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궁극 : 서평 잘 쓰는 법 - 읽는 독서에서 쓰는 독서로 더행의 독서의 궁극 시리즈 1
조현행 지음 / 생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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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 표지부터 보자. 부제에는 '읽는 독서에서 쓰는 독서로', 앞표지 문구에는 "읽기만 하면 책으로부터 받은 모든 감동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면 그것은 정신에 지문을 남기고 이윽고 내 삶의 재산이 됩니다."라고 쓰여 있다. 뒷표지에는 "읽고 쓴다는 것은 책에서 얻은 앎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라고 쓰여 있다. 사실 표지 문구만 봐도 이 책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2020년에 출간하였는데, 2015년에 나온 『서평 글쓰기 특강』에 저자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의외로 반가운 부분이다.


목차를 보면 책은 크게 6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서평을 써야하는 이유를 강조한다. 

읽기만 하는 독서는 ‘휘발되는 독서‘입니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면 그것은 정신에 지문을 남기고 이윽고 내 삶의 재산이 됩니다. 물론 쓰기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날아갑니다. 그러나 읽기만 했을 때보다는 더 오래, 깊이 남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P7

동시에 이 책에서 저자의 의도가 설명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전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독서의 궁극‘에 이르는 ‘서평 쓰기‘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 P9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보자. 총 6부로 구성되며 '1부. 왜 서평쓰기인가' '2부. 서평쓰기 2단계: "기본 다지기"', '3부. 서평쓰기 2단계:"읽기"', '4부. 서평쓰기 3단계: "쓰기"', '5부. 서평쓰기 4단계: "퇴고하기", '6부. 서평쓰기 5단계:"분석하기"'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구조는 크게 서평의 의의를 설명하고, 글쓰기의 기초를 다지고 난 후, 책을 읽고, 쓰고, 퇴고하고, 분석하는 단계적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도중에 몇 몇장마다 '덧붙임'이라는 장을 추가해 부연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1부에서 저자는 독서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었다. 그런데 책을 설명할 수 없다면? 그러면서 독서의 3단계(인지-사고-표현)을 제시한다. 인지는 내용 파악, 사고는 책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 표현은 사고의 언어화이며 바로 서평을 통해 실현된다. 이어서 다른 서평 관련서들처럼 독후감, 서평, 비평의 차이점이 제시된다. 독후감은 주관적, 서평은 객관적, 비평은 서평을 포괄하는 상위의 범주로 시대와 역사에 비추어 책의 의미와 가치를 폭넓게 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서평쓰기가 독서의 궁극이며, 독서의 목적은 정신적 성장이고, 이를 위해 독자 자신의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생각을 가지는 과정이 곧 쓰기 과정인 것이다. 글쓰기는 사유와 인식을 넓히고 통찰에 이르게 해준다. 여기서 책은 광대한 텍스트로서 글쓰기의 소재가 담긴 바다라 할 수 있다. 다만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글을 많이 써서 그 양을 채울 필요가 있다.


2부에서 저자는 서평쓰기에 앞서 글쓰기의 기초를 제시한다. 크게 낭독, 필사, 그외 5가지 글쓰기 훈련법으로서 묘사하기, 요약하기, 5줄 서평쓰기, 정의내리기, 들려주기, 글쓰기에서 지켜야할 사안이 제시된다. 


3부부터는 본격적인 서평쓰기 과정이다. 그 시작은 '읽기'다. 동시에 서평의 구성 요소도 제시되는데 서평은 크게 1. 책소개, 2. 내용, 3, 해석, 4, 평가로 이루어진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이런 구성요소를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읽기의 3단계도 제시된다. 1. 내용 파악을 위한 가벼운 읽기, 2. 밑줄 그어가며 읽기. 3. 발췌 노트를 만들고 노트에 옮겨 적기. 이 과정이 끝나면 자신의 느낌, 견해, 생각을 만드는 단계로 넘어간다. 좋은 서평에는 서평가의 질문이 담겨 있으며, 서평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통해 문제를 설정하는 능력,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다. 질문은 발췌하며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을 연결하여 만든다. 서평가가 던지는 질문과 답은 '해석'이다. 인간은 삶의 의미가 필요하며 '해석'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서평이 중요하다. 서평쓰기는 바로 해석력을 키우는 과정이어서다. 


