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수상작으로, 남자들의 전쟁 영화로, '덩케르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포스터에 잊고 있던 영화였는데 이번에 1차대전 관련 책들을 읽는 김에 함께 시청각자료 삼아 별 기대 없이 보았다. 그리고 .... 하아... 이런 명작이 대전운이 없어서 '기생충'과 만났구나 싶었다. 여러분, 강추요, 강추. 


1917년 벚꽃이 피는 봄, 잠시 조용해진 프랑스 영토 상의 서부전선, 두 명의 영국군 일등병이 무선/무전이 단절된 상태에 힌덴부르크 선으로 후퇴한 독일군과 대치 중인 부대로 '명령서' 전달 임무를 받고 길을 나선다. 영국군의 많은 이들이 이 스무 살 청년들의 무사 귀대나 임무 달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영화는 임무를 받아서 험한 길을 떠나는 두 소년의 이야기로도 보인다. 호빗 같고요? 하지만 아직 이들에겐 전체적인 그림을, 전쟁을 볼 눈도 여유도 없다. 다만 임무를 받았으니 길을 떠난다. 한 발 짝 앞을 예측하지 못하고 겁에 질려 참호 밖으로 나와 사체들이 즐비한 지옥을 조심스레 전진한다. 도랑과 독일군이 버리고 간 참호는 징그럽게 단단한 덫이다. 아직 어리버리한 둘은 적군과 아군을 구별할 눈도 없고 어줍잖게 인간애를 베풀다 쓰러진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한발 늦게 절제되고 지친 우리편이 보인다. 


매 고비와 상황은 연극 무대 같이 펼쳐졌다 접히고 다시 열린다. 집중해서 여기! 인물에 가깝게! 따라오세요, 관객분들! 조명과 소품은 의도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필요없이 시야를 흩뜨리지 않으며 계속 이 두 '소년'의 임무에, 그리고 인물들의 심경 변화에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큰애가 제대 후에 봤으니 망정이지, 만약 애가 군대에 있을 때 봤더라면 더욱 가슴 아팠을테다) 야간 공중전이 벌어지는 소도시, 주인공과 관객의 눈은 겹쳐져서 이 비현실적인 현실/악몽에 갇히고 만다. 하지만 너무 아름답...(에잇, 벌 받을 소릴!) 생뚱 맞아 보이는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이 이어지고, 겨우 겨우 11부대의 중령에게 명령서를 전달하며 접전을 막는다. 하지만 이것은 다만 1917년 봄, 오늘의 일. 아직 이 서부전선의 밀땅은 지리한 소모전으로 일년 이상 이어지게 된다. 계속 젊은 목숨들을 잡아 먹으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하나 더 전달하고 나서 걸어가는 주인공은 조금 더 성장해 보인다. 그 온갖 고난을 지나서도 깨끗하게 남아있던 명령서나 품 안의 사진 등, 이 영화는 디테일의 '사실적 전달' 보다는 인물의 변화에 더 집중했다. 강렬한 영상, 이런 이야기, 이런 역사에 홀린 듯 잡혀서 내가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지 잊었다....가....겨우 돌아왔다. 여기라고 전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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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0-24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몰입하게 만드는 영화^^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또 굉장히 다르게 느껴지겠어요...

유부만두 2021-10-24 07:37   좋아요 2 | URL
네, 정말 그랬어요.
영상은 분명하게 ‘연극성‘을 보여주는데 여러 겹으로 몰입하게 되었거든요.
 

그의 향수가 성공하는 것은 단지 2백년 전 그 위대한천재 마우리티우스 프랑지파니의 ㅡ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 위대한 발견 덕분이었다. 즉, 그가 방향 물질은 주정(酒精) 속에 용해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프랑지파니는 향신료를 알코올과 섞어서 그 향기를 휘발성의 액체로 옮기는 방법으로 원래 향기를 지니고 있던 재료에서 향기를 분리해 내고 해방시킴으로써 향기에 영혼을 부여하였다.

