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탓하지 말게. 이게 모두 최선을 위한 길일세.

11월말. 책이 오자마자 받아들고 가장 먼저 펼친 대목은 저자가 직접 아를 방문 소회를 적은 부분이었다.

[쉬-어, 가:다]란 주제로 정작 쉬지 못한 기간은 전시 한 두달, 아니 아마 한달 전부터 시작한 듯싶다. 그렇게 빨리지나가는 속력에는 풍광이 보이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센 불에 달궈진 것처럼 말이다. 담금질을 하듯, 차가운 얼음물에 이제서야 푹 담궈본다. 마음도 몸도 조금 식고, 호흡을 가다듬어본다. 신년 집밥을 여러 차례 해먹고 나서야 밀린 책들을 조금씩 소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싶다.

사무실인지 어딘지 손에 잡히는데 둔 게 확실한데 찾는 책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가 <올해의 책들> 리스트를 옮긴 책가방에서 발견해내었다.

목차를 펼치자 18번. 이번에도 목차의 18번째 고흐가 걸렸다. 완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흐의 화신들이라는 여섯 편의 영화들이다.

찰스디킨스와 에밀 졸라 작품을 끼고 읽었다는 고흐나, 고갱이 고흐를 예술가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편지가 있었다는 대목. 테오의 아들이 큰아버지의 그림에 관심이 생기고 아를을 찾았다는 얘기. 문학적이기도 한 반 고흐를 다룬 영화들 가운데 사실들은 상식들을 벗어나거나 새로 알게된 읽을 거리나 볼 거리를 되려 가져다 준다. 짧은 글들이지만 영화 안에서는 미처 챙기지 못한 너머와 사이를 다루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다보면 그가 빗대어 말한 [이타카]는 저기에 없다. 지금 여기가 모든 시작점임을 누누이 말하고 있다. 영화감독들도 같이 고흐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를 녹아내고 싶을 것이다. 혼재한 나를 고흐에 섞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고흐를 닮고 싶어 일본화가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프랑스로 가서, 영혼을 담은 그림을 찾고자 하고 그려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그려내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저기가 있고, 여기가 아니라 저기로 가고자 하였음이 다시 돌아와 자신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을까.

주변을 사랑하고 가까운 마음들과 감정을 소중히 담아옮긴 것이 고흐는 아닐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사소하거나 측은하기 조차한 살아내는 주변의 생생함을 찾아내려는 것이 더 먼저였는지 모른다. 일본은 여전히 고흐를 사랑하지만 정말 사랑해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도 여전히 지금여기를 이타카로 여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실재하고 있다.

여섯 편의 영화들을 정주행하고 싶어진다.

볕뉘.

서경식의 고흐도 눈여겨 볼 만하다

300+알파

‘300+ α ‘

‘어떻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들이 해방될 수 있을까?‘

*김신양, 《처음 만나는 협동조합의 역사》,착한책가게

볕뉘.

1. 300년이 지나도 품어야할 질문들이 있다. 탐정으로 목격자로 역사의 이면을 짚어내고 섞어야한다. 오언, 푸리에, 프루동과 네이션 사이사이 스며든 이력도 밝히고 만다. 시선을 이렇게 넓고 길게 잡아야만 지금여기를 함께 겨우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2. 숱한 아집과 자신감들은 대체 무엇일까. 선입견을 버리려하지 않는 세대에 갇혀사는 우리들은 무얼 바라보고 있는 걸까.

3. 저자의 흔적들을 슬몃 보다 궁금증이 좀 풀리는 듯하다. 질문들은 자라나거나 번질 수는 없는 것인가. 삶들의 양태는 늘 위태롭다 싶다.

4. 자본론과 곁들여 보시길.

‘그림자 사람‘의 삶들을 복원하다

[올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1000여구의 유해가 발굴되어 아래와 같이 유해 안치식을 진행합니다. 한국전쟁 71년! 두손이 결박당한 채 뒤엉킨....] 

문자가 왔다. 내일 11월 2일 유해 안치식.

대전역을 오르내리면서야 며칠 묵혀둔 마지막 대목이 읽혔다. 

집안행사로 점심을 마치고 길안내를 입력하자 익숙하지 않는 행로를 가르킨다. 대전역으로 가야하는데, 빙 에둘러 고속도로로 접어든 차는 산내IC, 산내분기점로 안내한다. 

산내면 낭월리... ... 그곳을 다녀온 지도 오래되었고, 언론매체를 통해서나마 이후의 일들을 살필 수 있었다. 기차로 올라오면서 그 지점을 지나면서 골령골의 뒷 부분의 책장을 덮었다. 무거운 마음들이 겹질리는 지점인 듯 책짐을 쌌다.

가수원역이라 폐역이 된 그곳 인근의 근화의숙으로부터 소설은 출발하고 있다. 너무도 쉽게 백년전으로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는 목포도 아니고, 포항도 아니고 대전이다. 반나절 근대역사 답사의 기억과 함께, 곳곳을 함께 다니던 딸아니는 일터를 갖고 만들어가는 친구가 되었다.  목척교, 소제동, 신흥동 제사공장부근, 보문산으로 한여름 답사는 이어졌고, 소나기가 요란하게 내렸다. 기억해보니 작가와 만남이 겹쳐지는 부분은 그때였고, 보문산 입구의 한 음식점이었다.

