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의 스기무라 탐정이 돌아왔다. 그의 잔잔하면서도 세심한 탐정 활약으로 '어두운 기운'이 저지른 악행을 드러내고 피해자에게는 위로를 건넨다.

 

스기무라 탐정 시리즈 중편 셋을 엮은 책이다. 그의 과거를 일러주는 이혼남 설정과 '난 딸이 있어'라는 독백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 세 편의 피해자는 여느 수사물에서처럼 여성들이다. 그 피해가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천천히 드러난다는 점이 특이하다. 관심이 가지 않거나 무시하거나 못 본체 하다가 일이 커지고 누군가 집요하게 질문하고 파고들면 그 커다랗고 끔찍한 덩어리가 모두의 눈 앞에 놓인다. n번방 사건, 유ㅌ 할아버지의 9번째 결혼, 구하라 배우의 생모가 바로 떠올랐다.

 

집단 성추행과 성폭행, 남자들의 친목 단체 안의 폭력적 위계, 매매혼과 다름없는 정략 결혼과 불륜, 어쩔 수 없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강요된 용서와 화해, 배신과 파혼, 무책임한 부모와 흔들리는 아이들, 이 모든 이야기 속에는 가해자도 (사연 많은) 피해자였다...는 (고개 절레절레) 궤변도 섞여있다.

 

섬세하고 조용한 스기무라 탐정의 세 이야기는 정신분석 드라마를 보는듯하다. 과거의 업보 (부모의 죄값)를 치른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런 어제가 제대로 정리 되어야 내일이 있다는 걸까. 그런데 어제의 정리는 국가나 시스템이 아니라 각 개인, 각 피해자가 맡아야한다. 각 책의 시작부터 중반부까지 (특히 '절대영도') 정신없이 달리다가가 '흡' 하고 한 번 숨을 고른 다음에는 자세한 변명, 분석, 혹은 설명과 훈계를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번 더 독자 흔들기. 가해자는 더할 나위 없고, 피해자에게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섣부른 동정 따위를 경계하는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매끄럽고 노련한 미야베 미유키의 글 솜씨에 휘둘리며 읽다가 어느새 일요일 오후, 책을 덮고 나니 뭔가 홀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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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4-0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기무라 탐정 이혼했나요?@_@;;; 와이프가 재벌집 딸이었던 것 같은뎅@_@;;;;;;;

유부만두 2020-04-06 14:42   좋아요 0 | URL
네. 갈라선지 시간이 꽤 됐죠...
 

 

임상심리 치료사가 본 '문학 속의 자살'과 작가들의 모습을 강연체로 쉽게 풀어놓은 책이다. 


언급되는 첫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 그녀의 자살 결심을 '마음의 고통'으로 분석한다. 베르테르의 작품 속 죽음이 괴테에게 해결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말한다. (베르테르가 동정하고 격하게 공감하는 머슴이 스토커였다가 살인까지 저지르고, 베르테르의 권총 자살이 구질구질하게 마무리 된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실비아 플래스와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과 작품 세계 연결은 매우 공식적이다. 우울증. 그 끝없는 구덩이. 하지만 그들이 주위 사람들(특히 남편)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갈등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또 그 결이 다르다. 


문학 작품 속의 자살, 자해, 중독과 우울 등에 대한 내용은 읽기 전의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저자의 문장이 차분하고 과하지 않게 증상과 질병 뿐 아니라 치료법 (의 역사와 의미)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우울증 잡겠다며 인슐린 요법을 썼다는 1950년대 병원은 그 자체로 끔찍하게 우울하다. 


자살의 시작이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다. 일상의 틈, 어두움 그리고 나약한 도피, 어쩌면, 아니면? 


만약에, 안나나 요조, 베르테르, 벨자, 플래스와 울프, 주드와 헤밍웨이가 치료를 받아  살기로 결심했다면 어땠을까. 저자는 이들이 더 살지 않아서 안타까워했다. 그 다정한 마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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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유부만두 > 오늘의 책...차...

3년전 열심히 제인 에어를 읽었다.
영국 NT 의 ‘제인 에어’가 유툽에서 공개되니 (코로나;;;;) 다음주 주말이 기대된다. 영어 자막도 있어서 감사할 뿐.


https://youtu.be/9KPE6uXhFEU

https://youtu.be/9KPE6uXhF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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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4-04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3년 전 쓰신 글이 기억나요. 제가 쓴 댓글도요. 나으리ㅎㅎ^^ 저도 제인 에어 참 좋아해요. 영어자막으로 볼 수 있으려나(먼 산-_-;)

유부만두 2020-04-04 17:53   좋아요 0 | URL
전 도전해 보려고요. ^^
NT의 햄릿/프랑켄슈타인 공연 라이브 영상을 극장에서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요.

3년 전의 댓글,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 덕에 완독했어요. 제인 에어 좋아요.
 

올해 1사분기에는 옷과 신발을 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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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4-04 0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나루사와^^ 저도 재밌게 읽었는데 반가워요♡ 저는 잘 참다가 그만 홈쇼핑으로 얼마전 옷을 구매ㅠㅠ 유부만두님 훌륭하십니다 짝짝짝^^

유부만두 2020-04-04 17:54   좋아요 0 | URL
워낙 게을러서 옷 사러 안나가는데 올 봄은 코로나가 도와주네요. ㅜ ㅜ
대신 먹거리 재료랑 책을 열심히 사고 사고 또 사고 .... 훌륭은 뭘요, 안 훌륭하고 싶어요. 봄옷 아니 여름옷 사서 입고 외출하고 여행 가고 싶어요.

