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역사는 역사철학이어야 한다"는 아도르노 말을 따라해 봄.
출전이 아마 <역사와 자유>일 것이다. 이것도, 아도르노 강의록. 대학원 시절 "역사는 역사철학이어야 한다"는 말을 읽고 (아무렴, 그렇고말고, 옳다!) 흥분해서 논문 커미티에 계셨던 철학과 선생님께 사석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샘께서, 더 이상 시큰둥할 수 없는 반응을 하심. (응?) 정도. ;;;;
나만 좋아하는 게 분명한 무엇이면, 출전이나 기원을 서서히 잊게 되는 일이 그래서 그 말에도 일어남. (그래도 아마 저 말 출전은 저 책이 맞을 것이다). 그 사석엔 철학과 다른 학생도 있었는데 (그는 전혀 무반응) 만일 그 두 사람이, 눈을 반짝이며 반색했으며 그리하여 세 사람이 다같이 문제의 아도르노 한 문장에 긴 주석을 붙이며 반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면, 그 문장엔 지금 그것에 없는 깊이와 열기가, 차원이 보태졌겠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얼마 후엔,
논문은 논문론이 되어야 하지 않나? 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박사 논문의 부록으로 공부론을 쓰게 해야 한다. 자기 논문의 방법론을,
혹은 자기 논문의 '철학'을, ㅋㅋㅋ 지적 전기의 방식으로 쓰게 하라. 이게 실현된다면,
그 논문은 아무도 읽지 않지만 부록인 공부론은 '대박'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몽테뉴 에세이들을 조금 읽는 동안,
이 글들도, 잘 번역됐다면 한국어가 속도 조절의 면에서 더 역량을 갖게 할 글들이겠다 생각했다.
번역불가의 1-10 척도가 있다면, 그래서 역자들이 거의 만장일치 영어로 번역불가라는 아도르노 책들이 10, 조금 문학적인 시나리오들 <가을 소나타>나 <Au revoir, les enfants> 같은 것들이 한 2 정도라면, 몽테뉴의 에세이는 한 8.7쯤 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13.2 정도일 수도. 16세기 프랑스어가, 그냥 16세기 프랑스어이기만 해도, 굉장히 번역하기 어렵다고 어디서 들은 것도 같다.
영어판 전집을 보면 몽테뉴 번역이 영어판 역자에게 안겼을 엄청난 어려움이 알아보이는데,
한국어로 번역될 땐 그보다 더 한 어려움이 있으면 있을 것이고, 그런데 번역이 어렵다는 건 원저도 실상 훌렁훌렁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이고, 프랑스 독자가 몽테뉴를 읽을 때 들일 법한 시간과 같은 시간이 (같은 시간과 같은 집중이) 요구되는 한국어 번역이 나온다면, 그것은 빨리 읽기를 장려하는 한국어에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건.
몽테뉴 에세이들이 다시 (제대로, 합당하게) 번역된다면,
그 번역은 역자의 번역론이기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생각은 자유니까 ㅋㅋㅋㅋㅋ) 했다.
사실 카우프만의 니체 영역이, 아주 대놓고 표나게 그러진 않지만 카우프만의 번역론이기도 하다. 번역에서 일어나는 그 방식의 선택이 암묵적으로 번역론이기도 하지만, 역자 해설과 역자 주석들을 통해서 더 명시적으로 그렇기도 하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주요 책들은 전부, 카우프만의 방식으로든 다르게 해서든, 번역론이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보았음. 바라는 건 자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