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입대와 함께 호기롭게 시작한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그새 큰아이는 일병으로 진급했다. 국방부 시계는 거침없이 가고 있다. 1권의 1부 콩브레도 다 못 읽었는데. 그 유명한 홍차, 아니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느 부분에 감격하고 따라 먹기만 하고 덮었었지.

 

별난 숙모님의 별난 습관들, 그리고 꽁브레의 별난 손님들과 더 별난 식구들 이야기가 이어진다. 숙모님은 병세가 짙어서 (호기심은 왕성한 채) 창문으로 동네 사람들의 행색이나 움직임을 파악하고 규칙적인 정보원(이랄까....동네 소문을 전해주는 과부)을 매주 불러들여 수다도 나누며 훈수와 약간의 용돈을 건넨다. 하지만 이 용돈을 적당한 놀람과 황송함으로 받아야만 한다는 그녀 나름의, 그리고 부르주와 계층의 자만심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있으며 이에 거들어 하녀 프랑수와즈는 혹여 그 아첨꾼이, 절대 자신보다 나을리 없고 자신보다 아랫것인 그녀가, 자신보다 더한 (그리고 절대 그럴만한 일도 하지않은채) 돈을 뺏는게 아닐까 염려한다.

 

아, 이것봐. 프루스트 쫌 읽었다고 금세 문장은 꼬이고 늘어나고 무슨 말을 적어도 비꼬는 게 되어버리네. 하긴 비꼬고 꽤뚫어본다며 으스대는 문장과 내용은 이어진다.

 

예의를 지키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그 속내는 감추어야겠는 사람들의 전전긍긍. 사회계층을 단호하게 가르고 유태인 집안 사람을 앞에 두고 놀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할아버지. 귀족에게 비굴하지 않으려 애쓴다며 손님들 집안을 따지는 대고모. 아들 친구의 경망스러운, 혹은 너무 솔직한 답변에 '걔랑 놀지마'라고 곧바로 말하는 부모. 예쁘지 않은 소녀의 '순수함'을 넓은 어깨와 '남자 같은' 얼굴로 묘사하는 화자. 그 소녀의 아버지는 딸의 넓은 어깨를 감추려 쇼올을 들고 다니고 손님 오기 직전에 음악가 집안 인테리어 설정에 분주한 '나혼자 작곡가' 어르신. 잠결에 공포 어린 얼굴을 무방비로 드러내는 숙모님. 바쁜 부활절 주간에 임시로 고용된 어린 부엌데기. 그녀를 츳, 하는 태도로, 아니 지오토의 그림에 비유하는 화자. 임신하고 막달이 다 되도록 일하느라 퉁퉁 붓고 꺼칠한 얼굴의 부엌데기 그녀를 우아하게 그림을 떠올려 묘사하는 팔자편한 문필가님.

 

 

그가 몰래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상황 설명이 너절하게 이어지며) 목격하는 사람들의 예의 아래 감춰진 분주한 손짓들. 하지만 프루스트는 그 위선 (아니, 무해해 보이는 이 행동들을 위선이라고 부르지도 자각하지도 않는다)을 꼬집고 비난하기보다는 미소 지으며, 아, 우린 이렇게 여러겹의 옷을 입었다오, 그 시절엔 말이지, 라며 하는데, 아, 이걸 읽고 있는 나는 뭐랄까, 그래 내 아들 전역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었으나.... 저녁 미사후 일부러 경사진 비탈 쪽으로 밤산책을 고집하는 아버지, 길눈 어두운 어머니에게 으쓱대는 것도 잠시, 저쪽으로 보이는 집 대문. 프루스트는 저절로, 오래된 정원을 향해 '땅바닥이 나를 위해 걸었다' 라고 적는다. '습관이 나를 자기의 품에 안고 내가 아기인 양 나의 침대로 옮겨 놓았다.' 그래, 이러니 내가 책읽기를 끊을 수가 없구나. 프루스트와 나를 이어주는 가늘고 긴 끈, 하지만 질긴 이 끈, 문장에 빠져들어 읽는 독서 습관의 끈. 문장은 왜이리 아름답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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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 것으로 읽고 있어요? 2권으로 절판된 특별판 ㅜㅜ
아~~ 내게 이 소설을 읽고싶다는 의지를 꺾어놓은 그 특별판. . ㅋㅋ
언니의 완독을 응원합니다!!! ^^/

