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NT 공개작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Streetcar Named Desire이다. 결혼 전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과 93년에 대학로에서 본 연극인데 (양금석 주연) 배우의 하얀 투피스만 기억나고 줄거리는 다 잊었다. 그녀의 약간 쉰 목소리에 압도되었는데 왜 기억이 안나는 건지?;; 





세월은 흘러 흘러 27년 후, NT 영상 (질리언 앤더슨 주연)으로 만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진짜 어른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애송이들에겐 어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겠지. 한참 연애중인 이십대 중반 애들이 왜 이런 인생의 쓰디쓴 현실 이야기를 애써 봤는지. 얘들아, 그땐 그냥 놀이 동산 가서 사진 찍고 뛰어 댕겨. 지금은 ... 그럴 수 없겠구나. 


여튼, 추억에 잠시 빠졌다가 테네시 윌리암스의 책을 먼저 읽고 연극영상을 봤다. 희곡의 인물 묘사는 연극의 지문 보다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전형적인 인물들이 뻔하게 불안한 예측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 전형적 공식을 하나씩 따라가는데도 강한 인물들이 맞부딪힐 때 마다 그 에너지가 상당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사람들. 


1940년대 재즈와 뉴 오를리언즈 동네의 끈적한 여름 공기. 동물적 본능과 자신감으로 밀어부치는 스탠리, 그를 온몸으로 사랑하는 스텔라, 현실보다는 '마법'을 바라는 블랑쉬, 마마보이 미치. 서로의 공간이 겹치는 무대와 엄연한 경제적 계급, 남녀유별, 그리고 빛과 어둠의 경계선. 그녀의 숨겨진 과거와 범죄. 그 사이 사이의 잔인한 블랙 유머. 욕망이라는 전차 이름부터 실제와 은유를 오가는 말 장난이 상당하다. 그걸 생생하게 살려내는 배우 질리언 앤더슨! 자막 없인 뭔말인지 모르도록 씨게 씨게 써던 액썬트로 대사를 던지는 블랑쉬! 한 없이 차가운 스컬리 요원이 이렇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옛 영화로는 비비안 리와 말론 블란도가 그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고 한다. 새롭게 비튼 이야기로는 '블루 재스민'이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건 어른의 이야기, 그것도 나쁜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다. 제목 만큼이나 야하고 (헙) 강렬해서 중간에 몇 번이나 쉬면서 얼음물을 마셨다. 이젠 이걸 이해할 나이가 되었구나? 지천명이 그런 의미였나봐?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They told me to take a streetcar named Desire, and then transfer to one called Cemeteries and ride six blocks and get off at--Elysian Fi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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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방탕함 .... 정말 끝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 만화를 계속 주문했고 봤는데. 이게 그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1권을 세 쪽 읽었을 때, 아, 이건 아닌데 싶었는데 그래도 두 권을 완독했고 글쎄... 2권에선 여주인공의 과거가 현재를 설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 이 책을 주문하면서 이미 독자의 자학이 시작된 느낌이다. 


온갖 비극, 불행한 가족사가 겹치고 더해져서 포르노 수준에 이른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보다 더 심한 수위. 그런데 난 그 영화나 이 만화책 리뷰에서 '감동' 이라던가 '인생' 이라는 말을 봤는데 .... 그런데 ... 이 출구 없고,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만 향하는 이야기가 마지막에 포장지로 쓰는 건 '모성'이고 '출산'이며 '용서'와 '사랑'이라서 나는 도대체가!!!!!! 라며 화를 낼 수 밖에 없다고.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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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저자는 58년생. 영화 <공기인형>의 원작인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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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5-20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출간될 당시 제가 알라딘 서평단 활동을 했었는데 서평단 도서 중 하나였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거 계속 읽어야해 말아야해 하며 읽었어요. 일본 열도를 웃기고 울린 기적이라니, 박장대소를 해야하는 곳이 어디에 있나 하며 갸우뚱 했었던.

유부만두 2020-05-20 14:30   좋아요 0 | URL
아무리 코믹으로 보려해도 주인공 여자가 당하는 학대가 너무 끔찍해요. 처음부터 여자의 눈이 감겨있는 얼굴이 영 이상했는데 계속 이 여자는 눈을 감고만 있어요. 여자의 힘든 상황이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의 얼굴이나 출산이라는 상황이 전혀 설득력이 없고요. 아주 힘든 만화였어요. 설렁 설렁 쉬어갈까 했는데 ....
 

