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저무는 중
고달픈 일 하나를 끝낸 참이기도 해서
뭐라도 말하고 싶어짐. 알라딘 서재에 쓰기 시작한 건 4월 즈음부터였나?
내 손 거쳐가는 책들, 정색하는 리뷰는 아니라도 100자 평이라도 남겨두면 좋겠어서 쓰기 시작했다가
몇 가지 도움되는 면모를 발견. 밥 먹을 시간까지 1시간-30분 정도 남았는데 미친 듯 허기가 질 때. 그런 때 여기서 뭐라도 쓰면서 허기를 잊기. 참기. 이게 하나. 정신이 나쁜 방향으로 소모되는 일을 끝내고 dazed and confused일 때 정신 수습을 위한 (조금씩 돌아오는 정신을 맞으면서..) 잡담하기.
그렇게 둘인가? 아니, 무엇보다 책에 대한 기록이 목적인 글들을 쓰기도 했으니 그게 셋.
위의 저 두 권 책들은 한참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얼마전부터는 결제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는 책들. 주문까지가 이렇게 어려운 건, 언제나 부족한 돈의 문제도 있고 그리고 지금 책이 너무 많다. 책들이 무슨 교환 관계에 있는 건 물론 아니나, 당장 꼭 필요한 책이 아니어서 사실 있다한들 읽게 될 가능성이 아주 작은 책들의 경우, 그 (당장 용도 불분명한) 책들이 그렇게 보고 싶으면 이 (당장 필요해 쌓아 둔) 책들부터 봐라. 고 말리는 내가 이김.
차라와 랭보.
바슐라르가 둘 다 자주 인용한다. 문학 책들 전체에서 각각 다섯 번 정도면 그게 "자주"라고 할 정도인가?
자문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러고 보니 그 이상, 더 자주 인용하는 시인이나 작가가, 아마 없거나 있다 해도 그 차이가 별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닐 것같다. 바슐라르의 문학 연구는, "전공" 작가나 시기가 있어서 그들에 집중하는 보통의 (특히 미국) 학자들과는 아주 다른 MO. 어쨌든 차라와 랭보는, 바슐라르가 숨쉬던 공기(문학 공기)의 일부였을 듯. 바슐라르가 인용하는 차라의 구절들은 예외없이 미친 구절들이었다. 나중 인용하겠다. ;;; 지금 당장 기억나지는 않음.
랭보는 Entitled Opinions 랭보 에피소드에서,
게스트였던 레베카 페크론이, 인용되는 랭보 시 몇 대목에서 아주 감탄을 한다. 이거 최고라고. 정말 좋다고. 심지어 목소리가 젖기까지 함. 울기 직전처럼.
그러니 나도 읽고 싶어졌다.
내가 나이가 들어 시에 감흥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반응하는 것과 독자의 나이 사이에 전혀 아무 상관이 없는 시인들도 있음.
그렇다고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서. 꼭 알아봐야겠어서. 랭보에게서 실패한다면, 그럼 다른 시인으로.
차라 책은 전기이긴 하지만 작품도 꽤 인용될테니 차라로 알아보아도 되겠다. 바슐라르가 그를 탁월한 미친 시인으로 보이게 했던 것인지 아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