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재에 써야겠다 했던 게 있는데 

Six Feet Under 2시즌의 에피였던 The Invisible Woman. 

에밀리 프레빈(1954-2001)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독신이고 직장과 집, 집에서는 혼자 (혼자 조용히). 이게 삶의 전부. 어느 날 퇴근하고 저녁 먹다가 감자 조각이 목에 걸리며 질식사한다.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파리가 끓고 시신은 부풀고) 다음에야 발견되어서, 그런 상태 시신으로 open casket 장례는 할 수 없다며 "왜 사람들이 에어컨을 틀지 않고 죽는 거야??" 리코가 그런 취지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있다. 


처음 볼 때 에밀리 프레빈은 언니도 아니고 이모 정도. 지금은 그냥 바로 내 얘기다. 

식스핏언더 1시즌은, 그러니까 이게 시작할 때 네이트와 브렌다가 삼십대 초반인데 그 때 이들이 내게 언니, 오빠였었던 것을 생각하면 과연 소년은 쉽게 늙고 학문은.... (소녀는?) ;;;; 어쨌든 지금은 그냥 바로 내 얘기라서가 아니라 그녀가 이모 뻘이던 처음 볼 때부터 매혹되고 잊기 힘든 여러 장면, 대사들이 있던 에피. 


죽으려면 에어컨 잘 돌아가는 데서 죽으라고! 

이러는 리코 말곤 Fisher & Sons Funeral Home의 성원 전부가 에밀리 프레빈의 죽음을 한편 자기 일처럼 느낀다. 루스는 강력히 그녀와 동일시하고 (애를 셋이나 낳아 키웠어도, 이 여자보다 내가 덜 외로운가?) 네이트는 그녀가 살았을 (거라 그가 상상하는) 조용한 절망에 공감하고 데이빗은 그녀의 온전히 혼자이던 삶이 우리의 미래, 너와 내가 반길 미래.. 라 보며 반색함. 그런 방향의 공감. 


에밀리 프레빈 장례식 날 저녁 네이트, 데이빗 형제와 루스가 부엌에서, 

그녀의 죽음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그들 모두가 한편 그녀에게서 자기를 보지만 

인생이 이래도 되는 건가? 이렇게 완전한 혼자로 살아도 좋은 삶일 수 있나? 이런 의문, 반발도 있기 때문에 싸우듯이 말들이 오감. 특히 루스가 자기 아들들에게, 이런 장례를 치른 오늘 우리는 우리 삶을 바꿀 필요를 느껴야 한다. 가족이면 서로 알고 지내자 입장이어서 아들들에게 부담을 안김. ;; 세 사람이 그러고 있을 때 클레어가 귀가하고 "지옥은 타인이다"를 변주한 그녀의 명대사를 한다. "중요한 건 당연히, 그녀가 그렇게 살고 싶었느냐 아냐? 그녀 자신 진정 그렇게 살고 싶었다면? 만일 그녀가 원한 게, 타인이라는 고통에서 면제된 삶이었다면?" 


영어로는 What if that's the life she wanted? Life without the hassle called other people? 대략 이런 말이었을 것인데, 지금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나 이 말이 내겐 어찌나 사무쳤던 말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는지. TV를 껴안고 울라 하면 알았다며 껴안고 울었을지 모른다. 특히 저 마지막 네 단어 (이 네 단어는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할 것이다). hassle called other people. 


막내딸 클레어가 별 생각 없이 했을 이 말을, 그들 가족의 삶, 특히 모친인 자신에 대한 코멘트라 여기면서 격분하는 루스가 "그런 인생도 인생이냐? What kind of life is that?" 소리소리 지르게 한, 그 선택도 참 탁월했던 그 장면. 




타인은 언제 축복이고 언제 지옥인가? : 이것도 수업에서 쓸 때가 있는 질문이고, 

이 질문에 학생들이 답할 때 가끔 정말 놀라운 답들이 나오기도 한다. 음 쓰다보니 이 포스트도, 애초 쓰려고 했던 건 쓰지 못하고 변죽 울리다 끝나고 말 것 같은데, 여하튼 클레어의 저 명대사는 사실 중요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담고 있는 대사라 보겠다. 


그게 놀라워지는 건, 

Fisher & Sons Funeral Home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무관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브렌다에게, 

그런 브렌다의 삶에서도 피셔가 가족들이 묻고 답하려하는 그 질문이 성립하게끔 얘기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위의 이미지는 브렌다가 멜리사와 점심 먹는 장면. 멜리사는 sex worker(그녀의 표현)이고 브렌다가 마사지스트로 일하던 동안 만나 잠시 친구가 되는 인물이다. 브렌다가 멜리사에게 얘기하는 삶의 곤경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네이트,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사실은 그녀가 모른다는 것..... 이런 것이 있다. 


