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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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사나이, 거문도 작가, 라는 수식어가 이번 소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작년에 나온 작가의 바다 이야기에 아직도 젖어있던 나는 이번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될 때에도 계속 이상한 생각만 들었다. 왜, 뭍 이야기만 나올까, 바다 이야기, 섬 이야기는 없을까.

바다와 섬이 생명과 자유였다면, 어쩌면 뭍에선 그와 정 반대의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다루고 정리해 두어서 이제는 "그 일"이 되어버린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하기 위해 작가는 여리고 고운 열여섯 열일곱 소년의 생살을 뭍이라는 전쟁터 위에 내려 놓았다. 사내들은 치고, 박고,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글쎄, 치고 박고 싸우면, 사람들은 다치고 상처 받고, 죽는다.

사람들은 때린 것보다는 맞은 것을 오래 기억했다. 그래서 교사들은 우리를 그렇게 때리는 것이다. 많이 맞은 사람이 많이 때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되풀이를 끊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맞기만 하고 때리지는 않은 첫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 최소한 자식을 때리지는 않을 것이다. (p.55)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을까.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얻어맞은 것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늘 다른 사람의 뜻에 의해 폭력 속으로 내던져졌다. 태어나보니 부모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차서 학교에 가는 것 처럼 말이다. (p. 108)

싸움도 중독성이 있다는 말은 포장마차 주인 사내가 했던 말이다. 그것은 중독이라기보다는 술에 취하는 것과 비슷했다. 되돌아설 곳을 못 찾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달려들어 때리고 맞았다. 누군가 덤벼들면 또 맞고 때렸다. (p. 119)

하긴, 열일곱 살짜리가 어떻게 세상을 잘 살아낼 수 있겠는가. 저 마당 안의 일흔한 살짜리도 살기가 버거워 날마다 소주병을 차고 있는데. (p.126)

항구도시에서 도망치듯 소도시로 상경해 그곳 고등학교를 다니는 소년은 이리저리 떠밀리듯 혹은 '똥통의 참외'처럼 뒹굴다가 그해, 그 봄을 맞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왜인지도 모르고 그저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계속 묻는다. 왜요? 씨발, 왜 그래요? 하지만 답을 주는 어른도, 선생님도 없고 소년은 한 가지 약속에 매달릴 뿐이다.

"건강하게 잘 지내."
"너도."
"죽지 말고."
"너도."
살아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끝까지 지켜야 할 약속은 그거 하나였다. (p.247)

역설적인 책 제목 <꽃의 나라>는 정치나 역사적 해석은 덮어두고, 그저 의문에 찬 열일곱 소년의 눈을 따라서 그 숨가쁜 현장을 보여줄 뿐이다. 1부, 소년이 소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시작하면서 만나는 낯선 곳의 생활 속 폭력이 시간적 거리를 두고 여유로운 작가 특유의 웃기지만 슬픈 문장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본격적인 폭력의 장, 2부에선 작가가 소년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뛰어 도망다닌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 소년은 없고 대신 내 옆에 그 아이가 헉헉 거리며 작가의 손을 잡고 뛰고 있었다. 아, 소년과 소녀가 방 안에서 마주앉아 담배빵을 만드는 장면에서, 나는 어쩔줄 몰랐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숨가쁘게, 채 다 울지도 못하고 그 꽃이 흐드러지는 봄 한 가운데서 소년의 소설은 끝을 고한다. 진숙이 문을 나서며 다시 한 번, 소년에게 당부한다."넌 죽지마." (p. 272)

소년은 거기까지가 기억이었노라고 썼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고 울컥 후기에 써 갈긴다. 이제 삼십 년도 넘게 시간은 흐르고 남쪽역에는 수천, 수만 번 쯤 기차가 지났을텐데. 차마, 그 소년에게 물을 수가 없다. "어른이 되니,  좀 낫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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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2011-09-0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슴을 울컥이게, 먹먹하게 만드는 좋은 느낌 잘 읽었어요.^^
'넌 죽지마."
라고 당부하는 진숙이의 깊고 쓸쓸한 한 마디와
"어른이 되니, 좀 낫니?" 라고 묻는 만두님의 한마디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난...소년이 30년이 지난 현재 어떻게 그 시절을 견디고 잘 살아왔을지......
너무 장하다고 등을 토탁여주고 싶었어요.^^
추천 꾸욱!!!

유부만두 2011-09-07 15:35   좋아요 0 | URL
어제 남편이랑 책 얘기하면서, 계속, 아, 그 애들 불쌍하다, 너무 불쌍하다. 그 담배빵으로 이 애들의 꽃은 다 져버렸어, 그런 말을 했어요.

다락방 2011-09-0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유부만두님! 이래서 저한테 읽어보라고 하셨군요. 인용해주신 문구들만으로 울컥해져요. 한창훈에게 제가 돌아갈 수 있겠어요.

2011-09-0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8 0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1-09-0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에 관심이 가는데,
작가가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의 제목을 염두한 것일까요?
궁금하더라구요.

