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구판절판


"정치가가 잘못하고 있으면, 그 세계의 정의는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말."
64. "괴짜에는 두 종류가 있어. 멀리하고 싶은 타입과 호기심 때문에 잠시 상대하고 싶은 타입."
141. 아무리 잊은 척해도 고통이나 공포의 기억이란 것은 사라지지 않는 법인가 보다.-53쪽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원리는 멋대로 타국을 침공하는 군사대국의 주장으로도 들리고, 공격은 잘 하지만 투수진이 붕괴한 야구팀은 우승할 수 없는 법이라 거의 신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효과적일 때도 있는 것이다.
171.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그 시점에서 이미 서점을 습격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억지로 설득당한 기억도 없고, 거부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아니, 솔직히 자백하자.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무의미하고 바보스럽고 법률에도 위배되는 짓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을 일을 한다는 흥분이 있었던 것이다.
172. 밤의 어두움은 사람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든다. 이모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밤은 인간을 잔혹하게도 만들고, 정직하게도 만들고, 센티멘털하게도 만들어. 결국 경솔하게 만드는 거야.’-157.쪽

"비상식적인 상대에게는 거기에 알맞게 대응하긴 해야 해요. 이상하게 마음 쓰고 사양하다 보면 상대가 기고만장해지니까요."
185. "화는 분노로 바뀌고, 이윽고 보복으로 발전하는 법이죠."
"화르륵."
"그건 분노의 불꽃."-184.쪽

나는 완전히 주인공인 것처럼 살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 속에서는 단역에 불과하다.
224. 억지로라도 웃으면 아무리 우울한 상황에서도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그만큼 오래 산다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일리가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226. 집오리와 들오리라. 나쁘지 않은 표현이군, 하고 생각했다. 흡사한 동물로도 여겨지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 관계다.
232. 지금의 나를 가로로 썰어 본다면 분노와 공포가 반씩 흘러나올 게 틀림없다.
244. "복권을 책에 끼워뒀을 거라고 의심했는지도 몰라. 시간이 없어서 전부 가져간 거고."
말해보면서도 신빙성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나는 어물거리다가 "자포자기로 한 번 말해봤습니다." 라고 대답했다.-220.쪽

현재 8
범인은 현장에 돌아온다. 바로 그 말이 정답이었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는 틀림없이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통계도, 과학도 아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힘 같은 것이 있는 게 틀림없다.
278. 산 넘어 산. 바로 그 말이 정답이었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는 틀림없이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통계도, 과학도 아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힘 같은 것이 있는 게 틀림없다.
358. 지친 나는 확인해야 할 것은 태산만큼 많은데도 다음에 만났을 때 물어보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이란 행동해야 할 때일수록 내키지 않아 하는 생물인지도 모르겠다.-268.쪽

애완동물 살해범. 기분 나쁜 단어다. 증오스럽기 때문이 아니다. 그 반대였다. 그들이 품고 있는 잔혹함과 거만함이 ‘애완동물 살해범’이라고 이름 붙인 순간 무척 표피적이고 죄가 가벼운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대의 자존심을 짓밟고 돈을 갈취하는 행위를 ‘삥’이라고 부르면 경박한 장난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약간 시간이 지나 진정되자 이번에는 다른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끓어올랐다.
공포로 충만한 마음속 깊숙이에서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분노였다.
367. 사람이란 신중하게 일을 진행해야 할 때일수록 성급한 행동을 하는 생물인지도 모르겠다.
- 고토미.-364~365쪽

"뒷문으로 도망치게 하면 불행이 기다리고 있어. 비극은 뒷문에서 일어난다고."
419. "이 세상은 원래 얼토당토않지. 안 그래?"
421. "내가 처음 시나를 봤을 때 딜런을 불렀잖아. 나는 그 딜런의 목소리를 좋아했어. 상냥하고 엄격한 데다 무책임하지만 따스해. 전에 가와사키가 말했었어."
"그게 하느님의 목소리라고 그가 말했어."
"너는 이야기 도중에 끼게 된 것뿐이야. 사과할 필요 없어."
그 기묘한 격려에 약간 납득했다. 나는 내가 주인공이고 지금 이렇게 생활하는 ‘현재’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걸 깨달았다. 가와사키들이 체험한 ‘2년 전’이 진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주역은 내가 아니라 그들 세 명이다.-390.쪽

