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밀하고 아픈 이야기를 문학, 소설, 인생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솜씨에 감탄하고 있다. 초반부에 <프랑켄슈타인> 이야기가 나와서 나의 독서 경험을 꺼내본다. 2012년 리뷰.... 벌써 3년도 넘게 지났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흐르는구나.

 

 

 

 

 

 

 

 

 

 

 

 

 

 

 

여름이면 찾아오는 납량시리즈에 그쳤다면, 차라리 책을 덮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잊고 지나갔었을텐데. 지난 여름 읽었던 "처녀귀신" 처럼 그 안에서 울리던 억울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1816년 열아홉의 새색시였던 메리 셀리는 시인인 남편 퍼시 비시 셀리, 시인 바이런 경 들과 모인 장마철의 지루한 자리에서 그들과 "피가 서늘해질 이야기"를 짓기로 합니다. 데카메론을 연상시키는 이 모임에서 바로 이 끔찍한, 그리고 슬프기 그지 없는 괴물문학, SF의 고전이 생겨납니다. 총명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손으로 빚어지고 버려지고 추격당하는 이름없는 괴물 이야기. (편의상 그를 A군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미 21세기의 "스노우 맨"과 "렛미인" 등을 접한 독자들은 또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만....

 

문동 세계문학판의 번역을 하신 김선형님의 해설에서 절대 푸른 얼굴의 못 박힌 괴물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말라는 친절하고도 유익한 조언을 해주십니다. 하지만 이미 "프랑켄슈타인"은 어눌한 몸짓에 신음 소리만 내는 덩치 큰 바보(!) 괴물의 이름이 되어 여기 저기에 깔려 있습니다. 1994년 코폴라 감독의 영화는 제목에서 메리 셀리를 강조를 합니다만 괴물 역할의 로버트 드 니로는 파란 얼굴 못잖게 원래 색깔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제발, A군의 모습은 그저 커다란 덩치에 어두운 못난이로만 남겨 두어야 합니다.

 

책은 영국에 남아있는 누이 새빌부인에게 탐험을 떠난 (책의 배경은 모험과 낭만이 춤추던 18세기 후반입니다) 남동생 윌턴이 보낸 편지로 시작합니다. 윌턴은 새로움, 용기, 탐험을 좇으면서 자기 자신이 잘난 남자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만, 그의 앞에 짠 하고 나타난 건 그가 본 받고 싶었을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악에 받쳐 망가진 모습입니다. 빅터를 통해서, A군과 주변 인물들 이야기가 거푸 거푸 나옵니다. 하지만 결론은 인간 모두들,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자신하던 빅터를 비롯해 인간 이상의 이해심과 사랑을 보여주었던 모든이들이 인간이 아닌 A군을 내쳤다는 겁니다.

 

오두막집에서 손을 잡아준 눈 먼 노인에게 그는 이렇게 호소합니다.

"저는 불행하고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 세상에 친척도 친구도 하나 없습니다. // 치명적인 편견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다정하고 친절한 친구를 보아야 하는데 혐오스러운 괴물만 볼 뿐이랍니다." (179쪽)

 

외로운 A군이 프랑켄슈타인에게 요구한 것은 그의 짝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박사는 "그의 창조주인 나는 힘이 닿는한 그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할 의무가 있다고"(195쪽) 여기고 일단 그 작업을 시작합니다만, 인류에 끼칠 해악을 염려해서 ( 자신이 넘어서는 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고) A군의 가슴을 한 번 더 찢어 놓고 맙니다.

 

이제 화가 날대로 난 A군은 프랑켄슈타인의 생활을 망쳐놓고는 그를 쫓는 박사의 약을 올리면서 더욱 당당해집니다.

