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기대의 심리학 - 잘못된 기대로 힘들어하는 12가지 이유 

선안남, 2010. 

  


  결론이란 생각하기에 지친 지점이다.

                                    - 마틴 피셔

 

  그러고보니, 어떤 회의에서는 지쳐서 ‘이만 결론내자’고 외친 적이 있다.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없이 지친 지점에 이르러 결론이 난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결론에 대한 만족감이란, 그리 높지 않다. 처음 시작할 땐 분명 최고의 결론을 이끌어 내리라 생각했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대란, 기대하고 있는 그 순간의 만족감은 높을지언정 기대하는 바가 추구하는 종착역에서 늘 만족감을 최대로 높여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희망없는 나날을 견딤에 기대가 이끄는 공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기대란, 나에게나 타인에게나 같은 무게를 달고 오는 것이 아닐까.

  기대의 심리학은 자신에 대한 스스로와 타인의 기대가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익숙하게 얘기되는 것처럼 그 기대로 인한 긍정적,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다룬다. 피그말리온 효과나 아틀라스증후군, 피터팬 증후군이 이 기대와 연결되어 있음 또한 설명한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희망적이고 교훈적이다. 이 메시지는 발전을 거듭해 개인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과 절망의 시대에 좋은 것을 기대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기대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리리’는 메시지는 지금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의지와 에너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효과에도 맹점은 있다.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그들의 성취에 압박을 주고, 기대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를 넘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들은 긍정과 부정을 안고 있다. 그것이 발현되는 방식에 따라 긍정이냐 부정이냐의 결과가 나타나겠지만 사람들은 부정적 효과를 더 염려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처럼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결과에 따라 그 효용성이 가려질 것만 같은 기대가 그 과정에도 부정성을 한껏 안고 있다는 것도 안다. 타인의 기대에 의해 더욱 더 가해지는 부담감이 그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또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기에 느끼는 부담은 크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기대에서 비롯된다. 꿈꾸는 것은 좋지만 마구 달려나가는 비현실적인 기대 하나가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버린다.

  저자는 그렇기에 기대에 합리와 현실을 주문한다. 타인이 던지는 기대에 부합하려 발버둥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힘겨움의 이유 속에 들어찬 기대에 대해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친 기대라는 것을, 비현실적인 것임을 안다한들 “오우, 그건 이뤄질 가능성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더, 더, 더 노력해보겠습니다”가 해야 할 말이고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 사회는 보여준다. 생각보다 오로지 나 자신을 인식하고 산다는 건, 어렵다. 그럴 수 있었다면 애당초 타인의 기대 때문에 힘들 일이 무엇 있었겠는가.

  이 책에서 할애하는 많은 부분은 타인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느라 힘들어하는 나에 대한 것이 주다. 그로 인한 다양한 문제점들과 빠져버리게 되는 오류들을 실제 사례와 임상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겪고 있는 모습들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못함에서, 인식이 재빨리 전환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이론이든 경험이든 이런 글들을 통해 더더 깨우치고 느끼면서 변화할 수 있기를 노력해봐야 하는 것인지도.

  그런데 타인의 기대로 인해 힘든 것과 더불어 이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충족되지 못해 힘든 경우도 많다. 사회는 더불어 사는 것이니까. 이때의 기대란 사회가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마땅한 상식과 정의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공동체적 질서와 가치,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인간존중을 지켜 가리라는 기대 말이다. 그래서 지난 겨울엔 이런 기대로 희망에 부풀었을 테고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날이 사그라진다는 것은 또 얼마만큼의 좌절을 안겨줄까. 이런 기대로 인한 힘겨움 역시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수용하면 되는 것일까. 묻혀두었던 일들이 하나씩 끄집어 나오는데도 도로 들어가버리는 분위기가, 그것들만을 공고하게 묶으며 감싸는 분위가가 얼마나 강했고, 얼마나 강한지를 새삼 느끼며 이것은 과연 잘못된 기대인가를 묻게 된다. 좀더 현실적인 기대로 합리적인 수준으로 그 기대를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그 수준은, 그 기준은 얼마만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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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자와 비판자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저, 고즈윈.


