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알라디너 분들께서 추천하신 작품을 미루다가 이제야 읽으면서 게으른 과거의 나를 탓하고 흠뻑 빠져 읽었으면서도 제대로된 감상문은 커녕 몇 줄 남기기도 어려워서 버벅거리는 현재의 나를 탓하는 중이다. 


다른 분들의 리뷰 처럼 멋지고 심오하게는 못쓰지만 그저 나의 솔직한 감상은 적어둬야지. 안 그러면 미래의 나는 기억을 잃을테니까;;;; 


순진하달까, 맹한 펠리시아는 뻔한 시골처녀 답게 뻔한 동네 놈팽이 (그런데 대도시 공장에 다니면서 추석 때나 고향에 오는)와 사랑의 결실을 품었다. 기다리다 불안해져서 그 대도시(라지만 수도도 아님) 공장만 아는 주제에 민쯩도 없이 집안의 돈뭉치를 들고 밤차/배를 탄다. 그리고 낯선 곳을 헤매다 뻔한 오십대 뚱남 포식자의 눈에 띈다. 그는 그러니까, 십여 년 전 어머니 사후에 (그전에도 싱글이었지만) 홀로 큰 집에 살면서 여러 번 여자들과 우정을 나눌 뻔, 나누기 시작하다 떠나보낸 슬픈 과거가 있다. 이 사람의 즐거움은 소소하게 고가구나 문진 따위를 모으고 LP판으로 노래를 듣고 또 섬세하고 호방한 (?) 장보기와 식사하기다. 그의 직업도 공장 구내 식당 감독. 그는 다른이의 인정을, 눈에 띄어 '다른이와 함께 하는' 인상을 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외로버. 소설은 1990년 초반의 아일랜드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어쩐지 1980년대 분위기도 보이고, 미국의 범죄 스릴러 느낌도 난다. 그러니까 뻔한, 어떤 공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집나온 시골 처녀, 애인을 찾을 것인가. 

낯선 도시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도움은 덫이 아닐까. 

저 낯선 이는 친구일까, 적일까. 

이 낯선 이의 과거는 어떠한가. 

상황은 어디까지 나빠지고 그 바닥은 어디일까.


50대 뚱남의 묘사는 매우 전형적인 연쇄살인마인데, 강박적 규칙 준수와 넓은 정원과 이어지는 숲, 과거의 여자들, 군인을 동경했으나 입대를 거절당하고, 비틀린 모자 관계와 부재하는 아버지 상 등이 그 타입의 뻔한 인물상을 또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펠리시아가 짠. 


그런데. 


뻔한 시골 처녀가 뻔한 50대 뚱남을 만났는데도 게다가 뻔한 광신(기독) 전도사 아줌마 까지 나왔는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결말을 그리고 있는데, 그 하나 하나가 뻔하지 않은 소설이 되었으니 기가 막힐 수 밖에. 모든 면에서 정반대에 위치한 두 인물이 외로움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났다가 다시 멀어진다. 인물 하나 하나가 짜증나게 생생한데 은근 살짝 빗겨나가며 독자 반발짝 앞에 서서 (애쓰지 않으며) 능수능란한 작가의 호흡으로 흥분 혹은 긴장한 독자를 바라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도 뭔 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벌써 점심 밥 때라 일어나야 하고요. 

그러니까, 잘 썼어요. 정말. 


그래서 영화도 찾아봤는데.


아 이건 <힐디치씨의 여정> 이고요, 영화 초반, 그의 집을 보여주는 건 좋았는데 자꾸 '양들의 침묵'이랑 '싸이코' 영화가 생각나게 히디치 씨의 모자 관계를 과하게 설정하기도 했고 힐디치 씨가 접했던 '과거의 여성들' 묘사도 도드라져서 펠리시아가 가려졌더라구요. 그래서 펠리시아의 여정, 그 끝은 어디냐, ... 영화에선 사탕을 많이 발라놨어요.



아 이제 정말 밥하려 가야해요

일요일엔 오뚜기 카레냐 짜파게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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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22 1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잘 쓰셨습니다. 정말~ 근데 저는 어느 선까진 힐디치가 정말 좋은 사람일 거라고 호의로 펠리시아를 도와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니까요! 하.. 저는 진짜 좋은 사람만 만났나봅니다.(현실은 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스릴러 영화를 너무 안 봤거나..ㅋㅋ)

유부만두 2021-08-22 18:01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께선 그러셨군요. 전 처음 몇 문장은 좋았지만 (음식사랑 좋은사람?) 곧바로 아, 이 ㅅㄲ 위험하다 싶었어요. 하지만 시침 뚝 뗀 소설가는 느긋하게 계속 이야기를 풀어가고 전 책을 덮을 수가 없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8-22 12: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주말에는 짜파게티로 대동단결 !!!

