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김 -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림에 푹 빠져지는 나날. 수성싸인펜화를 그리는 동영상을 보는 와중에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새긴다'는 표현이 들어와 가슴 가까이 머물고 있다. 또 다른 하나. 새롭게 탄생할 그림을 위하여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이다. 새기거나 낳는 과정이라는 것이 그리워한다는 한정된 인식에서 벗어나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2. - 그림만큼 솔직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몸의 각인을 거쳐 손끝에 다시 살아나는 일. 잎새 하나 하나는 그리는 일은 잎을 만드는 일과 흡사하다. 결을 따라 마음을 조심스레 주고 난 뒤라 그 형상이 다가온다. 온전히 몸으로 겪어내는 일. 자전거를 배울 무렵 몇미터...몇 미터...어느 순간 뒤에서 밀어주지 않아도 손을 놓았다는 것을 잊은 채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잘하는 것보다 꾸준함, 성실함이 이 방면의 계명인 것을 이제서야 느낀다. 묵묵히 나아가는 일. 가슴과 마음을 담는 일은 무엇보다 몸이 견디고 나아가는 만큼임을 새삼 짚게 된다.

 

 

3. 문턱 - 대상을 달리해 그리다보면 아직 느낌이 살지 않는다. 소묘와 채색이 차이, 드로잉과 인물, 인체 모두 다르게 다가오고 어렵다. 공통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턱을 느낀다. 어렵게 어렵게 가다보면 그 문턱을 넘어서는 지점. 너머에 대한 갈망이 생겨난다. 또한 퇴행에 대한 두려움도 같이 스민다. 불화를 겪고 있다는 것. 긴장을 하고 있다는 건  어쩌면 몸의 또 다른 경련이자 시작인지 모르겠다.

 

 

 

볕뉘. 수채, 채색  유투브 동영상에 빠져있는 나날이다. 조금씩 조금씩 달라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는 듯하다. 그래도 직접 배우는 것을 코어로 해서 조금 조금 살을 붙여나가고 있다. 경계를 무디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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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안개가 걷힐 듯
햇살에 도망가듯 잡혀

안개에 잠길 듯
고개마저 떨군 채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내 앞에선
흐린 바다
네 앞에선
흐린 하늘

뚝뚝 흘린 노란 빚방울

네거리
하체가 치여
두 발을 끌고
두 팔로 허둥거리는 고양이

안개의 도시
안개의 낮과 밤

안개에 잊혀가는 도시
안개에도 살아내는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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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느림 - 풍경을 담는 시간. 그 틈이 있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다. 가벼운 책들만 챙긴 멜 가방하나. 저녁에 출발한 기차는 밤이 깊어 시집 몇권을 축내고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까운 숙소를 검색하다 게스트하우스 4인실을 예약했는데, 어쩌다보니 독채로 쓴다. 새벽 동천을 거닐다. 거닐고 담고, 담고 거닐고 흐린 날 무채색의 쑥빛의 강가가 순조롭다 싶다. 그렇게 거닐다. 장미같은 흰 꽃들이 유난히 골목골목 많다. 무엇일까. 무슨 꽃일까. 피어나는 순결한 꽃들과 무딘 노랑으로 떨어진 꽃그늘들. 작기도 하고, 줄기로 뻗어올린 나무에도 색이 농도를 달리하며 한 나무에 피어난다. 피어진다.

 

 

 

2. 자전거 - 흐린 하늘이 그래도 안심이어서 자전거를 빌린다. 이것저것 등록절차가 번거롭지만 끝을 본다. 얻은 자전거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 페달 한쪽은 반틈이 없고 뻑뻑한 발힘. 근육의 약간이 통증을 주면서 나아간다. 서걱거린다. 부딪힌다. 바람결은 달려오는 소리와 강가에 들려오는 소리가 부딪친다. 순간순간 아련하다. 그렇게 꽃길을 돌고 걷고 걷고 건다. 갈대와 부들이 분간이 되지 않는 풀숲. 풀숲을 뉘이는 바람.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풀볕. 정신없이 꽃숲을 헤치다 문학관을 생각해내었다. 지근거리라 여기고 페달을 밟다. 길도 없고 이정표도 사라지고 한참을 우회한 뒤에서야 갈 곳의 입구다.

 

 

 

3. 숲길 - 허기가 진다. 갈대숲은 안개처럼 짙다. 길과 숲이 구별이 되지 않는다. 숲과 강의 색깔도 겹쳐있다. 한참을 돌고 나서야,  무딘 노랑이 허기로 신호를 보내고 나서야  제자리다.

 

 

 

'무진'은 사람들의 일상성의 배후, 안개에 휩싸인 채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상상의 공간이며, 일상에 빠져듦으로써 상처를  잊으려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강요하는 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괴로운 도시이다.

 

이 소도시의 특징은 거기에 신기루처럼 떠다니는 나른함과 몽롱함이다. 도시를 둘러싸는 안개와 해풍 속에 미립자처럼 섞여서 사람들의 폐부로 들어오는 수면제에 취해서 사람들은 무진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땅 위에 세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곤한 낮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 두 손아귀에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움켜잡지 못하는 것과 흡사한, 삶에 대한 무력감이다.

 

이 방죽길 위에서 " 이 작품은 나의 생애 중에서 가장 슬픈 시절에 쓴 작품이다. 아직도 이 방죽길이 이야기가 된다면...그것은 그 문장에 스며든 슬픔의 힘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 김훈 -

 

 

 

4. 치자 -  슬픔처럼 아린 무딘 노랑과 해맑고 순결한 흰꽃. 치자꽃의 읍내를 누빈다. 아침에 만난 그길. 다시 만난 실개천. 그리고 또 다시 본 그 길. 시장길. 어느 새 익숙해져 버린 도시. 완만히 흐르는 동천. 밤빛. 불빛. 몇번을 더 거닐어야 될 듯 싶다. 밀려내려가는 강 길. 강가의 강보다 넓은 갈대의 부산함. 그 소리들이 여운처럼 짙다. 그 풀빛이 마음에 남아돈다. 새벽 작은 기차에 몸을 싣다. 밀려오는 안개를 등뒤에 두고 온다. 바다로 천천히 흐르도록 둔다.  앞으로 난 철로. 그 길로 또 다른 강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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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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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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