천재 여고생 소설가 만화 '히비키'를 전자책으로 7권 까지 챙겨봤다. (어른이 되니까, 이게 좋아요. 만화를 내 맘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만화 카페는 한번도 못가봤고요, 요즘엔 더 더 그렇지만 거긴 갈 용기가 나지 않아요.) 


별점 나쁜 영화 개봉한 줄 알고 있었는데 왓챠에 있기에 설겆이 하고 부엌 정리하면서 봤다. 만화의 3-4권쯤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 수상식 이야기까지가 영화에 담겨있다. 괴짜에 매우 폭력적인 여고생 (고1)이 원고지에 연필로 쓴 소설이 신인상을 타고, 1년 선배는 유명 작가의 딸인데 같은 동아리에서 친해지고 약간의 갈등이랄까, 경쟁심이 생길까 말까 하다가 아아 우리는 문학 안에서 만났지!!! 하는 학원물 같기도 하고 문학판의 성차별, 끼리끼리 문화, 어쩔 수 없는 '팔리는' 소설을 챙기는 출판사 ... 그리고 그리고 .. 


어쩌다 보니 또 출판사 이야기를 찾아 보고 있는 나. 나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다이 스키. 


이 폭력적인 아이는 절대 비호감이고 이해가 되지도 않지만 이 아이가 후려 '갈기는' 상대는 젠 체하는 늙은 작가, 스토커 안하무인 남자 기자, 여고생을 깔보는 남자 신인 작가라 어째 좀 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영화는 만화책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서 별다른 것도 없는데 영화 보는 내내 소설이, 이야기가, 종이에 빼곡하게 담긴 글자로, 종이 책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고 싶었다. 소설, 다이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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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레이디 OL 도 끔찍한데 교열'걸'이라니... 더할 수 없이 진부한 차별적 언어다. 교열을 하는 부서의 젊은 여직원 고노 에츠코의 이야기를 세 권씩이나 읽었다. 드라마 버전을 먼저 접했고, 지리한 코로나 일상에 달고 짜고 매운 음식같은 책을 챙기고 있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드라마 보다 더 까칠하고 더 기억력이 좋고 약간은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 같은 부분도 있지만 세 권 씩이나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난 다 읽었네. 이런 저런 출판 문학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작가를 술집에서 접대하는 편집자, 미성년자를 호텔로 데려가는 작가, 교열자가 오류를 지적해도 화를 내는 작가, 옛 작품을 되풀이해서 찍어내는 작가, 층층시하 회사와 문학계, 겉모습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껍데기들. 책을 점점 멀리하는 대중. 순문학의 고고함만을 외치는 외골수들. 그 모두가 담긴 종이 위의 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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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20-05-19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군요. 저도 드라마로 봤었는데요.
일본어중에 생각보다 차별적 단어들이 많고 쉽게 쓰이고 있더라구요. 남편을 아직 주인이라고 하는것도 그렇구요..

유부만두 2020-05-19 20:06   좋아요 1 | URL
정말 그래요. 그 ‘주인‘이라는 말은 끔찍하죠.

드라마 ‘교열걸‘이 훨씬 훨씬 재미있어요. 소설에선 혼고 작가와 모델은 아무 관계도 없고요, 표절 이야기도 없어요. 드라마의 회색 정장에 안경 쓴 여자는 편집부의 입사 동기로 나오는데 덜 생생한 캐릭터고요, 다른 인물들도 드라마에서 더 귀여운 느낌이에요.
 

나도 오랫 동안 궁금했다. 소금에 절인 라임. 에이미가 손바닥을 맞는 사건을 일으킨 금지된 간식.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어색하게 어린 아이 연기를 한 플로렌스 퓨는 울먹이면서도 막상 문제의 '절인 라임'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pickled lime에 대한 설명을 여러 '문학 속 음식' 책들에선 시원한 설명을 만나지 못해왔다. 
올해까진. 
그리고 알아냈다. 


이 책은 단순한 음식+독서 이야기 이상이며 글도 아주 재미있다. 몇 번이나 음식, 먹거리, 그리고 책 이야기에 정신을 놓을 뻔 했는지 모른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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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05-2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지!

유부만두 2020-05-20 14:31   좋아요 0 | URL
추천입니다!

책읽는나무 2020-05-20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이 책이 훨씬 재밌을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20-05-20 14:31   좋아요 1 | URL
이 책 기대 이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