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방치된 믿음 - 무속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
이성원.손영하.이서현 지음 / 바다출판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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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은 종교인가

 

방치된 믿음, 이성원, 손영하, 이서현, 바다출판사, 2025.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가, 그래서 사람을 안달하게 한다. 불안과 희망 속에서 욕망과 바람을 조금이라도 확고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보다 눈에 잡히는 인생을 살아가고픈 이들이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믿는것이다.

   사람을 믿는 것, 신을 믿는 것, 신을 대리한다는 이를 믿는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 이상하게 견고한 믿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무속. 사회면에서 주로 다뤄지거나 연예면의 주요 콘텐츠이기도 하다. 물론, ‘정치면을 휩쓸고 있기도 하다.

   사회면에서 보게 되는 무속은 무속인이라 불리는 이들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에 무속인은 는 사라지고 속인의 대표가 된다. 속이는 사람. 그리하여 무속인은 한편으로는 사기꾼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무속인의 인기는 대단하다. 새해가 되면 일상적으로 무속인을 찾고 일상의 변화가 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무속인을 찾는다. 아니, 아무 일이 없어도 무속인을 찾는다. 무슨 일이 있을까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찾아오게 될 노화나 질병이 그즈음이 아니라 언제오는 지도 운명의 상대가 언제오는지, ‘누구인지 이런 것들을 알고자 하는데 무속인은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이 책은 기자들이 파헤치는 무속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무당이라고 해야 하나. 이 책의 저자인 3인의 기자는 최근 10년 동안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 무속 관련 범죄 판결문을 분석하여 무속인에게 입은 피해자의 사연을 들여다본다. 실제 피해자들과의 사연은 대부분 비슷한데, 무당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피해자들을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여 돈과 사람을 착취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도 있고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가해자로서 보다 시원하게 법적 처벌을 받는 무당의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유는?

 

무속 범죄에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법원이 굿 같은 무속 행위에 대해 결과로 판단하기보다는,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주는 행위로 봤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실제 굿이 치러지거나 무속인이 신도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는 증거가 있다면 죄가 없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재판부가 인정하는 통상적 종교 행위의 범위가 모호하기에 유무죄 판단이 엇갈리기도 했다. 법원은 굿을 비롯한 무속 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 무교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경신연합회에 자문을 구할 때가 있다. 그러나 무속 신앙은 율법과 교리가 없다는 점이 특징이기에 적법이나 위법이냐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할 수 없다.

 

   법적인 다툼이 있었는데,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라고 볼 수 있을까? 무속인이 행한 행위가 결과가 예상한 바와 다르다고 할지라도 마음의 위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행위와 금액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경우가 있고, 무속인 본인의 역량과 상관없이 무속의 결과를 과장하여 무속행위를 유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속인 본인의 역량. 신내림을 받았다고 하는 무속인도 끊임없이 나타나고 연예인이 무속인이 된 사례로 연예면에서 제법 보았다. 이쯤되면 무속인의 지위는 어떻게 탄생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들이 실제 만난 무속인과의 인터뷰를 보면, 무당은 산에도 있지만 도시에 많다. 무속인이라면 당연 신당’, 점집을 차리는 줄 았는데 이 책을 통해 수행하는 무속인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화는 있어서 강남 지역에 신당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논현동의 무당들은 신당 표시를 하지 않고 입소문으로 고소득이나 권력층 손님들을 받고 있으며, MZ 무당은 카카오톡과 유튜브 등을 중점으로 고객을 포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를 통해 이뤄지는 콘텐츠 속에도 가스라이팅이나 거짓의 형태를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일상화되고 확대되고 있는 무속시장이 창출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무속의 존재이유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속은 종교일까? 잘 모르겠다. 오락? 무속을 단순한 오락으로 치부하며 소비할 수 있을까. 단순한 오락이 주는 문제가 병폐수준으로 지속되고 있는데, ‘무속을 소비하면서도 그 무속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경하기 이를데 없는데, 무속이 뒷골목 깡패처럼 군림하고 계속 그렇게 나아간다면 무속은 늘 어두울 수밖에 없다.

   무속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전무하다. 무속인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고 신고가 필수가 아니기에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점집을 운영하는 무속인도 많지 않다고 한다. 또한, 정부의 종교지원 사업 지원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한다. 물론, 공식적인 지원이야 받지 않고, 뒤로~ 그렇게 해쳐먹는 경우가 있기도 했겠지만…….

   기자들이 만난 무속인여성 무당은 해방된 첫 번째 여성이라고 주장한 자도 있고, ‘올바른 무당이라면 고통받는 이들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 경우도 있다.

