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의 한국사 - 미래 100년을 위해 과거 100년을 질문한다
김남수 외 엮음, 진실과미래.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 기획, 이이화 감수 / 휴머니스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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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년이라 부쩍 역사 특집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즐기는 일본 문학과 드라마에 죄책감이 드는데다 큰아이가 내년에는 중학 국사를 배울텐데 엄마의 무지가 드러날까 조마조마 했기 때문이다.   

청소년 대상 역사책인데 조선의 개항 무렵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남북 분단 까지 학생들이 던질법한 100개의 질문과 대답이 실려 있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아이와 같이 읽을 수 있고, 질문을 따라 읽어도 연대별로 구성되어 있어서 일반 역사책과 큰 차이점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읽기에 지루하다. 우리 나라의 비극적 역사에 이런 말을 하기에 죄스럽지만, 문장도 평이한데다 자주 되풀이 되고 무엇보다 "새로운" 역사적 시선과 해석이 없다. 내용에 더 신경을 쓰느라 도표와 사진은 넣지 않았다고 하는데 수치가 나오는 부분의 설명이 너무 간략하고 단발령이나 의복, 그리고 문화 주택 등 시각적인 정보를 줄 수 있는 사진이 많이 궁금했다. 많은 저자들이 '출판 지원 사업'으로 함께 협력한 책이라 각 단원마다 문장색이 달라지는 것도 그렇다. 어느 단원에선 감정적인 단어들이 넘치고, 다른 단원에선 반복 되는 문장들이 보인다. 오탈자가 적잖이 눈에 띄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거기에 더해서 1945년 광복을 "해방"으로 계속 쓰는 것이 - 물론 용어 선택의 이유를 '사회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서 였다고 하지만 이 책의 커다란 주제를 생각한다면 '광복'을 썼어야 하지 않을까 - 눈에 거슬린다. 계속 불평만 하는 것 같지만 1945년~1950년 역사를 너무 급하게 넘어가서 부족한 느낌도 들었다. 

우리의 100년전 역사, 특히 경술 국치를 겪은 시기의 앞 뒤를 살피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의도는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다른 한국의 근대사 책들과 차별화되지 않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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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카르마
이상민 지음 / 푸른물고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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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스릴러에 필요한 것은 다 갖추었다. 살인, 폭력, 납치, 은폐, 돈, 종합 병원, 불륜, 비오는 밤, 산장, 맨발로 뛰는 여자, 거기에 빙의와 절대로 잊지 않는 한 서린 여자 귀신까지. 프롤로그와 33장의 짧은 장으로 구성된 책은, 내내 영화의 신을 설명하는 성긴 설명서 같다. 문장은 짧고 인물들의 외모나 성격 묘사도 엉성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인물들이 생긴 모습이나 행동, 그들이 서 있는 장소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왜? 이런 장면들이 영화나 드라마, '괴담 시리즈' 특집 방송 등에서 재연 전문 배우들이 눈에 힘을 준 귀신 분장을 하고서 벌써 보여줬기 때문이다.   

효진과 영석은 부유한 집안의 30대 부부, 아이가 없는 것 말고는 완벽한 모습이지만, 영석은 내연의 애인 진연을 두고 있고, 10년전 끔찍한 범죄를 덮어둔 적이 있다. 아니, 이런 우연일 데가! 부인인 효진 역시 10년전 그 범죄 현장 부근에 있었고, 그녀의 가족사에서 비롯된, 다르지만  남편과 연결된 범죄에 한몫을 했다. 억울하게 숨을 - 하지만 질기게도 억울한 또 다른 목숨을 해하고 나서야 - 거둔 정희의 혼령은 10년 동안 칼을 갈고 갈아서 몸에 깃들어 살던 영매를 이끌어 효진, 영석과 만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짜잔하고 만나는 장소인 종합병원에는 기인이라 불릴만한 커플, 구신도와 한미선이 있다. 미선은 무당과는 절대로 다른 "채널러" 란다. 그녀는 라디오가 수신호를 잡듯 떠돌아 다니는 영적인 존재들을 감지하고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정희의 원혼을 막기위해 애쓰는 착한 엄마의 영혼이 억지로 미선에게 깃들면서 소설의 대립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다.   