저자는 '덧붙임'에서 실제 사례와 더불어 해석의 틀을 크게 네 가지로 제시한다. 1. 보이지 않는 실체 끄집어내기, 2. 책의 상황과 우리의 삶을 비교해 우리가 놓치는 것 탐구하기. 3. 책의 주장에 자신의 주장 얹기, 4. 주제 키워드를 설정하고 세밀하게 관찰하기.


이제 4부, 서평쓰기 3단계 "쓰기"로 넘어가자. 서평을 쓰기 어려운 이유는 잘 쓰고 싶다는 강박, 원하는 대로 글이 안나와서, 다른 사람의 평가를 견디기 어려워서, 자기 수준보다 높은 책을 읽어서 등이 있다. 저자는 서평에 정해진 규칙은 없으나 구조를 알면 쉽게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서평 쓰기의 틀은 1문단에서 책을 소개하고, 2문단에서 내용을 요약하고, 3문단에서 발췌, 4문단에서는 해석, 5문단에서는 책을 평가하는 것이다. 아울러 서평가는 서평을 쓸 때 서평에 사용되는 서술어를 다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독창적인 서평, 좋은 서평은 서평자의 독창적인 해석이 담긴 서평이라 할 수 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좋은 서평은 서평자의 독창적인 해석이 담긴 서평이라 할 수 있다. 독창적인 해석이란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서평이 아니라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현실에 적용하여 사유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나아갈 방향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이 우리의 삶과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닌, 책을 통해 지금 현재를 사유하게 하는 서평이 좋은 서평으로서의 자격에 부합한다. - P113

5부로 넘어가면 서평쓰기의 4단계, "퇴고하기"다. 글은 퇴고로 다시 태어나며 부족한 부분이 보완된다. 퇴고하는 방법은 단어에서 시작해 문장, 문단, 글로 수준을 높여간다. 아울러 저자는 서평쓰기는 최고 지성의 작업이라 말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행위는 고도의 지성을 발휘해야하는 작업이다. 책의 내용을 독해하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가다듬어 글로써 표현하는 일은 모든 지성이 거쳐야하는 과정인 것이다. 읽지 않고 쓰지 않는 지성은 있을 수 없다. 지성인이라 하면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서평쓰기는 바로 이 지성을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 P133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성을 갈고 닦아야 하는가. 위의 글에서 사회학자 이진경이 언명했듯이, 바로 ‘자유‘를 얻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자유롭기 위해서 지성의 작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노정에 놓여있다. 인간이삶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 중 하나가 자유라고 할 때, 우리는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이 세상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알고 이해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지 모르면, 이 세계를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고, 알지 못하면 두려움에 갇히게 된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은 그 대상을 잘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온다. 그래서 두려움에 갇힌 사람은 결코 자유를 얻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쓰기는 인간이 자유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최고 지성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 P134

마지막 6부 서평쓰기의 5단계 "분석하기"에서는 글을 쓰는 서평의 의의를 제시하고, 이어서 훌륭한 서평을 읽으며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 분석 기준으로 3단계가 제시된다. 1단계, 책의 내용을 알기 쉽게 잘 전달했는가, 2단계. 책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밝혔는가. 3단계, 서평가의 독창적 해석이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뮈의 『이방인』서평 3편을 분석하며 책은 마무리 된다.