 

채 씨는 신병을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연결해 해석하기도 했다. 그는 신병은 영적인 몸이 영적 창의력에 굶주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는다며 자신처럼 1940년생 여성들은 억압적인 유교 사회에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당은 모든 전통적인 규칙과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며 여성 무당이야말로 진정으로 해방된 첫 번째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올바른 무당이라면 고통받는 이들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정 씨(‘나라 만신김금화 수제자. 민중 무당)의 생각이다. “무당은 하늘에서 선택받았기에 사람들의 고통과 고민을 해결하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행이 충분하면 신이 무서워서라도 나쁜 짓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신은 무정하고 배려와 용서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무속은 다른 종교와 달리 제도적이지 않다. 그러나 무속인은 실제 무속행위를 통해 소득을 벌고, 이러한 행위가 사기가 아니라 직업으로 인정되는 무속인 범죄 사건을 보면, 무속이 더 이상 어두운 형태로 시장을 형성하고 사회에서 성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이 부르짖듯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무속이 제도화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무속인들은 무속인 인증 자격제도입을 얘기한다고 하는데, 다른 종교들이 제도적으로 편입되어 무속범죄와 같은 일들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무속도 이와 같은 정도의 정리는 필요할 듯하다. 더불어, ‘믿음과 절대적 이라는 단어로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모든 종교의 사악한행위들이 정리되고 그 위상 또한 합리적인 수준으로 격하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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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 이주헌 미술 에세이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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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퍽한 삶을 넘어서서

 

아름답지 않은 삶도 명작이 된다, 이주헌, 쌤앤파커스, 2025.

 

 

  어릴 적엔 그런 꿈을 꾸기도 했다. 남들보다 일찍 죽기를. 이왕이면 청춘. , 조건은 그냥 그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 무엇으로든 무엇이 되었든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삶으로 일찍’. 그때의 삶은 화려하기보다는 몹시도 질척였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정녕 질풍노도의 시기 반항의 또다른 표현이 아니었던가 싶다.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마냥 세상을 치켜뜨고 바라보던 그때의. 그때 훗날의 세상은 너무도 멀리만 보여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고 그렇기에 집착이나 애착도 쉬이 잡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살아온 세상을 생각하는 날이 더 많은 시점에서는 다른 꿈을 꾼다. 삶이 명작이고픈 마음은 그래도 늘 있었던 듯하지만 반항과 욕심을 걷어내고 반추하는 오늘의 나는 세상에서 한번은 어떡하든 쨍하게 해뜨는 경험은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부르짖는다. 늘 허겁지겁하고 푹푹 발이 빠지는 것과 같은 삶은 더 이상 그만하고 싶다고. 남은 길은 어떡하든 꽃길만 가득하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그렇듯…….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에는 아름답지 않은 삶의 기준은 무언가, 저자가 생각하는 관점은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삶’, ‘아름답지 않은 삶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림 속의 이야기일지, 그림을 그린 작가의 삶인지도 궁금했는데 결국 작가의 생애는 그림과 완전히 뗄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스물 다섯 명의 화가의 삶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우리의 삶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들의 내면은 어떠했으며 그들은 어떨 때 행복하였는지, 어떻게 그리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 그들이 살아간 시대는 어떠했는지, 그들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의미는 어떠한 순수로 귀결되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아련해진다. ‘아름답지 않은 삶이라는 제목처럼 화가들의 삶에 드리워진 굴곡이 참 많다 싶다. 예술가에게는 마치 그것이 예술의 혼을 불사르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명작에 대한 열망과 현실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에 대한 욕구는 또한 다른 것이니까. 명작으로 그것이 등가되는 것은 아니니까.

  사랑, 이별, 소외, 외로움, 괴로움, 가난, 질병, 죽음 등은 우리네 삶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다. 우리가 겨우 눈을 뜨고 한숨을 쉬며 일터로 나아가 어떤 날은 영혼을 담아 어떤 날은 영혼을 가출하며 일을 하듯 이들 화가들도 삶의 과정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들이 그림을 그릴 때 거기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그림에 대한 생각이 담긴다.

여러 화가들 중에서 강렬한 색채로 각인된 앙리 마티스의 말이 이 책 전체를 통틀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는 한 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하나의 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면, 아니 예민한 감수성이 방법의 도움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인생은 얼마나 괴롭겠나. 나는 완전히 흔들리겠지만, 생각해보면 평생을 살아오면서 안 그런 적이 없었지. 절망의 순간에 이어 행복한 계시의 순간이 찾아온다네. 그런 계시 덕분에 나는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이뤄내지.‘

 

