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와 소수자가 새로 만들어 제시하는 말은 기존의 언어 속에 담긴 차별과 편견에 맞서기 위한 대항 언어에 해당한다.

어떤 말을 버리고 어떤 말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가깝게 연결된다.

서울 사람이 쓰던 말을 ‘경아리말’, 그런 말투를 ‘경아리 말씨’라고 한다. ‘경京아리’는 국어사전에 "예전에, 서울 사람을 약고 간사하다고 하여 비속하게 이르던 말"이라고 나온다.

비가 거의 안 오는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에서는 돈의 액수를 나타내는 단위로 풀라와 테베라는 말을 쓴다. 풀라는 비, 테베는 빗방울을 뜻하는 말인데, 비가 얼마나 귀한 지역이면 그랬을까 싶다.

소천(召天) 하늘의 부름을 받아 돌아간다는 뜻으로, 개신교에서 죽음을 이르는 말. [...] 불교 신자가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소천‘이라는 말을 쓴다면 아무래도 어색하다.

교육부에서 ‘학부형‘ 대신 ‘학부모‘라는 말을 쓰도록 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학부형‘이라는 말이 입에 붙은 사람이 많다. 학생 보호자로 아버지와 형을 올려 놓은 학부형이라는 말은 가부장제 사회에서나 쓸 수 있는 말이다. 학부형을 버리고 학부모를 쓰는 것은 단순히 낱말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낡은 인식과 결별하는 행위이다.

2017년에 어휘를 둘러싼 또 하나의 중요한 대립이 있었다. 성소수자 문제가 중요한 사회 의제로 등장하면서 양성평등이라는 말 대신 성평등이라는 말을 쓰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엥 호응하여 성평등이라는 말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다. 인간의 성 정체성을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하는 것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판단이 사회적 승인을 받고 있는 듯 보였다. [...]이에 반해 양성평등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이들은 성평등이라는 말을 용인하는 것은 동성애와 동성혼을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 그래서 이 사안을 다루는 어느 신문에서는 기사 제목을 ‘양보 없는 용어 전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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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보부아르가 애독했다는 세귀르 백작부인 동화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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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다. 언제나 해결책이 있다. 기필코 그것을 찾아내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 P137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삶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삶에 맞서 벽을 세우지 않는다. 반대로 삶을 사랑하고, 그 안에 잠기고, 필요하다면 아예 깊숙이 빠져버린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뭐든 겪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더이상 두려워하지 마." - P157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것이 너를 위한 일인지 말해줄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세상을 지배하하고 암흑을 무찌를 수 있다."
그런 전투를 치르기에 최적인 자리는 물론 교황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교황이 될 수 없다. 교황이 되려면 주교 하나가 옷 속으로 손을 넣어 고환을 만져보고 라틴어로 "있다! 분명히 있다!"라고소리치는 검사를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 P180

하루 또 하루, 밤마다 피가 날 때까지 나 자신을 학대한다. 이상하게도 그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원할 때 스스로 멈출수 있는 고통이기 때문일까? 언제 고통이 시작될지 내가 결정하고, 언제 끝날지 정하는 것도 나다. 모든 게 나한테 달려 있다는 생각을하면 아무리 아파도 위안이 느껴진다. 이 끝없는 공포 속에서 사는 게 너무 지겹다. 왜 시작되었는지,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감내해야 하는 공포와 고통이끔찍하다. 악물었던 이를 조금씩 풀기 시작하면 증오와 경멸이 서서히 사라진다.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던 욕설들도 가라앉고, 나는 서서히 잠이 든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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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영화<소울> 캐릭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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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은서는 친구들과 쇼핑을 즐기고 지하철로 돌아가는 길, 성추행을 당한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잘못'을 생각해보는 은서. 몸이 굳고 괴롭다. 은서가 떠올리는 더 예전의 기억으로 오늘의 사건이 더욱 은서의 일상을 방해하는데, 은서는 주저 앉는 대신 그 해법을 고민하며 찾아나서기로 한다. 이제 비밀을 말할 시간이다. 하지만, 어떻게? 누구에게? 만약 그들이 나를 탓한다면?


최소한의 말과 묘사로 피해자 청소년의 고통과 고민을 극대로 나타냈기에 무겁고 슬픈 마음으로  응원하며 천천히 읽었다. 은서의 단단함과 결심이 고맙고, 이 책은 어른 독자인 나에게도 위안이 되었다. (은서에게 공감하지 않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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