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대법관이 주재하는 연방대법원은 하급 법원을 거쳐 올라온 각종 사건들을 심사하고 판결을 내리는 미국 사법부의 최고 기관입니다. 흔히 미국을 움직이는 주역이라고 하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나 의회의 입법 의원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미국 역사의 향방을 좌우한 대사건들 뒤에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연방대법원에서 심의하는 안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부터 미합중국이 당면한 현실, 그리고 미국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상황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이 내린 판결과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 P16

실제로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대법정 뿐 아니라 대통령의 집무실부터 국회 의사당의 회의장, 재판정, 기업의 회의실, 대학의 강의실, 주말 저녁의 칵테일파티에 이르기까지 토론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계속해 나가는 사회입니다. 즉 토론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미국인들에게는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의견서들을 통해 연방대법원 법정에서 벌어졌던 불꽃 튀는 토론에 참여하다보면 독자 여러분 자신이 어떤 신념이나 생각을 글이나 말로써 논리정연하게, 그러면서도 때로는 유머를 섞어가며 여유롭게 풀어 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 P17

연방 대법관에 대한 미국 정부와 국민들의 기대는 그 호칭 자체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에서 정의가 이루졌다Justice has been served는 표현은 악당을 처치하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 속의 히어로가 아니라 실은 재판의 결과를 일컫는다. 즉 적절한 법률적 절차(재판)를 거쳐 나온 공정한 판결에 대한 찬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법관을 일컫는 호칭이 정의Justice 자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알고 보니 정의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영화 스타워즈에서처럼 멋진 망토를 입고 광선검을 휘날리며 우주 공간을 누비는 것이 아니라, 워싱턴 D.C. 1번가에서 검은 법복을 입고 앉아 말words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 P22

그러나 대법관들이 항상 순도 100%의 공명정대한 판결, 즉 모두가 이견 없이 인정하는 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연방대법원의 기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예들은 헌법을 통해 연방대법원의 설립을 구상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의도, 즉 삼권분립을 통한 정부 기관들의 상호견제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한 반증일 뿐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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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코스타의 '언어의 뇌과학(El Cerebro Bilingue)'을 읽으며 떠올린 잡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 크게 상관은 없지만 이중언어자가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 가도 중요해 보였다. 


현재의 한국만 따져보자. 지금 한국은 이중언어 구사자에 유리한 환경이 되가는 것 같다. 이유는 여러가지 일 것이다. 이민자 및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세계화로 인한 기업들의 해외 진출, 국제결혼의 증가 등. 수능에서도 영어와 제2외국어 시험을 실시하고 서점가에 외국어 코너를 가보면 다양한 외국어 학습 서적들이 즐비하다. 영어야 말할 것도 없고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 기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언어 사이에도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절대다수 한국인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외한 외국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를 꼽으라 하면 영어일 것이다. 

영어는 아무래도 다른 언어에 비해 위상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영어보다 사용자 수가 많은 언어가 있긴 하나, 해당 언어가 국제 공용어인가? 라고 다시 물어보면 저절로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특히 지식 생산과 관련해 영어는 압도적이다. 어떤 분야든 새로운 지식과 그 지식을 담아 전달하는 매체는 영어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이 속한 범주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책의 범주는 뇌과학 일반, 언어학/언어사, 뇌과학/인지심리학이다. 해당 범주로 들어가 번역서의 목록을 쭉 훑어보면 영어권에서 번역된 번역서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된 영어권의 무수한 뇌과학 저작들 사이에서 보기 드문 '스페인어' 저작이다. 

텍스트가 영어로 생산되고 이어서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경우는 많다. 그런데 그 반대는? 


한국에서 영어의 위치는 여러 경험적 근거로 확인 가능하다. 앞서 서점가의 외국어 코너를 떠올려보자. 영어는 외국어 코너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알라딘은 영어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이트이기도 하다. 먼저 국내 도서에서 '외국어' 분야를 보면 외국어의 하위범주 절반 가량이 영어로 채워져 있다. 토익/토플/텝스/영어회화/영어독해/영어학습법 등등. 나머지 언어들(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이 범주 하나만 할당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어의 독보적인 위상을 체감할 수 있다. 이제 국내 도서 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외국 도서 탭으로 넘어가보자. 여기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영미도서가 압도적이다. 


교육과정도 마찬가지. 초등, 중등교육과정에서 한국 학생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같이 배우고, 대학에 가서 학교나 학원, 인강을 통해 영어 수업을 듣는다. 졸업 후에도 취업을 위해 영어 학원을 다니며 공인 영어시험을 준비한다. 대표적으로 수능은 한국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입지를 아주 잘 드러낸다. 수능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탐구, 제2외국어와 한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어는 국어, 수학과 대등한 과목인 반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은 모조리 제2외국어라는 범주에 속해 있다. 