유부만두 2021-08-22 18:02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아이들은 짜파게티, 어른들은 비빔밥이었습니다.
어쩐지 더 늙은 기분도 들어요. (그런데 애둘이 세 봉을 먹어서 어쩔 수 없어요)

scott 2021-08-22 1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이작품 영화 부터 봤습니다. 대가 트레버의 스토리 전개에 감탄! 유부 만두님 점심은 짜파로!

유부만두 2021-08-22 18:03   좋아요 2 | URL
아이들 점심만 짜파게티였어요. 집에 있는 게 딱 고만큼이었거든요.

영화는 소설과 꽤 다르던데요. 펠리시아가 금발도 아니고 쇼핑백도 없... 아니, 그것보다 주인공이 힐디치 아저씨 였고요, 그 엄마 묘사도 너무 달라서 아예 다른 이야기를 읽는/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페넬로페 2021-08-22 12: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 모여서 이 책을 가지고 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유부만두님, 일욜은 그냥 아점 한끼로 해결하는게 어떠신지요^^

유부만두 2021-08-22 18:04   좋아요 2 | URL
아,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펠리시아 토론방!

주말엔 두끼만 먹었으면 좋겠는데, 우리집 애들이 힐디치 못지 않게 먹기를 챙깁니다. ㅜ ㅜ 간식도 먹는답니다?

blanca 2021-08-22 12: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죠. 저도 다 읽고 온몸에 전율이... 이래서 대가라고 하나봐요. 윌리엄 트레버는 그저 리스펙트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는 특히 이름 없이 죽어간 소외되는 여자들에게까지 시선이 닿는 점도 너무 감동적이더라고요. 독자를 억지로 설득하거나 자기 세계관으로 끌어들이려는 의지를 안 보이면서 포섭하는 능력이 있는 작가인듯...유부만두님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트레버 장편 더 많이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유부만두 2021-08-22 18:05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어쩜 이야기를, 특히 회상 꿈 이야기를 능숙하게 버무리면서 인물과 배경을 내놓는 데 감탄할 수 밖에요. 정말 멋진 작가에요.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

잠자냥 2021-08-22 13: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호방한 장보기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 아이고 힐디치 씨 정말 먹는 거 하나엔 호방하게 진심인 남자.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8-22 18:06   좋아요 1 | URL
실은 저도 그러잖아요. 먹기와 장보기에 진심을 다하고요. 그런데 왜 힐디치는 나쁜 사람인건가. ㅜ ㅜ

잠자냥 2021-08-22 13: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방남이 펠리시아 돈 훔칠 때 진짜!!!!! 호방하게 한 대 갈겨주고 싶었습니다. ㅜㅜ

유부만두 2021-08-22 18:08   좋아요 2 | URL
전 소리내어 욕을 냅다 질렀습니다.


그리고 이 ㅅㄲ가 펠리시아 병원 데리고 가는 거요.
다른 소설에서 성폭행 하는 것 보다 더 끔찍하게 ‘착취‘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완전히 펠리시아의 신념, 습관, 정체성 등을 다 갈아버리는 거 잖아요. 으....

다락방 2021-08-22 14: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주는 기쁨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어요. 크-

유부만두 2021-08-22 18:08   좋아요 2 | URL
그쵸. 문장 문단 읽으면서 입과 뇌에 호사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바로 이 맛이야, 라고 생각했어요.

그레이스 2021-08-22 16: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영화 봐야겠군요~
반드시...

유부만두 2021-08-22 18:09   좋아요 2 | URL
영화는 강력추천은 아니고요, 책과는 다른 이야기 해석을 보여주는 듯해요. ^^

그레이스 2021-08-22 18:10   좋아요 2 | URL
정보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1-08-23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읽어 보고 싶고...유부만두님의 다이나믹한 리뷰 읽을때마다 재미져서 자꾸 클릭 클릭!!!!
밥 시간때 쫓겨 사는 인생도 느껴져 허탈한 긴장감!!!! 늘 흥미진진 합니다.
저는 맨날 오뚜기 백세카레 해먹다가 요즘 카레의 여왕 만들어 먹었는데...와...먹을만 하더라구요.종류별로 다 먹어 보고 있는데 이거 이거 이러면서 내가 카레의 여왕이 되는 거???싶더군요.
내일 점심땐 저도 애들 개학 기념으로 짜파게티 해줘야 겠네요.메뉴팁도 얻어 갑니다.알찬 서재~^^