"온 세상의 동물이나 인간이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잖아. 환생하는 기나긴 인생 속에서 우연히 만났는걸. 사이좋게 지내야지."
430~432
"밥 딜런."
라디오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그의 대표곡인 이었다.
"맞아."
가와사키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그 라디오카세트를 코인로커 안에 밀어넣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건 뭔가 특별한 의식일까? 나는 의아했다.
"하느님을 가두는 거야."
"하느님의 목소리를 로커에 집어넣고, 그렇게 하느님을 가둔다는 거야?"
"반복 설정을 해놓았으니까 계속 울릴 거야."
"이런 짓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신을 가두면 나쁜 짓을 해도 들키지 않는다고 말했어."
"근데 이렇게 한다고 정말로 하느님을 가둔 건 아니야."
"의식이란 게 원래 그런 거지."
"의식이구나?"
"부탄 사람은 대용품으로 속이는 게 특기거든."
나는 그의 개운한 얼굴을 보는 동안 사소한 의문이나 하잘 것 없는 상식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구나."
"우리는 신을 가둔 거야."
이것은 나와 가와사키의 코인로커라고 생각했다.
바보스럽다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내안의 내가 있었지만 나는 그 녀석을 눈치 채지 못한 척했다.
- 우리는 좌우로 나뉘어 걸어갔다. 마치 끝없이 절대로 교차하지 않을 직선 위를 둘이 나아가는 것 같았다.-425.쪽

‘부탄 사람이건 어느 나라 사람이건 넌 내 소중한 이웃사촌이야.’라는 말만은 전하고 싶었다. ‘언젠가 부탄을 안내해 줘.’라고도.
440. 눈앞의 교차로를 귀여운 시바견이 가로지르는 것이 보였다. 까만 시바 견이었다. 털의 결은 좋았지만 목걸이를 하지 않아서 떠돌이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코가 오른쪽으로 비뚤어진, 특징이 또렷한 개였다.
시바 견은 멈춰서 나를 뚫어지게 보며 ‘돌아가니?’하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속으로 ‘돌아올 거야.’라고 대답하면서 그 옆을 지나쳤다.-4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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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사신 치바 리뷰
(0617)
이런 사람이 가까이에 있습니까?
。 음반 매장에 비정상적으로 자주 드나든다.
。 이름으로 동네나 시의 이름을 쓰고 있다.
。 대화의 포커스가 미묘하게 빗나간다.
。 맨손으로 사람과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
。 항상 비를 몰고 다닌다.
그렇다면 그는 사신(死神)일지도 모릅니다.


우선, 계획보다 늦어진 리뷰다. 금요일, 밑줄 긋기랑 나란히 올리려고 했으나 준비를 못했다. 그리고 어제, 컴퓨터에 아예 손도 못 댔다.
커버를 들추자 곧장 모습을 드러낸 사항들을 짚으면서 바로 갸웃갸웃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친구가 “자네 같은데.”라고 한 적이 있었다. 리뷰를 쓸 자세를 갖추며, 문득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난 비를 몰고 다니지는 않아. 소나기를 좋아하긴 해도.”라고 우스개로 대답했더니, “그렇지만. 4개나 해당된다고.”라고 또 엉뚱하게도 심각한 진지 모드로 대꾸하던 에피소드가 있다. 소설에 관련된 일상, 진기하고 기발한 요소, 스릴 만점의 사건들을 안겨다 준다면, 내게 있어서 특별한 코드로 기억될 소설. 당연 [사신 치바]다. 코타로 씨를 알게 된 2004년을 생각하면, 사신 치바가 등장한 시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이유는 피쉬 스토리 리뷰에 언급했으니, 여기는 생략.   
글을 읽든, 음악을 듣든, 체계적으로 이론과 개념이 잡히지 않았어도 어떻게든 하나하나 곱씹고 되풀이 듣고 되새기며 나만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음반 매장을 자주 들르는 사신. 그 위에 겹쳐 귀퉁이를 맞추고 펼쳐놓듯 나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과거의 경험을 파노라마 작동시켜 함께 했다.
사신다운 말투와 행동, 그리고 사신답지 않은 관심과 애정. 무엇답다, 답지 않다. 이런 관련은 내가 정의 내릴 문제 선을 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풀이하여 쓰고 싶을 정도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면을 두루 가진, 주인공에게 매력을 담뿍 느꼈기 때문. 어떤 과제를 하는 도중에도, 내내 음악을 틀어놓는 나의 일상과 공통적 요소가 있었기 때문. 그 이전에 읽었던 피쉬 스토리의 구로사와랑 거의 같은 등급일지도. (웃음)

