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안해야할 점이 또 있다. 바슐라르는 철학 교수자격 시험("아그레가시옹")에 통과했다. 

철학사 전반에 얕지 않은 지식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철학사의 과거에서 무엇도 

물려받지 않으면서 자기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동시에, 철학사를 의식하고 있음이 

그의 글 어디서나 분명히 보인다. 필요하다면 그는 철학사에서 마음껏 차용한다. 또 독자를 

놀라게 하는 깊은 박식을 그의 글에서 느낄 수 있다. 바슐라르의 저술을 잘 알고 있는 한 친구가 내게 

"바슐라르는 그 모두를 혼자서 하는 사람"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 그렇게 보인다. 현상학과 

정신분석을 말하지만, 훗설과 프로이트는 등장하지 않는다. 변증법이나 현상/본질(phenomenon/noumenon) 

같은 철학 용어들을 쓰지만, 그 용어들에 그 자신만의 구체적 의미를 부여해서 쓴다. 



구입신청했던 책 <바슐라르: 초현실의 철학> 받아왔다. 

"인트로덕션"에 저런 대목이 있다. 깊이 들어간다면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논의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은 

얘기들인데, 이어지는 장들 대강 넘겨보니 그러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바슐라르는 철학사와, 철학사 안에서, 무엇을 했는가. 이건, 그럴 역량이 되는 사람이 한다면, "니체는 철학사와, 철학사 안에서, 무엇을 했는가" 주제로 그런 사람이 할 때보다 어쩌면 더, 진정 흥미롭고 중요한 기여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뉴스도 봐야 하고 

맥주도 마셔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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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엔 월수 수업. 

지난 주 수요일에 가방이 무거워서 책을 학교 사무실에 두고 오고 

지금 막 오늘 수업에서 읽을 글 보고 있는 중이다. 주제: 여행. 


여행과 관광. 이것도 토론 주제로 쓰는데, 

"바보는 방황하고 현자는 여행한다 

A fool wanders, a wise man travels." 

"여행자는 보는 것을 보고, 관광객은 보러 온 것을 본다 

The traveler sees what he sees, the tourist sees what he has come to see." 

"관광객은 자기가 갔던 곳을 모르고, 여행자는 자기가 갈 곳을 모른다 

Tourists don't know where they've been, travelers don't know where they are going." 


이런 인용들과 함께, 여행은 보다 분명히 세계와 만남을 통해 자기형성(self-making), 

관광은 이보다 훨씬 피상적인, 거의 소비에 불과한 활동... 같은 구분을 하고 얘길 하다가 

아니 그런데 사실 둘 사이 분명한 대립이 혹은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는 의견이 

나올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니 (그렇다면) 주제를 확장해 "변증법"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방금 생각. 

그러나 그러기엔 내가 역부족이다. 게몽의 변증법에 대해서, 그러다 현시국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딘가 있겠지만 내겐 없다. 


지금까지 아마 단 한 번 

수업 중 학생에게서 정면 공격 혹은 비판 받은 적 있다. 

토론 주제가 시사적인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지금 이런 세상은 교수님 세대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 불시에 이런 말 들음. 

음... 먼저 ("first of all"), 나는 교수가 아닌데 비정규직 교원을 교수라 부르지 말자 같은 말은 절대 네이버 

해서는 안되겠지. 그렇게 반응하진 않았고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향. 꿀먹은. ;;; 아래와 비슷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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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요즘 거의 매일 본다. 생전 안보던 뉴스. 


좀 전 갓복현 기자 출연하고 

박근혜 10월 26일, 11월 4일 대국민 담화에서 몇 장면 나오는데 

채팅창에선: "음성변조, 모자이크 해라!"


상상하니 웃겼고 

실제 앞으로 종종 그래도 좋을 것 같. 


근데 나라가 정말 뭐 이런 개판인지

매일 새로운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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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로 된 니체 해설서를 주문하고 얼마 전 받아서 

방금까지 아주 조금 읽음. "연보"와 "서론"의 첫 페이지. 

