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요약하면, 바슐라르는 일상 언어의 경계를 확장하고 변경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는 접근 금지였던 "본질의, 신비한 noumenal" 영역을 언어의 경계 안으로 포섭하기 위해서이며 그 영역이 접근 가능해진 건 수학과 과학에서 있었던 진보 덕분이다. 


바슐라르의 진지한 연구자라면, 여기서 바슐라르의 논의 대상이 실은 언어 자체라는 걸 오래 몰라볼 수 없다. 이 때 언어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언어이며, 널리 통용되는 은유들의 정신분석도 여기 포함된다. 수학 언어도 이 접근을 피해가지 못하는데, 바슐라르에게 수학적 탐구는, 언어적 탐구와 마찬가지로, 그 직관에서 은유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저작의 본질에 포함되는 철학적 문제, 혹은 적어도 문체론적 문제들이다. 사상가로서 바슐라르의 탁월함은, 이 문제들이 그의 사적 관심사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문제들은 우리 시대 주요 위기의 일부다.



오늘 이 책 복사실에 맡기기로 하고 넘겨보다가 이 대목 포함해 몇 대목 인용하고 싶은 대목이 있었다. 지금 이 대목 해보니, 역자 서문도 바슐라르의 문장들 못지않게 번역에 저항한다. 그러나 뭐 번역이 중요한 건 아니고. 


noumenon (a. noumenal). 이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적어도 칸트는 읽고 난 다음일까? 여기저기서 몇 번 보아오면서, (현상계 phenomenon, phenomenal world. 이것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본질적, 예지적인 것을 뜻한다고 하니) 정신으로만 가볼 수 있는 신비의 세계...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바슐라르가 그의 언어 실험으로 "예지계"가 혹은 신비로움이 언어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한다. : 이 말에 완전히 동의. 그러나 그 세계로의 접근이 수학과 과학에서 있었던 진보 덕분에 가능해졌다고 하는 건, 사태의 엄청난 축소 같음. 


역자 서문에서 역자가, 바슐라르에게 강력히 이끌리지만 저항하기도 하고, 어떤 면을 온전히, 투명하게 이해하면서 그것의 의의는 오해하고 그런다는 얘길 써보고 싶었는데, 어휴 내가 그보다 나은 것도 아니고. 나도 극심히, 절대 역부족.  그리고 다소, 시간부족. ㅋㅋㅋ;;;; 


*그래도 이 책, 사본을 마련하여 

맘대로 줄긋고 낙서하면서 내 맘대로 읽어가겠다 생각하니 기대됨. 역자서문이 좀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글이고 물리적인 면에서도 (저 위의 이미지로도 보이지만) 참 잘 만들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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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저무는 중 

고달픈 일 하나를 끝낸 참이기도 해서 

뭐라도 말하고 싶어짐. 알라딘 서재에 쓰기 시작한 건 4월 즈음부터였나? 

내 손 거쳐가는 책들, 정색하는 리뷰는 아니라도 100자 평이라도 남겨두면 좋겠어서 쓰기 시작했다가 

몇 가지 도움되는 면모를 발견. 밥 먹을 시간까지 1시간-30분 정도 남았는데 미친 듯 허기가 질 때. 그런 때 여기서 뭐라도 쓰면서 허기를 잊기. 참기. 이게 하나. 정신이 나쁜 방향으로 소모되는 일을 끝내고 dazed and confused일 때 정신 수습을 위한 (조금씩 돌아오는 정신을 맞으면서..) 잡담하기. 


그렇게 둘인가? 아니, 무엇보다 책에 대한 기록이 목적인 글들을 쓰기도 했으니 그게 셋. 

위의 저 두 권 책들은 한참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얼마전부터는 결제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는 책들. 주문까지가 이렇게 어려운 건, 언제나 부족한 돈의 문제도 있고 그리고 지금 책이 너무 많다. 책들이 무슨 교환 관계에 있는 건 물론 아니나, 당장 꼭 필요한 책이 아니어서 사실 있다한들 읽게 될 가능성이 아주 작은 책들의 경우, 그 (당장 용도 불분명한) 책들이 그렇게 보고 싶으면 이 (당장 필요해 쌓아 둔) 책들부터 봐라. 고 말리는 내가 이김.  


차라와 랭보. 

바슐라르가 둘 다 자주 인용한다. 문학 책들 전체에서 각각 다섯 번 정도면 그게 "자주"라고 할 정도인가? 

자문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러고 보니 그 이상, 더 자주 인용하는 시인이나 작가가, 아마 없거나 있다 해도 그 차이가 별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닐 것같다. 바슐라르의 문학 연구는, "전공" 작가나 시기가 있어서 그들에 집중하는 보통의 (특히 미국) 학자들과는 아주 다른 MO. 어쨌든 차라와 랭보는, 바슐라르가 숨쉬던 공기(문학 공기)의 일부였을 듯. 바슐라르가 인용하는 차라의 구절들은 예외없이 미친 구절들이었다. 나중 인용하겠다. ;;; 지금 당장 기억나지는 않음. 