  눈치를 본다는 건 흔히들 말하는 한가지만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여러 의미를 말해 준다. 나약하고 부족한 자아를 눈치의 표상으로 보통 얘기하지만 세심하고 배려심이 많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또한 눈치없다는 말은 타박으로 주로 사용되느니만큼 센스있음을 위한 전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눈치를 본다’는 건 그리 유쾌한 상황과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란 부제가 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발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항상 불안하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처방전처럼 이야기를 펼친다. 인간관계는 누구나 어려운 것이며 그 이유에 대해 찾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불안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유아적 의존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그 해결책은 내재된 의존욕구를 파악하며 자신과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자주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나를 사랑하는 일,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이라면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잘 아는 데서 시작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60개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 것이나 타인에게 헌신적으로 대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이 ‘불만투성이’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유아적 욕구를 억누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많은 애로사항은 결국 내면아이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의 일정 부분들이 이 책을 지탱하는 기본이다.

  결국 유아기 때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욕구들이 성인이 되어서 ‘자아’를 뚫고 나와서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인데, 심술궂고 미성숙한 어린 나의 모습들이 지금 불완전한 생각들 때문에 힘겨워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거듭 말한다. 얼핏 인지는 하면서도 실제 생활을 하면서는 늘 까먹게 되는 마음속 깊은 유아적 의존 행동들. 뒤돌아서는 후회하고 답답해하면서도 사실, 쉽게 그 마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심리학책을 백번 읽은들 머릿속에서는 알고 있지만 마음에서 아이가 튀어나와 버리는 일이 빠를 때도 있으니까. 어쩌면 더 깊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진정 떨쳐내지 못했을 지 모를 일이고. 인간의 마음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이해자와 비판자가 순서를 무시해서일지도. 이해자와 비판자가 적절하게 나오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나의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핵심요소이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부끄럼을 잘 타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최악의 비평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마음이 성장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자상한 이해자가 존재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비판자가 등장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자상한 이해자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비판자를 만나게 되면 마음이 파괴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잃게 되고 스스로를 비판하게 되어 모든 일에 지나치게 부끄럼을 타게 된다.


  이런 저런 상황에 대해 심리학적 접근은 항상 재미있다. 이 책 역시 쉽고 간편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용실에 가득한 잡지에서 자주 보는 심리학테스트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사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일깨우고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들인데도 가볍게 여겨지고 가뿐하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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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거짓말을 해봐!


거짓말의 심리학 - CIA 거짓말 수사 베테랑이 전수하는 거짓말 간파하는 법


필립 휴스턴, 마이클 플로이드, 수잔 카니세로, 돈 테넌트 지음/박인균 옮김, 추수밭, 2013..


   상대방의 몸짓에서 거짓말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의 대화는 상대방을 예의 주시하면서 이뤄지지는 않는 까닭에 행동에서 나타나는 메지시를 간과하기 쉽다.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 눈에 띌 수 있겠지만 다르다는 것을 알아낼지언정 그 세세한 의미를 간파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호기심은 알고 싶다고 계속 신호를 보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전직 CIA 거짓말 탐지 조사관들이 조사와 심문경험을 바탕으로 한 거짓말 탐지 방법을 소개한다.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그들의 경험과 경력에 기대어 증폭하는데, 여러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조사의 방법들이 결국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니만큼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요즘은 원체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몇가지 방법들을 작 숙지하고 있다면 사기꾼들의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뉴스들은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황당한 사기와 술수들이 넘쳐나는데 그렇기에 속인 자들보다 ‘어떻게 속아 넘어가는가’ 하면서 속은 자들에 더욱 놀랄 때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충분히 그럴 요인들에 대해서도 속속 설명하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당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심리학을 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재밌고 유용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론과 적용이 따로 놀아서 그렇지…. 정권에서 국민세금을 동원하며 인력을 동원하며 했다는 활동, 인터넷상에서 판치는 댓글부대들은 ‘심리전단’이다. 앞선 정권이 공권력으로 기가 찰 수준으로 활동해 왔음이 증거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행한 일들도 드러나고 있다. “논두렁 시계’…국정원, 더 치명적 프레임 위해 심리학자들 동원”. 가장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행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을 동원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히틀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니 리펜슈탈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괴벨스를 통해 선전 또한 극대화하는데 몰두한 히틀러 역시 온갖 선전전을 동원했고 그 선전술에 심리학을 동원했다.

