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다. 언제나 해결책이 있다. 기필코 그것을 찾아내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 P137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삶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삶에 맞서 벽을 세우지 않는다. 반대로 삶을 사랑하고, 그 안에 잠기고, 필요하다면 아예 깊숙이 빠져버린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뭐든 겪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더이상 두려워하지 마." - P157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것이 너를 위한 일인지 말해줄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세상을 지배하하고 암흑을 무찌를 수 있다."
그런 전투를 치르기에 최적인 자리는 물론 교황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교황이 될 수 없다. 교황이 되려면 주교 하나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고환을 만져보고 라틴어로 "있다! 분명히 있다!"라고소리치는 검사를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 P180

하루 또 하루, 밤마다 피가 날 때까지 나 자신을 학대한다. 이상하게도 그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원할 때 스스로 멈출수 있는 고통이기 때문일까? 언제 고통이 시작될지 내가 결정하고, 언제 끝날지 정하는 것도 나다. 모든 게 나한테 달려 있다는 생각을하면 아무리 아파도 위안이 느껴진다. 이 끝없는 공포 속에서 사는 게 너무 지겹다. 왜 시작되었는지,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감내해야 하는 공포와 고통이끔찍하다. 악물었던 이를 조금씩 풀기 시작하면 증오와 경멸이 서서히 사라진다.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던 욕설들도 가라앉고, 나는 서서히 잠이 든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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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영화<소울> 캐릭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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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은서는 친구들과 쇼핑을 즐기고 지하철로 돌아가는 길, 성추행을 당한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잘못'을 생각해보는 은서. 몸이 굳고 괴롭다. 은서가 떠올리는 더 예전의 기억으로 오늘의 사건이 더욱 은서의 일상을 방해하는데, 은서는 주저 앉는 대신 그 해법을 고민하며 찾아나서기로 한다. 이제 비밀을 말할 시간이다. 하지만, 어떻게? 누구에게? 만약 그들이 나를 탓한다면?


최소한의 말과 묘사로 피해자 청소년의 고통과 고민을 극대로 나타냈기에 무겁고 슬픈 마음으로  응원하며 천천히 읽었다. 은서의 단단함과 결심이 고맙고, 이 책은 어른 독자인 나에게도 위안이 되었다. (은서에게 공감하지 않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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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작년 hulu에서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드라마 소식으로 였다. 원작이 중국계 미국인 셀레스트 잉의 두 번 째 소설 Little Fires Everywhere이다. 제목이나 드라마 예고에서 받은 인상은 중산층 가족 내부의 숨겨진 갈등과 상처, 대비되는 서민 가족, 더하기 유색인의 대안 가족 정도였다. 더 매콤하게 만든다면 백인 부촌의 살인사건과 불륜 정도겠고, 비슷한 드라마들이 우리나라의 초고층 고급 아파트에서도 만들어진다. 그래서 별 관심 없다가 .... 어쩌다....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바람 불던 지난 토요일,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우린 만났어요), 아,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가. 사흘 만에 완독하고 이 드라마를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 검색중이다. 






오하이오 주의 한 부촌, 셰이커 빌리지는 20세기 초에 셰이커 교도들이 지상 낙원을 목표로 엄격한 규율과 선행을 바탕으로 건설한 지역이다. 1997년, 이젠 그 종교적 색은 많이 벗었지만 그 이름과 원칙은 남아서 깨끗하고 정돈된 거리 모습을 자랑한다. 아이들의 대학진학율은 높고 범죄나 인종차별은 먼 이야기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인종 문제'는 없다고 (백인 주민들은) 여기며 살고 있다. (셰이커 교도들의 별난 규율과 고아나 빈민을 향한 선행은 전에 읽은 Like the Willow Tree 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알라딘서재]Like the Willow Tree (aladin.co.kr) 


1997년을 기억하는지? 응칠의 그 발랄한 부산 청소년들 말고도 Boyz to Men 이라던가, 르윈스키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이 청문회에 서고, 힐러리는 남편을 두둔했던 해. 티비 프로그램으론 ER과 길모어 걸스, 프랜즈가 대힛트 였던 그 90년대. 바로 그 90년대에, 셰이커 빌리지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분한 엘레나 리처드슨은 로컬 신문사 기자이며 (조사와 과거 캐기가 그녀의 전문) 변호사 남편과 네 명의 십대 아이를 키우는 열혈 엄마이다. 이 지방에서 3대째 큰 집에서 살며 근처 주택을 저렴하게 세놓아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만족감으로 뿌듯해 한다. 그 셋집에 싱글맘 미아 워렌이 딸 펄(고1)을 데리고 이사온다. 


소설은 '누가 좋은 엄마인가?'를 끈질기게 묻는다. 엘레나 리처드슨과 엇나가는 막내 이지, 부모 뒤에서 사고를 치고 (멋대로) 수습하는 렉시. 미아 워렌과 다정하지만 비밀은 서로 나누지 않는 딸 펄, 가난한 중국계 이민자 베베와 유아 딸, 자식 말고 모든 걸 가진 린다 맥컬리와 중국계 입양아, 대리모를 섭외해서라도 '전통적 방식'으로 아이를 갖고 싶은 뉴욕의 부부. 딸의 인생과 진로에 대해서 조언과 지지를 해줄 방법을 몰랐던 어느 부모. 등등.


자신의 재산과 인맥, 선행이라는 명분으로 행하는 온갖 간섭과 갑질, 자신의 기준과 '편견'이 옳지 않을 수 없다는 곧고 단단한 자만심. 그 온갖 긍정주의의 97년. 미국은 세계의 중심이고 다른 '주변' 나라들의 자잘한 문화는 장식품이 되어 옆에 있으면 그만이었던 97년. 


부잣집 아이와 그 집 도우미의 아이들 사이의 (겉으론) 우정 이야기로 시작하기에 <노멀 피플> 생각도 났고 97년 미국에서 만났던 많은 한국계 입양아 꼬마들 (태극기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이든 백인 양부모 손을 잡고 다니던)도 생각났다. 일부러 내 앞에선 지나치게 천천히 말을 해서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거나 과장된 친절, 혹은 나에게만 건너뛰는 스몰토크 들도 잊히질 않는다. 그 백인 이미지에 너무나 찰떡인 리즈 위더스푼의 엘레나를 보고싶다. 또 보고싶지 않기도 하다. 아시안 대상 범죄 기사를 볼 때 이 책 내용을 겹쳐서 생각하게 된다. 트위터에서 만나는 저자 셀레스트 잉의 분노의 트윗(@pronounced_ing)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자의 심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작가의 첫 소설도 챙겨두었다. 이번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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