랭보는 Entitled Opinions 랭보 에피소드에서, 

게스트였던 레베카 페크론이, 인용되는 랭보 시 몇 대목에서 아주 감탄을 한다. 이거 최고라고. 정말 좋다고. 심지어 목소리가 젖기까지 함. 울기 직전처럼. 


그러니 나도 읽고 싶어졌다. 

내가 나이가 들어 시에 감흥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반응하는 것과 독자의 나이 사이에 전혀 아무 상관이 없는 시인들도 있음. 

그렇다고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서. 꼭 알아봐야겠어서. 랭보에게서 실패한다면, 그럼 다른 시인으로. 

차라 책은 전기이긴 하지만 작품도 꽤 인용될테니 차라로 알아보아도 되겠다. 바슐라르가 그를 탁월한 미친 시인으로 보이게 했던 것인지 아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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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자막에서 이 대사는 어떻게 번역됐을까 궁금하다. 

"좋다. 불알 두쪽 처방전을 써주마." 이런 식은 아니었겠지. 


Scrubs의 경이로운 면 (이 드라마가 수행하는 기적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닌). 

이상으로서의 남성성의 구제. 마찬가지로, 여성성도 (그것의 이상의 면에서) 구제. 강한 인간의 옹호. 

인간은 어떻게 강해지는가의 탐구. 


HBO나 Showtime같은 프리미엄 케이블 채널 제작이 아니라서 

f-word 비롯해 쓸 수 없는 말들이 많음에도, 쓸 수 없음을 쓰지 않음이 되게 하는 막강한 자체 능력도 가진 드라마. 표나게 도발적이지 않지만, 깊이 반성적이라는 점에서 곳곳이 전복적인 드라마. 



*스크럽스 찬미 많이 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는다.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시도. 앞으로 계속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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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테라피보다 나은 25분. 스크럽스. 


이거 홀릭해서 보던 대학원 시절, 

아 이 드라마는 내 몫의 앳스홀들을 견디는 법에 대한 드라마구나. 

그러면서 뭔가 적어둔 게 있었다. 지금 찾아보니: 


유치원서부터 대학까지 커리큘럼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인간의 뛰어남(누스바움이 좋아하는 "human excellence")'이 아니라 '인간의 못남'의 탐구라면 어떨까? 그래서 중 2 정도만 되어도, 가령 어지간한 인간 관계의 기본은 악의와 몰이해이며, 아우슈비츠는 현대인에게 올 수밖에 없던 재난이었지 결코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도저히 말할 수조차 없는' "악"의 실현이 아니었다는 등의 이해를 자연히 하게 된다면 어떨까? 세상이 더 미쳐 돌아가려나?


그 왜 <한나와 자매들> 시작할 때 등장하는 오쟁이 진 남편. 

한참 어린 아내의 한때 선생이었다가 지금은 남편인 그 남자가 

다른 남자 만나다 들어온 아내에게, 지식인과(지식인에게) 홀로코스트... ㅋㅋㅋㅋ 이런 주제로 강의하려 하면서, "인간성을 이해한다면, 홀로코스트가 왜 일어났느냐고 물을 수 없어. 홀로코스트가 왜 더 자주 일어나지 않느냐가 질문이어야지." 


가끔 수업에서도 이 주제로 얘기가 흘러갈 때가 있다. 

나쁜 인간들의 유형학, 악 혹은 악행의 유형학, 이런 걸 세밀하게 탐구할 수 있다면 

감당할 이유가 (가치가) 없는 데미지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damaged beyond repair,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그걸 몰라야만 인생을 살 수 있는 실망들을 모를 수 있게끔. 


하여간 Dr. Cox의 위의 대사는 이건 뭐 세기급 명대사다. 

인간들이 초콜렛이냐? 아냐. 인간들은 배스터드야. 배스터드 코팅하고 배스터드 속을 채운 배스터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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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가 충격적이었던 최근 사례. 



이 정도, 청년으로 기억되던 브래들리 윗포드. 

웨스트윙은 거의 이 사람 보려고 봤던 것인데 거기서도 시즌이 진행되면 늙어가던가? 

내가 보았던 1-2시즌에선 한 삼십대 후반 정도로 나왔던 것같다. 중년은 아직 결코 아닌. 

보던 나보다 두세살 많은 정도 느낌. 바로 위 오빠 정도. 





최근 모습은 이렇다. 못 본 사이 20여년을 건너 뛴것같은. 







중년을 건너 뛴 건 아니어서 50대 정도로 보일 이런 비디오도 있다. 

그의 모교를 위한 기부금 모금 캠페인. To give or not to give. That is NOT the question! Just GIVE! 

81학번이면 (그리고 미국은 졸업년도가 학번이 되니 실은 77 정도) 오빠... 가 아니셨고 삼촌 정도. 




이런 건 왜 쓰냐고? 

한때 내 세대라 (조금 위긴 하지만) 여겨졌던 사람이 노.. ㅋㅋ 노인이 되어 있는 걸 보면, 

무덤으로 (화장장으로...;;;) 질주하는 게 인생이구나, 그런 느낌이 순간 드는데 그런 느낌조차도 기록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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