  스물 다섯 명의 화가. 시작도 끝도 다르게 흘러가는 각자의 삶에서, 결국 어떠한 삶이었든 그들은 그들이 남긴 그림과 함께 기억된다. 화가의 생애를 조금 알게 되면 그림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고, 화가의 삶에 애도하게 되기도 한다. 화가들이 시대를 반영하여 그림을 그리고, 또한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그림의 소재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화가들의 생애와 그림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그림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찌했든 그림에 대해 무지한 나는 이 느껴지는 그림에 보다 집중하게 될 터이지만, 그림 속에 담겨진 다른 이야기들을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리고 앞서 보다 꽃길만 가득한 아름다운 삶을 현실적으로 바라고 있긴 하지만, 이들 예술가들에게 있어 절망의 순간을 넘어 찾아 온 행복한 계시의 순간은 정녕 꽃길이지 않을까 싶다.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 삶이 이다지도 질퍽질퍽하고 있지만 순수한 감수성으로 조금 휘청하다 이성을 넘어서확고하게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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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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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일까

 


어떤 동사의 멸종-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시대의창, 2024-06-17.

 


  우리에게 아름다움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니까

  광고를 듣다가 모든 동사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는 세상을 떠올렸다. 단어 하나에 책제목이 연상되어 참으로 쓸데없이 이어지는 잡다한 생각들.

  이 책은 네 가지 직업에 대한 저자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콜센터 상담원,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뷔페식당 주방, 빌딩 청소원을 저자는 각각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라는 동사로 이야기한다. 무수한 직업 중 위 네 가지 직업을 경험한 것은 우연은 아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일하는 이야기를 쓰기위해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사라져가는 직업들의 비망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대규모 단종이 예고된 인간의 노동이라는 카메라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보려 한다. 인간에게는 특정한 노동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 노동의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고통과 욕망을, 그것들의 색깔, 냄새, 맛까지 전부 기록하고 싶다.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AI 노동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일찌감치 고효율을 따지며 동사 형태가 더 어울리는 노동은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고 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사무직 노동이 AI로 대체되고 것이 더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여러 보고서를 인용하여 AI로 대체될 확률이 높은 직업을 표시하고 있는데, 저자가 참고한 보고가 다소 오래된 자료인만큼 책이 출간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떤 대체확률이 높은 직업의 순위는 또 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이 네 개의 노동을 통해서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는 특정한 종류의 인간 특성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완성되어갔을까. ’직장‘, ’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특징을 생각하더라도, 이 직업군이 속한 에 대한 보도는 긍정적인 내용들이 없었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 외에 가해지는 특성이 이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 직업들은 사라진다는 동사에 아주 걸맞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현장 경험은 생생하기에 왜 이 직업의 대체확률이 높은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콜센터 상담원은 사라져야 할 직업이라고 꼽고 있다.

 

돼지의 배설물은 따뜻한 물과 비누만 있으면 씻어낼 수 있지만 점잖은 사람들이 입으로 쏟아놓는 오물은 1, 2년이 지나도 말끔히 사라지는 법이 없고 갑자기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 와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그러나, 택배 상하차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소위 까대기업무를 하는 사람 중에서 우울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얘기에 갸웃한다. 어떤 일터의 분위기가 문제인건가. 사람이, 문제인 건가. ’점잖은 사람들이 입으로 쏟아놓는 오물‘! 점잖은 척하면서 쏟아놓는 오물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결국 직업이라는 종류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는 존재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사람을, 직업으로 상하를 나누며 나는 보다 너라는 사람이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우월감. 다른 사람을 낯추며 본인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그런 사람‘. ’그런 인간

 

  최근 흑백요리사의 열풍으로 요리‘, ’셰프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다. 과거에는 식당 아줌마‘, ’밥 해주는 사람정도로 인식되던 요리사셰프라는 외국어로 명명하면서 다르게 인식되고 대우받고 있다. 한편으로 그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힘들고 고된 일이라 이야기한다. 특정한 몇 명만이 열광적인 지지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 그거야 어디든 무엇이든 그렇지 않겠냐마는, 결국 의 좋고 나쁨이란 그 일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아닌가. 직업의 세계에 귀천이 있음을 제도와 인식이 강화하며, 오로지 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런 인간들이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아름답지 않고 천한것으로 취급하는 한, 달라지지 않을 이 노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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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의 구멍가게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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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조금새끼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 남해의봄날, 2020-06-15.


 

  문득, 눈을 떠보니 목련이 절정이었다. 벚꽃은 꽃망울이 나뭇가지에 몽울몽울 모여 준비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제 피려 한다. 어제 내린 비가 멈추고 햇살은 어제보다 더 따스해졌고 어김없이 봄은, 와 있다. 내가 더디게 느꼈을 뿐. 2026년도 벌써 3월 중순이 한참 지나있으니 짧게 피고 지는 꽃들처럼 어김없이 봄도 금세 지나갈 테다. 늦게 느낀 만큼 이 봄은 얼마나 짧게 느껴지려나.