 

악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거짓말을 더 능숙하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좋다. 거짓을 탐지하는 우리의 방법론은 인간이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반응을 통해 나타나는 특정 행동을 최소화하거나 없앨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행동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 듯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우려를 안다는 듯 쓰고 있다. 이 문장에 웃음이 났다. 동원되지 않고 이용당하지 않을 심리에 관해서도 물론 분석되고 있다. 어쨌든 ‘거짓말’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결국 이러한 노하우를 안다는 것은 사물을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당장은 대화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서 뭐해 할 지 모르지만 생각을 확장시키는데도 필요한 일이다. 마냥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게 될지도. 인터넷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실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있지만 그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결국 그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 되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이니까. 언제든 내 판단력을 조금 믿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일도 좋을 수도.

  한편으론 이렇게 거짓말을 판별하는 법까지 배워야 하나 싶다. 산다는 건 참으로 복잡하고 씁쓸한 일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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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안다는 것


바다생물 이름 풀이사전-생명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이름들 

박수현, 지성사, 2008-04-25.


  “집채보다도 더 큰 고래가 헤엄쳐 다닌다는 바다”

  『요람기』속 아이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다엔 거대한 생물들이 살고 있고 고래가 뭍으로 올라와 소원을 가져다주는 구슬을 내밀거라고. 용의 아들 포뢰처럼 고래를 보고 놀라 울지 않고 고래입으로 걸어 들어가 뱃속을 탐험할 거라고 말이다. 물에 빠져 떠밀려간 기억에 깊은 물이면 공포를 느끼면서도 바다 깊은 곳에 대한 환상과 신비는 여전했다. 바다 세계를 탐험하고픈 꿈을 늘 가진 채 아이는 어른이 되어 뭍으로 떠밀려온 거대한 고래나 심해어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거봐, 엄청나게 크잖아! 나를 만나려고 왔나 봐.”

  아니다. 이건 어린 아이의 말이다. 이제 커버린 나는 해안에서 죽거나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심해어나 고래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우와, 저 밍크고래 발견한 사람 좋겠다. 저게 얼마라고?” 그때, 입안에 회를 자근자근 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횟집에서 무심하게 메뉴판을 고르는 어른의 나를 아이의 모습으로 돌려주었다. 식탁에 놓인 ‘모듬회’ 접시가 아니라 바다를 유영하는 생물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이름을 불러보고 싶게 만들어 주었다.『바다생물 이름 풀이 사전』. 친구의 이름을 알고 싶어하듯 펼친 이 책은 그저 바다생물에 관한 정보와 지식만이 아니라 이름에 가득한 신화와 동화적 상상력까지 되살려 주었다. 아이가 꿈꾸었던 바다속 환상을 눈앞에 펼쳐주었다. 고래뱃속을 탐험하고 팠던 것처럼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언젠간 스킨 스쿠버를 해보리라는 꿈을 갖게 해주었다.

  이 책에선 108개의 부를 수 있는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어류, 연체동물, 절지동물, 자포동물, 극피동물, 포유동물, 해조류, 파충류 등으로 나누어 바다 생물들의 이름과 어원, 생태적 특성 뿐 아니라 신화와 전설을 소개하며 낯선 생물들을 친숙하게 만들어 준다. 선조들이 남긴 어류도감뿐 아니라 많은 문헌에서 어류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내어 지식과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바다세계를 1,900번이 넘게 탐험했다는 저자의 사진을 통해 한번도 본적 없는 화려한 바다생물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떤 생선은 ‘어’자가 어떤 생선은 ‘치’자가 붙는 것이 비늘 유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말미잘, 산호, 해파리, 히드라 같은 생물들을 가시가 있는 세포란 의미의 ‘자포’동물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자주 먹던 홍합이 먼 바다로 나간 배에 딸려 왔던 외래종 진주담치에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조들은 해삼과 굴을 바다의 삼, 바다의 우유라고 했는데 현대 과학자들이 실제 그 성분을 추출해낸 것을 보면서 다시금 선조들의 지식과 통찰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재밌는 이름도 있다. 나폴레옹 피시와 말미잘이 그렇다. 이 물고기는 농어목 놀래기과에 속하는데 2미터에 200킬로그램이 넘을 정도로 크다. 그런데 어쩌다가 나폴레옹이란 이름을 획득했을까. 절대 물고기 전쟁의 강자여서가 아니라 외양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물고기가 성장하면서 이마에 혹이 튀어나오는데 이 모양이 나폴레옹의 ‘모자’를 닮아서라나. 나폴레옹이 아니라 나폴레옹 모자를 닮은 이 물고기는 태평양 지방 원주민들에겐 의식의 제물로 사용되어 왔다고도 한다. 말미잘은 정약용의『자산어보』에 따르면 항문을 닮아 미주알이라 표기하고 있다.