유부만두 2018-05-16 15:11   좋아요 0 | URL
펭귄으로 모으기 시작해서 ... 나도 분하지만 어쩔 수 없지. ㅜ ㅜ

약속을 (누구랑?) 했으니 이번 기회에 나도 완독을 하려고.
어쩐지 프루스트는 강제성이 있어야 읽게되는 거 같아.
그런데 문장이 꽤 아름답고....이 변태스러운 화자의 독서 사랑에는 나도 공감이 되고 그래. ㅎㅎ
 

월요일는 정말 시간이 세배쯤 흐르는가봄. 이것 저것 하다보니 밤 열시고, 책 읽기엔 너무나 졸려버렸다. 막내가 요즘 '모모'를 읽기 시작했는데, 난 아직 안 읽은 책이라 아무말 못하고. 나에게 모모란 '자기 앞의 생'의 모모 뿐이니까.

저번에 작심 나흘로 쌌던 도시락 사진이라도 남겨본다.

노동절이라 구내 식당이 논다고 했었지, 휴일에도 일나간 당신

아마.... 내가 당신을 정말 사랑하나보오.

 

저 통이 얼마나 컸으면 샐러드 먹고 처음으로 배부른 기분이었다고...

 

낚지 볶음밥 재출동. 이미 다이어트는 저짝으로 던져버렸음.

내 사랑은 기름과 칼로리야.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드디어 내 손에. 그리고 책장에.

 

시댁에서 유물 발굴. 저주의 시작.

 

예전 핸드폰 케이스... 사진도 발굴. 저주의 전염.

그리고 주구장창 몬난이 야구중인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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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15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네 식구들의 애정을 받아 올해는 꼭 트윈스가 승리하기를!! ^^/
애정이 담긴 언니님표 도시락보니 아침부터 괜스레 엄마표 집밥 생각 나고. . ㅜㅜ

유부만두 2018-05-15 19:36   좋아요 1 | URL
아이고...엄마 생각 낫쪄요?.....
내가 도시락 싸들고 해목이 사무실 쳐들어갈까?!?!

목나무 2018-05-15 21:22   좋아요 0 | URL
와주셔요! 언니님아~~~~~~♥♥♥

2018-05-15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5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6 0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래가 바다 위로 뛰어오르는 이유. 심오한 비유일 책 제목이 책 내용과 인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나만 못 알아먹은건가.

 

생생한 인물과 박진감 넘치는 자전거 추격전으로 시작부터 흥미진진했다. 과하게 친절한 설명 대신 암시를 하거나 필요한 설정들을 미리 뿌려 놓기도 한다. 복선. 아이들은 선악의 분리 대신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세련된 것 처럼 보였던 이야기는 중반부터 늘어지면서 여기 저기 깔린 의미들을 연결시키기에 버겁다. 주변 인물들은 어쩐지 의도적이고 자전거는 진즉에 사라졌다. 학교의 주먹왕, 갑작스런 사건과 떠나버린 친구, 이민 간 자식들을 감싸는 이발소 노인, 서점에 대한 고집을 부리는 책방 노인, 가족과 친구 사이의 선을 긋는 사람들, 천연덕스레 남학생을 좇아다니는 말괄량이 옆집 여학생, 강원도, 바다, 지하실, 말많아 사고와 설명을 도맡아 하는 아이,.... 익숙한 설정에 익숙한 갈등과 관계들이 보인다. 하지만 유치한 어린이 활극으로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마지막엔 처연히 날아가는 나비와...아, 맞다, 고래.

 

연재되었던 소설일까, 각 챕터들은 그 안에서는 긴장을 불러오기도하지만 전체를 끌고가는 힘은 보이지 않는다. 화자 원섭과 푸름이 사이의 문제, 각자가 달리 바라보는 우정은 무엇이었을까. 진정성이 있으니 표현이 서툴러도 이해하시라...는 말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데. 가족들 사이의 끈끈함 혹은 지겨움을 희화하지 않고, 엄마들 모습이 억척스런 빠마에 학원 타령, 혹은 쇼핑 타령이 아니고 덤덤해서 괜찮았지만 그만큼 '가족' 대신'친구' 관계를 더 들여다 보는 것 같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만드는 관계. 선택적으로 잊거나 잊힐 수 있는 관계. 어느정도 거리와 예의가 필요한 관계. 그러다가 ... 오래된 친구 관계에 금메달을 걸어주며 결말은 뻔하게 정리된다. 노인들은 다른 자리로 떠났고 원섭의 형 한섭은 여전히 싸늘하게 존재감이 없고, 아이들은 얼렁뚱땅 화해를 해버렸다. 이리 저리 복잡한 마음의 원섭. 고래가 뛰는 이유는 여전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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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책 소개 방송을 듣다가 찾아본 영화. 1962년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이다. 그 이듬해에 예순을 채우고 세상을 떠나서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영화 '꽁치의 맛'.