서평의 기초에서부터 실제 서평쓰기까지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에서, 그리고 연습 문제 및 실제 서평을 수록하여 사례를 제시하는 점에서 이 책은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 지 잘 모르는 초보자들을 위한 배려로 가득하다. 기초적인 글쓰기에서부터, 책을 읽는 방식, 책을 읽고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하는 방법, '덧붙임'을 통해 전달해주는 여러 유용한 팁들까지, 책의 분량이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서평과 관련해 전달해야할 내용은 모두 담고 있다. 특히 서평쓰기 1단계, "기본 다지기"는 서평쓰기 뿐만 아니라 글쓰기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팁들이다. 그 점 덕분에 이 책이 지닌 실용성이 한층 더 빛난다. 내용 면에서나, 두께면에서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서평 지침서, 실용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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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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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이라는 제목과 뒷표지에서 부터 이 책은 서평이야말로 독서의 심화이자 독서의 완성임을 강조한다. 목차에 앞서 머리말이 나오는데, "'헬조선'의 중심에서 서평을 쓰다"라는 제목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2010년대 후반 이후로 사실상 사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저자는 머리말에서 "열 명이 서평을 쓰면, 열 편의 서평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서평의 본질은 동일하지요. 서평의 작성법 이전에 서평의 정체성에서 시작하는 이유입니다"라며 책의 의도를 설명한다. 


목차를 간단히 살펴보면 1부 서평이란 무엇인가?에서 서평의 본질과 목적을, 2부 서평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는 서평의 전제, 서평을 이루는 요소, 서평을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1부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자. 목차를 따라가보면 우선 서평과 독후감을 비교하고, 이어서 책과 서평의 관계가 제시된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독서, 좋은 서평은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가져온다. 다음은 서평을 쓰는 이유다. 서평 쓰기는 독자가 내면을 성찰하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삶을 통한 해석이자 실천이기도 하다. 서평은 좋은 책을 읽고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시킨다. 매개로서 서평은 책과 잠정적 독자를 연결하거나 단절시킨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서평은 입장이 분명한 서평이다. 서평은 개인적 판단의 공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서평가 개인의 기호가 중요하다. 여기서 저자는 가벼운 서평과 무거운 서평을 나눈다. 전자는 특정한 책의 독서를 제안하나, 후자는 특정한 책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제 이 책의 분량 3분의 2를 차지하는 2부를 요약해보자. 첫째는 어떻게 읽을까의 문제다. 저자는 무엇을 읽든 상관없으나 독서의 목적과 태도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조언한다.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비판이 필요하다. 또한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서평의 핵심 중 하나는 요약이다. 좋은 요약은 공정한 평가의 전제이며 서평의 토대이다. 각 장을 읽은 후 핵심을 요약해야하며, 비평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요약만으로는 서평이 되지 못한다. 서평의 본질은 평가이며 독자의 해석이 포함되어야 한다.


서평의 또 다른 핵심인 평가로 넘어가자. 평가는 곧 비교이며, 가치를 매기는 행위다. 이를 위해 기준이 필요하다. 저자에 따르면 평가는 맥락화로 표현된다. 책 내부의 정합성과 책 외부의 맥락화 모두 중요하지만 저자는 외부의 맥락화에 더 무게를 둔다. 저자는 좋은 서평은 바른 맥락에서 책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준과 안목이다. 책을 평가하는 기준과 관점을 갖추려면 여러 분야의 독서가 선행되어야 하고, 서평 대상이 어떤 자리에 위치하는지 깊이 이해해야 한다. 즉 제너럴리스트이면서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지점은 서평 대상의 현재 맥락을 파악하는 공시적 맥락화와,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통시적 맥락화이다. 서평자는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찾을 필요가 있으며 자신의 전문 분야나 선이해가 된 분야에서 서평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좋은 서평집은 서평가의 문제의식을 내포하며, 맥락을 파악하는 것으로서 지적 교양은 맥락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한 서평가는 교양인이며 핵심 교양을 지향한다. 여기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자신만의 핵석학의 기준, 입장이 필요하다.


