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먼 훗날 기쁨이 될” 순정하고 아름다운 시편들
 시인은 서정시의 정통성을 오롯이 이어받으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된 언어감각과 독특한 시법으로 서정시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나의 폐는 폐옥이지만 미미하게 새날의 냄새가 있”(「외딴집」)다는 삶의 감각으로 시인은 “조용한 때에 샘이 솟는 곳에 앉아”(「귀휴(歸休)」) “이 조용한 칸에” 맑고 투명한 언어와 “잘 생략된 문장”(「어느 겨울 오전에」)을 갈고 다듬어 “꽝꽝 얼어붙은 세계”를 밝히는 “한동이의 빛”(「겨울달」)과 같은 시를 쓴다. “나에게는 많은 재산이 있다네”(「여행자의 노래」)라고 노래하거나 “슬픔을 싹 틔울 줄 아는 내가 좋다”(「나는 내가 좋다」)고 말하는 순정한 마음이 깃든 이 아름다운 시편들은 “먼 훗날 기쁨이 될 기쁨의 시”(소설가 김연수, 추천사)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서루조당 파효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의 작가 ‘교고쿠 나쓰히코’가 바라보는 책에 대한 이야기.

‘교고쿠 나쓰히코’는 이 작품 <서루조당 파효>에서 책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이야기 속에 내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참으로 묘하다. ‘책’이라는 것은 쓴 사람의 죽은 영혼이며, 그 책이 있는 책방은 죽은 영혼이 모여 있는 묘지로 비유하고 있다. 또한 책의 의미나 사상은 글로 표현된 유령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그 글을 읽고 거기에서 무엇을 찾아낼지 어떤 유령을 볼지는 독자에게 달려있다고 설파한다. 그런 죽은 영혼을, 그 책을 원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찾아 읽게 하여 그 영혼을 살려내는 것이 서점과 그 관계자들의 일이라고 설명한다.

 

 

암실 이야기

노벨 문학상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귄터 그라스. 그가 2006년 뼈아픈 자기 고백을 담은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를 발표한 후, 다시 한 번 '성공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써 내려간 실험적 자전 소설 『암실 이야기』를 민음사에서 출간한다. 유명한 사진사인 마리가 이제는 성인이 된 자신의 여덟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과 그들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게 한다는 설정으로, 마리는 귄터 그라스 자신이 투영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라스가 꾸며 낸 이야기 형태를 취하지만 작품 속 기억과 인물은 그라스의 실제 경험과 오버랩 된다. 아이들의 다양한 시선을 통해 그 자신의 삶을 두서없이,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
 그의 동화는 소설보다도 진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표면적인 이야기 이면에 또 다른 의미 차원을 지니고 있다. <페어리 테일>이라는 이름 그대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에서는 조각상이 살아 숨 쉬고, 폭죽들끼리는 논쟁을 벌이며,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갈등을 빚는 등 모든 것이 생동한다. 와일드는 이 속에 온갖 세상 문제들을 끌어다 입힌다. 사실적으로 다루기에 너무 무거운 주제들에 접근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동화를 택한 것이다.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나는 유독 고양이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자존심도 세고, 한곳에 매여 있기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꼬맹이 믹스 ─ 참, 믹스는 내 아들 막스가 ‘뮌헨 동물 보호 단체’에서 입양해 온 고양이다 ─ 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새끼 고양이가 어쩌면 그리도 의젓하고 당당한지 깜짝 놀랐다. 믹스는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 […] 녀석을 볼 때마다 나는 이렇게 묻곤 했다. 「지금 뭘 생각하니, 믹스?」 물론 녀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내 물음에 믹스가 어떤 대답을 했을까, 다시 말해 녀석의 침묵이 무슨 뜻일까를 상상하면서 쓴 글이다.”


 

사진가의 작업 노트

박물관에 전시한 사진이든 사진가의 웹사이트에 게시한 사진이든 모든 사진은 사진 자체만으로 스토리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간혹 창작 과정 뒤에 숨은 스토리가 그 사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각 사진을 탄생시킨 아이디어와 컨셉트, 그리고 기술적 요소를 거쳐 최종 이미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내 마음 다독다독, 그림 한 점

내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로 지켜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과 함께여서 얼마나 기쁜지 사실 우리는 자주 잊는다. 생각지도 않은 사건 사고를 마주할 때, 혹은 누군가의 불행은 목격할 때,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별다를 것 없지만 안정적인 내 하루가 다행이다 싶다. 이 책은 우리가 가치 없다고 느낀 관계, 초라하다고 느낀 시절, 번 아웃이 되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만 싶은 우리네 일상이 얼마나 의미 있는 하루인지를 그림을 보며 일깨워준다. 그림과 함께 이 책의 글을 따라가 보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읊조리게 된다. “누구의 삶도 부러워하지 말 것, 그리고 내 삶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