마침내 10년전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모이고, 구미호의 "이 금수만도 못한 놈들!" 과 엇비슷한 호령과 함께 CG 없이는 못보는 (아니, 못 읽는) 장면이 연출된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해피 엔딩도 해피 엔딩이 되지 않고 오싹한 반전을 남긴다.  

거친 문장, 뻔한 캐릭터, 앞이 보이는 반전 탓에 공포 소설인데 별로 공포스럽지 않다. 캐릭터들이 딱딱한 가면을 쓰고 일정한 틀에 매달려서 한 장면 한 장면 따로 떼어서 연기한다. 섬세하게 인물들을 살려내고 행동과 심리를 묘사했더라면 - 거울 속의 눈동자를 노려보는 것 말고 - 더 무섭게 만들 수 있었을텐데. 귀신이 나와서 거울에 글씨를 쓰고 얼굴을 바꾸는 것 보다, 살아있는 사람이 배신을 하고 사람을 해하는 것이 더 공포스러운 법이다. 여성을 파괴한 남성들, 하지만 모성으로 자기 아들을 지키려는 여성, 모성을 가질 수 없는 여성, 모성을 거래할 수 있는 여성, 그리고 이 모든 여성의 모순을 볼 수 있는 미래의 모성....이런걸까? 섬뜩해야할 장면들이 식상하고 "으아아아악!" 으로 되풀이되는 비명도 짜증나서 책을 덮는다. 하지만, 다행이다. 이제 여름도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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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의 그녀
가쿠타 미츠요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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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뭔가. 왜 이리 콕 집어서 내 속을 까발리는 거지? 나는 그리 나긋한 사람도 아닌데, 여고 시절 정신없는 입시지옥을 살아냈고, 친한 친구도 있었고, 아직 우리 시절엔 따돌림이 심한 문제도 아니었는데, 아오이나 사요코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다니. 이 왠지 부끄럽고 안타까운 공감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또 사요코 처럼 남편이 답답하지도 않고 내 인생을 탓하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바쁜데, 이 어쩔 수 없는 '여자의 인생' 일본판에 이렇게 공감을 하다니, 어쩌지? 나도 그냥 한낱, 여자인건가?

이 책의 두 주인공 사요코와 아오이는 각각 십대와 삼십대를 살아 내면서 심한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사요코는 깨닫는다; 나이드는 것은 만남을 향하는 거라고. 제목의 "대안"은 아오이가 친구 나나코와 거닐던 강둑의 저편을 가리킨다. 사요코는 그 강 저편의 싱그러운 사춘기 소녀 아오이와 나나코를 만난다. 그리고 지금, 여기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로 한다. 한 발자국 씩 앞으로 나가겠지. 아오이나 사요코나.  

과거의 소녀시대와 지금의 아줌마 시대를 엇갈려 배치하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작가의 섬세한 배려가 아름답다. 소설 속에서 숱하게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지만 처절한 비극으로 치닫지 않아 주어서 더 고맙다. (나름 대로) 폭풍우 치는 밤 같던 나 자신의 여고 시절을 떠올리게 한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책을 덮고도 시원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대신 가습이 답답하다. 이렇게 강한 공감을 하는 게, 정말 괜찮은 건지, 내가 나약한 여자란 걸 들켜버려서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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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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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에 Lust Lizard 가 들어있고, 현란한 표지 그림에 물고기와 금붕어 같은 꽃 항아리를 머리로 얹고 있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푸른숲에서 내 놓은 <디 아더스> 시리즈가 말하는 "다른 이들"이 정말 다르다는 걸.  