이외에도 영어가 침투한 사례들을 다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과거 '영어 공용어화론'이 제기되었으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금 누군가가 영어 공용어화론을 제기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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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뇌과학 - 이중언어자의 뇌로 보는 언어의 비밀 쓸모 많은 뇌과학
알베르트 코스타 지음, 김유경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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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원제는 El Cerebro Bilingue으로 2017년에 출간되었다. 원제와 저자의 이름, 그리고 번역자의 경력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어권에 비해 보기 드문, 스페인어권 저작이다. 


알라딘에서는 이 책을 크게 뇌과학 일반, 언어학/언어학사, 뇌과학/인지심리학 이라는 범주로 구분해놓았다. 각각의 범주를 검색해보면 주로 영어권 저자들의 책이 검색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은 보기 드문 '스페인어권' 저작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


간략한 책 소개로 들어가보자. 이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과학 서적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 답하려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하나의 뇌에 언어가 공존할 있을까?" 책에는 우리가 자주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뇌의 언어적 기능을 알고 싶다면 이중언어 현상을 살펴봐야 한다. 연구를 통해 언어가 주의력, 학습, 감정, 의사 결정 등을 포함한 다른 인지 영역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있다. 이런 점에서 이중언어 사용은 인간 인지(human cognition) 연구에서 창문 역할을 한다. - P9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부차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특히 이 여행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과연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들은 두 언어를 어떻게 구분할까? 이중언어와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아기들의 언어 학습 과정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이중언어자가 두 언어를 계속하게 해주는 뇌 영역은 어디일까? 이중언어 사용은 다른 인지 능력 발달에 어떤 영향을 줄까? 뇌 손상을 입으면 두 언어가 어떻게 손상될까? 제2언어(외국어) 사용은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 P9


그리고 이에 맞춰 가설을 세우고, 해당 가설을 입증하는 연구 자료를 제시하여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사실 저자가 이 책에서 답하려는 내용은 프롤로그에 언급되어 있다.


1장에서는 어린아이가 언어를 동시에 학습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핀다. - P13


2장에서는 성인 이중언어자의 뇌에서 언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룬다. 특히, 인지 신경과학과 신경심리학을 바탕으로 연구를 살핀다. - P13


3장에서는 일반적인 언어 처리 과정에서 이중언어 학습 사용 결과를 분석할 것이다. - P14


4장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다른 인지 능력, 특히 주의 체계(attentional system)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것이다. - P14


마지막 5장에서는 2언어(외국어) 사용이 의사 결정 과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 P14


여기서 각 장의 내용을 보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1장은 이중언어에 노출된 아기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는 장이다. 정확히는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가 두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아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끊임없이 언어를 흡수한다. 그것이 단일언어든, 이중언어든. 아기들은 말하는 사람의 입모양을 보면서 무슨 언어를 말하는지 구분할 줄 안다. 또한 서로 다른 말을 들으면서 언어를 구분할 줄도 안다. 다만 언어에 단순히 노출되기 보다는 상호작용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결과는 사회적 접촉이 외국어 학습에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작용할 있는 환경에 있지 않고 단순히 언어만 노출시킨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을 때보다는 누군가와 상호 작용을 아이의 집중력과 동기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자녀가 외국어를 배우길 바란다면, 동영상이 일을 대신 해줄 거로 너무 기대하지 말고 언어를 사용해서 아이와 놀아주길 바란다. - P52


아울러 언어는 아이들이 편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피부색이 같지만 영어를 할 때 외국인 억양이 있는 아이보다는 피부색이 달라도 모국어처럼 영어를 하는 아이들과 더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즉 그들의 원하는 친구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는 피부색보다 말하는 방식이었다. - P54 



2장에서 저자는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나의 뇌에 두 언어가 공존하는가, 그리고 두 언어를 계속 사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P. 60). 처음에 저자는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의 언어 능력과 관련된 연구들을 소개하고 이어서는 이중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중언어자에 대해 논의로 넘어간다. 2장에서 저자는 언어를 자유롭게 전환하는 이중언어자를 두고 저글링을 하는 곡예사로 표현한다. 하지만 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책에서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들이 한국어를 장기간 쓰지 않아 한국어를 잃어버린 사례가 언급된다.