 

 

 

 

사진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

사진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모습을 담는 데도 최적의 매체였다. 보도 사진작가들은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전쟁터, 분쟁지역, 재난지역 등에서 활동하며 언론에 사진을 제공해 실상을 전했다. 사진작가 닉 우트는 베트남전쟁 당시 총을 든 군인을 피해 울며 도망치는 벌거벗은 베트남 아이 사진을 AP통신에 제공했고, 이 사진은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대표 사진으로 자리매김했다. 루이스 하인은 '방적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를 촬영해 미국의 아동노동이 근절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85년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녀의 모습을 담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은 수천만 명에게 영향을 미쳐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의 교육 자금을 마련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사진 한 장이 주는 힘을 알았던 작가들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사진에 담았지만, 이런 사진이 주는 양면성은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부정적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단 한 장의 이미지로 뜻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문학여행

소설 자체가 갖는 고유한 성질은 역사로 환원될 수 없다. 환원되지 않는 소중한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감각하는 것이 소설이 가진 중요한 가치이다.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의 행위와 사고를 중시하기 때문에, 소설은 때로 역사보다 더 생생한 시대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문학을 통한 역사의 이해는 감동을 통한 과거의 이해이다. 소설 읽기는 시대 흐름에 대한 개괄적 이해가 아닌, 시간 아래서 숨 쉬고 살아간 개인들의 체온을 느끼는 작업이다. 승리자들에 대한 관심이 아닌 실패자들에 대한 관심, 화해가 아닌 갈등에 대한 관심이다. 또, 소설 읽기는 시간의 무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나의 유럽 나의 편력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저자 이광주가 몰두해온 것은 괴테, 발레리, 토마스 만 등의 문학과 하위징아, 부르크하르트 등을 비롯한 유럽의 지성사 · 문화사 전반이다. 특히 그를 매혹한 것은 유럽의 지성사를 관통하는 ‘교양’의 전통 그리고 역사의 빛나는 페이지를 장식한 숱한 ‘교양인’들이었다.
이광주가 최근 20여 년 동안 천착해온 주제는 유럽의 살롱과 카페의 문화사, 차와 커피 문화 그리고 책 문화다. <교양의 탄생>(2009), <동과 서의 차 이야기>(2002),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2001), <아름다운 책 이야기>(개정판 2014) 등은 그의 오랜 탐독이 맺은 결실이었다. 이번에 펴낸 <담론의 탄생: 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 그 자유로운 풍경>은 그간 이광주를 사로잡은 유럽의 살롱과 카페 문화라는 친숙한 주제를 그 속에서 꽃핀 자유로운 담론문화의 전통을 중심으로 풀어냈다. 지금까지 출간한 여러 책을 아우르는 총결산이다.
몽테뉴의 <수상록>, 아벨라르의 <서간집>,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은 모두 이광주에게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최상의 놀이를 베풀어”주고 “긴 암흑의 시대에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읊조린다. “누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무심히 나에게 베풀어줄까.”

 

 

조선의 매화시를 읽다

사군자四君子, 즉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한 매난국죽을 이야기할 때 매화가 가장 첫 번째 순서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른 봄의 추위를 이겨내고 밝은 색의 꽃을 제일 먼저 터뜨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새해가 밝고 아직 추운 기운이 감도는 땅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를 보며 사대부들은 차오르는 시심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그들의 매화 사랑은 고전 문집을 살짝만 들춰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한국 한시와 산문이 지닌 아름다움에 주안점을 두고 매화를 애호한 문인들의 시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흐름과 특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통시적으로 고찰한다.

 

 

 

 

 

자연의 배신

저자는 '공존'이 아닌 '생존'을 이야기한다. 사실 자연은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다. 단지 우리가 꾸며낸 거짓된 환상이 우리를 배신했을 뿐이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찾아 오랜 시간을 헤맨 인류에게, 우리 손으로 자연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자부심'이라는 저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생쥐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대자연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찾아야 할 진정한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가 동물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이언스 칵테일

최강신 (이화여자대학교 스크랜튼대학 교수) 

 

: 추리소설을 보면, 모두가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설명이라도 탐정이 현장에 가서 일일이 검증해보고 절묘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밝힌다. 보는 우리들은 놀랍고 재밌지만, 귀찮음을 무릅쓰는 성실함과 오랜 기간 갈고 닦은 전문가만의 날카로움이 없으면 문제 해결은 없다. 강석기의 과학카페 시리즈를 재미있게 술술 읽으면서도 놀라고 감사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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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누스

작품의 배경이 된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이 세계는 폭력으로 둘러싸여 있다. 믿을 수 없이 거대하고 위험한 이 세계 안에서 개인은 위태로운 삶을 이어나갈 뿐이다. 이러한 현실과 삶의 진실 앞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몰두하는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 누군가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 『마그누스』는 그 질문에 대해 이 압도적으로 폭력적인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내는 길은, 그곳에서 우리를 영영 잃어버리지 않는 길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뿐이라고 대답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폭압적인 세상과 무력한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화해에 이를 수 있을지에 대한 실비 제르맹의 답변, 혹은 또다른 질문이다.