"살아라, 그러면 내 권능이 완벽해지리라. 나를 따르라. " (278쪽)

A군과 프랑켄슈타인의 추격신을 눈을 감고 그려봅니다. 이제 파란 얼굴 못 박힌 괴물 대신 의지에 불타는 장엄한 "인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쫓는 박사를 위해 극 지방의 얼음 위에 죽은 토끼까지 남겨놓는 이 개념있는 A군은 소설 마지막에서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빛냅니다. 그가 애도하면서 거울을 쳐다보듯 프랑켄슈타인을 대할 때 윌튼은, 또 그의 편지의 독자인 그의 누이나 21세기의 우리들도 잠깐 정숙,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이고, 조수나 파트너도 없이 가족도 그저 멀리서 풍광을 보듯 바라보던 프랑켄슈타인이 단하나의 존재인 A군 만큼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때리고 온 마음을 다해 미워했으니, 피조물인 그도 그 연대감에 매달려 있었겠지요.

 

우리의 A군이 원했던건, 이해 받는 것, 사랑 받는 것, 자기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목숨을 앗아가버린 그가 하는 말은 아무런 변명이 될 수 없겠지만, A군의 존재와 목숨으로 세상의 인정과 찬사를 얻으려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을듯 합니다. 다만, .... 윌튼에게 한 마디, "안녕히, 윌턴!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고 야심을 피하세요. 겉보기에 아무 죄가 없어 보여도, 과학과 발견에서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하지만 역시나, (제게는) 이 책은 A군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갑자기 세상에 던져져서 버림 받고 오해 받고 미움 받고, 자신을 "추락한 천사"라고 칭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괴로워했고, 말도 참 많이 하는 이 존재는, 과연 약속대로 죽었을까, 그의 영혼은 지금 그 하소연을 어디에다 풀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프랑켄슈타인>을 다 읽고, 저는 <드라큘라>를 읽었습니다. 작가 브램 스토커의 어머니가 책을 읽고 한 마디 하셨다지요.

"얘야, 셀리 부인의 '프랑켄슈타인'  다음으로 네 책이 최고다. 포우는 근처에도 못와."

 

201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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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쪽의 얇은 책인데다 여러 챕터들로 나눠져 있어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여러 장의 쪽지, 스케치, 기억의 단편들을 화자와 함께 더듬는 느낌이다. 병원에서 9주 동안 있던 경험으로 시작해서 화자의 어린시절로 돌아가는데, 하나씩 꺼내 "생각하고" "느낀" 기억들은 아프고 슬프다.

 

Lucy는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자신이 만나서 '관계'를 만든 사람들을 기억하고 자신의 인생,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미국 중서부 옥수수밭 돼지농장 옆에서 자라던 소녀가 뉴욕에 가서 자리잡는 인생성공담이 아니라 소녀가 만난 사람들, 책 속에서 만난 인물들, 성장기에 만난 사람들과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모여서 책을 엮어나가고 있다. 그 결과가 이 책이고,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의 이름 Lucy Barton을 또박또박 적는 일이다. 작년에 읽은 아룬다티 로이의 책이 전통, 여러 세대의 업보와 역사가 겹겹이 무겁게 쌓여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발한 이야기였다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은 여러 인물들 각자의 사연이 주인공과 만나 생기는 인연과 에피소드들이 하나하나 작은 구슬처럼 엮여 반짝거린다. 얇은 책이라 금방 읽었지만 다시 읽어야만 할 책이다. 이제 나는 첫 장부터 화자를 Lucy 라고 불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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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1-3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잠실 교보에서 이 책 찾아보려 검색했는데 재고 없대요 ㅜㅜ

유부만두 2016-01-31 13:31   좋아요 0 | URL
교보 온라인으로 찾으셔야하나봐요... 그래도 교보는 17000원대에요. 알라딘은 3만원 넘고요;;;
이 책 읽으세요~ 문장이 수월하고요 천천히 읽으시면서 생각하기 좋아요♡

nodiggety 2016-07-1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아서 하루 안에 읽었는데 정말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작가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과거로 돌아가 끔찍한 사건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돌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여행 관련 영화나 책을 볼 때면 종종 상상하곤 한다. 내가 했던 멍청한 결정들, 그래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지.