어제, 집에 돌아올 적. 종점에서 내려 집을 향해 가는 중 떠들썩한 편의점 앞을 지나치고 불 꺼진 주유소를 통과. 단지 몇 발짝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다른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처럼 눈앞의 현실과 단절된 감각이 내리눌렀다. 신비한 차원으로의 소용돌이 문을 본 기분이었다. 문득 ‘사신 치바’를 떠올렸다. 내게 사신이 온다면, 이런 통감일까 싶은. 아니지, 소설 속에서 사신과 동행하고 있다는, 자각한다면 까무러칠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으니까, 나 역시 알아차리지 못하겠지.(어쩌면 마지막 파트의 그 사람처럼 알아차릴지도? 무심코 기대 버전;) 애써 이런 식의 예측만 건드릴 뿐이겠지.
어쨌거나, 기묘한 사신. 그에게 단숨에 빠져든 시간, 이틀. 여러 가지 해결할 작업이 있었기에,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은 지극히 짧았음에도, 엄청난 속독을 했다. 나는 대개 탐독을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뒤에 진행될 얘기가 극도로 궁금해서 과감히 버렸다.
앞의 단편에 부수적 인물이, 뒤의 단편에서 중심인물로 등장해서 그 또한 쏠쏠한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맨 처음 보류된 인물이 마지막 단편에서 미미한 바람을 충족시켜주었기에.
다양한 장르, 종횡무진 질주하는 바이크의 쾌감을 던져주었던 갖가지 단편들. 그 중에서도 내가 좀 더 선호했던 단편을 꼽자면,
*2. 사신의 하드보일드 - 치바와 후지타 형님, 5. 사신의 로드무비 - 살인 용의자와 동행하다*를 짠, 즉각 펼칠 수 있다. 반듯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후지타 형님. 

[“여긴 말이야 강의 상류, 출발 지점이잖아. 그게 이 폭포야. 여기는 화려하고 사람도 많잖아. 그건 말이야 우리가 태어날 때와 닮지 않았어? 우리도 태어날 때는 이랬겠지? 야단법석에다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다들 축하해주고. 하지만 그게 차츰 지나면 지금 보았던 것처럼 넘실넘실 소박하게 흘러가게 될 뿐이야. 뭔가 닮지 않았어?”
“하류도 나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해.”]
꼭 어느 인생의 단면을 그리는 모습으로만 표현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 획을 그을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는 부류가 있으면, 그들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영향을 준 사람들이 분명 있다. 묵묵히 일하고, 소박한 일상을 살지만, 그래도 그들의 위치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각각의 포지션은 저마다 다르지만, 꼭 그들만이 이뤄낼 수 있는, 그들만이 유지시킬 수 있는 포지션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필요 없는 존재”라는 섣부른 생각을 접고, 이제 나도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과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런 포지션으로 매순간 집중해서 나의 아이템들을 바탕으로 나만의 장점을 발휘하고 싶다.