 

 

심장에 가까운 말

이 시집에서 시인은 생의 어두운 이면을 낱낱이 포착해내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도시적 삶의 불우한 일상을 감성적인 언어로 면밀히 그려낸다. 체념과 절망뿐인 비참한 현실 속에서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슬픔을 연민의 손길로 다독이며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곱씹는 내밀한 성찰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시편들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실의 모순을 끄집어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자의 삶과 시대의 아픔까지 껴안으면서 “맨살로 죄와 병을 감내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써”(김성규, 추천사)온 시인의 고뇌 또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2월 10일

◈ 추천의 말
 조지 손더스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현대 미국소설에 유머 감각과 페이소스,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스타일을 불어넣은,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작가이다.
_2006년 맥아더펠로십 선정 심사위원평

 조지 손더스의 이야기들은 예술적인 동시에 심오하다. ‘어둡게 재미있는’ 그 이야기들은 독자를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질문들의 가장자리까지 이끌고 가 그 이면과 그 너머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유쾌하고 모험적이며 연민을 느끼게 하는 그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절대적 가치를 잃지 않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_2014년 제1회 폴리오문학상 선정 심사위원평


 

백 리를 기다리는 말

『백 리를 기다리는 말』은 봄날의 풍경에 집중해 죽음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백 리를 기다리는 말’, ‘독설’, ‘피크닉 트레일러’ 등 3부로 구성, 모두 60편의 시를 담은 이번 시집은 만개한 꽃이 낙화하는 봄날의 풍경을 극도로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거짓 같은 언어로 표현했다. 만물이 탄생하는 생명으로서의 봄이 아닌 절정을 지난 것들이 소멸하는 죽음으로서의 봄에 주목, 아름다운 봄날에 숨겨진 진실한 풍경을 특유의 묘사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풍경화와 추상화의 매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박해람 시의 절정을 맛볼 수 있는 시집이다.


 

 

 

 

9일의 묘

『9일의 묘』는 암울하고 얼룩진 사건을 소설적 상상의 매개로 삼아, 인간이 진심으로 지향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집요하게 묻는 장편소설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작가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 결론내리지 않는다. 누구도 말하지 못했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슬픔의 역사를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그려나갈 뿐이다.

 

 

 

 

 

 

 

 

십자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에는 추리문학 황금기에 대한 향수가 작품 전체에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는 추리문학 황금기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그들의 트릭을 다시 뒤집고 패러디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고전 추리물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유명한 패턴과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등장시켜, 어떻게 변주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심을 품게 만들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이에 자극받은 수많은 작가들이 ‘신본격’을 지향하는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면서, 일본 미스터리계는 바야흐로 신본격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반면 『십자관의 살인』에는 척박한 한국 추리문학의 현실이 배어 있다. 추리소설이라면 문학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단, 한국 추리물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출판사, 한국 추리소설은 한 수 아래로 접고 보는 일군의 독자 등등. 간혹 추리소설연구회 회원의 냉소를 통해 스스로 비판하기도 한다. “한국 추리소설을 읽으면 좀 쪽 팔려요. 뭐랄까, 추리소설 역시 소설이잖아요. 그런데 소설이라는 사실을 놓친 ‘한국 추리’가 제법 있는 것 같아요.” 같은 대사가 그렇다.

작품 속에서 살을 깎듯 전하는 우리 추리소설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과 추리소설 쓰기의 고단함, 그에 반해 추리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놓칠 수 없는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말한다. “추리소설은 순문학이냐, 대중문학이냐를 가름하는 잣대가 아니라 가장 극적으로 소설을 써내는 선진적인 소설 작법”이라고.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극적인 소설을 만들어냈다. 『십자관의 살인』은 신본격의 방아쇠를 당긴 『십각관의 살인』에 대한 한국 추리소설가의 21세기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모던 아트 쿡북