이제 책의 평가 요소로 들어가보자. 저자에 따르면 책의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다. 제목의 의미와 함의를 적절히 언급해야 하고, 목차를 분석하여 책의 구조를 파악해야하고, 문체를 이해하여 저자의 개성을 읽어내야 하며, 책이 다루는 지식이 해당 영역을 충분히, 정확히 다루었는가이다. 저자는 서평에서 따져야할 점은 예의가 아니라 바른 정보라고 말한다. 논리 전개 과정 역시도 전제, 기본 자료가 옳은지 따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서평의 방법이다. 일단 생각을 해야하고, 기본은 책을 정독하는 것이며 메모는 필수이다. 발췌 및 사유를 기록하여 논리적으로 배열하고, 바로 글을 쓴다. 쓰면서 생각한다. 이때 책 읽기로 생각한 내용을 언어화해야 한다. 첫 문장을 꼭 잘 쓰려 할 필요는 없으며, 하나의 문단에는 하나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단어는 독자가 알기 쉬운 단어를 골라야 한다. 멋진 인용의 강박을 피해야 한다. 마무리는 좋은 서평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굳이 미문이나 교훈으로 마무리할 필요는 없다. 고치고 또 고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비록 국내의 서평 인프라가 빈약하긴 하나, 서평을 쓰는 독자 대중이 늘어나는 점은 긍정적 현상이라 진단한다. 아울러 서평쓰기는 정치적 행위로써, 시민의 일원으로서 수행해야 하는 의무임을 강조한다. 서평이 쌓이는 만큼 사회도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쓰다 보니 요약에 치중한 글이 되어버렸다. 아직 요약 실력이 미숙하기 때문이리라. 이 부분은 많이 쓰면서 차츰 늘려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책은 서평의 의의와 서평 쓰는 법을 제시하며, 분량을 따져보면 참고문헌을 제외하고 170페이지가 채 안되는, 책자에 가까운 책이다. 책의 크기도 작은 편이며 글자 폰트도 크고 목차 구분이 잘되어 있어서 쉽게 읽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서평의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평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관련 서평 지침서(혹은 작법서)라고 할만한 책들을 연달아 읽었는데, 서평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책이었다. 에필로그에서 서평쓰기를 시민의 일원으로서 수행해야할 의무이자 정치적 행위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나, 오래전 교체된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혹은 당시 시점의 사회 전체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서평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저자의 서평관에 동의할지, 이의를 제기할지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인 『서평 쓰는 법』이 과연 책 본문에 잘 설명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이 저절로 제기될 수 있다. 이 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읽은 다른 서평 관련서들과 비교하자면, 제목인 '서평 쓰는 법'에 비해 그리 친절한 책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즉 '제목값'을 제대로 한다고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다른 서평 관련서들은 실제 사례를 제시한다거나 서평을 쓰는 구체적인, 혹은 실용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그에 비해 이 책에서 알려주는 서평 쓰는 법은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다. 실제 서평의 사례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서평 쓰는 법보다는 서평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 서평 자체의 의미, 서평 쓰는 행위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더 치중한다. 이런 점에서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 때 서평을 잘 쓰려고 이 책을 집어드는 독자에게 이 책의 내용과 구성이 과연 유용하게 다가올지는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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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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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1899년,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미국의 상류계층을 '유한계급'으로 지칭하며 그네들의 과시적인 낭비 행태를 풍자하는 책, 『유한계급론』을 출간하였다. 이 책을 두고 한 서평가는 이 책이 영국의 유한계급을 모방하고 영국 귀족과 결혼하려 드는 미국 상류층의 행태를 묘사한 점에서 미국 문학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 평가하였다. 공교롭게도 20세기 초 미국 '유한계급'의 행태는 1944년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의 『면도날』로 비슷하게 재연되었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면도날』은 작가인 서머싯 몸이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대공황 시기까지, 두 부류의 인물상을 관찰한 이야기다. 한편에는 미국인 속물들이라 할만한 엘리엣 템플턴과 조카딸 이사벨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1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하였으나 눈 앞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로랜스 대릴, 줄여서 래리가 있다. 래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 한동안 세상을 등졌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온다.


몸은 이 책을 시작하면서 줄거리다운 줄거리도 없는 이런 글이 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가 우려한다.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없다. 내가 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마땅히 붙일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다운 줄거리도 별로 없고 결말이 죽음이나 결혼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p. 9


확실히 이 책에서 등장인물들이 일으키는 사건은 이 책에서 잠깐 언급되는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일으키는 사건과는 거리가 있다. 스트릭랜드가 사고뭉치라면, 이 소설은 후반부의 한 사건만 빼고 끊임없이 화자인 몸이 엘리엇, 이사벨, 래리, 그외 소피, 수잔 루비에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헤어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 중심에는 래리가 있다.