책읽는나무 2020-04-04 0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달동안 옷을 안샀었는데...둥이들은 겨울동안 좀 컸는지 바지가 짧아지고,허리는 꽉 끼고...그래서 옷을 좀 사줄까? 그러면서 내 옷 한 벌도 슬쩍 끼워넣어 볼까???궁리중입니다^^

젊은 작가들의 책 사려고 찜해두고 있는데 드립백까지 주나 보군요???
좋아라~~~~^^
나루사와~~저 책도 똭 보고 재밌겠다!! 눈에 들어 왔었는데..문나잇님도 재밌었다니 아~~~읽고 싶어지네요^^
지름신 페이퍼네요~~ㅋㅋ

유부만두 2020-04-04 17:58   좋아요 1 | URL
나루사와~~~는 기대와는 좀 달랐어요. 만화답게 한 번 꽂히면 직진하는 주인공인데 음식 맛있게 먹는 여자에게 헌신하고 (구애와 청혼이 즉시에 벌어짐) 요리 잘하는 고딩이에요.

드립백 하나짜리 700원이라 냉큼 신청했고요, 책은 오늘 밤부터 읽어야지요.

저희집 막둥이는 올 겨울 쑥쑥 커서 드디어 아빠랑 형아 키를 넘었습니다. 바지 하나 사줬는데 금세 작아졌고요. 신발도 겨울엔 두 켤레나 샀어요.

나무님댁 큰 아이가 고3이 되나요? 엄마님 힘내세요. ^^
제가 몇 년전 안달복달 하던거 다 기억하시지요?

유부만두 2020-04-04 18:05   좋아요 1 | URL
무자비한 윌러비 가족은 4월 하순에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이 올라온대요.
게다가 속편이 가을에 출간예정이구요. 그래서 샀어요. (이유있는 구매라고 강하게 어필중)

책읽는나무 2020-04-06 06:41   좋아요 1 | URL
주말에 결국 애들 셋 바지랑 티셔츠 사다 입혔네요...가짓수가 많아 내껀 못사고...흑흑~~키 안커도 나도 입을 옷이 없는뎅~ㅜㅜ
애들이 안움직이고 밥만 먹고 있으니 셋다 허리가 굵어졌더라구요???
만두님 막둥이도 계속 더 성장하겠어요!! 그와중에 부럽네요^^
울애들은 다 작은편이라서요ㅜㅜ

큰 녀석은 고3 맞아요~^^
아~~~~~~~ㅜㅜ
고3 수험생 어머님들 힘드신 이유가 다 있었더군요??
겪어보니 알겠어요ㅋㅋ
학교도 안가고 저렇게 집에서 뒹굴면서 고기반찬만 찾는 고3을 보고 있자니....음...뭐랄까요?
올 한 해는 나의 인내심 테스트 하는 해인가?뭐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ㅜㅜ

주말에 애들 셋 취향대로 영화 찾아 봤네요~토르,써니,호두까기인형과 네 개의 왕국....어젠 쥬만지 보자고 했다가 내가 먼저 잠들어 버려서 못봤어요.ㅜ
윌러비 가족 재밌을 것 같아 찜해뒀습니다^^

잠자냥 2020-04-04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저도 올봄에는 옷과 신발을 사지 않은 유일한 해가 될 거 같네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0-04-04 17:59   좋아요 0 | URL
이렇게 외출도 새 옷도 없는 봄이 지나가는군요. 창 밖에 보이는 벚나무는 너무 예뻐서 비현실적이에요.

유부만두 2020-04-25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3 배송된 사진 속 책들을 4/25에 다 읽었음!
 

https://t.co/Z9LUP3ZlXZ?ssr=true
백희나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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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0-04-04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안타깝네요ㅜㅜ
그래서 그동안 백희나 작가의 작품들을 볼 수 없었군요!!
달샤벳 나왔을때 흥분했었지만..왜이렇게 뜸하게 책이 나오지?의문만....
출판사와 작가들의 관계가 정립되어야 하는데 얼마전 김금희 작가의 출판사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해 결국 윤이형 작가의 잠정 절필건도 무척 안타깝더라구요.
보호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세계가 참...ㅜㅜ
그래도 그와중에 백희나 작가의 린드그렌상은 정말 기쁘네요~~^^
구름빵은 멋진 작품인데 역시 세계가 알아주는군요^^


유부만두 2020-04-04 18:02   좋아요 0 | URL
작가님 인터뷰 듣고 마음이 더 아팠어요. 작년 도서전 행사 때에도 꽤 지치신 것 처럼 보였거든요.

전 최근의 백작가님 책이 더 좋아요. 알사탕, 이상한 엄마, 장수탕선녀 요.
특히 알사탕은 매달 한 번씩 읽어요. 예전 구름빵이 귀엽고 신선했다면 요즘 책에선 가족의 모습도 사랑 표현 방식도 더 성장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린드그렌상 수상 소식이 정말 정말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