《모던 아트 쿡북》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예술 작품 콜렉션이 아니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예술가들이 실제 즐겨 먹은 음식의 레시피를 공유해 실제로 우리가 재현해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세잔이 너무 좋아해서 요리사를 시켜서 작업에 갈 때마다 도시락으로 싸 갔다는 요리나 피카소가 가장 사랑했다는 에피타이저, 데이비드 호크니가 만들어 먹었던 딸기 케이크, 고흐만의 독특한 양파 조림… 책에는 그들의 팬이 아니더라도 궁금해질 만한 요리들의 레시피가 독자들의 도전 정신을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화가와 시인들이 즐겨 요리한 조리법을 찾기 위해 이미 출간된 책은 물론, 출간되지 않은 그들의 일기나 편지 등 방대하게 자료를 조사했다. 덕분에 ‘음식’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다양한 예술 작품과 요리 레시피가 결합된 특별한 책이 탄생했다. 식탁 위 즐거운 대화는 요리를 더 맛있게 느끼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모던 아트 쿡북》은 예술가들의 오리지널 레시피를 통해 풍성하고 즐거운 식사 시간을 만들어줄 만한 책이다.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는 디자인 분야를 파고들며 그 현실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지만 결과물은 이를 넘어선다. 무엇보다도 역자가 후기에서 제안한 것처럼 이 책은 여러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때로는 디자인 개론서로, 실용서로, 배움이나 디자인 윤리에 관한 철학적 에세이로, 혹은 하나의 작품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어느 방식을 취하든 높은 이상과 번잡한 현실, 원대한 주장과 실질적 조언을 (말 그대로 문장 단위로 오가며) 독특하게 결합한 이 책은 “나이를 불문하고 자기 분야를 새로이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업적 소명을 열렬히 설명하고 현대 운동의 핵심을 낱낱이 드러내는 목소리를 생생히 들려줄 것이다. 학생과 선생에게는 지은이가 몸소 경험한 논쟁을 풍성히 전해줄 것이다. 교육자의 성실함과 목수의 눈썰미, 디자이너의 상상력, 시인의 목소리가 두루 깃든, 그야말로 “구명대처럼 단단히 붙잡아야 하는 책이다.”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 안내서
 이 책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는 타이포그래피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작업과 함께 타이포그래피가 텍스트와 어우러지는지 파헤친다.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교과서는 대부분 가장 먼저 활자와 레터링에 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활자의 역사를 살펴본 뒤 오늘날의 상황을 짚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의 출발점은 인쇄물과 화면의 타이포그래피다. 그 뒤에는 글자체와 이미지, 장식, 레이아웃, 색 등 타이포그래피를 구성하는 요소를 살펴본다. 역사적 보기는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글자체 디자인과 인쇄 기술에 관한 약사(略史)는 이 책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긴 부록이다.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의 논지는 현대 디자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며, 무엇보다 실질적이고 기능적이다. 글자체를 디자인하는 기술에 대해 그 어느 책보다 깊게 파고들고, 폰트를 사용할 때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의 지은이 얀 미덴도르프는 세계적 폰트 회사 폰트숍(FontShop), 폰트폰트(FontFont) 등에서 작가, 편집자, 컨설턴트 등으로 일했으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쳐왔다.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그의 첫 책 『한 줄의 활자』에 이어 그의 폭넓은 경험을 반영한 『텍스트와 타이포그래피』는 요컨대 타이포그래피의 내용과 형식에 관한 현대적 이론과 실제가 어우러진 ‘오늘날의 타이포그래피 안내서’라 부를 만하다.

 


 

조류 인플루엔자(AI), 신종 인플루엔자, SARS(사스), 에볼라 출혈열, 에이즈, 간염…. 우리 귀에 익숙한 질병들이다. 사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에게 질병은 가장 큰 적이다. 그만큼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더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이 자신의 몸을 갑자기 습격한다면 그 두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위에서 말한 질병들은 모두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해당 바이러스의 정체가 인간에게 알려진 것은 길어야 수십 년 안쪽이다. 물론 바이러스 자체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인간이 오랫동안 그 정체를 몰랐거나, 그중 일부는 스스로 변이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로 바뀌었다. 그들 바이러스가 이제 인간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란 과연 무엇일까? 생명체인가 아닌가? 세균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 왜 인간이 알고 있는 바이러스는 대부분 질병을 일으킬까? 신종 바이러스는 ‘보통’ 바이러스와 무엇이 다를까?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얼마나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가? 또 바이러스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감염증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 <바이러스와 감염증> 은 이러한 모든 의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과학과 인문학