이 책은 내가 이따금 만나서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한 남자를 회상한 내용이다. 나는 그가 나와 만나지 않았던 기간에는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나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기간에 있었을 법한 일을 그럴듯하게 꾸며 내 좀 더 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단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P10


인물 간의 갈등(주로 이사벨과 래리 사이)이 빚어지긴 하지만, 주요 인물들 중 찰스 스트릭랜드에 비견될 만한 초대형사고를 치는 인물은 없다. 


이 책에서 긍정적으로 비춰지는 인물은 역시 주인공이라 할 인물은 래리이다. 래리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한다. 래리는 1차 세계대전에서 공군으로 참전한 후 동료가 한순간에 '핏덩이'가 되는 꼴을 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래리의 등장은 상당히 늦다.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속물근성으로 가득찬 엘리엇 템플턴이다. 이 소설의 비중만 놓고보면 엘리엇 템플턴이 진짜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엘리엇은 풍족한 재산을 지니고, 유럽의 사교계에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사람을 대할 때 사회적 신분을 따지며 대하는 속물의 전형이다. 그가 머무는 방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그가 몸과 친해진 계기도 몸이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나중 가면 자신의 이니셜을 새긴 속옷을 몸에게 보여준다거나, 죽음을 앞두고서도 사교 파티 초대장에 답하려 하는, 나름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예술품을 알아보는 교양과 안목이 있으며, 프랑스어와 영국식 영어에도 능통한 인물이다. 술집에서 다같이 대화를 나눌 때, 술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한껏 늘어놓는다. 


이 같은 엘리엇 템플턴의 면모는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묘사한 유한계급의 모습과 많은 점에서 들어맞는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이 쓸모없는 지식과 예의범절을 학습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는 과시적 여가, 역시 쓸모없이 소비하며 재산을 과시하는 과시적 소비, 이른바 과시적 낭비를 일삼는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시간과 재산을 낭비하는 과정에서, 유한계급은 쓸데없는 예의범절과 오로지 낭비로만 귀결되는 각종 지식을 남들 앞에서 보여준다는게 그의 요지다.


어느새 우리는 미술관에 도착했기 때문에 자연히 관심도 그림으로 옮겨 갔다. 나는 엘리엇의 박학다식함과 예술적 안목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관광객이라도 안내하듯 나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 어떤 미술교수라도 엘리엇만큼 훌륭하게 그림을 설명해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 P41
그때부터 엘리엇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파리에서 최고급 요리사를 불러왔고, 얼마 후 그의 집에 가면 리비에라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평판이 자자해졌다. 집사와 하인에게는 어깨에 금줄 장식이 달린 흰색 제복을 입혔다. 그는 최대한 후하고 성대하게 손님들을 대접하되, 고상한 품위를 지키기 위한 한계선은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P207
내가 엘리엇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감탄한 점은, 그가 신분 높은 인사들을 대할 때 우아함과 예의를 한껏 갖추면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가르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독립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P208

이러한 엘리엇의 모습에서, 그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사생활 속에서 얼마나 자신의 예의범절과 '교양'을 갈고 닦았는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래리는 책의 첫 페이지에 인용되는 카타 우파니샤드의 구절, 넘어서기 어려운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건너 구원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래리는 엘리엇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 이후에나 등장한다. 3장과 6장에서 몸이 래리에게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래리는 대체로 몸, 엘리엇, 이사벨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 엘리엇과 이사벨이 소설 내내 파리에 머무는 동안, 래리는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를 떠돌다가 마침내 인도에 가 요가수행자를 만나 수행까지 하고 돌아온다.


엘리엇, 이사벨의 가치관과 래리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은 래리가 이사벨과 파혼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사벨은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나 래리는 정신적으로 의미있는 삶을 찾고자 한다.


이사벨과 래리의 관계에서도 주목할 측면이 있다. 이사벨은 그레이 매튜린과 결혼한 이후에도 래리를 향한 욕정을 내보이는가 하면, 래리가 소피 맥도널드와 결혼하려하자 이를 훼방놓는다. 이사벨은 어떻게든 래리를 소유하려하지만 이사벨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오히려 소피와의 결혼이 무산된 래리는 이사벨을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다.


