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종이라도 드라마에선 연애만 한다. 회사는 두 계파로 나뉘어 이사장과 사장 사이의 암투가 벌어지고 해외 유학파 여인은 순박한 계약직 여직원의 츤데레 애인인 실땅님을 빼앗으려 든다. 실땅님은 실은 어릴적 부터 아픔이 있었....

 

그런 이야기 아닌 그냥 직장인 이야기다. 소설이지만 쓱쓱 읽히고 큰 얼개나 구성, 인물도 엄청 새롭지는 않다. 설레지 않는다, 고 제목에 써놓고 당당하게 직딩의 생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알람 사이의 8분 (내 시계는 9분)이 붙잡아주는 달콤함과 게으름으로 만드는 아침, 어젯밤에 놓아둔 물건을 밟고 시작하는 분주한 출근 준비, 차곡차곡 쌓이는 마켓 떨이 물건 기분이 드는 지하철,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느끼는 후련함과 그저 따지고 화풀이 하는 게 목적인 고객의 전화. 믿음직한 사수였던 선배의 퇴사가 불러오는 불안감, 갑자기 쎄한 느낌이 들게 구는 맞은편 직원, 등. 내가 겪지 않고 있는 일상들을 차분하게 불러와서 늘어놓는데 상상이 갑니다. 그 작은 인간 사회의 축약형, 그 안의 갈등과 서열, 그리고 초월하기 위한 나름의 비법도. 아줌마라고 모르지 않아요.

 

나카코와 시게노부, 성(姓)도 생일도 같은(!!!!) 두 남녀가 과연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까를 생각하면 사실 조금은 설렙니다만, 그것 말고는 직장의 일이라 나처럼 비직장인이 읽어야 재밌을 책이다. 이런 매일의 풍경을 휴식 시간의 책 안에서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을테니까. 그래도 뭐랄까, 생활형 소설, 아니면 꾸준함의 글, 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매일 매일 아침에 나서고, 볶이고, 지치고, 순간순간 일탈이나 휴가를 꿈꾸고, 그리고 다시 아침, 누구나 다 그렇다고, 조금은 우겨보련다. 책 말미에 실린 이 책의 홍보 만화 (인데 왜 끝에 붙여놓았을까요) 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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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아이들은 죽었고 피의자 보모 루이즈는 자해 후 병원에 누워 있다. 여성 경감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었고 루이즈 대신 현장검증에 설 예정이다. 피의자의 마음 속, 그 의도를 들여다 보려 애쓰는 경감의 독백으로 소설은 끝난다.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채. 역자 후기에서도 '나는 루이즈를 모른다' 라는 솔직한 문장이 놓여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 검게 굳은 심장의 여인을.

 

소설 내내 바쁘게 '미래를 계획하는' 미리암과 폴 부부 대신 루이즈는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 내몰리며 현실을 부정하는 루이즈. 그녀가 딱히 미리암의 처지를, 옛 자신의 고용주들의 집과 가정을 시기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바쁘게 매일 갈 곳과 자신을 기다릴 해맑은 아이들의 눈동자, 살뜰한 보살핌 뒤에 반짝이는 집안의 모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늙어갔다. 아당의 동생을 기다리며 자신의 존재이유를 만들기 보다는 다른 새 가정에서 새로운 아이 돌봄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른 '종결'을 향해 걷는다. 이제 은퇴를 생각하는 키 작은 남자, 루이즈에겐 성에 차지 않는 남자를 소개 받아서 꾸역꾸역 데이트를 이어가고 있었다. 밤엔 넋을 놓고 가게 윈도우를 구경하며 한없이 걷고, 다른 보모들 (주로 프랑스인이 아닌 유색 외국인들)과는 말을 섞지 않고 '가르치려 드는' 에너지도 서서히 잃어가는 루이즈. 아이들을 해하고 나서 그녀 자신도 정말 죽으려 했을까. 루이즈가 정말 미워한 대상은 누굴까. 끈적한 빗바람을 맞으며 읽자니 갑갑하기도 하다. 빨래도 안마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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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23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시나요?

유부만두 2018-08-23 08:05   좋아요 0 | URL
아니요;;;;; 추리 스릴러 쪽도 아니고요, 좀 애매해요.
 