몸과 정신은 하나인가, 둘인가?
우리는 몸과 정신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생각하는 이분법에 익숙하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할수록 이러한 이분법으로는 결국 세상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온 자연과학과 인간의 정신을 연구해온 인문학은 궁극적으로는 한곳에서 만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바야흐로 지금은 인문학이 바로 그 자연과학의 기반 위에서 새롭게 탄생해야 할 때이다. 이 책은 웅숭깊은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인지과학은 철학, 심리학, 인공지능, 신경과학, 언어학, 인류학, 문학 등을 아우르는 일종의 융합 학문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인지과학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종래의 정신적 이원론에 함몰된 인문학을 사려 깊게 비판한다.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 전반에 관해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논증을 하면서 매우 날카롭고 설득력 있는 협력 방안을 제시한다.
슬링거랜드는 자연과학과 인지과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인문학자들에 새로운 관심을 촉구한다. 문화를 연구할 때 객관주의 접근법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일관성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인문학이 인간 정신에 관해 이룩한 통찰들이 인지과학과 인간 정신 연구에 있어서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여 인문학자들에게 인지과학자와 자연과학자들과 함께 공동 연구가 가능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하늘소 생태도감

하늘소에 대한 열정 하나로 젊은 곤충쟁이들이 모여 큰일을 해냈다! 故 이승모 선생의 1987년 『한반도 하늘소과 갑충지』 출간 이후 30년 만에 한국산 하늘소의 목록을 다시 정리하고 표본을 확인하여 『하늘소 생태도감』을 출간하게 되었다. 전국의 산과 들, 백두산과 중국 옌볜까지 달려가 한반도에 서식하는 하늘소 357종을 『하늘소 생태도감』에 담아냈다. 하늘소의 생태를 눈앞에서 보는 듯한 현장 사진, 정성스레 만들고 촬영한 표본 사진, 그리고 전체 종의 원기재문 기록과 문헌을 일일이 확인하고 현장에서 직접 조사한 정보를 더한 생생한 설명까지 전문 연구자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20대 젊은이 세 명이 해낸 것이다. 357종에는 지은이들이 국내 분포를 처음 밝힌 9종과 국명을 새로 붙인 41종이 포함되어 있다. 하늘소의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은 물론 곤충 연구자와 농업·임업 종사자 모두에게 『하늘소 생태도감』은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출간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세월호 이후 인문학의 기록>은 한국의 실천적 학계를 대표하는 김동춘, 천정환, 진태원, 노명우, 권명아를 비롯한 열세 명의 인문사회학자가 세월호 참사가 불러온 인문사회학적 충격과 한국사회를 성찰한 책이다. 지은이 모두는 홍세화가 「여는 글」에서 쓴 바대로, 416 이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에 대해 묻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제에 관해 답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출간된 민변의 기록, 유가족의 기록, 법정 기록에 학자들의 글을 더하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실현이자, 커다란 질문 앞에서 고뇌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유의 장을 열어가고자 하는 학자들의 숙연한 의지이다. 지은이들은 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목격자이자 살아남은 자들로서 이 책에 참여했다. 따라서 이 책은 학자적 양심과 지식인의 날카로운 분석을 담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다 쓰지 못한 목격의 기록과 살아남은 자의 말을 담고 있기도 하며, 그러하기에 서로의 글은 중복되고 교차하면서도 상보적이며 논쟁적이다.


문화가 중요하다

이 책을 공동 편집한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통해 세계를 7개의 문명권으로 나누고 앞으로 이들간의 이합집산이 세계적인 갈등과 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문제적 발언을 했다. 물론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이 책은 세계의 패권 다툼을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논쟁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문화가 중요하다≫는 이런 점에서 ≪문명의 충돌≫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다양한 비판적 해석을 불러온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정치나 이데올로기 같은 기존의 낡은 인식의 틀을 넘어 문명이나 문화적 요소를 미래 가치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문명의 하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를 통해, 그 문화의 속성을 이해하고 개선함으로써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확대, 젠더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의 차이가 빈부격차를 만들고 진보와 발전의 형태를 결정짓는다는 주장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이론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다양한 논쟁의 지점을 함께 다룸으로써 시각의 균형을 잡아간다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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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책

미스터리 장르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틀을 제공해왔다. 또한 다른 어떤 장르보다 가변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잘 대응해왔다. 이 책 속에서 다뤄진 작품들의 다양성과 그만큼의 다양한 접근 방식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무렵 등장한 다수의 여성 작가들―수 그래프턴, 새러 패러츠키, P. D. 제임스 등―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을 통해 폭력(특히 성폭력), 부당한 희생의 강요, 힘의 불균형, 젠더 갈등 등 여성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각종 사안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미스터리 장르에서 확립된 전통에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를 주고 전복을 꾀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 소설의 새로운 유형이 만들어졌고 미스터리 장르의 외연이 확장됐다. 수많은 작가들이, 심지어 스스로 미스터리 장르 바깥에서 글을 쓴다고 여기는 작가들마저 글쓰기에 미스터리적 요소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틀에 갇히지 않고 진화해온 이 장르의 활력 덕분일 것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 1