 

잔잔한 일본 영화 스타일의 원조 격이라 큰 사건 없이 사람들의 일상과 인생을 보여준다. 배우들은 웃으며 이야기 나누지만 보는 내내 세월과 인생의 쓸쓸함이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 일본의 60년대, 산업화로 바쁜 나날 중에 그들은 패전의 기억을 꺼내 군가도 부르고 술을 마신다. 패전은 이전 시대와 다른 지금을 만들었고 중학생이었던 소년들은 사회의 중역이 되었다. 40년만에 모신 은사님은 번듯한 제자들 앞에서 절절 매며 어쩔줄 모른다. 제자들이 은사에게 대접하는 음식은 꽁치가 아닌 '붕장어', 고급 요리를 연실 맛있다며 먹고 위스키에 취해 쓰러지는 은사. 이제는 허름한 동네에서 '맛없는' 국수집을 하는 그에게는 아버지 수발에 자기 인생을 따로 펼치지 않은 늙은 딸이 있다.

 

맞벌이 하며 중고 골프채 사는 문제로 옥신각신 하는 큰 아들 부부, 집안 살림과 아버지 부양의 책임감을 느끼는 딸, 누나에게 '밥줘'라고 외치면서 아버지를 걱정하는 막내아들도 있다. 이 삼남매를 키우는 홀아비 사장. 쇠락한 은사에 자꾸만 자신의 모습이 겹쳐져 슬프다. 이제 다 온건가. 그 바쁘고 긴 여정이. 중산층 가정의 일상을 보면서 어쩐지 김수현식 90년대 주말 가족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의 땀과 눈물, 술집 마담과 아들이 위로하는 아버지의 인생. 결혼식으로 맞는 해피엔딩.

 

일어로는 秋刀魚가 꽁치구나. 가을의 갈치인가.  찬장에 있는 꽁치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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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1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홀......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 <동경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의 영화일 듯한데..
감독이 같으니 아마 풍기는 맛이 비슷하겠지요?
그나저나 저 꽁치는 맛나게 요리해 드셨나이까? ^^

유부만두 2018-05-15 08:31   좋아요 0 | URL
그럴것 같아. 나도 찾아봐야지.
통조림 꽁치 넣고 김치찌개 끓여 먹었지. 그럼. ㅎㅎㅎ

psyche 2018-05-15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통조림 꽁치말고 진짜 꽁치 먹어본지 진짜 오래되었다 하면서 아 먹고 싶어 하고 있었는데 김치찌개 꽁치라니. 아 저것도 맛있어보이네! 마트에 있으려나....

유부만두 2018-05-15 08:50   좋아요 0 | URL
저거 괜찮아요. 보통 통조림보다 냄새가 안나고 찌개에서 안부서져요.
어느정도 매운 양념이 되있어서 딱 좋아요. 두부도 얇게 썰어서 찌개 위에 얹어 끓이세요. 맛있음! ㅎㅎㅎ
전 예전에 sd에서 꽁치 많이 사서 bbq그릴에다 구워 먹은 기억이 나요. 정말 맛있었죠. 생선구이는 역시 직화인데.... 아파트선 할 수가 없으니 아쉽고요.
 

제목이 스포일러. 책을 읽지 않던 가족이 책을 맛있게 즐기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맛있는 책 요리점’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너무 지루하고 뻔했다. 삼세번의 법칙이라지만 거만하고 어려운 책, 지저분하고 해로운 책은 피해야한다는 전형적 독서지도.

책을 만드는 과정, 요리사들의 협업에 대한 내용과 책요리를 즐기는 과정은 재밌지만 짧아서 (직접 각자의 책을 즐기라는 의도겠지) 아쉽다. 결말로 아빠는 출근길에 재미있게 웃을 수 있는 책을 읽고 엄마는 요리책을 읽으며 가족과 친구를 위해 요리한다;;; 책을 늘 주위에 뒀지만 열어서 한줄한줄 그 맛을 음미하지 않던 사람들이 책맛에 빠지게된다면.....그건 꿈일까. 김유 작가의 전작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처럼 전형적인 인물들, 억지스러운 설정과 과한 비유에 너무 달고 느끼한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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