. 촛불을 보고 떠오르는 몽상은 무엇인가를 담은 책이다. 읽고 글 하나 써보려했다가 처음 포기한 책이기도 하다. 다음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그때는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판본도 참고해보려 한다. 



에코가 여러 소설에서 보여준 관심사가 사실상 이 책 하나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에코의 소설을 많이 접하고 에코의 소설을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이 책이 매력적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원래 1월에 구상한 계획 중 하나가 서평 관련 책들을 읽은 후 모티머 애들러 식으로 말하자면 통합적 독서, 혹은 주제서평 쓰기 비슷한, 그런 걸 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진척이 안되고 있다. 일단 각각의 책들마다 리뷰부터 남겨야 할텐데.




삶의 의미를 물질적 부유함에서 이미 찾고 만족하는 엘리엇, 이사벨과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주인공 래리가 대비되는 소설이다. 읽기는 금방 읽었지만 아직 리뷰를 쓰는 중이다.



책 읽는법과 서평 쓰는 법을 간단히 알려주는 동시에 실제 저자의 서평을 모아놓은 서평집이다. 덧붙여 만만찮은 분량에 달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서평이 덤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문서를 읽다보면 본문 아래에 조그맣게 달려 있는 각주의 역사를 추적한 책.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다만 모든 분야의 각주를 다루지는 않고 '역사학에서의 각주'에 관한 역사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분야는 간간히 언급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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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는 여러 면에서 혁신을 이루었다. 그는 거대한 규모로 서사와 분석적 역사를 결합시켰다. 그는 비평의 과정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었던 사건만큼이나 그 과정 자체를 강력하게 극화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연구조사 기획과 설명 형식—그 가운데 많은 것을 자신이 고안하고 수행한 기획과 형식—을 위해 무대를 마련했다. 이전에 그의 《역사》와 비슷한 것이 등장한 바 없었다. 그러나 그와 그의 첫 책이 고증을 거친 비평적 역사의 시작을 표상하지는 않았다. 1824년이 아니라면 언제인가? 그리고 랑케가 아니라면 과연 누구에 의해서인가? 수많은 계보가 그렇듯이, 각주의 계보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갈래와 우여곡절이 있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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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쟁들이 이런 양상을 띠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현실과 무관한 순수한 주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듯하나 그것을 보는 이는 항상 논쟁의 당사자들이 현실적으로 어떤 처지에 서 있는가, 그들이 현실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이른바 ‘토대의 문제‘까지 함께 파악해야만 한다. 그것까지 파악할 때 비로소 ‘담론‘이라는 술어가 제대로 이해된다. 담론은 순수한 학적 언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언설이 은닉하고 있는,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권력관계까지도 담고 있다. 이 권력관계에는 발언자의 사회적 위치와 배경, 발언 시점, 발언이 전달되는 매체 등도 중요한 요소로서 포함된다. 이러한 맥락이 고려될 때 담론 분석은 권력 분석이 되는 것이다. -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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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논리적인 사유 태도를 가지고 읽어야 할 텍스트이다. 이렇게 읽는 것만이 《장미의 이름》을 신비주의의 주문이 아닌, 합리적인 상식과 그것을 추구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교적 텍스트로 자리잡게 하는 방편이다.
텍스트를 재미삼아 뜯어서 아무데나 붙이고 제멋대로 읽어 대는 일을 대단한 학문적 행위로 간주하는 요즘, 제대로 된 텍스트 읽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P345

여기서 시도하는 것은 ‘텍스트 읽기‘이다. ‘텍스트 읽기‘라는 말은 두 가지를 요구한다. 하나는 텍스트가 무엇인가 하는 텍스트의 정의를 규정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읽기‘의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밝히는 것이 이 텍스트 전체의 목적이므로, 이에 대한 답은 이 텍스트를 다 읽은 다음에야 얻어질 수 있을 것이나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정이 필요할 것이다. - P352

‘텍스트‘를 가장 일반적으로 규정하자면 그것은 ‘의미를 담고 있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말과 글)로 이루어진 것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그려진 것 등도 포함한다. 아무리 무심코 말을 하고 뭔가를 그렸다 해도 그것이 사람 집단에서 말해지고 그려진 것이라면 의미를 담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라 간주할 수 있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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