나지브 마흐푸즈는 현실을 통찰력 있게 꿰뚫는 동시에 지난 일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하는 뉘앙스가 풍부한 작품으로 인류 전체가 공감할 만한 아랍 고유의 서사 예술을 구현한 작가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영적 가치에 대한 인간의 영원한 탐색을 테마로 한 작품으로, 아담과 이브, 모세, 예수, 무함마드와 다른 선지자들, 그리고 현대의 과학자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선과 악 사이의 긴장감 가득한 갈등이 제각기 상이한 규범적 사회 속에 펼쳐진다. -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우리 동네 아이들』은 나지브 마흐푸즈가 이집트 정치 상황에 실망해 절필을 선언한 이후 7년간 침묵하다가 다시 펜을 들어 집필한 첫 장편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마흐푸즈는 정치-종교적 차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으로 불안정했던 당시의 이집트 사회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대표적 종교의 일화를 엮어 선과 악이 대립하는 한 마을의 다사다난한 역사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독특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아담과 모세, 예수, 무함마드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혁명적 일화를 이슬람 문화적 배경 속에 녹여 낸 이 작품에는 오랜 세월 인류가 찾아 헤맨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제비뽑기

셜리 잭슨의 단편집 『제비뽑기』는 잭슨을 20세기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우뚝 서게 만든 대표작이자 미국 현대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전체 5부로 나눠진 이 단편집에는 1부에 6개, 2부에 7개, 3부에 6개, 4부에 6개 단편으로 총 25개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특별한 사건 없이 소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지옥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아,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야만성과 악을 폭로하여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을 받는다. 또한 1부를 제외한 각 부의 앞머리에 악마에 관한 짧은 인용이, 마지막 5부에서는 악마로 추정되는 남자가 여성을 물에 빠뜨려 죽이는 미국 민요의 가사가 실려 있어 분위기를 더한다.

셜리 잭슨은 시인 하워드 네메로프에게 쓰고 부치지 않은 편지에서 한 말처럼 공포를 즐기는 작가였다. 비록 생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인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를 완성한 뒤에는 공포증이 심해져 몇 달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등 불행을 겪은 끝에 숨을 거두었지만, 자신이 느꼈던 공포를 냉정하게 관찰해 환상적인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셜리 잭슨은 평생 동안 편견과 차별을 증오하며 살았다. 자신을 고립시키고 자신에게서 공포를 일으키는 원천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자신이 느낀 공포로 새로운 공포를 끄집어내는 셜리 잭슨의 작품에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통찰이 들어 있으며, 이는 『신들의 전쟁』 등의 작품을 쓴 훌륭한 SF 작가인 닐 게이먼, 호러의 거장 스티븐 킹, 『나는 전설이다』를 쓴 리처드 매드슨, 『머더리스 브루클린』을 쓴 조너선 레섬, 『좀비』를 쓴 조이스 캐럴 오츠 등의 뛰어난 장르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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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나, 부르군드의 공주 / 결혼식 / 오페레타

비톨트 곰브로비치는 폴란드 모더니즘의 거장이며 "고전적인 현대 작가"이다. 장편소설 『페르디두르케』와 『코스모스』로 널리 알려진 그는, 실은 폴란드의 20세기 가장 뛰어난 아방가르드 희곡작가 중 하나였으며, 그 희곡들은 곰브로비치 작품 세계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그러나 정작 곰브로비치는 자기 작품의 공연조차 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게 있어 희곡이란 바로 "읽는 희곡(레제드라마)"으로, 반드시 현실의 무대 위에 올려야만 하는, 즉 공연을 위한 대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희곡작품은 (연출을 배려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감독에게는 도전의 대상이되 오히려 읽기에 적합하다. 곰브로비치의 희곡이 지속적으로 책으로 읽혀오며 수많은 해석을 낳게 된 이유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H. P. 러브크래프트와 로버트 E. 하워드와 함께 20세기 초 장르문학을 이끈 전설의 3인방이자, 레이 브래드버리, 할란 앨리슨, 프리츠 라이버 등 현대 장르문학을 일군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의 작품집이 황금가지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시인으로 등단하여, 문인들로부터천재라는 칭송을 들었고 스미스는, 혹평가로 잘 알려진 앰브로즈 비어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러브크래프트와 교류하면서부터는 시 대신 단편소설을 집필하였고,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코스믹 호러에 스미스의 시적 영감과 독창적인 상상력이 가미되며 ‘클래크 애슈턴 신화’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상)권에서는 유명한 마술사 해리 후디니를 비롯하여, 러브크래프트와 서신 등을 통해 오랫동안 함께 교류해 오고, 공동 작업을 했던 작가 7인과의 공저작이 수록되어 있다. 각기의 작가에 따라 러브크래프트와 전혀 다른 느낌의 결과물이 나왔고, 각 작품에 따라 공저자와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서는 러브크래프트의 독창적 작품보다는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친 당대의 인기작가들 작품들이 많이 구성되어 있다. 앰브로즈 비어스, 아서 매컨, 앨저는 블랙우드, 로드 던세이니, 윌리엄 호프 호지슨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앞권과 동일하게 각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역자의 상세한 해석이 수록되어 있다.