깜빡 빠트릴 뻔 했는데, 한편으로 줄곧 내 지인을 괴롭히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던 문제가 소설 속에 녹아 있었다.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로서는 슬프고 중요한 일이라고.”]
또한, 주위 지인에게서 근래 자주 ‘죽음’에 관한 한 마디씩 새어나온다. 나는 그때마다 발끈해서 막 악악 지르기 일쑤. 그런 단어는 꺼내지도 말라고. 그렇지만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란 걸 안다. 잘 알고 있기에, 아찔해지는 것이다. 매번 꺼트릴 수도, 잠재울 수도 없는 영역. 알아차리고 있고, 피해갈 수 없는 그 선상에 놓여 있지만, 조금 더 시기를 늦추고 싶어 발버둥을 친다. 어느 시기 접어들어, 딱히 산다는 것에 그리 매이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 그런 기간이 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지도 않았고,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저 휩쓸려도, 아무렇지 않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지금에서 생각하면, 폭발적으로 분출하던 영상이 그려지는데, 이렇다하게 열정을 쏟았던 것은 없었다 싶다. 그 좋아하던 책도 팽개치고(;), 글& 그림도 멀리하고, 그저 음악은 흘리지 않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장르만 고집했다. 이제는 아니다. 무언가 집중할 게 있고, 도전해보고 싶은, 배우고 싶은 카테고리가 수두룩하니까, 더 이상 죽음은 상기하고 싶지 않았다. 평정인 채로 있을 수 없었다. 멀리멀리 던져버려야 했다. 그 무엇보다 지인들의 죽음이 더 바짝 조여들고, 간당간당 그 입구를 서성이는 극적인 연출까지 하게 된다. 저 대사를 접하는 순간, 아득해졌다. 회오리에 빨려드는 느낌이랄까.
가만, 잔뜩 침울해졌다.
화제를 바꿔서(;) _ 잠깐 음악에 관해 다시 돌아가서-

[재즈든 록이든 클래식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음악은 최고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진다. 아마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신이라고 해서 재킷에 해골 그림이 그려진 헤비메탈만 듣는 것은 결코 아니다.]

흔히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편견에 관해 일침을 가한다. 사실, 사람의 인상으로 ‘아, 이 사람은 발라드풍의 음악을 좋아할 것 같아. 그것만 들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고, 자기 위주의 고정관념을 박아놓는 무리들이 있다. 당연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나는 후자가 더 좋다.;) 나 또한 저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첫 만남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저런 대사를 끄집어냈다. 나는 딱히 반론을 펼쳐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넘겼지만. 아직까지 심심찮게 들려온다.
어쨌거나, 쓸데없는 잡소리를 잔뜩 늘어놓았지만, 나도 한편으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헤비메탈’만 추구하는 사신이 아니라서 더욱 좋았고 솔깃했다는 거다, 결론은. 나조차도 ‘록’, 그 중에서도 ‘헤비메탈’, ‘하드코어’적인 타입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음악을 확연하게 가리지는 않는다. 저마다 그 장르의 영향을 안식으로 얻기 때문이다. 그게 날씨의 원인, 환경의 원인, 나 자신의 심리 원인이 각각 달라 특정 음악을 선택한다. 아마 사신도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무감각하고 어떤 사태에도 감정이 실리지 않은 대처를 하지만, 그런 행동의 이면에 가려진 음악에 쏟는 열정과 습관을 엿볼 수 있어 색다른 체험이라고, 슬쩍슬쩍 미소를 짓는다.    

그저께부터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아이템 설정 중이고, 그 후 ‘마왕’을 읽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마왕은, 친구가 책을 사면서, 미니 북을 준 것이다. 면장 선거보다 약간 큰 사이즈.)
당분간 어설픈 리뷰는 쭉쭉 올라오겠지, 아무래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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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가지나 적용된다니. 호감도가 상승하는걸요.(웃음)
천둥번개를 몰고 다니는 사신이라면 내가 콱- 안아주었을텐데 말입니다.킥킥.