유부만두 2021-08-24 20:07   좋아요 0 | URL
정리 안 된 감상 쪼가리에 인사 건네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이들이 집에서 밥을 먹으니 라면, 카레 등 인스턴트 음식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네요. 저희집은 (일본식) 숙성카레와 (인도식)티아시아 카레를 좋아합니다. 볶음밥이나 국수 등 한그릇 음식이 제일 편하고 좋아요.
개학은 했지만 방학의 연장인 기분이에요. 이젠 힘들다는 말도 하기 힘... ㅜ ㅜ
 

열아홉 구수정은 용한 점쟁이에게 스무살 되기 전에 죽는다는 통고, 혹은 예언을 듣고 명을 길게 하려고, 죽기 싫어서 길을 떠난다. 등에는 백설기 가득 지고. 


작가의 말과 해설에 나온대로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을 토대로 쓰인 소설인데 첫 장과 마지막 장 사이는 어지럽고 복잡한 세계를 주인공 수정이가 쏘다니는 바람에 따라다니는 독자는 '투쟁'을 하듯, 특히나 나이 든 독자는, 허덕거리...다가 생각해 낸다. 이상한 나라의 수정이? 


길가메시, 혹은 앨리스, 오딧세이와 여러 설화와 이야기 속의 목숨 을 건, 내던진, 바라는 영웅들 이야기. 라고 쓰고보니 나도 해설을 흉내내고 앉았... 모든 걸 비유나 상징으로 풀자면 한없는데 그렇다고 깊이 있는 독서 경험도 아닌데다 어쩐지 집중도 안되고 재미도 별로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 얇은 책을 하룻 밤 건너 뛰고 이틀에 걸쳐 읽었다니) 


두 개의 흑 백 가름끈이 표지의 얼굴 만큼이나 당당하다. 그런데, 뭐랄까, 이 소설의 의미는 텍스트 밖에 너머에 있어서 자꾸만 말을 더해야 비로소 .... (이거봐 이거봐 또 평론가 흉내내고 앉았...) 


추신: 수정이에게 불어터진 떡볶이를 권하던 그 새끼는 성매수자 같고, 맞고, 그런데 어떤 남선생과도 겹쳐지고, 이 소설을 읽고 난 직후라 나도 문장이 마구 .... (아 그만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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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08-13 1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지리 문학상이란 것도 있었군요??
책 표지가 서늘합니다.

2학기 전면등교는 애초에 물 건너간거죠!!!!!
그래서 포기한지가 오래지만...
삼 시 세끼도 포기하고 싶을때가 문득문득!!!
하~~~~ 아무생각없이 늘 하루종일
아침 먹으면서 점심 뭐먹지? 점심 먹으면서 저녁 뭐먹지? 저녁 먹으면서 내일 아침은???
심지어 잠을 자면서까지도....내일 세 끼는??
이건 아무생각이 아닌 게 아닌 거죠~ㅋㅋ
웃으려니 갑자기 눈물도 나올뻔 했네요ㅋㅋㅋ
밥 하면서 한 번씩 유부만두님 생각 났었어요.
그 많던 집밥 메뉴들의 사진들!!!
요즘은 뭘 해 드시려나??하면서요^^
그래도 여전히 책 열심히 읽으시고 건재하셨었어요.
제 예상대로요^^

유부만두 2021-08-13 10:58   좋아요 2 | URL
시지프스의 밥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다만 사진 찍기에 물려서 그만 뒀고요. ^^
그냥저냥 메뉴는 반복과 변주를 하고요, 책은 계속 읽고 사고 사고 사고 읽어요.
아, 우리 눈물은 감추도록 하죠, 아직 울 날이 너무 많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오리지널 작품이라기 보다는 ‘다시 쓰기‘ 성격이 더 강하게 보여요. 그래서 지루했는지 모르겠군요. (끝까지 늙은 독자 감성 탓은 안 하겠읍니다)

파이버 2021-08-13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무살이 되기 전에 죽을 운명이어서 단명 소녀였군요... 152쪽이니 얇긴한데 당당한 두 개의 가름끈에서 피식했어요ㅎㅎ