초반 부, 관광객들이 떠나고 조용하게 9월을 맞은 캘리포니아 코브 마을에 주민 대부분이 프로작 같은 항우울증 알약을 먹는다고 했을 때도, 뭔가 이상하다 했는데. 바로 이 만성 우울증, 아니면 만성 나른함에 젖어있던 마을을 뒤흔드는 그 분이 오신다. 바다괴물. 

파충류라고, 괴물이라고, 공룡이라고, 아니면 정말 "신"이라고도 불리는 멋진 숫컷, 하지만 오래전엔 암컷이었으며 수천년간 저 뜨끈한 바다 화산 옆에서 자다 깨다 했던 생명체. 그 생생한 생명 덩어리가 육지로 올라와서 여러 일들이 벌어진다. 나른한 코브 마을의 대마초 피는 보안관과, 나쁜 놈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생명체에게서 각자 다른 것들을 보고, 느끼고, 기대하는데, 재미있게도 "나쁜 마쵸"들만 희생당하는 설정도 이게, 무슨 .... 상징이나 아님 무슨 비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뭐, 어쩌랴. 공룡 옆엔 공주님이, 우리의 괴물 옆엔 몰리가 있을 뿐. (몰리의 화려한 과거 장면에서 난 나름대로 "킬빌" 을 떠올렸다)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이 읽었으니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황당하기만 했는데, 책 속의 거짓뿌렁이에 적당히 물들 즈음, 이야기는 뒷정리에 들어가더니 아주 착하게 끝난다. 사실 좀 더 화끈하게 괴물의 눈과 입과 두 손으로 마을의 가식을 파헤쳐 주었으면 하고 바랬는데 말이다. 이야기가 쫀쫀하기 보다는 성기게 대충 대충 뛰어넘지만 사건들이 하나 같이 즐거움과 괴기스러움 사이를 오가는지라 꼼꼼히 따질 필요는 못 느꼈다. "색다른" 이야기가 궁금할 때, 늦 여름 오늘 같이 비가 계속오고 축축 처지는 날,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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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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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하는 어머니, 믿음직스러운 아버지, 귀여운 아이들, 그리고 자애로운 조부모들...모두가 아름다운 가족 신화의 일부분들이라면,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가족은 다들 뭔가가 부족하고 삐걱거린다. 사랑의 가족, 따위는 없고, 피를 나눈 가 족이 남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고 생각하게 된다. 또, 그들이 살아가는 집도 마찬가지다. 다들 너무 높거나, 크거나, 비싸거나, 낡고 삐걱거려서 허물려고 했더니 돈이 너무 들어서 방치해 놓았다. 어쩌면 가족이나 집이나, '돈'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버블 경제의 상징인 고층 맨션을 무리하게 구입한 가족, 경매로 그 집을 사려는 소시민, 그 사이에 버티기로 끼어드는 가짜 가족들. 살인 사건을 둘러싼 진짜 가족들의 남보다 못한 가족 이야기들이 거푸 거푸 600쪽 넘게 이어진다. 사람이 죽고, 살인자에게 '사회적 현상' 쯤 되는 변명거리를 안기는 게 싫었는데, 역시 작가는 그런 어정쩡한 감동 코드는 쓰지 않았다. 후반부로 갈 수록 연속해서 나오는 가족 드라마에 질리는 느낌도 들지만, 역시 글"심" 있는 작가기에 맺음도 깔끔하다. 다들 그 빈 아파트에 괴물 원혼을 세우고 싶었을텐데, 작가는 그 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죽이고 왜 죽였는가, 그 이유를 굳이 알아야 겠는가? 그것도 초호화 20층 맨션에서 네 명의 목숨이 사라진 사건이라면 더 흥미가 동하는가? 그럼 책을 읽어야겠지. 그리고 계속 나오는 비정상적인 가족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 당황스럽더라도 책 중간에 읽기를 멈출 수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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