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에는 국수를 먹는거라고 (책에는 국수 먹으라는 얘기가 사시사철, 절기마다, 날씨마다 나온다.) 콩국수, 비빔국수에 칼국수까지 해 먹었다. 그리고 진짜 여름 이야기, 한여름밤의 꿈을 읽고 NT live 이번주 양식을 챙겨보았다. (이번주 목요일 밤까지 유투브 스트리밍 가능)영어 자막을 띄우고 (잘 안들려요, 영국 영어에 셰익스피어라니!) 관람한 연극은 알고 있던 이야기와 사뭇 다르고 매우 흥겨웠다. 모든 게 한바탕 꿈이고, 잔치고, 난리법석이고, 뭘 그렇게 따지고 그러지 마라..... 이 모든 게 지나가고 그런다. 코로나도 가라 마. 이런 심정. 






NT live의 버텀은 거구의 흑인배우 Hammed Animashaun이 (귀여움으론 문세윤이랑 비슷한 끕) 맡았다. 그는 망측스런 당나귀 탈 대신 귀여운 귀를 달고 나왔고 그를 사랑하게되는 건 티타니아가 아니라 요정의 왕 오베론이다. 이 커플은 거리낌 없이 즐겁고 흥겹게 사랑한다. 사랑의 테마는 Love on Top (비욘세). 그들의 러브 베드가 공연장을 회전할 땐 관객들 (마법의 꽃으로 화관을 쓰고) 함께 환호한다. 


(약에 취해 당나귀 머리와 사랑에 빠지는 요정 여왕 티타니아를 바라볼 땐 안타까움과 죄의식을 느꼈는데 같은 상황에 처한 오베론은 더 여유를 부리고 편안하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지? 남-남 커플은 코메디의 소재로 굳은건지, 아니면 아무리 여왕이라도 티타니아는 새연인에게 복종하는 위치에, 어쩌면 피해자의 위치에 갇혀서 독자의 걱정을 살 수 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힘찬 율동과 가창력의 비욘세의 '사랑 노래'에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실제의 남편 넘 제이지.....) 


연극 초반의 근엄한 테세우스 (오베론 역과 같은 배우 Oliver Chris가 연기)는 요정의 세계에 들어오면 관습과 규율 (아버지 뜻에 거역하는 딸은 사형시키는) 따위는 모르고 행복과 사랑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이 숲속의 다른 세계로 들어온 남녀 넷도 엇갈리는 사랑으로 아프고 혼란스럽게 난리를 치지만 결국 사랑을 얻어 현실로 돌아간다. 이번 연극에선 버텀과 오베론, 오베론과 테세우스, 티타니아와 히폴리타의 변화가 주목을 끌었다. 이야기의 열쇠, 사랑의 묘약은 여왕의 손에 있고 유리관에 갇혀 말 없던 히폴리타 (아마존의 여왕이며 새신부)는 소문난 전사에 바람꾼 새신랑 테세우스를 서서히 압도해간다. 그 중심에 축제의 연극-숲속 요정 나라의 법석-현실 세계의 장인 버텀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너무 무게 잡으면 안돼욧! 이건 연극! 축제! 한여름밤의 꿈이라고! 1590년대에 쓰인 작품이 아직도 재미가 있으니 내 취향이 오올드한 걸로 인정합니다. 


다만.


공연에서 배우들이 전부 백인만은 아니고 희곡에서 욕설로 쓰였던 '에디오피아인, 검은피부 (민음사에선 껌둥이로 표기)'는 시대의 변화, 문명화를 함께 해서 다른 식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벽의 틈 chink는 그대로 나온다. 동양인 배우가 없으니 안 불편했나봐? 두 벽돌을 슬쩍 벌리며 chink라는 단어를 말할 때 관객들은 박장대소. 연극 전체가 말장난이 많고 관객 호응이 마당놀이 수준이라 이해는 하지만, 아시아인 랜선 관객은 그 웃음이 신경쓰였다. 



하지만 퍽이 마지막에 변명을 다시 한 번 한다. 