 

 

이블 아이

“공허한 사람들은 기꺼이 타인에 소유되려 한다.
그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좀비처럼.”
보스턴 글로브

 폭력적인 세상의 압력과 폐색을 공포라는 확성장치로 이야기하는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2013년 작품 『이블 아이』는 ‘일그러진 사랑과 관계’를 주제로 써내려간 네 편의 중편이 실린 고딕풍 서스펜스 소설집이다.
1970년대 이후 매해 평균 두 편의 신작을 발표해온 미국의 거장 오츠는 『이블 아이』에서 한층 더 괴이한 스토리텔링으로 현대인이 가진 불치의 강박과 불안을 그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환상적으로 비현실적이면서도 무섭게 익숙하다. 각 편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이블 아이(악마의 눈)’ 같은 존재의 남자에게 위로를 찾고 영혼을 기댄다. 그러나 강한 남자들은 약한 여자들을 지배하고 위협하고, 이내 여자들은 겁먹고 무기력해진다. 그러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예속을 원한다. 그들은 가해자와 피해자일까, 아니면 악의 공범자일까. 오츠는 대답한다. 인간은 “공포스러운 사건들을 겪으며 살지만 그 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맏물 이야기

맏물이란 한 해의 맨 처음에 나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로 이것을 먹으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여 길하게 여겨졌다. ‘맏물 이야기’는 초봄의 뱅어, 여름의 맏물 가다랑어, 가을의 감 등 각 계절의 식자재를 기이한 이야기에 버무린 미야베 미유키 수사물의 대표작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를 모두 실제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지만,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서민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맏물에 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이 소설은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와 더불어 NHK 드라마 〈모시치의 사건부〉로 제작되었다.


 

 

 

채플린의 풋라이트

미공개 육필원고, 150여 장의 희귀 사진들, 가족과 동료들의 생생한 증언, 오직 이 책에만 허락된 이 놀라운 자료들 외에도, 《채플린의 풋라이트》에는 집요하리만큼 성실하고 세밀한 데이비드 로빈슨의 복원 작업과 충직한 해설이 담겨 있다. 집필 원고의 수정 사항들, 모델이 된 실제 인물들, 영화 제작 기간 동안 때로는 채플린을 구원하고(처음으로 그에게 가장으로서의 기쁨을 선사한 우나 오닐과의 결혼생활, 오랜 전우 같은 스튜디오의 동료들, 영화 제작 그 자체), 때로는 그를 지옥에 빠트렸던(전 세계를 전쟁터로 밀어 넣은 전체주의와 만연한 물질만능주의, 매카시즘의 광풍) 생의 굴곡들을 되짚어나감으로써, 데이비드 로빈슨은 왜 이것이 채플린의 다른 이야기들과는 달리 시나리오 밑 작업을 위한 자료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소설로 먼저 태어났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수다하게 많은 생각과 감정의 덩어리들이 서서히 증류되어 두 시간의 소비자 제품으로 결정結晶되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우리 독자들은 남겨진 영화만을 통해 마주했던 채플린이라는 거장이 진정 어떠한 존재였는지 실감하게 된다.

 

 