아치디, 에서도 첫 문장의 엘레인에서도, 나는 화자의 성별과 국적 그리고 언어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었다. 조금씩 그가 한국인이 아님은 물론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브라질 남자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찰흙이나 지점토를 빚어서 만들듯 조금씩 상상의 얼굴을 만들...다가 말았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경험, 아치디라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하민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민은 내가 아는 사람 같았다. 권여선 작가의 '이모' 생각도 났고, 속없이 고생만 했다던 먼 친척 고모님 댁 큰언니 같기도 했다. 다들 떠나는 방식은 달랐고 살아내는 식도 달랐지만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랄도,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이런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를 여러 겹의 언어와 시간, 더해서 국적을 바꿔 포장해 놓은 것을 읽으려니 피곤하다. 최은영 작가의 전작 '한지와 영주'를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너무 늙었기 때문인가. 왜 이 나이 먹도록 젊은 작가와 그들의 젊은, 너무나 어리고 풋풋한 이야기에 이리 매달려 집착하는가. 아치디에서, 먼 이국에서 다른 언어로 지내다 보면 인생의 고민은 매듭을 풀고 새로운 삶을 살아낼 용기와 기회가 생긴다고, 그 때는 믿었었지. 만. 위안을 얻지 못하고 책을 덮는 내 늙은 마음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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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0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레스 윤리학’의 조언을 충실하게 따른 인물이 있다. 요셉은 낡도록 옷을 오래 입고 리모델링 해서 계속 입는다. TPO에 맞추어 옷을 입고 개성을 살린다. 계속 활용해서 그의 아이덴디티가 된 체크 무늬. 오버코트가 단추가 되도록 되풀이해 발휘되는 그의 재봉 솜씨. 그의 코트는 이야기 책이 되어 그와 친구들, 우리들도 함께 읽는다.

러시아의 하급 관리가 그토록 아꼈던 외투가 생각난다. 외투는 커녕 얇은 티셔츠도 버겁게 더운 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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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피들을 존경한다. 내 동생 같은.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패션 아이템들을 기억하고 활용하며 멋지게 조화시켜 입는다. 명품도 사랑하고, 잘 알며 동대문 시장도 자주 간다. 나는 동생의 옷이 명품인지 아닌지, 지난주 만났을 때 본 옷이 새 옷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난 보통 교복삼아 같은 옷을 줄창 입고 다닌다. (요즘은 동생이 골라준 민소매 회색 원피스) 안목도 없고 귀찮다. 그런데 가끔 패션에 대한 궁금증이 동할 때 이런 책을 산다.

 

 사고 늘 후회한다.

 

여전히 난 패피가 아니고, 패피들을 위한 옷 입기 가이드였으니 내가 볼 책은 아니었나 보다, 생각한다. 이 책은 옷 잘 입기 책이 아니고 현대의 의류 산업이 환경을 해치고 있다는 점, 조금이라도 지구를 위하고 멋지게 옷을 입고자 한다면 이 책에 실린 많은 패피들 처럼 옷장 정리, 옷 제대로 관리, 버리는 대신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기, 헤진 옷 리모델링해서 재활용하기, 등을 하라고 소개한다. 엣세이도 하니고 짧은 토막토막으로 각 방법들을 나열하는데 너무나 일반적이고 대략적이라 (주석 번호가 달려있지만 원문에 해당되는 영문기사들 웹주소 등이라 큰 도움이 안된다) 미장원에 있는 여성잡지의 특색 없는 특별 기사를 보는 기분이 든다. 사이사이 들어있는 멋진 인물들의 사진이 그나마 위안이다. 이렇게 예쁜 몸매의 사람들이라면 뭘 입어도 패피겠다.

 

이 책에서 선행과 함께 하는 예로 드는 톰스 신발 기부에는 좀 거부감이 든다. 톰스 신발 한 컬레에 한 두 컬레 기부하게 하는 시스템은 그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지만 정작 아프리카의 산업/취업 구조를 망가뜨린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늘 원조와 기부를 기다리는 곳으로 만드는 것도 불편하다.

http://miainafrica.tistory.com/entry/TOMS-Shoes

 

또한 이 책은 화학약품 사용 (세탁, 특히 드라이크리닝)을 경고하며 천연, 친환경 제품으로 대체할 것을 권하는데 자세한 정보는 없이 두루뭉실 넘어간다.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서로 돕는 멋진 패피!!! 라는 것은 좋지만 내용도 없고 엣세이도 아니라 읽는 맛도 없고 (차라리 언급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사였다면 더 흥미로웠겠지) 반복은 많아서 실망이었다. 결론은 이 책은 나처럼 패피 아닌 사람이 낚여서 사기 쉬운 책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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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8-1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지금껏 유부만두가 멋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유부만두 2018-08-16 09:27   좋아요 1 | URL
실은 언니 만날 땐 옷을 신경 써서 입었어요. 언니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라서! ^^

라로 2018-08-14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패피가 뭐에요??

유부만두 2018-08-16 09:28   좋아요 0 | URL
줄임말이에요. 옷 잘 입는 ,패션 피플, 에서 첫 글자만요.
영어를 우리말 식으로 쓰고 줄이기 까지 하니까 영어가 아닌 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