저희 그림자들이 언짢으셨다면 

이러한 영상들이 보였을 때

잠들어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만 고치시면 다 괜찮죠. 

그리고 가볍고 시시하며

꿈처럼 헛것 같은 이 주제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여러분,

용서해 주시면 잘해 보겠습니다. 

또한 제가 정직한 퍽인 만큼

노력 없이 얻게 된 행운은

야유를 피하기 위해여

머지않아 보상하겠습니다.

안 그러면 거짓된 퍽이지요.

그러면 안녕히 주무세요.

친구라면 박수 좀 쳐주세요.

그러면 로빈이 보답하겠습니다. (5막1장)


당나귀 버텀, 아테네의 노동자 버텀, 간섭쟁이 연극인 버텀이 압도하고 장난꾼 요정 퍽이 기교를 다하는 한여름 밤의 꿈, 당나귀에 빠져 행복한 꿈을 꾸는 오베론, 사랑의 작대기에 찔리고 맞는 네 남녀. 그리고 그 '틈'이 있는 벽도 허물어 졌다니 마음에서 털어내기로 했다. 지구 반대편의 아줌마. 오늘은 유월의 마지막 일요일. 여름의 과일 수박을 한 통 사야겠다.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수박을 썰어 시원하게 머글거시다. 

노래는 물론 비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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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06-28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지에는 국수를 먹는 거구나! 국수는 맨날 먹지만 또 핑계삼아 먹어야지 ㅎㅎ

유부만두 2020-06-28 23:3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에브리데이 국수이지만 하지의 국수는 특별하니까요. ^^

단발머리 2020-06-28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연극은 이름을 외우면서 봐야할거 같아요. 전 이름이 헷갈리더라구요@@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이 연극 도전했었던 거 기억나고요.
비욘세는 정답이네요 ㅎㅎㅎㅎ 수박도 정답이고요. 저도 오늘 한 통!

유부만두 2020-06-28 23:36   좋아요 0 | URL
비욘세 너무 멋지고 힘차죠!
수박은 이제 끝물인 느낌이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먹고 있어요.

아, 단발머리님, 이 연극 같이 봐줘요. 정말 재미있고 웃기쟈나요!!!!!

moonnight 2020-06-29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의 리뷰로 영어가 안 들리는(까막귀-_-) 슬픔을 위로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부만두 2020-06-30 12:54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부족하고 극히 일부고요,
다양하고 재미있는 리뷰를 문나잇 님 블로그에서도 읽고 있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근대 한국사진 중
인상적인 어린이들 (이지만 조상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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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에는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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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6-21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깔끔하고 정갈하네요. 먹기가 아깝지 않을까요? ㅎㅎ

유부만두 2020-06-24 08: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사진이 더 예쁘게 나온거에요. 아깝긴요, 후루룩 입니다.
 

이다혜의 <코넌 도일>에서 언급되어서 읽고 싶은 책들. 

당장 지르지 않으려고 리스트를 만들어 둔다. 일단.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마법의 문을 지나- 아서 코난 도일의 청춘독서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18년 7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6월 21일에 저장

셜리 홈즈와 핏빛 우울
다카도노 마도카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20년 06월 21일에 저장
절판

[수입] Elementary My Dear Watson: Man Behind Sherlock (엘리멘트리 마이 디어 왓슨)(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Reality Ent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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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 imusic
출고예상시간 : 통상 7일 이내
2020년 06월 21일에 저장
품절
용감한 친구들 2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6월 21일에 저장

사놨더라;;;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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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저자의 표현대로 일부 어린이들이 공룡에 빠지는 '공룡기' 처럼 셜록 홈즈 책을 탐독하는 '셜록 홈스기'가 있다. 맞다. 나도 잘난척하는 홈스의 활약상을 어색한 번역투 문장과 펜선 삽화로 접했고 영어공부를 핑계로 아는 이야기를 다시 읽었고 십대 후반이 되면서 다른 탐정들로 다른 스릴러로 건너갔다. 어린아이의 몸에 갇힌 애니메이션 코난과는 다르게 나는 어른 독자로 조금씩 변했다. 