뇌 손상을 입은 사람의 언어 행동 연구와 뇌 영상 기술을 통해 확보한 건강한 사람의 뇌 활동 평가로 이중언어자의 언어 사용이 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뇌에서 언어 통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언어를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사용(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다가왔길 바란다. - P102


3장의 제목은 '이중언어를 하면 뇌가 어떻게 변할까'이다. 3장에서 주로 제시되는 가설과 연구들은 이중언어가 언어 처리 및 다른 인지,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의외로 3장은 이중언어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교하면서 시작된다.


이중언어 사용이 일반적으로 언어 사용과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 전이긴 하지만, 이중언어 사용이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상가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극단적인 의견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중언어 사용이 가져올 수 있는 악영향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 P104


한편, 최근의 어떤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특정 인지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이중언어자가 '더 똑똑하다'(P106)고 선전했다. - PP105-106.


그러나 저자가 관심을 가지는 지점은 이중언어 사용 경험이 뇌의 언어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여기서 저자는 어느 한 편을 들지 말고 사람들의 언어 능력에 대해 신중히 말할 것을 강조한다. 이중언어 사용은 분명 뇌 구조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긴 하나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중언어 사용은 우리의 언어 발달과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중언어 경험이 주는 혜택이나 문제에 대해 글이나 말을 접할 신중해야 한다. 적어도, 과학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 P141


4장에서는 이중언어 구사자의 주의력을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책에 언급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단일언어 사용자에 비해 이중언어 사용자가 갈등 해결 측면에서 뛰어나다. 이어서 다중작업, 즉 멀티태스킹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결론은 이중언어 사용이 주의 체계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노화로 인한 인지 저하와 이중언어간의 관계가 다루어진다. 저자는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인지력 감퇴를 방지하는 실험적 증거는 있으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마무리한다. 


5장은 감옥에서 적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배운 넬슨 만델라를 인용하며 시작된다. 


어쨌건 만델라가 했던 말 중에 도움이 될 만한 문구가 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어쩌면 만델라가 적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염두에 두었던 말일 수도 있다. 그는 도리에 맞게 말할 뿐만 아니라, 그들 마음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길 원했다. - P183


이어서는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따져본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리 행동의 기대 가치를 극대화하고 문제의 여러 변수를 늘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위대한 경제 사상가들이 말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이고, 우리의 결정은 신중하고 합리적인 유형보다는 직관적 과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 P195


나아가 저자는 외국어가 우리의 감정에, 그리고 의사 결정에 얼마나 관여하는지를 밝힌다. 저자는 I love you와 Te quiero 중 모국어인 후자에 더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예전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때 외국에서 잠깐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어로 말했으면 낯 뜨거웠을 말을 영어로는 잘도 뻔뻔하게 말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다시 저자가 언급하는 사례로 돌아가자면, 여러 도덕적 딜레마를 모국어로 접했을 때와 외국어로 접했을 때 차이가 있다. 그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도 여기에 언급된다. 트롤리 딜레마 같은 도덕적 딜레마를 접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그 반응이 다르다. 해당 딜레마를 모국어로 접할 때에 비해 외국어로 접했을 때 피험자들은 보다 냉철하고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책에서 저자가 염려하는 점은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자를 비교하면서 어느 한쪽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거나 한쪽을 폄하하는 것이다. 저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과학이 남용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처럼 과학을 이용하는 것은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아울러 저자는 도중에 본인의 경험에 의거해 과학계에 만연한 관습을 비판하는 모습도 잠시 보인다. 과학적 실험 그 자체가 아니라 연구 결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연구자의 연구물 출간 여부가 결정되며 그 결과 많은 연구가 발표되지 못한다. 저자는 실험 결과가 부정적이더라도 다른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을 샀던 이유,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외국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언급되지만 이 책은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실용서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이중언어의 사용과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논의를 다루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이중언어의 습득과 구사 과정에서 아기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뇌가 얼마나 경이롭게 작동하는가 알려주는 교양 과학서이다. 특히 외국어가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5장은 독자에게 다른 의미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마지막으로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이 책은 참고문헌을 포함하여 232페이지에 불과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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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WORD POWER made easy : 미국 대학 최고의 영단어 명강의 - 미국 대학 최고의 영단어 명강의, 개정판
노먼 루이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윌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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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개의 파트, 12개의 챕터, 44개의 레슨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개 챕터 하나 마다 2~3개의 레슨으로 이루어진다. 각 레슨마다 복습용 퀴즈와 연습문제가 수록되어 있고 1개의 챕터가 끝나면 챕터 전체를 복습하는 테스트가 수록되어 있다. 레슨 별로 또 구성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보통 한 챕터에서 첫 번째 레슨은 해당 챕터의 테마 및 그에 해당하는 주요 어휘들을 소개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레슨은 첫 번째 레슨에서 다룬 어휘들의 어근과 어원을 자세히 설명하고 주요 어휘들에서 파생되는 단어들을 학습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특징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첫째, 평소에는 접하기 쉽지 않은 영어 어휘가 등장한다. 둘째, 구체적인 테마(의사, 전문직, 성격 등등)로 어휘를 분류하고 해당 어휘를 이루는 어근과 그에 붙는 접두사, 접미사의 어원, 형태상의 변화 등을 분석하여 해당 어휘들을 해부한다. 셋째, 단어를 구성하는 어근의 유래를 살펴보면서 단어와 단어가 지닌 의미를 쉽게 연결 짓게 해준다. 