래리라는 인물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6장에서 독자는 몸과 래리의 대화를 통해 인도철학을 일부 나마 접하게 된다. 이때 래리가 말하는 인도 철학은 래리의 관점으로 정제된 인도철학, 즉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인도 철학'이다. 이 지점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으로 해부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이 쓰여진 당시에는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 같은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을 테니 그러려니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배경은 20세기 초, 정확히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해당한다. 1944년에 발표되었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의 시점을 다룬 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물질주의적인 속물들, 엘리엇과 이사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래리를 통해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풍족한 삶, 남들이 우러러 보는 삶이 의미있는 삶, 행복한 삶인가? 아니면 소설 후반부에서 래리가 선택한 것처럼 물질적으로는 평범한 삶,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고단할 수도 있는 삶을 살더라도, 선과 악이 혼재하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 갈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 행복한 삶인가? 결국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동시에 삶의 의미를 성찰 하는 것과도 같다.


래리와 몸의 대화 중 래리의 흥미로운 한 마디를 언급하면서 본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연히였죠.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간의 유럽 생활 끝에 치러야만 했던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 P409

가끔 우연과 필연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우리 삶이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인 줄 알았더니 사실 처음부터 그 결과가 래리 말마따나 필연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번번이 그에 대해 나 스스로 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항상 재미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 P7

그러곤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등장시킨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원하는 바를 얻지 않았는가? 엘리엇은 사교계에서 명성을, 이사벨은 막대한 재산을 확보하여 활동적이고 교양 있는 지역사회에서 확실한 지위를 얻었으며, 그레이는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직업과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6시에 나설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수잔 루비에는 안정을, 소피는 죽음을, 래리는 행복을 얻었다. - P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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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8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1월 달이었다. 결산도 이틀이나 늦고.



올해 처음 읽은 점에서 기념비적(?)이라 할까. 쉽게 읽히는 책이며 메타버스, AI 같은 최신 트렌드와 해당 트렌드의 맥락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분량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얇은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ChatGPT를 접할 때 이 책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신장판은 6권이지만 구판은 무려 18권. 2부 6권까지는 폴 아트레이데스가 주인공이다. 폴 아트레이데스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지만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2부 6권 마지막에 그려지는 폴의 모습은 씁쓸하다.



"듄의 아이들"이라는 제목 답게 이야기의 주역이 폴의 아이들, 레토 2세와 가니마에게로 옮겨갔다. 빨리 8, 9권도 읽어야 할텐데. 




요즘 핫한 ChatGPT를 쓰다 보면 이 글에서 제일 먼저 언급된 메타버스 사피엔스가 아니라 이 책부터 생각난다. 구글 검색을 할 때는, 구글이 엄청난 정보를 툭 던져 놓으면 사용자가 일일이 구글이 던져놓은 정보와 지식을 검토해야 했다. 그런데 ChatGPT를 써보면 (아직 한계가 있다지만) AI가 알아서 정보를 다 찾아와 입에 떠 먹여주는 수준이다. 그 점에서 단순 정보나 지식을 획득하는 수준을 넘어, 지혜에 이르는 공부를 일찍부터 강조한 이 책은 지금 시대, 다가오는 시대에 더 필요하다 해야 할까. 


 


20세기를 넘어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열렬한 호응(?)을 받는 작가 살만 루슈디의 문제작. 이 작품을 통해 루슈디라는 작가에게 매혹되고 루슈디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한데 아쉽게도 루슈디의 다른 작품을 읽을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덧붙여 문학동네 개정판이 아니라 구판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을 빌릴 때 도서관에는 2022년 문학동네 개정판 2권이 없어서였다. 이번 2월 달에 "Victory City"라는 루슈디의 신작도 나온다고 하는데 과연 국내에는 언제 출간될지?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일으킨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마지막 저서. 촛불을 보고 떠오르는 몽상은 무엇인가를 담은 책이다. 읽고 글 하나 써보려했다가 처음 포기한 책이기도 하다. 다음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그때는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판본도 참고해보려 한다. 