일러스트레이션 사전

마크 위건(Mark Wigan)의 『The Visual Dictionary of Illustration』(2009)을 번역한 이 책은 아르누보와 다다이즘, 일러스트레이션의 황금시대와 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예술운동의 이론적 측면에서부터 그라피티와 벽화, 포토몽타주 등의 실용적인 측면까지 일러스트레이션의 전통과 현대에 중요한 용어와 인명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가나다 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이 사전은 단순히 용어 설명에 그치지 않고 해당 이미지를 함께 수록하여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으며 ‘함께보기’를 통해 여러 연관되어 있는 용어를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책의 뒷부분에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연대표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찾아보기 또한 가나다순, ABC순으로 정리하여 용어 검색이 편리하도록 하였다.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번아웃 증후군, 결정 장애 증후군, 스마일마스크 증후군, 파랑새 증후군 등등, 현대 사회에는 수많은 증후군들이 존재한다. 안개 공포증, 시간 공포증, 친척 공포증, 숫자 13공포증 등등, 공포증의 종류도 한두 개가 아니다. 심지어 미국 전체 인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일생 중 최소 한 번은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이 제시하는 정신 장애 진단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듯 현대 사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정신 질환들을 찾아내고 또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분화되고 또 넓어지고 있는 정신 질환 분류 체계에서,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정상’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정말로 우리 모두는 정신병 하나쯤은 갖고 사는, ‘비정상’인 걸까?
이 책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원제 : The other side of normal)은 비정상을 정의하기에만 바빴던 현대 정신의학과는 반대로, ‘정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본(정상)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그것을 벗어난 것들(비정상)을 확실히 정의할 수 있을 테니, 새로운 정신 질환을 정의하고 그 범위를 넓히기 전에 정상에 대한 논의부터 마치자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부교수인 조던 스몰러Jordan Smoller는 자신이 정상을 정의하려는 이유에 대해 “마음과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다루는 기본적인 지도가 없다면, 우리는 이상하고 기이하며 문제 있다고 판단되는 행동에만 전적으로 의존한 채, 정상과 비정상을 정의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상성’을 정의하기 위해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유전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문화적 영향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를 총망라한다. 그 결과 이 책은 보다 깊이 있는 논의와 전문성을 갖추어, 정상과 비정상을 둘러싼 끝나지 않는 논의에 대한 중요한 한 수를 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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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일어나고 있는 일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고작 탄식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열정이 부족한 거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인 이 거대한 민주적 난장판의 비밀이야.”

20세기의 라틴아메리카에서 작가는 언제나 작가 이상이었다. 미국의 실질적 지배와 군사정권의 독재에 맞서 총과 펜은 다를 수 없었다. 하지만 글로는 이룰 수 없는 혁명이기에 무기로서의 문학에 회의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작가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 ‘흥을 깨는 사람’(El Aguafiestas)이라 불린 한사람이 있다. “나는 정부, 적어도 우파 정부에게는 흥을 깨는 사람이었고 제국주의자들에게는 말썽꾼이었으니 이 꼬리표가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내가 양심 있는 말썽꾼이었고, 그래서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믿고 싶다. 나는 글쓰기와 그밖의 다른 활동들을 통해서 이 단어가 가진 최상의 의미에서 훼방꾼이 되고자 노력했다.” 이 훼방꾼이 바로 라틴아메리카가 존경하고 우루과이가 사랑한 작가 마리오 베네데띠다.


윌리엄 터너 엽서집

J.M.W. 터너는 19세기 풍경화의 대표적인 거장이자 ‘빛의 화가’,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약관의 나이에 왕립 아카데미에 걸렸던 「바다의 낚시꾼」(Fishermen at Sea, 1796)이 그가 발표한 첫 유화 작품이었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유화로 완성할 스케치를 쌓아갔는데, 프랑스, 스위스, 베니스, 남부의 라임 레지스 등에서 작품의 뼈대를 만들었다. 현재 많은 작품이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1984년부터 그해 가장 주목할 젊은 미술가에게 그의 이름을 딴 ‘터너상(Turner Prize)’을 수상하고 있다.

 

 

[세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 전2권

팟캐스트 방송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책으로 엮은 교양과학 시리즈 중 그 첫 번째 책이다. 과학전문 팟캐스트 방송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과학 전반에 걸쳐 다방면으로 일하는 [과학과 사람들]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2013년 5월부터 대학로 벙커1에서 과학 토크쇼를 시작하여, 2015년 현재까지도 매주 1회 공개 토크쇼를 진행 중이다.

 

 

 

 

닥터 프로스트 6 : 두 사람의 개기일식

 

 

 

 

 

 

 

 

 

 

 

 

 

수중 용접공

육체노동자의 성격 탐구와 흥미진진한 수수께끼라는 두 가지 소재를 결합시킨 『수중 용접공』은 아버지와 아들, 탄생과 죽음, 기억과 현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수면 아래 깊은 곳에 남몰래 묻어 두고 있는 보물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래픽노블이다.

 

 

 

 

 

 

 

 

 

그라피티

레터링, 태그, 스텐실, 초현실주의... 25명 작가의 50개가 넘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윤곽선으로 다시 만들어 넣어 각 페이지를 당신을 위한 벽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는 스트리트 아트 전문 사이트 ‘fatcap.com’의 편집팀이 선정한 유망 그라피티 아티스트, 유명 아티스트들의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작품들을 모았다.

 

길 위의 오케스트라

1904년 창단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정상급 악단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의 내부 이야기를 최초로 흥미롭게 담아낸 책이다. LSO의 수석 플루티스트인 저자 가레스 데이비스는 두 개의 순회공연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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