가령 이 책 챕터3에서 다루는 psyche라는 어근을 예로 들어 보자.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어근은 영어로 mind, soul, spirit에 해당하며 치료(medical healing)을 의미하는 -iatreia와 결합하여 psychiatrist(정신과 의사), 학문(science, study)를 의미하는 -logos와 붙어 psychologist, psychology, psychological 등의 단어를, 이외에도 -pathos(=suffering, disease)와 붙어 psychopathic, psychopathy, psychopath, -soma(=body)와 붙어 psychosomatic 등등의 단어를 만들어 낸다. 복잡한 단어들이 나오긴 하나 일단 psyche라는 어근을 인지할 수 있다면, 영어를 접할 때 psych-로 시작하는 생소한 단어를 만나도 의미를 대강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이와 같이 다양한 어근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레슨이 끝나면 풀게 되는 퀴즈에는 해당 레슨에서 학습한 어근에 관한 퀴즈도 꼭 들어가 있다. 


다만 이 책은 내용에서나 분량에서나 절대 쉽지 않다. 우선 두껍다. 책 페이지만 해도 632페이지다. 게다가 이 책의 학습량도 만만찮다. 아예 책에서 '개인차에 따라 최소 48일에서 0일, 혹은 그 이상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레슨 1개의 내용을 그날 완벽히 습득하기도 어렵다. 처음 보는 단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머리 속에 집어넣는 것도 일이다. 완벽히 공부했다쳐도 시간이 지나면 학습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망각하므로 복습을 해줘야 한다.


그렇기에 이 책 하나만 읽는다고 영어 어휘를 마스터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이 책은 기본이고, 계속 새로운 어휘를 접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목표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새로운 어휘를 끊임없이 습득하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영어) 글을 많이 읽고 새로운 어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책등이나 책 앞표지를 보면 '미국 대학 최고의 영단어 명강의'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즉 이 문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이 책의 원서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간 미국 학생을 독자로 상정했다는 점이다.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사용하는 한국인 입장에서 보자면 이 책을 소화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데, 거기다가 새로운 어휘까지 꾸준히 습득하려면 앞으로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는지! 


어쨌든 이 책은 단기간에 고득점 획득이 목표인 공인 영어 시험보다는 어려운 영어 원서나 〈뉴요커(The New Yorker)〉같이 단어 수준이 높은 영어 매체를 읽고자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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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만델라가 했던 말 중에 도움이 될 만한 문구가 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머리로 간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어쩌면 만델라가 적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염두에 두었던 말일 수도 있다. 그는 도리에 맞게 말할 뿐만 아니라, 그들 마음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길 원했다. - P183

놀랍게도 외국어로 된 욕은 정말 재빨리 배운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더 즐겁게 배우는것 같다. - P187

나는 비속어 사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 그것을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무엇보다도 의사소통 상황에서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이런 부분은 사회와 언어 및 정서적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 단어 선택은 그와 관련된 감정 강도와 의사소통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 P187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교실에서만 외국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오락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도외국어를 배운다. 즉, 사회적 맥락 안에서 직접 언어를 사용하면서 배우는 중이다. - P188

우리 행동의 기대 가치를 극대화하고 문제의 여러 변수를 늘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위대한 경제 사상가들이 말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이고, 우리의 결정은 신중하고 합리적인 유형보다는 직관적 과정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 P195

사회적 범주화로 고정 관념은 발달한다. 같은 우산 아래로 사람들을 모으면, 각 집단이 믿는 속성(악하든 선하든)이 각자에게 전달되지 않을수 없다.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억양과 다른 언어(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고정 관념이 생긴다. 그러나 다른 언어로 말하는 내용이 중요한 거지, 다른 악센트를 쓴다고 해서 문제 삼거나, 적어도 부정적인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원어민과 다른 억양을 보이는 외국인 강사가 하는 말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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