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고화질] 전원 옥쇄하라! 02 전원 옥쇄하라! 2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옥쇄(玉碎).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면 '부서져 옥이 된다는 뜻으로, 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개끗이 죽음을 이르는 말'로 나온다. 실로 무시무시한 단어다. 무엇을 위한 명예인가? 무엇을 위한 충절인가?


『전원 옥쇄하라!』는 일본의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자전적 만화다. 제목에서 이미 이 만화가 어떤 만화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책은 한 권으로 출간된 데 비해 ebook판은 1권을 2권으로 분권해놓았다.


태평양 전쟁이 한참인 뉴브리튼섬의 코코포라는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위안소'를 들르는 일본군들. 그들 앞에 새롭게 부임한 타도코로 소좌는 미나토와강에서 다이난 공과 함께 전사한 500명을 언급하며 "우리 지대의 인원도 정확하게 500명이다. 제군들이 용감하게 싸울 것을 기대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바이엔에 상륙한다. 이어서 화자 마루야마의 암울한 언급이 이어진다. "그렇다.... 여기는 모두가 천국으로 갈 곳이었다...."


바이엔에서 일본군 병사들은 하나씩 쓰러진다. 물고기를 잡다가, 강을 건너다가, 적과 교전하다가. 부사관들은 '이래야 정신차린다'며 구타와 가혹행위를 일삼는다. 미군의 폭격이 이어진다. 미군이 상륙하고 교전이 일어난다. 후퇴한 미군 진지에는 초콜릿과 통조림이 가득하다. 반면 일본군은 부족한 식량과 전염병에 시달린다. 미군은 시시각각 일본군을 압도하며 바이엔의 일본군을 몰아붙인다. 타도코로 소좌는 불리해지는 전황을 앞에 두고 다이난 공을 들먹이며 항상 '돌격하라,' '옥쇄하라' 같은 말만 내린다. 이 비극을 전하는 화자 마루야마는 늘상 사역에 나서고, 초년병이라는 이유로 늘 구타에 시달린다. 부사관과 장교들이 내리는 명령은 앞뒤가 안맞고 서로 충돌하기 일쑤다. 


후방의 라바울에선 십만 장병이 무위도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음식도 변변히 못 먹고 있는 우리가 이런 육지의 외딴 섬 같은 곳에서 죽어야 합니까? 이 고지가 그렇게까지 하며 지킬 필요가 있는 곳입니까? 그 자체가 엄청난 희극 아닙니까?

- P197.

중대장, 말조심하게. 이 고지를 지키는 것은 병단장 각하의 명령일세. 자네는 잠자코 나와 함께 죽으면 되네. - P197.

입에 옥쇄하라, 돌격하라를 말버릇처럼 내뱉는 타도코로 소좌는 부하 장교의 합리적인 반박 앞에 "병사를 개죽음으로 모는 일을, 대장으로써 어찌 명령할 수 있겠나." 라는 궤변을 늘어 놓는다. 병사들은 대체 왜 이곳에서 싸우는지 의문을 품는다.


소대장님, 내지는 매일 폭격당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내지가 엉망이 되도록 당하고 있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런 곳에서 싸우고 있는 겁니까? 

- P207

그건 나도 몰라. - P207

이 만화의 장교들 중에서 정상인을 찾자면 군의관이다. 군의관은 후방 라바울의 사령부를 찾아가 키도 참모에게 따진다. 군의관은 이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독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후방의 방비를 위해서 굳이, 굳이 옥쇄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옥쇄시키지 않고 그 방법을 찾는 게 작전 아닙니까? 옥쇄로 전도유망한 인재를 잃고, 어찌 전력을 높입니까? - P278

당신들은 의미도 없이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합니다. 일종의 미친 사람입니다. 더 냉정하게 대국적으로 생각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P278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 P278

참모님. 일본 이외의 군대에서는 싸우다 포로가 되는 걸 허용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군만 이를 허용하지 않습니까? 이를 허용하지 않으니 옥쇄 같은 짓이나 벌이는 겁니다. - P280

군의관의 의문에 대해 키도 참모는 아주 간단히 대답할 뿐이다.


네놈 그러고도 일본인이냐? - P280

이 만화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비교해볼 수 있는 만화다. 두 만화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 두 나라가 당시 얼마나 광기에 차있었는지 들춰낸다. 


차이점도 있다. 『쥐』는 전쟁 당시 유럽에서 홀로코스트를 겪는 과거의 아버지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 현재의 화자, 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면 『전원 옥쇄하라!』는 전쟁터에서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병사들을 그려내면서 전쟁의 참상을 비추는 만화다.