  미주알은 ‘구멍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사람에 비유하기 곤란하거나 다소 큰 것을 가리킬 때 ‘말’이라는 접사를 붙였다. 항문을 뜻하는 미주알과 말이 합쳐져 말미주알에서 말미잘로 전해졌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말미잘을 본 적은 없지만 이 어원을 떠올리며 항문을 생각하게 될 텐데 그런데 서양사람들은 다르다. 서양에서는 이 말미잘을 시아네모네(Sea Anemone)라고 부른단다. 바다의 아네모네라는 뜻이다. 같은 생물을 보면서도 누군가는 항문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봄에 잠깐 피었다 바람에 지는 아네모네’를 생각했다니 얼마나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과 눈이 다른가. 단지 말미잘뿐만이 아니라 바다생물의 이름에는 각 나라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각 나라가 처한 상황과 생물의 유용성에 따라 생물의 이름뿐 아니라 그 생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것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생물에 인간은 ‘인간’의 시각에서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하지만 생물의 특성을 잘 관찰하여 그 특성을 잘 가려내어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면서도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수많은 포획으로 멸종이 되어가는 생물은 협정을 통해 보호종으로 지정하여 포획하지 않는 방법으로 말이다.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인간 역시도 생존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인류가 지속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 가고 있다. 절대로 ‘창꼬치 증후군’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규칙이나 관습을 고수하는 경향을 창꼬치 증후군이라 한다. 창꼬치가 수족관 유리벽이 있는 줄 모르고 작은 물고기를 공격하다 실패하자 유리벽을 치워도 변화를 알지 못한 채 물고기를 바라만 보는 데서 붙인 말이라고 한다. 기후변화와 지각변동으로 점점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 이 변화 속에서 생태계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의 하나가 다양한 생물들에 관한 이름을 알아가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름을 안다는 것, 그것은 그 생물의 특성을 안다는 것이기도 하다. 생물의 특성을 안다는 것은 고유한 특성을 해치지 않고 보호·유지하며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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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순례가 아프다


순례자 O Diario de um Mago,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06.


  순례가 시작했다. 흘끗 지나며 보다가 왜 겨울 풍경이 나타나지? 의문이 들었다. 또 흘끗, 종교적 의미의 순례가 아니라 유목민의 이동 이야기인 모양인데 순례라는 제목을 지은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했다.

  다른 일을 하면서 한참 파업 중인 KBS의 다큐를 틀어놓고 맞닥뜨린 몇 개의 생각 때문에 난 내 머리를 쥐어박아야 했다. 무엇보다 ‘순례’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이슬람교의 메카로 향하는 순례를 먼저 떠올렸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대표적 순례지인 산티아고는 다음으로 생각했다. 순례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한정하고 있었던 것인지 특정 종교와 장소만을 떠올렸기에 눈내리는 산풍경을 보고 갸우뚱하며 뒤늦게야 내 생각의 오류를 알아차렸다. 마냥 종교적 의미로 순례를 생각하지 않기에 언제고 산티아고 순례는 가리라 하면서도 일단은 제한적인 생각에 머물렀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이런 일들이 많을까…….