대강 이런 뜻인가보다... 면서 더듬더듬 보는 것인데, 바슐라르 제대로 읽고 쓰려면 

사실 불어를 아주 잘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음 그래서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한다면 

그럼 뭐 또 어때. 그래도 평생 바슐라르를 읽었고 읽을 거잖아. 다 읽지는 않았습니담. : 이러고 있음. 


"서론" 첫 페이지에서 니체 저작으로 보라고 권하는 판 중 

갈리마르에서 14권으로 나왔다는 <전집>이 있다. 전집광...... 이므로 

14권 전부를 볼 수 있는 이미지 없을까 검색했는데 그렇게는 검색되지 않고 낱권들의 이미지가 검색된다. 

위 이미지는 <반시대적 고찰>. 3권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4권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여러 역자가 

번역했는데 필립 라쿠-라바르트, 장-뤽 낭시. 이런 유명한 이름이 있어서 흠칫. 


프랑스 대단하지 않나. 

이런 전집 보면. 


버지니아 울프도 굉장히 번역 잘 되었을 것 같다. 책 자체도 (종이, 폰트 질감 등등에서) 오 이건 사야해 일텐데. 

소설 박스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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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탐구>의 이해를 위해 요구되는 독자 자신의 참여와 함께, 

이 책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의 한 인용으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게 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철학은 반드시, 그것이 정직하고 품위있게 행해진다면, 고백과 함께 시작한다. 글로 좋은 철학을 

쓰고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잘 생각하는 일은 지성보다는 의지와 관련되는 일이라고 그는 자주 말했다. 그 의지는 오해하려는 유혹에 저항하는 의지이며, 피상성에 저항하는 의지다. 진정한 이해를 방해하는 건 지성의 부재가 아니라 오만의 존재일 때가 많다. 그러므로: "너의 오만의 건물을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끔찍히도 어려운 일이다." 오만의 해체가 요구하는 자기-반성, 이것이 품위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품위있는 철학을 쓰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너무 고통스럽다는 이유에서 자기 안의 심연으로 내려가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의 글에서 언제나 피상적일 것이다." (366) 


아래 포스트에 인용한 문단 다음의 문단. 

<철학적 탐구> 1번 (이것도 '단장'이라 부를 수 있나. '명제'라 불러야 하나), 하여튼 1번이 

<고백록>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이 어떻게 언어를 배웠나에 대해 말하던 대목에서 인용. 


철학은 지성보다 의지의 문제. 그 의지는 오해의 유혹에, 피상성에 저항하는 의지. 

어제 자기 전 보다가 이 대목에서, 깊이 공감했다. 잠들기 전 짧은 순간 그래서 행복했다. 

아도르노도 거의 같은 얘기를, 아주 그냥 독자의 에너지 전부를 요구하면서, <미니마 모랄리아>의 여러 단장에서 한다. 

아도르노와 비트겐슈타인의 비교 연구는 아마 이미 꽤 있을 듯. 비트겐슈타인은 (원래 책을 아주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고, 특히 철학책을? 그가 즐겨 읽은 건 탐정물? 그리고 일찍 타계한 편이기도 하고) 아도르노를 읽지 않았지만 아도르노는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는데, 몇 군데서 무시하듯이, 무시할 수만은 없다면서 무시하듯이 언급하지 않나 한다. 


품위있는 인간. 품위있는 철학. decent person, decent philosophy. 

나는 이 구절에서도, 영어 "decent"엔 명확히 규정하긴 힘들더라도 강력한 의미가 있음에 반해 

번역한다면 쓸 수 있을 한국어 어휘들(좋은, 품위있는.....)의 경우, 그게 무슨 뜻인지 물론 알지만 그 의미가 강력하지 않음, 구속력 미미함..  생각했다. 거의 강박적으로 이런 생각 한다. 말이 말같지 않은 일. 이것이, 변절이 아무렇지 않고 거짓말도 술술 잘하는 데 기여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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