'병사들을 개죽음 당하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돌격시켜야하니까'라는 공통된 궤변을 늘어놓는 타도코로 소좌와 키도 참모의 모습은, 전쟁이 얼마나 부조리에 찬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가 어디까지 '전쟁하는 기계'로 전락하여 국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터로 내몰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덧붙여, 이 만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현재에도 여전히 경종을 울리는 만화다. 전쟁이라는 유령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배회해왔고 지금도 전 세계를 배회하기 때문이다.



벌레든 뭐든 모든 생명체가 살고자 하는 것은 우주의 의지입니다. 인위적으로 이를 막는 것은 악입니다. - P270

군대라는 게 애당초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병적인 존재입니다. 인류 본래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에요. 맑게 갠 하늘이나, 지저귀는 새나, 섬사람들 같은 건전함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 P2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고화질세트] 히스토리에 (총11권/미완결)
Hitoshi Iwaaki / 서울미디어코믹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 그리스와 동지중해 세계를 다룬 역사서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대 그리스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만화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고화질세트] 히스토리에 (총11권/미완결)
Hitoshi Iwaaki / 서울미디어코믹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생수》로 유명한 이와아키 히토시의 역사만화. 배경은 세계사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즉위하기 직전의 그리스 세계다. 


주인공 에우메네스는 실제 역사 속의 '에우메네스'에서 따온 인물이다. 역사에서 에우메네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에 협력한 그리스인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에 따라 나섰고 대왕 사후 전개된 분열 속에서 마케도니아 장군 안티고노스에게 살해 당했다.


이 만화의 에우메네스는 아테네 계열의 식민시 칼데아에서 성장한 '그리스인'이지만 사실은 칼데아시의 유력자 히에로니무스가 어린 시절에 거둬들인 '스키타이인'으로 설정되었다. 문화적 정체성은 그리스인이며 다른 그 어떤 그리스인보다도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에 빠삭하지만, 정작 외모와 신체는 스키타이인이다. 소프트웨어는 그리스인, 하드웨어는 스키타이인. 이 점에서 주인공 에우메네스가 그리스 사회에서 가지는 위치는 그리스인도 아니고, 바르바로이도 아닌, 둘이 뒤섞인 이방인에 가깝다. 그래서 1권에서 에우메네스가 아리스토텔레스와 만날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인과 바르바로이(야만인)의 차이점을 언급하는 장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1-4권까지는 에우메네스의 과거 여정을 돌이켜본다. 에우메네스는 그리스인으로서 성장하여 그리스인이라 생각했으나, 그리스인이라는 정체성에 가려져 있던 스키타이인으로서의 본모습을 알게되고, 그리스와 스키타이가 뒤섞인 자신이 그리스 및 주변 사회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에우메네스는 외친다. "날 속였어!" 


여정 중에 파플라고니아의 티오스 시 인근에 위치한 보아 부족의 마을에 잠깐 머무른 에우메네스는 티오스 시와 보아 부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분노의 창끝을 돌리게 만드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나 그 대가로 떠돌이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자신이 성장한 곳인 칼데아 시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에우메네스는 칼데아 시를 포위한 마케도니아군과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를 만난다. 에우메네스는 필리포스 2세를 마치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 같다고 느낀다. (반면 에우메네스 본인은 자신을 오디세우스에 비유한다.) 4권부터 에우메네스는 그리스 사회를 떠나 그리스인들에게 바르바로이나 다름없던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에우메네스가 바라본 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인, 그리스인이 뒤섞인 왕국이다. 어찌보면 에우메네스에게는 그리스 보다는 그나마 어울리기 쉬운 장소다. 


5권부터 11권까지는 관찰자 에우메네스의 시선에서 복잡하게 돌아가는 동지중해 지역의 정세가 드러난다. 한편에서는 마케도니아 왕가의 복잡한 암투가 펼쳐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해 향후 페르시아 원정에 나서려는 필리포스의 야망이 펼쳐진다. 이 와중에 알렉산드로스는 점차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이 만화는 사실 역사적 고증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고증대로라면 에우메네스는 그리스인이 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 만화의 에우메네스는 그리스 도시에서 자란 스키타이인이다. 게다가 필리포스 2세 및 알렉산드로스 대왕 밑에서 활약한 장군 안티고노스의 행적도 묘연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작가의 상상력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리스라는 환상을 철저히 깨부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는 흔히 아테네의 민주정,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일찍이 서양 철학의 바탕을 이룬 지역, 야만과 구분되는 문명의 대표, 동방의 페르시아에 맞서는 서방의 대표자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신화들은 지금까지 그리스 및 이 지역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들로 충분히 무너진 것들이다. 예컨대 그리스의 정치 제도는 여성, 외국인, 노예를 배제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실제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펼쳐진 광경이 어떠했는지는 잘 상상하지 못한다.