  어쨌든 처음부터 다시 순례를 보았다. 눈내리는 히말라야의 풍경과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이 유목민의 이동이 아니라 순례 행렬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인도 라다크 지역의 소녀의 순례기는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순례 여행을 폭발적으로 이끈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의 느낌과는 달랐다. 파울로 코엘료 소설은 종교적 색채를 바탕으로 한 신비와 환상과 몽환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소설적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이제 발을 뗀 것을 알 수 있는 정도였다. 파울로 코엘료가 걸어간 순례 여행의 경험을 토대로 쓴 원제목이 『동방박사의 일기』인 만큼 좀더 종교적이고 사실 명상 수련의 느낌이 강했다. 또 얼핏 자기계발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서는 신과 인간에 대한 물음이 계속되었다면 쏘남 왕모의 순례에서는 종교적인 느낌이나 영적 탐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종교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 여행과는 전혀 다른 순례 행렬의 가장 나이 어린 참가자인 소녀 쏘남 왕모의 ‘패트 야트라’를 따라갔다.

  ‘패트 야트라’는 인도 불교의 한 종파인 드루크파의 수행 중 하나이다. 발의 여정이라는 뜻으로 강이 얼어붙는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해발 5,200M 잘룽카포 산을 넘어가는 순례 여행이다. 18일의 여정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걷는 이 순례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기도할 시간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파울로 코엘료의 산티아고 순례 여정보다 짧은 여정이지만 화면으로 직접 봐서인지 이제 중학생 소녀가 견디기엔 너무 힘들어보였다. 무엇보다 너무 추워보였고 어깨를 멘 짐이 너무 무거워보였다. 그들은, 그러니까 승려들은 그 길을 가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걸을까.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며 진리를 깨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중을 구원하는 대승 불교와 개인의 수양에 중심을 두는 소승불교로 나뉜다 배운 기억이 있는데 종교적인 수행의 여정에서 각 개인들이 찾고자 하는 진리가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들이 고행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여정을 보면서 당연 궁금해 했다. 어쩜 그 궁금증은 내가 저 길을 걷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을까, 어떤 생각들에 몰입되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인지도 몰랐다. 왕모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저 따라 걷는다고 했다. 목적지가 어딘지 상관없고 길을 걷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까. 여정을 함께 하는 도반은 왕모에게 ‘패트 야트라’에서 필요한 세가가 인내와 인내와 인내라고 말한다.

  이제 출가한지 한달된 왕모를 승려로 바라보지 않고 ‘소녀’로 보는 나 때문에 이 순례의 여정은 연민의 눈길로 쫓아가게 되었다. 종교적 신념에 가득차서, 종교에 매혹된 소녀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지 몰랐다. 다른 선택의 길이 있었다면 왕모가 출가를 결심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난한 가정의 첫째 딸이기에 왕모는 출가한다. 영어를 좋아하고 많은 나라를 다녀보고픈 소녀의 꿈은 가난이라는 단어 앞에서 다른 선택을 불허한다. 배우고픈 마음에 도시로 나가 다른 집의 가정부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려 하지만 일만 하느라 친구들이 고등학생인데 여전히 중학과정인 왕모. 5km를 걸어 학교를 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데 그 소녀는 이제 없다. 동생들을 돌보며 웃던 소녀는 인생의 고행을 헤쳐 나가는 야무진 승려의 모습으로 전진하고 있다. 그 모습은 시종일관 아프게 다가왔다. 슬픈 게 아니라 아팠다. 

  배움도 삶도 의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불교 지역이 아니었다면 다른 종교를 선택했을까. 자주 들어왔던 말이다. 왕모의 어머니가 하는 말, “나처럼 살지 않기를.” 적어도 어머니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인가.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왕모의 모습이다. 승려의 삶은 어머니의 삶과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가족 누구도 기뻐할 수 없는 축복할 수 없는 왕모와 같은 아이들의 선택이 얼마나 많이 이뤄지고 있을지, 그들은 행복한지가 궁금했다. 가난하다는 건 늘 선택보다 포기하는 삶을 가르친다. 꿈을 정말 꿈으로만 만든다. 이룰 수 없는 꿈, 상상만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꿈.

  한시간의 화면으로 왕모를 보건대 인내와 인내와 인내로 그 삶을 견디어 갈 것을 안다. 험난한 자연환경을 견뎌야 하기에 고행인 순례길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순례라고 왕모가 말한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넓은 길을 걷든 좁은 길을 걷든 살아있는 날들은 순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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