에코가 여러 소설에서 보여준 관심사가 사실상 이 책 하나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에코의 소설을 많이 접하고 에코의 소설을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이 책이 매력적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원래 1월에 구상한 계획 중 하나가 서평 관련 책들을 읽은 후 모티머 애들러 식으로 말하자면 통합적 독서, 혹은 주제서평 쓰기 비슷한, 그런 걸 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진척이 안되고 있다. 일단 각각의 책들마다 리뷰부터 남겨야 할텐데.




삶의 의미를 물질적 부유함에서 이미 찾고 만족하는 엘리엇, 이사벨과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주인공 래리가 대비되는 소설이다. 읽기는 금방 읽었지만 아직 리뷰를 쓰는 중이다.



책 읽는법과 서평 쓰는 법을 간단히 알려주는 동시에 실제 저자의 서평을 모아놓은 서평집이다. 덧붙여 만만찮은 분량에 달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서평이 덤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문서를 읽다보면 본문 아래에 조그맣게 달려 있는 각주의 역사를 추적한 책.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다만 모든 분야의 각주를 다루지는 않고 '역사학에서의 각주'에 관한 역사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분야는 간간히 언급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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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위대한 강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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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자이자 소설가로서 움베르토 에코의 명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에코의 소설은 첫 장편 소설『장미의 이름』에서부터 『프라하의 묘지』, 나아가 에코의 유작인 『제0호』까지 국내에 전부 번역되었다. 2009년에는 에코의 글을 한데 모은 총 25권짜리 전집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이 출판되기도 했다. 2016년 에코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간간히 에코의 책이 출간된다. 2년 전에도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2021)이 출간된 바 있다.


2022년 10월 국내에 소개된 『에코의 위대한 강연』은 2017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Sulle Spalle Dei Giganti의 번역서이다. 편집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밀라노에서 열리는 문화축제 라 밀라네지아나(La Milanesiana)를 위해 에코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렉티오 마지스트랄리스(대가의 강연) 형식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총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에코가 준비한 12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마지막 글 '성스러움'은 2016년 준비 원고다) 


원제 Sulle Spalle Dei Giganti를 번역하자면 '거인의 어깨 위에서'이다. 이 책을 여는 0번째 글도 책의 원제에 걸맞게 「거인의 어깨 위에서」이다. 이어서 미, 추, 절대와 상대, 불, 보이지 않는 것, 역설과 아포리즘, 거짓, 불완전성, 비밀, 음모, 성스러움까지, 11가지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은 00장 「거인의 어깨 위에서」를 포함해 총 12가지 테마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로 가득하다. 


이 책에 수록된 논의 대부분은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시의 적절한 테마들이 많다. 그 사례들을 들어보자.


에코가 세상을 떠난 후 대략 2010년대 후반부터 '가짜 뉴스'라는 말이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진실 대신 '탈진실', '대안진실'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브라질에서는 전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식으로 음모론을 제기한다. '딥스테이트'라는 비밀 집단이 배후에서 이 세상을 조종한다고 진지하게 믿는 음모론자들은 세상을 구원할 절대적이며 성스러운 존재를 갈구한다. 에코가 콕 집어 말하듯이 4원소 중에서 오로지 불만이 이 시대를 갈수록 불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국제 뉴스에 나타나는 사례들을 돌이켜보면 에코의 논의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가고 있었는지, 에코의 통찰력이 어디까지 뻗어 있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번역 명에 걸맞게 '에코의 위대한 강연'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에코의 작품들 『장미의 이름』부터 에코의 유작인 『제0호』까지, 뭐든 하나 이상을 접해보았다면 이 책이 건네는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특히 거짓, 비밀, 음모 같은 장은 에코가 소설(예컨대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로 구체화한 관심사들이 무엇이었는가 알려준다. 에코의 소설을 얼마나 접하였는가에 따라, 이 책을 에코의 소설들과 연결하기 쉬울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국내의 '에코 마니아들'을 위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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