한마디로 말해 향기 그 자체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향수를 창조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정말획기적인 업적이 아닐 수 없었다! 앗시리아 인의 문자, 유클리트 기하학, 플라톤의 이상론, 포도주를 발명해 낸 그리스인들에 버금갈 정도로 그것은 인류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가히 프로메테우스적 업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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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22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정말 강렬했던 기억이 납니다 ~

유부만두 2021-10-23 13:51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래요. 주인공의 출생 장면 부터 화면에서 악취가 풍기는 것 같았고요, 그 많은 희생자 여성들이 힘 없이 쓰러지죠. 유명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하지 못한듯해서 안타까웠어요.

파이버 2021-10-22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정말 강렬하네요!

유부만두 2021-10-23 13:52   좋아요 2 | URL
네. 저 표지는 예전 판이고요, 쥐스킨트 전집으론 녹색 표지로 통일 되었어요.
 

책 없이 시간을 때워야 했는데 글자를 읽을 기운은 없어서 웹툰을 봤다. 이백 여 편을 다 봤으니, 실은 시간과 마음을 비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간 순삭, 하면서 고민도 현실에서 순삭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 전에 나왔고 2005년엔 티비 드라마로도 제작 되었었다는데 (그것도 신세경 박유천 주연) 전혀 몰랐다. 

큰 폭발 사고로 오른 쪽 눈의 시신경(과 전체 몸)을 변화 시켜 냄새를 후각이 아닌 시각으로 아주 정확하게 인지하는 고등학생 윤새아. 이 아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인간 관계의 이야기다. 

방화사건, 연쇄살인, 국제마약조직의 마약 판매, 청계천 오염, 마약향수 등의 테마 속에 윤새아는 위기에 빠지고 헤어나온다. 그리고 연애도 한다. 여자 고등학생 주위에 성인 경찰, 연구원 그리고 화가가 포진해있고 새아는 혼자 일어서려 애를 쓰면서도 '여자'가 된다. ;;;; 

향/냄새가 주제이다 보니 향에 미친 천재와 조종 당하는 정신 이상 연쇄 살인자가 나오는데 범죄 관련 부분은 수위가 꽤 높다. 만화에서는 둘로 나뉜 향 천재, 향 살인마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 '향수'를 찾아 읽었다. 



'향수'의 주인공 장-밥티스트 그루누이(개구리)는 루이 14세보다 백년 후, 1738년 여름에 태어난다. 모친은 그를 낳자마자 방치해 죽길 바랐지만 도리어 영아 살해로 모친이 처형된다. 체취가 없고 기이하게 혐오감을 주는 아이는 악착같이 살아남아 파리의 향수 장인 가게에서 600 여개의 향을 제조 하며 큰 이익을 남겨주고 자신은 향 '추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남프랑스로 내려간다. 그가 거쳐가는 인물들은 모두 황망한 죽음을 맞는다. 그루누이는 광야의 동굴에서 7년을 지내고, 몽펠리에의 귀족 과학/철학자의 이론에도 협조하며 여정을 이어간다. 향수의 고장 그라스에서 기술을 배우는 그루누이. 자신의 무취와 향제조를 이용해 주위 사람들을 조종하는 한편 살인을 통해 향의 '정수', 생명과 아름다움의 '정수'를 향으로 뽑아내려한다. 25명의 여성들은 그의 재료가 된다. 아무런 목소리도 반발도 내지 못한다. 소설은 역겨운 인물의 혐오스러운 범죄를 그리는데 인물을 실제로 상상하기 보다는 그 주변의 상황, 냄새를 더 열심히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여성 스물 다섯이 죽고, 공포에 떠는 것은 완전히 무시한다. 마지막 희생자는 열일곱의 로라. 거부인 그 아버지는 (메리 셸리의 <마틸다>의 아버지 처럼) 자신의 딸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다. 최고의 향의 재료는 꽃, 미인이라는 (하지만 더해서 생명력과 악(취)도 필수라는) 뻔한 공식을 강조한다. 소설 전체가 범죄자의 서사이며 그의 '처벌'도 주인공의 의도대로 완성 된다. 노골적 성경 패러디와 시대사 병치는 과격하고 희화화된 묘사까지도 작가의 계산 속에서 안전하고 솜씨좋게 펼쳐진다. 다 읽고 '이게 뭐야' 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교훈이 빠진 빅토르 위고의 향도 나는듯 하고 피해자의 공포나 목소리를 지워버린 스티븐 킹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작가 쥐스킨트의 다른 작품을 딱 하나만 더 읽어 보고 싶다. 



