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루소 전기 한국어판 읽으면서 했던 생각인데, 

영어판도 같이 읽은 건 아니어서 실은 근거없는 망상일 수도 있다.   

원서로는 천천히, 그리고 여러 번 읽을수록 받는 보상(지적 보상)이 커질 문장들이 한국어론 그렇지 않다. 영어에선 각각의 단어가 그게 선택되고 그 자리에 있는 이유를 알아보며 즐거웠을 문장들이, 한국어에선 거의 상투어들의 진부한 조합이 된다. 원서는 (저자가 독자에게 의식적으로 행하는 요구에 따라) 어느 정도는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데, 한국어라면 천천히 읽든 빨리 읽든 큰 차이가 없으며 아니 오히려 천천히 읽을 때 빨리 읽을 땐 보지 못할 결함들을 본다. 그래서 실은, 허겁지겁 읽기가 장려된다. 


번역이 나쁜 편은 아닐 것이다. 아니 좋은 번역일 수도. 대략 다 이해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루소> 한국어판의 번역이 나빠서가 아니라, 번역서들에서 흔히 보는 특징이 (심지어 번역이 좋은 경우에도) 이런 거지 않나는 생각이었다. 물론 <공간의 시학>같은 예외들이 있지만, 그 예외들은 적고 다수가 저렇지 않나. 


쉽게 빨리 혹은 자연스럽게 읽히는게 자명한 미덕인 것처럼... 그러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여하튼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꼭 번역서만이 아니라 책들이 대체로, 천천히 그리고 여러 번 읽을수록 보상이 커지는 책... 이기보다는, 그러든 않든 큰 차이 없는 편이지 않나. 영어 포함해 서양 언어로는 천천히, 조금씩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읽을 수 없는 책들도 많이 씌어졌지만 한국어에선 아직 아니지 않나? 


이런 얘기 하면 욕;;;;; 먹거나 아니면 강력한 반발을 자극한다. 수업 시간에 비슷한 얘기했다가 경험해 봄. 

그러나 사람들이 (고위직 공무원 이런 사람들까지) 하는 막말의 수준, 이걸 보면... 그리고 (역시, 대통령부터 시작해 고위직... 그들, 그들만이 아니지만) 굉장히 유아적인 정신들을 보면, 천천히 무엇인가에 반응하고 따져보는 (Mona Lisa Smile 이 영화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교육의 목표로 제시하는 "consider" 이것의 능력)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가 없어지면서..... 


괜한 책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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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두 권 대출했다. 

왼쪽 아메리의 책부터 넘겨보고 있는데, 23쪽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마법의 산*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을, 시간 그 자체를, 온전히 따로 떼어낸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정말이지 우리는 시간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 일은 어리석은 바보나 시도할 법한 짓이다.


"마법의 산" 이 구절 옆에 주석이 있다는 *표시가 있고, 

그래서 페이지 아래에 있는 주석을 보면: "'마법의 산'Montagne Magique은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어서 (마법의 산은 마의 산, The Magic Mountain, 독어로는 Der Zauberberg를 말하는 것 아닌가? 프루스트 소설과 함께 "시간 소설"로 가장 유명한 그 소설?), 하지만 주석의 내용이 사실일 수도 있겠어서 잠깐 구글 검색 해보았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말하는 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주석에서 두 단어 첫 글자가 대문자인 것도 이 쪽을 가리키고. 그런데 이 쪽이 사실이면, 저런 주석은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진짜 일생을 걸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 죽기 전에 읽어야 할 하나의 (권 수는 판에 따라 다릅니다..... 며) 책.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2권까지 읽었을 뿐이라 남은 (영어론 4권, 불어론 5권) 부분에서 나올지 모르는 얘길 보면 당황.. 이라기보다 으으.. 분발, 같은 걸 하게 되기도 한다. 오늘의 이 대목에서도, 어서 빨리 프루스트를 다 읽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게 아무리 빨라도 3년 아니냐. ;;; 심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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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 firm for what you believe in, until and unless logic and experience prove you wrong. 