이 만화는 역사서와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상상된 신화를 깨부순다. 작가가 보여주는 만화적 상상력은 역사가들의 역사적 상상력보다는 작가들의 문학적 상상력에 더 가깝다. 아마 만화라는 매체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그리스의 잔혹하면서도 어두운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준다. 1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인과 바르바로이를 철저히 구별 짓는다. 그러나 이후 그리스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 만화는 독자들에게 그리스 군인들이 노예 사냥에 나서, 도시 인근 바르바로이 무리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붙잡아 상품 취급하는 장면을 가감없이 보여준다.(이외에도 잔인한 장면들이 가끔 등장한다.) 


한편 작가가 재해석한 에우메네스는 현대인이 감정이입하기 알맞은 주인공이다. 이 만화는 독자를 기원전 4세기 무렵의 그리스로 내던진다. 그곳에서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인들대로, 스키타이인들은 스키타이인들 대로, 마케도니아인들은 마케도니아인들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 고대 세계에서 독자는 이방인이다. 에우메네스는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인이면서 그리스 사회에 끼지 못하는 스키타이인이라는 이방인이다. 이방인으로서 에우메네스가 보여주는 태도는 이 만화를 읽는 동안 과거라는 낯선 왕국을 여행해야하는 이방인으로서의 독자를 대변하기에 좋다. 나아가 에우메네스 자신이 이해 못할 다른 문화를 접할 때마다 내뱉는 말, "문화가 달라!"는 이 낯선 고대 세계에 발을 들인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내뱉을 말이기도 하다.


다만 에우메네스라는 인물이 무리하게 부각되는 점도 있다. 예를 들어 한참 뒤에나 발명될 등자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 부닥쳐 문제를 해결할 때 에우메네스가 너무 뛰어나다는 인상을 개인적으로 받기도 했다. 이 부분은 뒤로 갈수록 에우메네스라는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국가간의 정치, 외교, 전쟁, 암투, 수싸움이 전개되면서 어느 정도 중화되는 듯 하다.


또 다른 문제점을 꼽자면, 현재 마지막 권인 11권을 책으로 사서 읽은 지 몇 년은 된 듯 한데 아직도 후속 권이 안나왔다. 그만큼 연재 속도가 느리다. 에우메네스의 여정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그 후 펼쳐질 디아도코이들 간의 혼란 속에서 끝날텐데, 부디 작가가 에우메네스의 여정을 잘 마무리 지었으면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3-10-04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엄청 재밌게 읽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연재가 매우 뜸해서 7권까지인가...거기까지만 읽었습니다. 아직도 완결이 안났군요!! 완결되면 전집을 소장하고 싶은 작품^^

Heath 2023-10-04 13:39   좋아요 0 | URL
완결까지 얼마나 걸릴지 ... 그래도 기다려야겠죠^^
 
알라딘 버라이어티 팩 세트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2월
평점 :
품절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서 좋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국의 지성사가 리처드 왓모어가 쓴『지성사란 무엇인가』는 지성사에 관한 입문서다. 이 책은 Polity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What is History?" 시리즈 중 하나다. 국내 번역본은 2020년에 발간되었지만 원서는 2015년에 발간되었다. 시기를 따져보면 원서는 슬슬 개정판이 나올 때가 아닌가 싶다.


 



"What is History?" 시리즈 중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피터 버크의 『문화사란 무엇인가?』와 도널드 휴즈의 『환경사란 무엇인가?』가 있다. 이 중 『문화사란 무엇인가?』는 2005년 국내에 번역된 만큼 2018년에 발간된 3판은 아니고 그 이전의 구판 번역이다. 게다가 현재 품절 상태다.


 


반면 『환경사란 무엇인가?』는 2022년에 번역된 만큼 최신판이다.


 



이외에도 polity 출판사의 "What is History?" 시리즈 중에는 흥미로울 입문서가 많다. 국내에 모두 소개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비슷한 입문서 시리즈로는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로 소개되는 Oxford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가 있다. 

 


가장 최근 번역된 기후변화 편이 시리즈 50권째.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가 아닌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책도 하나 있긴 하다(해당 번역본은 현재 절판되었다). 



출판사 사이트에 들어가 목록을 확인해보니 Oxford very short introduction은 현재 출간된 시리즈 목록만 해도 770권. 남은 책들이 국내에 모두 소개 될려면 얼마나 걸릴까? 게다가 새로 나오는 권 수도 고려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지금 이 글에 등장한 책들은 모두 '입문서'다. 입문서라고 해서 깊이가 얕지 않다. 오히려 입문서는 깊고 넓은 학문 세계의 출발점이다. 입문서를 통해서 다시 학문의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입문서를 한번씩 다시 읽을 때마다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디까지 얼마나 나아갔는지, 덧붙여 아직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