2011-12-2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억을 꼭꼭 담은 밥상 - 최승주의 7080 레시피 콘서트
최승주 지음 / 조선앤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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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책이라 부르기도 뭣하고, 엣세이라고 하기엔 글이 부족한데, 손에 들고 두번 정도 보고 읽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영양소 밸런스나 감칠맛은 많이 부족할 이런 저런 옛날 음식들. 나도 표지의 저 양철 도시락통에 도시락을 싸서 남편손에 들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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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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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나”는 오전 오후반으로 순서대로 말썽을 일으키는 필경사들과 잔심부름꾼 소년으로 이루어진 조화로운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그곳, 그 사무실은 그저 “생명이 결여” 되었을 뿐, 변호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 시켜서 필요한 만큼 보수도 벌어들였다. 하지만 한 남자, 바로 표지의 그 남자 바틀비가 나타나자 평온했던 변호사의 세계는 흔들린다. 바쁘게, 곧바로, 당장, 지체하지 않고 일을 밀어 붙이는 변호사의 기질에 화를 돋우듯, 바틀비는 천천히, 의자를 끌면서, 몇 번이나 질문을 받고 나서도 느릿느릿 거절만 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조용하게 거절만 하는 이 청년에 대한 부담감에 괴로워하던 “나”는 그를 내 보내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이 석고상, 주검, 유령 같은 젊은이는 이미 “나”의 어깨 위에 앉아 버린 듯, 아니 한 몸이 되어 버린 듯 떼어낼 수가 없다. “나”가 인정한 것처럼 바틀비와 “나”는 아담의 아들들로, “나”는 그의 입관된 환영을 볼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바틀비의 고통과 고독, 끔찍한 진실을 볼 뿐, 그 해결법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바틀비의 고통은 “나”에게 가까이 올수록 혐오스럽고, 그의 비참함과 빈곤은 점점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나”를 집어삼켜 버릴 것만 같다.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한 번 들어와서 나가지 않는 이 불가해한 존재는 과연 실제로 “나” 변호사가 본 젊은이였을까. 절대 자신의 가족이야기나 개인 이야기, 혹은 사무실과 업무 관계 밖의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나”의 불안증이 만들어낸 하나의 서류는 아닐까. 절대 떼어낼 수 없던 악몽이었던 바틀비의 눈을 감겨 주고 나서야 “나”는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사라진 수신인과 발신인 사이에서 갈 곳을 잃어 헤매다 태워지는 “사서(死書)”처럼, 자기 일을 잃고 헤매다 어느 한 곳, 어쩌면 어느 벽 속으로 스며들기를, 어느 글 속으로 녹아들기를 바랐던 바틀비를 애도하면서.

꽃이 만발한 봄이다. 한쪽 눈이 검게 표현된 표지의 바틀비가 쓸쓸하다. 그는 무얼 보는 걸까. 그는 누구일까. 물어도 그는 대답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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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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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겁고 슬며시 코에도 즐거운 바닷바람이 든다.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 나오는 바닷 생물에 대한 글과 한창훈 작가의 바닷 생활 - 자칭 생계형 어부란다 - 이 실려있다. 
...
열 말 필요 없다. 읽고 느끼고, 생선을 씹어야만 한다. 
인생이 허기질때, 이 책을 읽으면 어서 그 허기를 채우고 힘차게 살고 싶어진다.  


책에 실린 이런 저런 사진들 덕에,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는 회를 뜨는 작가 선생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 입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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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0-09-27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에 서 있던 아들 녀석 曰 " 작가 처럼 안 보여요. 그냥 어부 같아요."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문지 푸른 문학
김도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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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어서 만난, 중학교 때 선생님,  그 선생님은 병원 중환자실에 계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삼십 년 전의 일을 꺼내듭니다. "자네, 그 반성문을 잊었나? 아니겠지? 그 원고지 500매를 채우게. 너무 늦기전에 말이야"  (판에 박혔다구요? 흠...) 눈치가 빠른 아내는 내 과거 속으로 같이 파고들어서 '그 아이' 와의 추억을 꺼대 듭니다. (아, 또 다시 판에 박혔다구요? ) 제 추억을 따라오는 아내의 눈매가 매섭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포옹은 "목련" 같습니다만 (맨 마지막에 또 다른 '아이' 이야기는 목련 만큼이나 촌스럽지요)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 죄는 "남의 마음을 훔친" 죄는 아무리 시간이 흐른 다음이라 하더라도 사해질 것 같지 않습니다 .....  는 이야기다.  

 청소년 대상의 소설이라 그런지, 아니면 착하디 착한 (이미 요즘 세상에는 너무나 보기 힘들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나도 덩달아 삼십 년 전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게 만든다. (헉, 그렇다. 나도 삼십 년 깎아 내도 아직 넉넉하게 나이가 남는다)   

남의 글, 이야기, 마음을 훔쳐내도 요즘은 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중학교 선생님들도 요즘엔 자유시간에 불법 다운 받은 영화를 아이들더러 보라고 해놓고 당신들 바쁜 사무를 처리한다. 게임도 음악도 중학생 아이들은 "훔치는" 데에 도가 텄다. 이런 아이들은 방학숙제도 개학 하루 전날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쓰윽 긁어온 자료들을 재주껏 편집해서 프린트하면 그만이다. 손글씨로 원고지 500매? 코웃음을 칠게 뻔하다. 저자의 기억 속 그 소년은 절에도 들어가고 밤에 볼펜을 깨물기라도 하지만..... 슬프다. 이젠 반성문도 착한 사람들만 쓸테니까. 심심하고 착한 이야기가 가슴을 더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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