유부만두 2021-08-13 10:59   좋아요 2 | URL
책 내용에 두 개의 칼, 두 개의 명부, 두 명의 인물, 두 갈래 길 같은 생과 사의 이미지가 반복되요. 아마 그래서 의도적으로 두 개의 가름끈을 만들었을 거 같아요. 독자에 따라선 한 호흡에 읽을 수도, 저 처럼 가름끈을 이용해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겠죠? ^^
 

책의 표지의 초상화 인물이 그레뀔 백작 부인이고 게르망뜨 공작부인의 모델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Robert de Montesquiou, 1855~1921)백작이 그레뀔 백작부인의 사촌이었다. 몽테스키외는 프랑스 문학에 당디즘Dandisme을 도입한 장본인이고, 이 세기 전환기에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었다. 더욱이 그는 사촌인 그레뀔 백작부인만큼은 아니지만, 조용히 베를렌 같은 예술가들을 후원해온 메세나이기도 했다. 몽테스키외 또한 프루스트의 소설에 등장하는데, (프루스트 자신은 극구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잃어버린 시간을찾아서》에서 당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샤를뤼스 공작의 모델이 바로 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일로 프루스트는 화가 잔뜩 난몽테스키외 백작에 의해 한동안 절교를 당하기도 했다).” (316)


“그레뀔 백작부인의 삶에서 흥미로운 점은, 흔히 그녀의 정도의 위치에있는 극상류층 여성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현실과의 괴리, 정치에 대한 무관심, 사회 정의보다 내 밥그릇 먼저 챙기기 같은 보수적 편향을 거부한 점이다. 그녀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보수적인 왕당파였어도 그녀는 인간 평등에 의거하는, 공화국 정신에 대한 신념을 숨기지 않았다. 모두 그녀의 살롱에서 교류한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향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도 부유했고 자신의 세련된 취향을 굳이 감추지 않았던 그녀. 찰스 프레데릭 워스의 세련되고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드레스를 입은채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고, 퀴리 부인의 라듐 연구소를 후원하는 수표를 쓰면서 왜 이 사회에 마리 퀴리와 같은 여성 과학자가 많아져야 하는지 열변을 토하는 여성이 이끄는 살롱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아름다운 벨 에포크로 만들어주지 않는가.”(317)


스테판 외에의 만화에서는 아예 샤를뤼스를 몽테스키외 초상화와 사진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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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8-08 2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샤를뤼스 너무 좋은데ㅋㅋ몽테스키외를 모델로 했었군요!! 맙소사.
게르망트 부인의 모델인 저 모습은(회색) 사진맞겠죠?그림?
사진이면 놀랍네요!!😳

유부만두 2021-08-08 23:00   좋아요 3 | URL
회색은 사진이고요, 표지 컬러는 초상화에요.
정말 멋지죠?

미미 2021-08-08 23:06   좋아요 3 | URL
아 작품에서 느꼈던 이미지에 적합한 미모네요! 몇번이나 확대해서 봤어요ㅎㅎ

바람돌이 2021-08-09 0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우 아름답고 멋있는 여성들이 나오면 무조건 좋아요. ^^

유부만두 2021-08-09 14:23   좋아요 1 | URL
그렇죠?! 너무나 멀리 있는 여성이라 비현실적이지만 그녀가 퀴리 부인을 후원했다는 걸 알고나니 감탄하게되요.

그렇게혜윰 2021-08-09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너무 아름다운데 내용도 매혹적이네요♡

유부만두 2021-08-10 09:44   좋아요 1 | URL
시각 자료들도 풍부하고요, 반짝거리는 벨 에포크 시기의 문제점인 제국주의와 노동자 처우 문제도 짚어주고 있어요. 많은 부분이 프루스트와 연결 되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어요.

단발머리 2021-08-10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뀔 백작부인 정말 멋지네요. 인용해주신 부분을 상상하면서 사진 보는데 진짜 심쿵!!! 😍😍😍

