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편의 단편들은 사람 이름을 (소라, 나나, 나기 가 아니고 파씨도 아니고) 흔하면서도 고유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름을 쓰고 있다. 사연이 하나씩 담겨있겠군. 표제작엔 강민호. 롯데의, 이젠 삼성의 강민호, 가 있었고 귀엽고 날카로운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샀다. 더운 일요일 아침 (아, 지겹다. 언제쯤 '덥다'라는 형용사 없이 페이퍼를 쓸까) 얼음물을 마시면서 읽었다. 깼다.

 

고향 읍의 중심 교회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후배 종수와 그의 '공식적' 애인이며 직장 동료인 윤희.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로 당황하고 '협박'하는 주위 사람들, 갑작스런 '부동산 문제'로 고향에 내려온 '강민호'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로 보이는) 종수. 윤희네 힘든 가족 이야기. 이십대 시절의 추억에 울컥하기도 하고 벌쭘하기도한 강민호. 윤희를 위해서 조언한다는 그에게 날카롭게 쨍한 말을 내뱉고 돌아서는 윤희. 어버버 서울집으로 도망치는 민호. 그의 생각대로 촌스러운 건 그였다. 온갖 이름을 붙이고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교회 옛 지인들이나 탁구 치자는 종수 보다도. 이런 답답하고 지겹고 익숙하고 싫은 모든 면에서 '작은 버전의' 인물이라니. 안다. 일부러 그랬겠지. 이런 '친절'하고 흔한 민호가 세상에 널렸으니까. 는적는적 동산에 올라 나릿나릿 걸어오는 윤희를 바라보는 '선배'. 그런데.... 소설적 설정이 너무 촌스럽고 투박하며 흔하다. 종교, 읍, 고향, 대학 강사, 비키니.....  재밌다며?! 어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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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우유배달 경험을 천연스레 늘어놓는 저자의 이야기가 '교열' 이라는 말이 주는 깐깐함과는 거리가 있다. 단어와 문장, 문장 부호와 어순, 철자의 미묘함과 무던함에 신경쓰고 골라내고 바로 잡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이야기. 얼마전 본 일본 드라마 '교열결' 생각이 나서 웃음도 나왔다. 교열걸, 이라니...이런 멸칭 같은 (홀대 받는 교열부...또르르) 타이틀은 싫지만.

 

 

오탈자와 오역, 오류를 잡아서 독자가 책을 만나기 전에 고쳐 놓는다. 이 과정이 허술할 때 책은 얼마나 하찮고 우스워지는가. (아직도 '적과 흙'을, '산의 여름 - summer/summit 을 기억한다.) 하지만 교열자들은 즐기면서 글을 읽을 수 있을까. 나뭇잎과 가지, 나무의 멋진 몸통을 살피느라 숲에 깃든 향기와 숲 전체의 분위기를 놓치지는 않을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겠지만 훑어보아야 알게 되는 것도 있을텐데. 쓸데 없는 걱정일지도. 텍스트를 앞에 두면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사람들일텐데, 나처럼.

 

이제 1/3정도 읽었는데 의외로 잘 읽힌다. (우리집에도 빨갛고 두꺼븐 웹스터 사전 있는데 ....) 재작년에 멋부리느라 샀던 뉴요커지도 꺼내봤다. 그래, 글자는 옳다. 교정 보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지 더 재미있고 (마이 칼라 이스 그린),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 오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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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 온다 리쿠 소설의 구체성, 여러 비현실적인 탐정들, 뜨거운 여름의 일본 영화 속 청춘, 쇠락한 어촌, 도쿄의 골목, 그리고 이자카야의 자욱한 연기와 닭꼬치, 한국어로 시를 쓰는 일본시인. 빠지면 섭할 영화 감독 고레다 히로카즈, 이 모든 게 담긴 종합 과자 상자 같은 잡지. 월간지라는데 다음호가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 다른 일본 문화 엣세이 등에서 이미 읽은 내용들.

 

평소 갖고 있던 일본 문화의 이미지들을 확인하며 시원한 카페에서 읽기 좋다. 일본의 폭우, 지진, 혹서는 접어두고 '소소하며 오밀조밀한 귀여운 이미지'를 즐길 수 있다. 여름엔 섬찟한 일본 추리 소설을 설렁설렁 읽어야 제맛이지. 그러려면 창문을 열어 두고 마루에서 부엌까지 바람이 통해야 하고 베란다에 유리 풍경이 딸랑 거리고 눈을 들어 빨래가 마르는 것도 봐야 하는데.