302moon 2007-06-1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둥, 번개를 몰고 다니지 않아서 아쉬운데요. 두 가지 요소, 그 영상을 광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웃음)

비로그인 2007-06-1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둥 번개가 치는 비 오는 밤에 우산 들고 춤을 춘다면 -
바로 저일 것입니다. (웃음)
 
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절판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경우가 많다.
29. 나는 인간의 죽음에는 흥미가 없지만, 인간이 다 죽어서 음악이 없어져버리는 것만큼은 괴롭다.
30. 내 동료들은 일하는 사이사이 짬이 나면 음반 매장에서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다. 한눈팔지 않고 귀에 헤드폰을 댄 채 꿈쩍도 하지 않는 손님이 있다면, 아마 나 아니면 내 동료일 것이다.
32. 재즈든 록이든 클래식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음악은 최고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해진다. 아마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신이라고 해서 재킷에 해골 그림이 그려진 헤비메탈만 듣는 것은 결코 아니다.-25.쪽

나는 인간의 죽음에 관심이 없다. 일이라는 이유로 관여하고 있을 뿐, 담당하고 있는 상대의 인생이 어떠한 형태로 마침표를 찍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저 프로듀서의 직감이 옳다면 그리고 또한 만에 하나 그녀가 뛰어난 가수로 성공한다면, 더구나 내가 언젠가 음반 매장의 청취 코너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또 그 나름대로 유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이냐 뒤냐. 그것으로 정할 참이었다. ‘가’로 할 것인가 ‘보류’로 할 것인가. 그녀는 내일 죽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수명까지 살 것인가.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대단한 차이가 없으니 동전 던지기 점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전을 본다. 앞이었다. 어라, 하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앞이 나올 경우 ‘가’로 할 작정이었던가 ‘보류’로 할 작정이었던가 잊어버리고 말았다. 비는 한층 더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빗발에 들볶이는 듯한 심정으로 ‘뭐, 괜찮겠지.’하고 결정했다.
‘괜찮겠지. 보류로."-51~52쪽

인간에 대한 동정이나 외경의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음악만큼은 사랑한다.
99.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브라운 슈거> 혹은 <록스 오프>의 인트로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무사태평하면서도 의연한 로큰롤의 울림에 맞춰 후지타는 나타나리라. 어리석은 강직함을 발산하며 찾아온다. 그리고 죽지 않는다.
"후지타 형님이 질 리가 없어."
"약한 자를 도와 강한 자를 꺾는다."
라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뇌는 것을 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73.쪽

지면은 마치 도자기와 같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바람이 불었는지 자작나무 가지에서 팔랑팔랑 눈이 흩날리며 지면으로 떨어져 녹는다. 그 설경이 서로 속삭이는 듯한 소리와 움직임을 나는 하릴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답군."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한다. 음악을 듣는 시간은 부족했지만 이 광경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157쪽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실수와 거짓말 사이에 큰 차이는 없어. 5시에 온다고 하고서 오지 않는 것은 트릭이야. 미묘한 거짓말이란 거의 실수에 가까워.’ 라는."-179쪽

"저 놈만 없다면 내 인생이 편해질 텐데, 같은 계산요. 금전적인 면, 정신적인 면에서 이해손실을 계산하는 거죠."
"인간은 곧잘 계산 착오를 해."
240 "자주 생각하는 거지만,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이 가진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는 환멸이 아닐까요."
"의지하던 사람이 사실은 겁쟁이였다든가, 믿고 있던 영웅이 실은 담합에 능통한 교활한 사람이었다든가, 같은 편이 적이었다든가…."-235쪽