찜찜하고 싫었다면서 영화 까지 왜 찾아 봤는지 과거의 나를 혼내주고 싶다. 영화는 개망작이니 나의 시간은 벌을 호되게 받았다. 책에서 비꼬듯 서술하는 문장과 여러 18세기 인물들의 악착스러움, '오래 지속되는 정수'를 향한 덧없는 갈망을 영화는 보여주지 못한다. 비열한 살인자 그루누이, 타인의 피를 빠는 주인공은 어리숙한 천재가 되어 향에 집착하며 화면도 공범자로 피해자의 나신을 열심히 펼친다.  (전리품에 취하는 그는 '냄새를 보는 소녀'의 연쇄 살인자와 같다) 영화에는 가부키 화장을 한 더스틴 호프만, 콰지모도 같은 그루누이, 범죄자의 향에 취하는 스네이프 교수가 나온다. 툭툭 끊어지는 이야기에 처형장의 대축제 장면은 성경 인용에 더해 실소가 나올 뿐이다. 



다 읽고, 다 보고 나서 나중에 무슨 변명인가 싶다. 향에, 무엇에 미치면 그 '정수'를 소유하고자 광기를 부리게 되는 건가. 토요일 부터 엄한 곳에서 엄한 냄새를 맡으며 평소엔 잊고 살던 세상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힘들게 돌아온 나의 일상이 소중한데 왜이렇게 추워진거냐. 나는 비염이 심해서 향수나 향이 진한 제품은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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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0-21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냄새를 보는 소녀‘...웹툰 원작이 있었군요?
저는 예전에 신세경이 나온 그 드라마를 본 것 같아요.신세경을 좋아하는 편인데...무심히 텔레비젼 채널 돌렸는데 냄새를 맡는 게 아니고 본다!!라는 소재가 너무 신기해서 몇 편 챙겨 봤었네요.^^
냄새를 보는 특이함으로 같이 수사를 진행해 갔었던 것 같아요.신세경이 귀여워서 계속 헤~~입 벌리면서 봤었던ㅋㅋㅋ
쥐스킨트는 이상하게 ‘향수‘만 빼고 찾아 읽게 되더라구요?향수는 호불호가 있는 듯 합니다.
만두님의 리뷰를 읽으니 오늘같이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더 읽어 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군요...더 음침하게요ㅋㅋㅋ

유부만두 2021-10-21 09:45   좋아요 3 | URL
쥐스킨트의 <향수>는 잘 만든 소설이에요. 읽기 시작하면 계속 따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매우 불쾌해요. 여러 층위의 이야기로 분석할 수도 있고, 다양한 각도로 볼 수도 있는데 ... 여성의 목소리가 없어요. 전혀요. 그나마 ‘대사‘가 있는 고아원 보모도 이리 저리 치이는 ‘유형‘으로만 소모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작가의 솜씨가 좋아서 더 기분이 나빠요;;;;

2021-10-21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21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1-10-21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목소리가 없고, 여성조차 이리저리 치이는 ‘유형‘인데 작가의 솜씨가 좋을 때의 절망을 저는 필립 로스에서 보았는데 쥐스킨트도 그렇군요. (아.... 패쓰할까 봅니다)
저도 코가 좋지 않은데 전 아직도 진한 향수를 좋아하는 ㅠㅠㅠ
날이 많이 추워졌어요. 저는 오리털 점퍼를 입고 있답니다^^