이번 책은 코넌 도일의 인생과 (의외로 20세기에도 오래 살았던 도일) 홈스의 탄생과 인기, 그리고 작가 사후에 지금까지 하나의 문화로 유적지로 어쩌면 신화와 언어로까지 변주되어 자꾸 살아나는 작중 인물과 이야기를 잘 정리해 주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의 홈스 유산 답사기'를 차분하게 너무 흥분하지 않으며 쓰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너무 부럽잖습니까, 코던 도일의 고향 에딘버러에서 코난 도일 이라는 이름의 펍에서 맥주를 (왓슨 라거 입니까? 다른 거였나요?) 곁들인 런치 스페셜이라니. (뭐, 나도 다른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지만 말입니다) 이거슨 여행기인가 인물평인가 홈스 이별기인가. (아르테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고퀄리티를 이제야 알았고요) 이젠 이다혜 저자도 독자인 나도 홈스기는 예전에 졸업하고 영드 셜록으로 홈스기 리턴즈도 잘 지내왔으니 흥분 좀 가라앉히고 정리해 보는 거지요. 자, 우리의 홈스 사랑이 깔고 있었던 믿음이랄까 정의는 무엇이었고 지금 2020년에도 의리!를 외치며 도일 만세!를 외쳐야 하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나의 홈스기는 부정해야하고 배신자가 되는 건지. 갖다 버린 그 아이돌들의 씨디 처럼. 갖다 버린 그 소설가와 시인의 책들 처럼.


소설, 그것도 작가보다 더 유명해져서 실존 인물 이상의 유적과 기념물을 가지는 홈스 정도라면 그냥 내버리는 대신 문화와 역사를 다시 따져 보는 대접은 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코로나 때문에 에딘버러와 런던에는 못 가도 이다혜 저자의 이 책을 읽으면서. 정리도 잘 되어 있고 내용도 풍부한데 멋진 사진도 (특히 동시대 '당시 신인 작가' 사진이 등장하는 편집은 환상!) 많고 문장도 (말해 뭐해요, 이다혜 기자 글인데요. 음성지원 가능) 야무지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히 자료 사진 중 하나, 20세기 초 보어전쟁 (남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 출신 이주민에 대항해서 벌인 전쟁)에 젊은이들의 입대를 독려하는 붉은 표지의 팜플렛이 섬뜩했다. 마치 미국 대통령의 MAGA 슬로건이나 욱일기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는 과학적이며 정의감 넘치는 완벽한 작가가 아니었다. 그의 중년 이후의 또다른 신념은 기이하기까지하다. 하지만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이야기의 홈스는, 내 아이가 읽는 빅토리안 시대의 홈스는 제1세계 백인 남성 (더하기 신경증 환자에 안하무인)에 머물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독자가 두 눈 부릅뜨고 따져가며 더 생각해가며 읽으면 되니까. 하지만 꼭 머 그렇게 까지 애써야할까, 재미있는 책이 이토록 많은 2020년에? 그 고민은 이다혜 저자의 이 책을 다 읽고 하도록 하자. 맥주도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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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21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뤼팽이 더 멋있다는 애들과 다투기도 많이 했었네요. 어릴 적엔ㅎㅎ^^; 이다혜 작가가 쓴 홈스(도일)이야기라니. 바로 보관함에 넣습니다^^

유부만두 2020-06-21 11:44   좋아요 0 | URL
강력 추천합니다!

psyche 2020-06-23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딘버러에서 코난 도일이라는 이름의 펍에서 맥주를! 언제가 되면 그럴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 당장 내년에 한국 갈 수 있으려나 ㅜㅜ

유부만두 2020-06-24 08:45   좋아요 0 | URL
아아아 ㅜ ㅜ 언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막내네 학교는 2학기 때도 온/오프라인 등교 수업을 한대요.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진즉에 취소고요.
이렇게 디스토피아 월드가 열린 건가 싶어서 우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