"여긴 말이야 강의 상류, 출발 지점이잖아. 그게 이 폭포야. 여기는 화려하고 사람도 많잖아. 그건 말이야 우리가 태어날 때와 닮지 않았어? 우리도 태어날 때는 이랬겠지? 야단법석에다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다들 축하해주고. 하지만 그게 차츰 지나면 지금 보았던 것처럼 넘실넘실 소박하게 흘러가게 될 뿐이야. 뭔가 닮지 않았어?"
"하류도 나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해."-288쪽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어. 관 뚜껑이 덮이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모르니까."
330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로서는 슬프고 중요한 일이라고."-30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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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일본소설 베스트는?
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칠드런”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잡은 코타로 씨 신작이었다. 다른 작품은 신간 코너, 베스트 코너에서 눈여겨보기만 했을 뿐(간혹 몇 장 넘기고 살까 말까 갈팡질팡_ 중력 삐에로, 오듀본의 기도 등.), 그것으로 끝났다, 매번. 왜 그랬는지 이렇다하게 정리할 수 없지만, 너무나도 쏟아져 나와 널리다시피 한 느낌이 싫었던 게 제일 유력하다. 근데, 이 작품으로 다시금 코타로 씨에게 열광하고 있다. 아니 정정하자면, 문장의 느낌과 주관이 닮았단 이유로 내내 열광했지만, 달리 계기란 걸 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현재, ‘중력 삐에로’를 친구가 빌려주었고(나는 계속 사려다가 망설였었다.), 언젠가 질렀던 ‘사신 치바’를 읽고 있는 중이다.


여하튼 리뷰 쓰기는 여전히 조심스러운데(칠드런 리뷰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받은 감동이 여전할 지 미지수지만, 그 당시에 그 소설과 코드가 맞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 감동을 글로 풀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쫓기는 심정과,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핑계거리에 불과한 이유도 있지만.), 코타로 씨와 함께 진득하니 책에 몰두해 있는 동안, 번뜩이는 재치에 감탄해 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다소 엉뚱함에 입을 아, 벌리고 그 문장을 되풀이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기린을 타고 오겠다는 부분.] 한편으로, 억지다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뛰어내리겠다는 여자를 어떡해든 말려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녹아들어 있었기에 아릿해짐을 함께 느꼈다. 그 ‘구출한 여자’와 동거하는 설정도 허무맹랑하지만, 그런 설정을 넘어선 그야말로 천진난만함으로 휘저어진 뚱딴지 칵테일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한 번이라도 좋다. 그들과 모험을 감행하고 싶다, 라는 생각까지 했다면 말 다 했지.


첫 번째 단편 ‘동물원의 엔진’은 - 과거 회상 스타트.
일상의 환상, 여운이 남듯 결말 처리가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 후속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가졌다. 내가 느끼기엔, 다른 작품에 이어질 단서를 던져주었다는 생각이다. 제대로 풀어내지 않은 미스터리가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미 나온 장편소설에 포함되었을지도. (내가 그의 작품을 죄다 읽어본 게 아니라서 넘겨짚기로 끝난다.)


두 번째 단편 ‘새크리파이스’. 주인공 구로사와의 매력에 환호성을 질렀던 소설이다. 친구에게 넌지시 얘기했을 때, ‘중력 삐에로’에 등장했던 인물이라고 가르쳐주었다. 피쉬 스토리가 신간코너에 진열되기 전, 친구가 빌려주었는데, 어서 구로사와가 모습을 드러냈으면 바라게 되었다. (중반쯤이란다. 나는 지금, 초반을 읽고 있다.)
곳곳에 발견되는, 대사가 한 마디로 멋들어진다.
[“공범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의심받을 염려가 없는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해.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공범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는 거지. 그런데 공범이라고 의심받지 않을 가장 적합한 인간은 누굴까.”
- “공동체를 이끌어가려면 권위만으로는 부족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통치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도 되면서, 사람들을 견인해 나가야만 해. 그 대신 개개인의 공포나 불안, 불만을 받아줄 사람도 필요하지. 엄격하면 굴욕이, 만만하면 경멸이 생겨나지. 제대로 거느리려면 그 양쪽의 균형이 필요해.”] - 특별히 맘에 들었던 부분.
풍습의 비밀이 벗겨지는 것에 한껏 타격을 받았어야 했지만, 아마도 그럴 수 없었던 건 인물의 매력에 너무 심취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전에, 다소 복선이랄까 그런 암시를 찾은 바도 있지만.