유부만두 2021-08-11 10:25   좋아요 0 | URL
그쵸. 저렇게 멋지니까 프루스트가 그런 소설을 써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890년대 십대 후반의 화자는 프랑스 휴양지 발벡에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다양한 인물들을 관찰한다. 귀족과 부르주아, 호텔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과 해변 마을의 상인들과 하인들까지. 그의 인물 감상은 살벌하게 우스꽝스럽고 또 어처구니 없기도 하다. 부르주아인 이 청년이 현실 걱정 없이 바라보는 석양의 하늘과 저녁 바람, (당시 신문물) 전등으로 밝혀진 레스토랑에서의 근사한 시간들. 그동안 이 청년은 계속해서 여인들을 시선으로 좇고, 상상으로 끌어안고, (만만한 계급의 여자들에게는) 돈자랑도 하면서 (그 사이 사이 할머니한테 땡깡도 피우고) 망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스완씨에 버금갈만한 화자의 롤모델 귀족 청년 생루와 그의 친척 샤를뤼스의 등장도 드라마틱하지만 이번 권의 하이라이트는 해변의 발랄한 걸그룹의 등장이다. 짜짜잔. 대여섯 명의 그 활달한 소녀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친해지려 애쓰는 화자. 우연이 몇 번 겹쳐 그 중 한 명인 알베르틴과 통성명을 한다. 


밥맛 없이 구는 변태 화자에 정내미가 여러 번 떨어지지만 의외로 이번 권에는 유머스러운 에피소드들이 많고, 그윽한 풍경 묘사와 (제비가 솟구치는 바닷가! 어두워진 시골길! 나를 따라오는 저녁노을! 아름다운 이 풍경들 묘사 속에 나도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은, 그래요 착각입니다) 솔직한 마음 탐구(랄까, 묘사랄까, 특히 시간차로 다가오는 행복이라던가, 자신을 삼등분해서 감정이 착각해도 의지가 붙잡아준다는 이야기에는 트위터리안의 냄새도 났다)가 아름다워서 욕을 삼키면서 계속 읽고 있다. 옛 한자어휘와 길게 꼬인 사극체 문장의 펭귄판과 소소한 오역이 꽤 많은 민음사 판을 원서도 좀 참조하면서 함께 읽느라 발벡의 여름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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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8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21-08-08 14:19   좋아요 2 | URL
두 번역본을 장면 기준으로 나눠 번갈아 읽는데요, 문체 뿐 아니라 분위기가 아주 달라서 재미있어요. 그러다 묘사가 어긋날 때나 이해가 잘 안될 때만 으응? 원서를 찾아봅니다. 원서 문장이 별나게/ 우리말 번역과 비교해서 고급스럽거나 그렇진 않아요. 다만 촘촘하게 인물의 감정과 풍경 묘사를 하는 점이 흥미롭지요. 그나저나 ㅁㅇㅅ 번역은 부드러운 큰 흐름으로 읽을 땐 좋은데 자꾸 걸리는 부분이 생기네요;;;;
 

이번 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에는 은근 코믹한 장면이 많은데 그중 한 장면, 여자에 달뜬 화자가 허겁지겁 다가갔을 때 당황스럽게 나이든 (더해서 평소에는 혐오나 두려움마저 느끼는) 여성을 마주하는 장면도 있다. 예전에 읽었던 한창훈 작가의 소설이 생각났다. 



내가 처음으로 발베크에 갔던 시절부터 몇 해가 지난 후 나는 아버지 친구분과 함께 마차로 파리를 달리고 있었는데, 밤의 어둠 속에서 빠르게 걸어가는 한 여인을 보고,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를 내 행복의 몫을 예의범절 같은 걸로 놓치는 건 무분별한 짓이라고 생각되어,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그 미지의 여인을 쫓아간 적이 있었다. 여인은 두 갈래 길에서 사라졌다가 세 번째 길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내가 숨을 헐떡이며 가로등 밑에서 본 사람은 내가 그토록 피해 왔던 베르뒤랭 부인이었다. 부인은 반갑고 놀란 마음에 "어머나! 내게 인사하려고 달려오다니 고마워요!" 하고 소리쳤다. (126)





이틀 뒤 또 꽃무늬 보자기 너머에서 물 끼얹는 소리가 났다. 나는즐거우면서 괴로웠다. 의지는 책을 봐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똘똘 뭉쳐 수돗가 쪽으로 나아갔다.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은 열일곱 살짜리 남자애가 담담하게 볼 수 있는 게 못 되었다.

조금 있으면 보자기가 열리면서 아름다운 젖가슴이 드러날 것이다. 가지런한 등줄기도 보일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때처럼 아랫도리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욕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비누칠하고 밀고 닦고 물 끼얹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저 소리라면 지금쯤 어디를 닦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더욱 확대되고 분명해지고 강렬해졌다. [...] 몸으로 사랑을 한다면 이런 기분이리라. 나는 괴로우면서즐거웠다. 그러다 저 속의 것이 폭발되었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보자기를 걷으며 주인 할머니가 걸어나왔다.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 할머니 덕분이었다. 수돗가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쳐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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