Remember, when the emperor looks naked, the emperor is naked. The truth and lie are not sort of the same thing. And there's no aspect, no facet, no moment of life that can't be improved with pizza."


다리아의 고등학교 졸업식 연설. 이건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논리와 경험이 여러분이 틀렸음을 증명하지 않는 한, 그리고 증명할 때까지, 여러분의 믿음을 굳게 지키세요.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는 왕은 실제로 벌거벗은 왕임을 잊지 마세요. 진실과 허위는 알고 보면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피자와 같이 한다면 인생의 어떤 면도, 어떤 순간도 더 좋아집니다." 


미국에서 배울 것, 미국의 힘엔 이것도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런 놀라운 대사들이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나온다는 것. 지금 다시 보면서 또 놀란다. 얼마나 잘 쓴 대사인지. 한 나라의 교육 수준은 그 나라의 정치 연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제임스 볼드윈이 말했다는데, 정치 연설이 특히 그렇겠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연설의 수준, 이게 말해주는 바 당연히 작지 않겠지. Daria 물론 픽션이지만 픽션의 모태는 현실이..;; 여하튼 이런 여고생을 상상하고 그녀에게 졸업식 연설로 이런 말들을 준다는 건, 남이 해보이니까 쉬워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님. 아닙니다. 다리아 캐릭터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인물들의 대사와 주제, 무얼 보든 걸작. 


*서양언어는 명사가 강하고 동양언어(중국어)는 동사가 강하다... 

얼마전 NYRB에서 읽은 이런 내용 글은, 그래서 서양언어는 소유와 지배, 동양언어는 포용과 공존, 

이런 것들을 지향한다.... 고 말하기 직전까지 갔던 것 같다. 그럴까봐 두려웠는데 실제로 그러진 않음. 

그런데 명사가 발달한 언어가 가질 만한 강점은, 이 연설의 첫 문장, Stand firm for what you believe in, 여기서 관계대명사 what. 이걸 놓고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자기가 뭘 믿는지 뭘 말했는지도 모르는 이들을 생각하면. 무엇과 너의 관계를 좀 보도록 해. 그건 너의 무엇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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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교 대자보 게시판에서 

<존재와 시간> 영어판을 영어와 한국어로 읽는 모임 공고를 보았다. 

매주 두 시간, 한 시간은 영어로, 한 시간은 한국어로 토론한다고. 구성원은 이러하다고 적혀 있지 않았지만, 학부생들이 하는 걸로 짐작했다. 나야말로 이런 거 해야하는데... 하고 싶다고 연락하면 (나이 많다고) 싫어하겠지. 


스탠포드엔 (나와 아무 인연도 없는 학교를 자꾸, 거의 언제나 칭송의 맥락에서 언급하자니 비굴을 자청하는 것같다만) 구글 검색어 자동완성도 되는 "철학 읽기 그룹"이 있다.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이 참여하는 모임. 로버트 해리슨은 이 모임에서도 적극적이어서 Entitled Opinions에서 이 모임 얘기도 가끔 한다. 스탠포드 철학과의 래니어 앤더슨이 게스트, 사르트르가 주제였던 에피에서, "언젠가 당신은 철학 읽기 모임에서, 데이트의 유일한 목적은 섹스라고 말해 즉각 비난을 유발했었죠..." 이런다거나. (이 말에 앤더슨은, 차근차근 자기 뜻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이 모임도 아마, 지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드림" 토론 모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스탠포드의 이 모임 웹사이트에 올라오던 행사 비디오나 오디오 클립, 텍스트 내용을 보면, 이런 모임이 존재하고 제대로 운영되는 학교가 있다는 것에만도 놀라고 부러움의 한숨, 그런 거 날 수 있다. 