 

아침에....에.... 삼십도 라고요. 아, 네.....  찬물에 세수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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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을 드디어 완독했다.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던 이야기는 '신들의 미소', 뒤에서 두번째 실려 있다. 1570년,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한 포르투갈의 예수회 신부 오르간티노. 그의 시점에서 서술 되는 선교사의 두려움과 각오. 성당 뜰을 산책하며 이 낯설지만 아름다운 나라를 떠나고 싶은 속마음을 억누르고 섬뜩한 벚꽃을 마주하고 성호를 긋는다.

 

성당 안에서 기도를 하다 목도하는 일본 영, 혹은 악귀의 의례. 도발적인 무녀의 움직임과 육체로 더더욱 오르간티노는 위축된다. 다음날 백주대낮에 대면하는 '일본의 영', 은 차분한 목소리로 '당신의 신은 패배할 겁니다' 라고 단언한다. 바다를 건너 일본에 도착한 모든 새로운 '영'들, 공자, 맹자 뿐 아니라 중국의 문자와 어쩌면 오딧세우스 까지 일본의 영에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가까스로 하느님의 영광을 변호하는 신부. 그러나 그 역시 돌아가는 자리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한 번 뒤집는 마무리. 이제 화자는 누구인가. 일본의 영, 혹은 아쿠타가와 당신? 즐거운 책 읽기, 혹은 옛이야기 듣기를 했습니다. 특이하고 별난데, 인간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단편 소설들도 더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17 세기 포르투갈 신부를 소재로 장편 소설 '바다 쪽으로 세 걸음' 연재를 하셨던  김연수 작가 생각이 나고요. 그 이후 이야기 '웃는 사람, 희조' 연재가 시작한 것도요. (아, 제가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에 읽질 않아서;;;;; ) 그런데 그 사이에 세월이 꽤 흘렀군요. 그간 여러 번 여름을 보냈지만 올 여름이 제일 뜨겁습니다. 더운 날씨에 김 작가님의 일산 작업실 환경은 양호한가요, 맞다, 작가님 신간 사은품으로 맥주컵을 받아서 얼음 넣고 냉커피를 마시고 싶은 날씨입니다. 왜 커피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맥주를 끊었....습니다. 아니었다면 올 여름엔 매일 네 캔 쯤 꿀꺽꿀꺽 했을텐데요.

 

오늘은 아쿠타가와 - 오르간티노 - 김연수 - 맥주 로 이어지는 내 맘대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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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02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그 냉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겠지? 설탕 프림 팍팍 들어간 달달한 냉커피 아니고 ㅎㅎ

유부만두 2018-08-02 08:40   좋아요 0 | URL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
 

옛이야기 같으면서 현실 비판 인가 싶다가, 모든 해석을 비웃고 이건 그저 이야기라며 어깨를 친다. '갓파'. 정신병원에서 만난 어느 삼십대 남자 환자, 기력도 쇠하고 등도 굽은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는 그의 편에도, 의사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 그래도 화자가 갓파 월드에 깊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어쩌면 그가 삼십대 환자였을까, 그러기엔 너무 많이 '치료된' 느낌인데.

 

갓파, 의 모습은 일본 애니매이션 포스터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회색이다가 초록색이 되기도 한다는 작은 키의 미끈거리는 피부, 옷을 입지 않는 (개구리를 닮았지만, 개구리라고 불리면 치욕스러워 하는) 생물체. 남자는 여름날 등산 길에 갓파를 만나고 그 녀석을 잡으러 뛰어가다가 갓파의 세상으로 넘어/떨어져 간다. 아일랜드의 래프리콘은 황금 항아리를 숨겨둔다니까 잡으려 든다지만, 왜 이 못생긴 갓파를 잡으려 했을까, 그리 싫어하면서. 미워하고 깔보면서 잡아 괴롭히고 싶었을까.

 

모든게 반대이지도 않고, 어설프게 닮은듯 비꼰듯 펼쳐지는 갓파의 세상. 걸리버 여행기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별로 예리하거나 흥미롭지 않다. 후반으로 갈수록 갓파만의 특수성은 사라지고 자꾸 인간세상 이야기를 하려고 든다. 독자는 지루해서 자꾸 남아있는 쪽수를 헤아려봤다. 그러다 다시 환속(?)하는 남자. 그는 적응하지 못하고 병원에 갇히며 자신을 병문안 오는 갓파 친구들을 (그쪽 세계의 유력자들) 계속 만난다. 소설의 화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 책, 꽃다발, 그리고 물론 갓파 까지.

 

무얼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까, 꾸아?! (qu...로 시작하는 갓파의 언어) 옛이야기거나 현실 속 인간의 바닥이거나 혹은 전설 속 생명체를 끌고 와서 현실을 비꼬거나, 소설에선 다 해볼 수 있지 않겠나, 꾸아?! 문학이란 그런 게 아니겠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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