 

이 책에서 네 명의 초등 6학년 어린이들은 신기한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시계를 받고, 과거로 돌아간다. 그 끔찍한 일이 막 벌어지려는 순간에. (스포는 나쁩니다요) 어린이가 주인공이니 고민도 어린이의 수준에 맞추었겠지만, 초등 3학년생인 우리집 막내가 흥미진진해 하며 읽는걸 보니 6학년생들에게는 조금 시시할지도 모르겠다.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 어린이들이 가족 문제에 갖는다는 죄책감이 유난히 강조되는 이야기들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고 무슨 힘이 있다고 6학년 아이들이 더 어릴 적 자신의 행동을 곱씹는다. 부모의 눈으로 읽자니 울컥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희주 이야기. 하지만 세은이의 경우, 왕따, 라는 문제는 조금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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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가 설터의 '인본주의'라는 '광고'를 믿지 말았어야 했다. 태평양전쟁 중 긴급한 상황의 배 위에서 시작한 청년 필립 보먼의 인생은 그를 아껴주었던 이모의 장례식장을 나서는 산책길에서 연인과의 대화까지 이어진다. '그'라고 지칭하지만 주인공 필립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이다. 작년에 읽은 <스토너>가 생각났는데, 곧 머릴 흔들었다. 어딜 감히.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이제 무릎 아래 빈약한 다리를 연인 앞에 보이길 꺼려지는 나이까지 이어지는 팔자 좋은 한 남자 이야기다. 한 문장에 인생의 큰 사건이 하나씩, 사망과 이별이 툭툭 실릴만큼 시크한 소설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여인과의 만남과 밀월에는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설레지는 않는다는 게 함정)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면 집안 배경과 결혼 이력, 그리고 재산 정도가 두세줄 이력서 처럼 따라온다. 대화는 짧고 (역시) 툭툭 끊어져서 인물들 사이의 교감은 없다. 역시 시크함. 이런게 노작가 설터의 인생 회고 방식이려나. 60, 70, 80년대의 뉴욕의 (소위) 지성인 혹은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기대했는데, 멍한 표정의 표지 여인 만큼이나 답이 없는 소설이다. 중반부 부터는 돌림노래 가사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읽었으니 할 말 없다. 그저, 인생무상? 눈을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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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6-01-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바마 대통령이 읽는다고 한 소설이 이것이던가요????

유부만두 2016-01-27 18:29   좋아요 0 | URL
글쎄요. 몰랐어요. 전 광고 문구랑 별점만 보고 샀던 책인데 완전 속은 기분이에요. ㅠ ㅠ. 100자평 다시 보니 성의없는 별다섯이 많네요...
 
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평론집
김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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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좋은 동화책이 많은데' 라는 책머리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다. 저자 김지은 선생님은 여러 좋은 동화책을, 어른들이 지어낸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거짓말 이야기'를 주제별로 묶어서 소개, 그리고 분석해주셨다. 여느 문학평론집과는 다르게 동화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른과 어린이를 오가며 따뜻하고 엉뚱하게, 하지만 올곶게 이어졌다. 읽는 내내 바쁘게 책 제목과 동화 작가 이름을 따로 적어 놓았다. (이 좋은 책에 왜 동화책 목록이 없는겁니까!!!) 어린이들이 좋아라하는 책들, 서점마다 비닐로 싸놓은 "~되는 법" 류의 책 말고도 이 책에는 이곳, 학원 말고 '다른 곳'의 '숨은'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눈부시다. 소개된 50여권의 동화책 중 내가 읽은 건 고작 다섯 권쯤. 큰 아이를 키울 때와 이리 달라진 동화판이 반갑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동화 작가가 쓰는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독자를 너무 아래로 만만하게 보아서도, 계도의 대상으로 다루어서도 안된다. 그 위험하고 섬세한 작업의 의미를 김지은 선생님의 이 책은 밝혀주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는 아이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린이가 억지로 부모의 짐을 지거나 어른의 옷을 입지 않토록, 어린이가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우리, 어른들이 보살펴주고 사랑해주어야한다. 동화는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나, 지금의 아이들, 그리고 미래까지 아우르는 '거짓말로 된 사랑'인지도 모른다.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 동화책을 읽고 싶어졌다.

 

이 책 진짜 좋아요! 머리글부터 좋아서, 끝까지 다 좋아요! 선생님들, 초딩 부모님들 강추!

동화 평론집인데 다 읽고나면 울컥, 하면서 동화책 찾는 동심이 흘러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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