세 번째 단편, 표제작이 되었던 ‘피쉬 스토리’. 시작은 그다지 특이하다고 할 수 없었다. 상징 기법이 눈길을 끌었던 소설이다. 고독, 용기, 좌절을 물고기로 표현했음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에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 데서, 그 소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39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맹렬함 앞에 고래마저도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152
“내 용기가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젊음으로 햇빛을 반사하는 수면을 한층 빛나게 할 것이다.”
177
“내 좌절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비통과 우스꽝스러움에 강에도 바다에도 살 곳이 없어질 것이다.”*
[표제작 '피쉬 스토리'는 한 의문의 작가의 소설이 남긴 문장이 시공간을 넘어 변주되면서,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이야기다. 만년에 폐가에 칩거했다는 한 소설가의 문장이, 무명의 록밴드가 남긴 마지막 노래의 가사가 되고, 그 연결고리들의 숨겨진 관계성 안에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책 소개.]
역시, 면장 선거에서처럼 내가 밴드를 너무 좋아하는 탓인지, 피쉬 스토리 여러 테마 중에서도 밴드 이야기에 주목했다.
"이거, 좋은 노랜데, 아무한테도 닿지 않는 거야? 거짓말이지. 누구에게든 닿게 해. 우리는 다했어. 하고 싶은 걸 했고 즐거웠지만 여기까지였어. 닿게 해, 누구에게든." 고로는 그렇게 말하더니 시원한 목소리로 웃었다. "부탁이야."
보컬의 토로하는 대사들이, 일렁이는 영상을 펼쳐지게 했고, 이 밴드의 연주와 보컬의 목소리가 귓가에 그대로 닿아 내가 그 현장에 가서, ‘이게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소설 속 상황과 현실을 잠시 분간 못하는 자아의 해체를 시도했다. 좋아하는 밴드의 갑작스런 해산 소식을 종종 접하고, 뒤흔들렸던 감각을 경험했다. 그 음악에 그 보컬은 하나뿐이라고 발끈하고 우기기도 하면서, 혼자 광분했던 적을 떠올리고 더 절실하게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에서 생각해본다.
다수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들, 아니 나부터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일들에 대해 되짚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고, 헛된 것을 움켜쥐고 있지 않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지 않나 끊임없이 질문을 해댔다. 치우치는 평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자신의 주관, 취향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무시하지는 않았을까 떠올려보기도 하고. 착잡하고, 씁쓸하다. 코타로 씨의 날카로운 지적에 몸이 쓸리는 느낌이다.
하나 혼란을 느낀 게 있었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읽었다가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라는 걸 한참 후에 알았다는 것이다. 피쉬 스토리의 처음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이, 나중에 비행기에서 여러 사람을 구하는 그 남자일 거라 무턱대고 제멋대로 연관까지 지은 결과에 이르렀다.


마지막 단편 ‘포테이토칩’ 제목에 은근 귀여운 매력이 풍겨서, 많이 자유분방한 소설일 거라 슬쩍 생각하고, 집중했다. 구로사와가 다시 등장해 마구 방방(물론 속으로)뛰었던 소설이기도 하다. (버스 안에서 읽고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코타로 씨의 인터뷰 글귀로 더욱 인상 깊은 소설이 되었다. 인터뷰를 접하기 전에도, 여러 요소랑 소품이 적절히 녹아든 스토리라인과 결말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나 자신이 야구를 좋아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야구장 장면은 술술 읽히고,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비슷한 습관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싱글거리기도 했다. 나에게도 특별히 좋아하는 단어가 있어, 어느 장면에 꼭 그 단어를 쓰면 딱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강렬한 단어를 골라 쓰기도 하니까.