유부만두 2021-10-21 10:02   좋아요 2 | URL
이 소설은 패쓰하세요. ^^
그런데 전 이 절망감을 씻을(?) 다른 작품 하나만 더 읽고 싶어요.
많이 춥더라고요. 나흘 만에 잠깐 나갔다가 가디건 위에 반코트 겹쳐 입고 다시 나간 사람이 접니다. 어제요. 오늘은 더 춥다는데..... 뭐에요, 가을이 벌써 끝난건가요? 이런 반칙이!!!!!

수이 2021-10-21 1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려서 가을이다! 하니 가을 탈 새도 없이 겨울이 왔다고 합니다. 오리털 파카 입고 광화문 다녀온 1인이 전합니다. 맨발에 샌들 신고 마트 가기는 이제 무리더라구요. 발가락 시려워 죽을뻔 했어요 🙄

유부만두 2021-10-23 13:53   좋아요 1 | URL
얼마전 뉴요커 기사 제목이 생각났어요.
Welcome to Fall, the Two Days Between Summer and Winter
그렇습니다. 가을은 단 이틀이었더랬어요!!!!
 

https://www.instagram.com/p/CVBlVC7Bji_/?utm_medium=share_sh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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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0-15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멋있는 곳입니다!!!!!

유부만두 2021-10-19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가보고 싶어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일 년 전. 빈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문화계, 그리고 정치계 인사들을 일 년 동안 따라가면서 (역자의 표현에 따르면) 시간여행을 하는 책이다. 장면마다 저자의 감상 및 평이 첨가되고 때론 신랄하게 혹은 환호하며 백년 이상의 시간 차를 (잠시) 잊게 해준다. 맥콜리프의 파리 시리즈와 비교해서 더 감정적으로 몰입하도록 구성된 책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쪽은 낯설기도 하고 파리 쪽에서 만났던 릴케는 조금 더 주체적으로 다방면 (주로 원거리) 연애를 주도한다. 펜으로 여인들을 어루만지고 (참, 릴케는 애도 있는 유부남) 부유한 여인들은 그에게 돈과 숙소를, 더해서 장미도 제공한다. 아직 가시엔 찔리기 전. 시대가 그런 건지 예술가들 연애사들은 꽤 복잡하고 질릴 정도다. 프로이트가 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의 첫 장, 1월 1일은 멀리 미국 남부에서 총성으로 시작한다. 열두 살 루이 암스트롱이 새해 첫 시작을 축하하고 싶어서 총을 쐈고. 이 장난꾸러기는 보호감호소로 가고, 그곳에서 음악적 스승을 만난다. (자, 이렇게 시작하면 끝까지 달릴 수 밖에)  2년 전 도난 당한 루브르의 '모나리자'는 12월에 가서야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었고 12월 31일 파리로 돌아온다. 이 책의 작가는 매달, 모나리자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써놓으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하지만 난 여기서 스포.... 역사가 스포일러다)


1913년 초에 빈에 히틀러, 스탈린, 티토가 함께 있었다는 것과 가을엔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 무질이 지중해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 함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쩌면 같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눈빛을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무질은 이해 8월이 날씨가 좋았다고 소설 시작에 썼지만 1913년 8월 빈의 평균기온은 18도 였다. 5월에 (탈영 후) 뮌헨으로 간 히틀러는 공원에서 젊은 부부와 스치는데 이들의 돌이 막 지난 아기는 후에 히틀러의 애인이 되는 에바 브라운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식으로 역사 속 그 장면을 다소 억지스럽게 살려내며 독자들의 과몰입을 부추긴다. 1913년은 또한 융이 프로이트와 결별한 해이다. 이들의 잔뜩 억누르지만 분노가 뚝뚝 떨어지는 편지들, 냉기 흐르는 학회 전경에 더해 이 해를 거듭 '친부 살해'의 테마로 이해할 이유는 많다. 어쩐지 아버지!를 부르고 다투고 대들고 죽이지만 다시 아버지의 탈을 쓰는 작가들이 유달리 많았다. 헷세는 부인과 사이가 나빴고 부부 싸움 후엔 꼭 세세한 기록을 소설의 옷을 입혀서 기록했고 주저하고 고민하고 겁과 말이 많이 많은 카프카는 사랑이 실패할까, 성공해서 결혼하게 될까, 그래서 개인의 시간이 줄어들까, 아니면 사랑을 되돌려주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이때도 미친 테러리스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무차별 총기 난사로 어린이 여럿을 죽이고, 어떤 미친 놈은 가족 살해후 시내로 나가 방화 후 뛰어나오는 사람들을 살해했다. 