타인은 언제 축복이고 언제 저주인가. 

이 질문은, 우리는 서로 알고 살아가긴 하는 건가. 이 질문과 사촌 아닐까? 

사촌이 아니면, 친형제...? ;;;;; 







*음 나중 이어서 쓰거나 재방문할 수 있으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식스핏언더 이 에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세부에서 조금 틀린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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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더 then and now 검색해 보다가 

크리스테바가 했다는 이 말 발견. Love is the time and space where "I" give myself the right to be extraordinary. 

생각해 보니 그런 것(그런 것도) 같고, 어쨌든 기억해 두고 싶은 말이다. 이 사진에서 크리스테바 얼굴은, Manhattan에서 우디 앨런이 "인생을 살 가치가 있게 하는 것?" 이 질문에 자답하면서 내놓는 긴 리스트. 스웨덴 영화들, 말론 브란도, 모차르트의 교향곡, 세잔이 그린 그 놀라운 배들,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쌤우네 가게에서 파는 게요리, 등등. 등등등 나열하다 마지막으로 말하는 Tracy's face. 그 Tracy's face같은 얼굴. 


이 말을 남자 사상가가 했다면, 

굉장히 유치하게 들릴 것같다. 아니 자뻑도 아닌 것이. 에고의 과잉이자 결핍?

그런데 여자가 하는 말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정말 남과 여는 다르게 인간이 되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인가 보다...;;;; 





장 바니에, 내겐 금시초문인 분의 사랑 정의도 같이 발견. 

"Love doesn't mean doing extraordinary or heroic things. It means knowing how to do ordinary things with tenderness. 사랑은, 비범하거나 영웅적인 무얼 하는 게 아냐. 평범한 일들을 다정하게 하는 법을 아는 게 사랑이지." tender, tenderness. 이것도 거의 번역불가인 말 아닌가. 부드럽고 다정하고 약하고. 


이 말은 크리스테바의 위의 말과 반대를 말하는 것 같다가,

조금 생각하니 거의 같은 말로 들린다. 





번역하기 힘든 아도르노의 말. 

출전은 <미니마 모랄리아>다. 

"힘(공격)을 도발하지 않으면서 약해질 수 있는 곳. 

사랑은 그 곳에만 있다." 이거 뜻밖에도, (그리고 여기처럼 '헬'에선 더더욱) 진리이지 않나? 

약한 모습; 보이는 순간, 그게 누구든 상대의 먹이가 되는 일. 이 말을 이런 정도, 이런 방향으로 이해함은 온당치 못한 것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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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ies and gents, I present to you a young Ozzy Osbourne



오지 오스본 then. 

젊음에만 허락되는 종류의 머릿결이 있나봄. ;;; 

눈빛은 물론이고. 피부는 어떻고. 입술까지도.   






오지 오스본 now. 

노인을 보면 한때 그였던 젊은 사람; (....;;;) 상상하고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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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23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많이 늙었네요. 마약을 달고 살아서 그런가 아닐까 싶습니다. 80년대 락과 메탈 좋아했던 저는 블랙사바스는 오지보다는 로니 제임스 디오때를 좋아했는데, 디오도 몇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뜨더라구요.

몰리 2016-07-23 22:28   좋아요 0 | URL
오지가 미청년이던 때 사진을 오늘 처음 봤습니다. ;;
<토탈 이클립스>에서 디카프리오와 지금 디카프리오 사이의 격차 정도,
어쩌면 그 이상, 있는 거 같았고 깜놀했어요.;
 
















어제 대출한 책엔 이것도 있다. Composing the Soul: Reaches of Nietzsche's Psychology (1994). 

아래가 책 전체의 제사(에피그래프):  


As happens in great men, he seemed, by the variety and amount of his powers, to be a composition of several persons. -- Ralph Waldo Emerson, Representative Men (위대한 인간들에게서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가 가진 많고 강한 힘들에서 그 역시 여러 인물들로 구성된 사람이었다). *한 문장일 뿐이라도 거의 예외없이, 번역을 시도하면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새삼 느낄 기회가 된다. 이 문장, 별 생각없이 시도했다가 (바로 좌절하며) 머리 뽑음. 같은 텍스트의 다수 번역이 있고 각각의 번역이 갖는 강점과 약점을 면밀히 보는 일. 그런 일이 많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듬. 에머슨의 이 문장, 다른 좋은 번역 보고 싶다.


책장을 넘겨 보면 에머슨을 계속 인용한다. 이런 문장들이다. 