[이 단어는 좋아하고 저 단어는 싫어하는 경향이 저한테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로서는 좋아하는 단어를 계속해서 선택해왔던 지난 6년의 작업이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한 단어, 결코 사라지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315쪽 포테이토칩이라는 소설이 있으면 귀엽고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컴퓨터 앞에서 포테이토칩이라고 10번 정도 입력해 봤는데 ‘역시 좋아!’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확실히, 아저씨의 매력에 휘둘리다시피 한 것 같다. ‘중력 삐에로’, ‘사신 치바’에 이어 ‘오듀본의 기도’, ‘마왕’까지도 소장해서, 거듭 읽고, 판단하고, 되새기고 싶다. 진작 아저씨를 알고 좋아했지만, 작품 읽기를 게을리 한(그 당시에 너무 알려졌다고 투덜거렸지-_-) 스스로에게 막 툴툴대고 있다. 그러면서, 아저씨의 뚱한 얼굴을 떠올리며, 킥킥거리면서, 어설픈 리뷰를 마친다.

+ p. 289 잔치 분위(기). 괄호 안 글자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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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구판절판


"다 큰 어른이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겠지만, 반대 운동을 하는 주부들 틈에 끼어 있으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잖아. 나무는 숲에 숨기고 장승처럼 서 있는 남자는 장승처럼 서 있는 주부들 사이에 숨기라는 거지."-38쪽

곤란한 상황을 얼버무리려고 적당히 다른 것으로 위장하는 수법은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것이 성에 대한 것이거나 죽음에 대한 것, 공공연히 밝히기 힘들 것일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은폐할 가능성이 높다. -75쪽

제물이 된 자들의 흔적이 동굴 안쪽에 남아 있는 것이다. 목숨이 붙은 채로 갇혀버린 자들의 흔적, 가령 벽을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라든가 피로 쓴 저주의 말, 혹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원한이나 증오의 덩어리 같은 것이 체류하는 묵중한 공기가 동굴 안쪽에 분명하게 존재할 것이다. 벽에 찬 습기나 부서진 돌멩이의 틈새기마다 숱한 영혼들의 음울한 집념들이 서려 있을지도 모른다.-124~125쪽

"공범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의심받을 염려가 없는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해.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공범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들키면 안 된다는 거지. 그런데 공범이라고 의심받지 않을 가장 적합한 인간은 누굴까."
- "공동체를 이끌어가려면 권위만으로는 부족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통치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도 되면서, 사람들을 견인해 나가야만 해. 그 대신 개개인의 공포나 불안, 불만을 받아줄 사람도 필요하지. 엄격하면 굴욕이, 만만하면 경멸이 생겨나지. 제대로 거느리려면 그 양쪽의 균형이 필요해."-127~128쪽

정보라는 건 진실의 정도나 증거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요에 반응하는 거야.-130쪽

"큰 문제가 있다. 사악한 것이 번창하고 올바른 것은 짓밟힌다는 흔해빠진 사실이다. 악은 응징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언젠가는 파멸한다는 일반적인 경우의 일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선한 자가 승리를 얻었다는 예는 최근 듣기 힘들지 않은가."
158
"아버지 말씀이, 중요한 것은 직업이나 직함이 아니라 준비라는 거예요."
"준비?"
"강한 육체와 흔들림 없는 마음. 그것들을 익히는 준비야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요."-157쪽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맹렬함 앞에 고래마저도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152
"내 용기가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젊음으로 햇빛을 반사하는 수면을 한층 빛나게 할 것이다."
177
"내 좌절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비통과 우스꽝스러움에 강에도 바다에도 살 곳이 없어질 것이다."-139쪽

이 단어는 좋아하고 저 단어는 싫어하는 경향이 저한테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로서는 좋아하는 단어를 계속해서 선택해왔던 지난 6년의 작업이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한 단어, 결코 사라지지 않는 단어를 선택하고 싶습니다.-310쪽

포테이토칩이라는 소설이 있으면 귀엽고 멋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컴퓨터 앞에서 포테이토칩이라고 10번 정도 입력해 봤는데 ‘역시 좋아!’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315쪽

"지금 갈 테니까." 이마무라는 머리카락을 세차게 쥐어뜯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여자의 깔보는 말투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정말로 죽으면 안 되는데’ 하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린을 타고 갈 테니까!"하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기린을 타고 갈 테니까 장소 말해"하며.-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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