독일식 우드스톡 행사에서 젊은 벤야민은 연설을 하고 10월 차베른 사건은 독일의 시민권 위에는 군권이 있다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DH 로렌스는 차털레이 부인의 모델이 될 여인을 만나며 토마스 만의 '베니스의 죽음'은 여러 의미를 띠면서 독자들을 만났다. 12월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며 스타 탄생을 했으며 이탈리아에서 프라다는 개인 샵을 오픈했다. 유명인들의 편지(의 사본)를 매달 받아보는 구독 서비스가 시작했으나 실패했고 젊은 뒤샹은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 놓으며 예술사에 획을 그었다. 알베르 카뮈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고 책에선 안 나오지만 보부아르가 10월에 가톨릭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65년 재위중인 큰아버지 황제에 스트레스가 많다. 게다가 황태자비는 출신 신분으로 지위를 인정받기가 어려웠으며 공식 석상에서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황태자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가족을 아꼈다. 이들 부부는 이듬해 1914년 여름 사라예보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정신 없이 과거 속 일 년을 이틀에 살아 냈다. 그리고 역시나, 읽을 책 목록이 길어졌다. 내 개인의 책 쌓기 역사는 이렇게 되풀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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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10-14 2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 일단 보관함으로 보내놓습니다.
근데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유부만두님처럼요^^

유부만두 2021-10-15 07:48   좋아요 2 | URL
저 역사 잘 모릅니다...다만 아는 사람 나오면 반갑고 그랬어요.

이 책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쪽 이야기가 많아서 새로운 이름들을 많이 만났어요. 토마스 만이 ‘마의 산‘을 구상하면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데 .... 아이고 했고요. ^^ 이 책은 따지자면 역사책, 이라기엔 좀 애매하네요. 하지만 꽤 흥미롭게 읽었어요.

scott 2021-10-14 2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전 이책 엄청 즐겁게 읽었습니다
헤세-카프카-프로이트 -니체-릴케 서간집을 흥미롭게 읽어서 인지 저자의 위트 넘치는 문장과 정교하게 달별 날짜별로 짜임새 있게 구성해서 원서-번역서
모두 사릉합니다 !ㅎㅎ

루 살로메 작품들 추천 합니다!! ^^

유부만두 2021-10-15 07:50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전 이름만 알던 인물들의 사생활, 인간성을 엿본 기분도 들었어요. 카프카, 정말 짜증나더군요. 릴케가 프랑스에서보다 더 활발한 건 의외고요.
새로운 만남/발견은 토마스 만이에요. 그의 소설을 (중간도 못 읽은 것들) 완독하겠다고 다짐을 (또) 했어요.

루 살로메도 챙길게요. 추천 감사합니다. ^^

유부만두 2021-10-15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사진 (하인리히 쿤)이라는 책 내용 읽다가 놀람

mini74 2021-10-15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13년이 이렇게 엄청난 일들과 인물들이 !!! 보고싶어요 찜입니다 유부만두님 !!

유부만두 2021-10-19 10:34   좋아요 1 | URL
이 책 꽤 흥미롭습니다. 추천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