The moment our discourse rises above the ground line of familiar facts, and is inflamed with passion or exalted by thought, it clothes itself in images. ("Language") 우리의 담론이 친숙한 사실들의 세계 위로 부상하고, 열정으로 불타거나 사고로 고양되는 순간, 담론은 이미지의 옷을 입는다. 


[Man thinking] then learns, that in going down into the secrets of his own mind, he has descended into the secrets of all minds. ("The American Scholar") 생각하는 사람이면 알게 되는 일. 자기 정신의 깊은 비밀 속으로 내려감이, 모든 정신의 깊은 비밀 속으로 내려감이라는 것. 


Let me remind the reader that I am only an experimenter. . . . No facts are to me sacred, none profane; I simply experiment, an endless seeker. ("Circles") 나는 실험가일 뿐임을 독자가 기억하길 바란다. 어떤 사실도 내게 신성하지 않으며, 비속하지도 않다. 중단없는 추구자, 나는 다만 실험한다. 


The greatest genius is the most indebted man. . . . The great man finds himself in the river of the thoughts and events, forced onward by the ideas and necessities of his contemporaries. ("Shakespeare") 가장 위대한 천재, 그는 가장 많이 빚진 사람이다. 위대한 인간은 사상과 사건들의 강에서 헤엄치는 자신을 본다. 그를 앞으로 미는 건 그와 동시대 사람들의 관념, 그리고 요구들이다. 


It seems to be a rule of wisdom never to rely on your memory alone, scarcely even in acts of pure memory, but to bring the past for judgments into the thousand-eyed present, and live ever in a new day. ("Self-Reliance") 기억에만, 순수 기억의 행동이라도, 의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지혜의 법칙일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천 개의 눈을 가진 현재로 가져와 판단해야할 것이며, 어느 날이든 새로운 날처럼 살아야한다. 





















갖고 있는 에머슨 책으론 왼쪽의 선집 하나가 다다. 

오래전 헌 책으로 구입. 표지를 열면, 격렬한 필체 오렌지색 펜으로 이렇게 적혀 있다. 

"네이트, 오직 우리의 믿음만이 우리의 한계임을 기억해! 우주가 너의 것이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Nate, Remember that we are only limited by what we believe! The universe is yours! God bless!" (*옮겨 적으면서 바꾸긴 했는데 실제론 전부 대문자로; 적혀 있음. 그러고 보니 손글씨 쓰면서 대문자로만 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격정적인 자기 격정이 감당이 안되는 사람들일 가능성 클 것같기도). 준 사람 이름은 Scott. 네이트는 스코트가 선물한 이 책이 싫었던가, 단 하나의 읽은 흔적이 없다. 


하이고 어쨌든 그래서, 

전부터 읽고 싶었던 에머슨인데 이렇게 많이 에머슨을 인용하는 니체 연구서를 대출하고 보니 (위에 옮겨 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끝없이; 인용하고 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기는대로 계속 나온다) 무엇보다 일단 에머슨 책들을 제대로 사두어야; 하겠어서 Library of America 판들을 검색함. Library of America 판 책들 참 좋다. 독자 누구라도 팬으로 만들 책들. 어쨌든 아마존에 저렴한 중고본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큰 타격 없이 사둘;; 수 있을 듯. 킨들판은 거의 전부가 무료다. 


에머슨-니체 커넥션, (Composing the Soul 이 책은 그걸 '웅변하듯' 수립하는 책이기도 할 것같고), 

외에 에머슨-바슐라르 커넥션도 있을 것같음. 근본적으로 동류인 영혼. 굉장히 다른 발현. 19세기 미국의 엘리트. 20세기 프랑스의 평민. ;; 이런 잡념도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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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7-2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님께서는 영어로도 자유롭게 책을 접하시는 것 같아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많은 책들을 미리 접하고 비교적 원서에 가깝게 보실테지요. ^^; 부럽습니다.

몰리 2016-07-23 08:26   좋아요 1 | URL
에효 제 전공인걸요..;;;; 영어로 공부하면서 그 긴 세월을 보낸 걸 감안하면
실은 잘 읽지도 많이 읽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6-07-2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읽으신 책을 보면 쉽지 않은 책인 것 같아요. 언어는 문화를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 문학이나 철학 등의 책은 같은 서양권 언어로 이해되어야 보다 정확한 의미전달이 된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영어로 된 서적과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만 쉽지 않네요 ㅋ 그래서 잃어버린시간님 같은 분을 뵈면 많이 부럽습니다^^; 행복한 휴일 되세요