톨스토이로 시작하는 것도 좋았고, 아나키스트로 모두를 끌고 꾸준히 진척하는 것도 좋았다. 어느 새 구석구석을 정신없이 걷고 있다. 은행통도 선화국민학교도 도청도, 경찰서도 대흥동, 테미고개 곳곳을 거니는데 그 공간의 온도는 금새 뜨거워져 정말 이런 일이 있었나 할 정도였다. 어쩌면 낯선 거리와 집들을 저기 마티고개, 공주나 홍성까지 손에 잡힐 듯한 시공간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무척 힘겨웠을 듯싶다. 

지금은 끊어낸 인연이지만 한 거래처에서는 유성온천쿠폰을 고객들에게 서비스하기도 했다. 그 직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소설의 주요인물인 김갑승의 이력도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사업체는 그 후광을 담아내 입담으로 윤색되어 이어져오고 있는 듯싶다. 고암 이응로작가의 유성모습 작품. 부친의 대전 군생활에 대한 경험담. 30년전의 독서모임 모습들이 겹친다. 

이런 역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조선희, 김숨이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톡과 남과북의 이어진 역사를 잇듯, 경성트로이카와 이 땅에서 벌어진 끔직한 일들은 여전히 지금여기에 또 다른 모양으로 절망하지 않은 체, 절망조차 모른 체 남아있다. 

산내를 가르키던 네비는 어느새 또 다른 길을 알려주었다. 판암IC에서 거꾸로 올라가며 예전의 기억과 군시제사공장근처를 거쳐 간다 싶다. 대전역 열차에 올라 에필로그에 후기까지 마저 읽다보니 바다가 곁이다.   

볕뉘

1. 읽다가 보니 지역 사회운동의 역사를 짚어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형상화시킨 일은 무척 감동스런 일이다. 드문드문 흩어진 일들. 검은 공백처럼 지워진 역사. 그 궤적들을 이어내며, 반복되어 나타나는 비극의 사이 행간을 채우는 일은 어지간한 끈기가 없어서는 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짚어내는 일이 점선처럼 지워 아예 흔적조차 드문 활동들을 다시 살려낼 일 같아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어느 작은 마을이나 터전의 기록들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더 풍성해지는 일.

1.1 지금여기를 살피게 만드는 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무엇이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잡아야 할 손길조차 잊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2. 안목을 넓히는 일. 여기서부터 저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번지거나 3.8선처럼 그어진 역사를 걷어내는 생생함을 되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대전진흥회나 유림들의 활동 역시 좌안시할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도 같이 읽힌다.

3. 홀로코스트보다 더 큰, 헤아릴 수 없는 인류의 재앙과 같은 일이 전쟁을 빌미로 이 땅에 피비린내를 진동시킨다. 비단 대전형무소만이 아니라 소설에서도 읽히듯이 여기저기 살육의 현장은 처참을 넘어서 존재한다. 정전을 넘어서 전쟁이 늘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면서 부를 축적하는 구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던져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말못하는 짐승, 아니 동물의 울부짖음도 딱히 다를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른다.

 [산내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가 이제 진실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부디 평안한 안식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문자를 더 살펴보니 내일 세종 추모의 집으로 모신다 한다.

4.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5. 유명을 달리한 故 이예선대표님의 지난 흔적에는 각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으로부터 애틋한 시선이 싹텄음을 이제서야 알립니다.

6. 북콘서트 취재영상

https://youtu.be/EtvjoIRwdKY

‘아무노래‘ 1.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운명들*...

‘아무노래‘

1.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운명들*이 대부분이다.(1표) 평균이상의 젊고먹고사는데 걱정없는 개인의 자유를 주창한 이들(2표) 같이 살고 나눌 수 있다는 앎을 잃지 않는 (3표). 이렇게 세상은 6표다. 2표는 주어를 먼저 이야기하고 3표는 대동세상을 꿈꾸고 1표는 주위를 맴도는 동사와 형용사, 그리고 부사의 끄트머리에서야 너를 눈치챌 수 있다. 한 수의 뒷 길을 알 수 없다. 2표와 3표는 4(사)표로 이어져 버린다.

2. [ ] 괄호. 또는 X의 철학***. 서로주체**는 주체를 주장하기에 자신을 잃어버린다. 공ㆍ동ㆍ체도 주어를 지향하기에 역시 자신도 놓친다.

3. 기다릴 수 없다. 유보란 있을 수 없다. 지금 그대로 남아야 하는 것이다. ‘숨‘은 이표와 삼표 그 합인 ‘사표‘에 남아있을 수 없다.

4. 살되 살지 않은 연은 이 그물에 칭칭 매여져있은 연유는 아닐까.

5. 붙어사는 생명에 대한 애도.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과도함. 학문은 불사르고 서로 사는 생(來)학만 온전한 [ ].

희망포차에서

* 오승은, 《동유럽 근현대사》
** 김상봉, 《서로 주체성의 이념》
*** 《x의 존재론을 되묻다》

발.

소식이 궁금했는데 후학분들이 작심하고 출간한 듯 싶다. 괄호에는 양심*이나 인정**이나 연민***이나 행복****이나 끊임없이 복수개념이나 일상을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싶다. 답답해서 지금여기와 가까워지고 싶은지도. 지적욕망마저도 이렇게 가까왔는지도

*김동규(멜랑콜리아)
** 악셀 호네트
*** 누스바움

‘마음‘ 내가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외려 나를 품...

‘마음‘

내가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외려 나를 품고 있으니
그 품을
넓혀 봄이 어떠냐*고

신은 있다없다의
이분법의 틀에
갇히는 건 아니니**

있는 자는 없애고
없는 자는
있어보는 셈치자고

그러다보니
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면
악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슬며시 내려놓을 수 밖에

이렇게
연습해보는 것이다.

* 김현승, 《마지막 지상》‘마음의 새 봄‘
** 《재신론》
*** 프루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