한국에서 이거 되는 학교 있을까. 특정 학교를 떠나서, 가능할까. 생각해 본 적 있는데, 

큰 문제 하나가 토론 대상이 될 판본의 결정이 아닐까 했다. 어떤 책을 택하든, 영어로만 읽은 사람이 있고 한국어로만 읽은 사람이 있지 않겠어. 원어가 영어가 아니라면 원어로만 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토론을 시작할 언어부터, 공통의 지점을 갖기 어려워. 한국어 번역이 있는 경우, 그 번역을 읽지 않았다 해도 토론을 앞두고 읽도록 강력 요구할 수 있을만큼 그 번역이 뛰어난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고. "철학" 리딩 그룹이 아니라 "철학의 번역에 관한" 리딩 그룹, 이래야 공통의 지점이 있고 할 얘기도 많겠다. 


(*물론 판본보다 더 근본, 결정적인 난점이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그런데 어쨌든 그런 모임이 있고, 

학부생으로 그런 모임에 참관하면서,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보는 낭만주의의 유산, 영국의 문학 전통은 울프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나.. 이런 얘기 멋있게(음 이거 중요함) 해주신 선생님이 있었다면, 대학 시절의 추억이 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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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팟캐스트 최근 에피소드에, 

두번째 책, A Book of One's Own: People and Their Diaries, 이 책 얘기하면서 진행자, 게스트들이 일기쓰기에 대해, 자기가 썼던 일기들에 대해 말하던 대목이 있었다. 20대에 썼던 일기들을 지금 보면 오글거림도 오글거림이지만 그 끔찍했던 시간들. 후우. 20대는 좋지 않다. 30대나 40대가 좋다. 이거 듣는 20대 여러분, 20대는 좋지 않아요. : 진행자인 파멜라 폴은 이런 얘기도 하더라. 제목 듣고 바로 끌려서 알아보아야겠다 했다가, 지금 검색해보니 84년간이다. 아마존에 1센트 가격에 올라온 중고본이 많은 걸 봐서, 많이 팔렸나봄. 이런 책인데 많이 팔렸으면, 좋은 책. 


대학 시절 썼던 일기는 버린 건 아닌 듯한데 지금 집엔 없고, 

고교 시절 썼던 일기장 한 권이 지금 집에 있지만, 열어볼 수 없다. 아마 마지막으로 열어본 게 20년도 더 전일듯. 열면 내 안의 일부가 반드시 죽는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30대에는 박사과정에 있었고 이 시절엔 (그 전체는 아니지만) 열심히 블로그를 했다. 비공개로 지금도 하고 있는 블로그인데, 내 경험으론 일기든 무엇이든 자기 삶의 기록은, 남기는 당시에는 미미해도 한 5년 후부터는 큰 힘을 갖는다. 열심히 블로그 하던 당시엔 하지 않던, 주제어 검색... 혹은 시기별 찾아가기, 이런 걸 얼마전부터 하면서 어떤 땐 깜짝 (좋은 의미에서) 놀란다. 내가 거기 등을 기대고 앉아 쉬다가 힘을 얻어 일어날 수 있는 곳: 이런 것이 내가 내 삶에 대해 남긴 기록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때도 그랬었구나, 이런 것이 힘을 주기도 하고,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 이게 보일 때도 있고. 


수업에서도 일기쓰기, 기록남기기에 대해 얘기할 때가 있는데 

지금의 여름학기 수업에서도 토론 주제가 되었다. 일기를 쓴다. 오늘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다. 그럴 때, 

내가 뭐 중요한 사람이야? 이런 뻘쭘함이 들 때가 있겠지만.........: 이렇게 얘기했더니, 내가 뭐 중요한 사람이야? 에 굉장히 웃던 학생이 있었다. ㅋㅋㅋㅋㅋ 고마워서 기록함. 잊지 않는다. 내 말에 웃었던 모든 이들에게 영원히 빚졌고, 그들 모두를 잊지 않는다. 


울프 여사의 A Room of One's Own에도 영원히 빚진 우리. 제목과 표지, 보아도 보아도 감격한다. 그런가 하면 세번째 책, A Brief History of Diaries, 이 책도 관심이 간다. 10년쯤 뒤에 내 주제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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