몰리 2016-07-23 10:15   좋아요 1 | URL
카우프만이 번역한 니체 책들 보면 역주가 꽤 많고 역주의 적지 않은 부분이
자신의 역어 선택을 해명하고, 그러면서 니체 사상의 일면(혹은 여러 면;)을 해설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게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고 철학서 번역은 이런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놀랍게도 영어권에서 (역자들이든 독자들이든) 카우프만이 한 것같은 번역이 모범이다.. 쪽은 소수인 것 같더라고요. 같은 서양언어끼리인 독어, 영어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서양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은 더더욱, 방대하고 상세한 역주, 역주를 통해 단단한 도입 기반 다지기.. 이게 관행이 되길 바라지만 아마 한국에서도 이 쪽은 소수;;일듯해요. 주석이 읽는 데 방해된다는 얘기는 사실 이해가 안됩니다. 그냥 안 읽으면 되는 걸;;; 아무튼 한국에서 외국어, 그리고 번역에 대한 논의가 더더 많고 진지해야할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6-07-2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잃어버린시간님의 말씀에 동감입니다. 아직 뜻을 담기에도부족해서 번역의 미묘한 부분까지 신경쓰지 못합니다만, 잃어버린 시간님의 리뷰와 같은 좋은 글은 핵심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반납하기 전에 넘겨보니 아도르노의 스트라빈스키 비평을 비판하는 글이 있다. 제목이 "말썽 많은 악의 아름다움." 처음 두 문단이 이렇다: 


아도르노가 나를 화나게 하는 점은 예술 작품을 끔찍할 만큼 쉽게 정치적 (사회적) 원인이나 귀결, 혹은 그 의미들과 연결짓는 직접 교섭 방식이다. 여러 가지 차이를 고려한 지극히 신중한 성찰들(아도르노의 음악학적 지식은 칭찬할 만하다)이 결국은 지극히 보잘것없는 몇몇 결론으로 이끌리고 만다. 한 시대의 정치적 성향이 언제나 단 두 가지 상반된 성향으로 환원되며, 결국 우리는 예술 작품을 진보 편에 분류하거나 반동 편에 분류하게 된다. 그리고 반동이란 곧 악이기에, 엄한 취조로 이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봄을 되살리려고 죽는 한 아가씨의 희생으로 끝맺음하는 발레곡이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스트라빈스키는 야만 편에 있다. 그의 "음악은 스스로를 희생자와 동일시하는 게 아니라, 파괴적인 심급과 동일시한다." (의아하다. 왜 "동일시"라는 명사를 쓰는가? 스트라빈스키가 자신을 무엇과 "동일시"하는지 아닌지 아도르노가 어찌 아는가? 왜 "그리다" "초상을 만들다" "형상화하다" "표상하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 대답은 이렇다. 오직 악과의 동일시만이 유죄이며 소송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학이론>에 위의 인용문이 나오나 찾아보았는데 나오지 않았다. 스트라빈스키가 네 번 정도 언급되긴 한다. 직접 인용하고 인용문에서 어휘 선택을 왈가왈부하려면 출전을 밝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아도르노는 음악에 관한 저술도 많이 남겼으니 출전은 그 중 어디선가 봄. 


첫 문장이 이해되지 않는다. 일단 "끔찍할 만큼 쉽게"는 아도르노가 무엇을 하든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쉬워 보이는" 경우는 있을지도 모름. 남이, 그것도 거장이 해보이니까 경탄이 일게 쉬워 보이는. 하지만 제대로 추적, 혹은 동참해 보면 어김없이 강도 높게 "사고/개념 노동" 해야 하고 그래서 not for the feeble-minded. 하여간) 그리고 예술 작품을 정치적 사회적 원인, 귀결, 의미들로 연결한다는 말은, 음 이런 주장에야말로 "끔찍할 만큼 쉽게"란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은데? 끔찍할 만큼 쉽게 아도르노를 타락시킴, 저급화함 (영어 단어 "bastardize"). 어떻게 이렇게 간단히 말해버릴 수 있나, (독자를 어떻게 봤길래? 혹은 누구로 봤길래?), 진짜 이렇게 쓰고 있는 게 맞나 원문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직접 교섭" 이 구절이 마지막으로, 이해되지 않음. 불어와 영어가 어휘가 (특히 조금 고급 어휘면) 겹치는 게 많아서, 영어라면 이런 단어였겠고 불어로도 그랬겠네.... 번역서들 보면서 그러는 때 가끔 있지만 이 경우엔 아무 감도 오지 않는다. 


아도르노 읽으면 갖게 되는 굉장히 유용한 자산.  

지식인들 판단을 위한 척도. 이런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 이 책에 대한 반응만으로도, 

바로 알 수 잇는 것들이 있다니깐. ;;;;; 그게 얼마나 쓸모 있는지. ;;;; 오늘은 이 점을 놓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할 상태가 아니어서, 이쯤에서 그만. 나중에 재방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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