예전엔 해가 바뀌기만 해도 겨울보다 봄이 더 가깝게 느껴졌는데, 2월이면 아, 봄이다! 하고 외쳤더랬는데 계절의 변화가 쉬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나의 변화때문인건가. 봄이 느껴지는 봄비와 봄꽃. 목련이 활짝 피었을 때마다 와 있는 봄을 알지 못하고 올해는 이렇게 시간이 흘렀고, 문득 이 책의 그림들이 생각났다.

  전국 구멍가게의 풍경을 그린 동전 하나로도 따뜻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처럼 이 책 또한 전국의 또다른 구멍가게를 그렸다. 여기서 그린이란 실제로 그림으로 그렸다는 말이다. 책 속에 가득한 목련 나무와 벚꽃 나무나 눈길을 끌고 마음을 이끄는 책이다. 대부분의 구멍가게 앞에서는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나무들 대부분이 목련이나 벚꽃 나무다. 그리하여 봄의 느낌이 강한 책이다. 우리집 구멍가게에도 목련이나 벚꽃나무가 있었더라면, 아니 다른 나무라도 있었더라면 이 구멍가게 속에 그림으로 남았으려나……. 아무튼 출판사도 남해의 봄날이라서인지 봄날이면 떠오르는 책.



  구멍가게 2탄격인 이 책을 보며, 전국에 이렇게 많은 구멍가게가 있었나 생각했다. 어쩌면 한번쯤 지나쳤을지 모르는 구멍가게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진 구멍가게의 모습은 그 주변 풍경과 더불어 정겹고도 쓸쓸하다. 작는 구멍가게가 낯설지 않아서 정겹고, 언제 이 가게가 문을 닫을지 몰라 쓸쓸한. ‘오늘도 문을 연구멍가게들. 풍경뿐만 아니라 구멍가게의 이야기도 귀기울여 본다. 어찌어찌해도 세상은 변하고 구멍가게도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지금은 사라진 마을 앞 째보선장이 고깃배와 어부로 북적였을 때, 가난한 뱃사람들이 바다로 나가면 동네 아낙네들은 공장에서 벽돌을 만들며 남정네들을 기다렸습니다. 고기가 안 잡히는 조금 때가 되면 어부들은 잠시 집으로 왔다 다시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러고 나면 아낙네들의 배가 점점 불러 오고 열달 후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이 아이들을 조금새끼라고 부른다 하네요. 꽃 같은 나이에 혼인해 바닷물보다 짜디짠 세월 속에 주름진 얼굴과 굽은 허리를 얻은 할머니들이 바닷가 산비탈에 의지해서 살고 있습니다.

 

   바닷가 마을 전남 목포의 온금슈퍼 속에서는 조금새끼라는 단어를 만난다.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면 바닷가 마을은 아주 북적였을 듯. 생각해보면 조금새끼는 2002년의 월드컵 베이비와 같다. 비록 그 단어 속의 정서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말이다. 조금새끼는 목포 바닷가의 고즈넉함과 짠기가 그득하다. 하지만 월드컵베이비는 케이크의 단 맛이 그득하다. 그런 느낌이다. 어느 순간 똑같은 간판 몇 개 수백개 즐비한 편의점처럼 줄지어 선 조각 케이크 같다고나 할까. 너무 달아서 머리가 울릴 정도인.

  내 눈 앞에는 편의점이 수두룩하지만 이 봄날에는 저자가 그린 슈퍼를 찾아가 보고 싶다. 인스턴트 정형화된 틀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 한아름 품고 있는 그런 곳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문을 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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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숲은 어디로 갔을까
김덕일 지음 / 상상창작소 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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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크툼

 

사라진 숲은 어디로 갔을까, 김덕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한없이 아득하다’. 위에서 무언가를 보는 일은 잦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벅찬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공간과 시각의 한계로 사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 풍경에 넋을 잃으면서 너무 크고 넓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주 작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풍경을 보기 위해 왜 그토록 위로 오르고 싶은지를 알게 한다.

  그럴진대, 사선이 아니라 정면으로 풍경을 내려다보는 맛은 어떨까. 들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늘에 누워 아래를 바라볼 때 보이는 그 풍경. 비행기에서 창문으로 보는 것이나 높은 곳에서 내 눈 아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는 광경.

  이 책은 그러한 풍경을 보여준다. 내가 보지 못한 시선의 풍경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작가가 드론으로 찍은 숲의 풍경이 담긴 책이다. 작가는 '새의 눈(버드 아이 뷰)'라고 표현한다. 책을 펼치면 숲이 풍경보다 무덤이 더 도드라지게 보인다. 이쯤 재목이 사라진 숲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난 신문기사 속 무덤 사진을 보고 이 책을 찾았으니, 왜 제목이 무덤이 아니지라는 생각을 더 했고 숲보다 많은, 숲이든 땅이든 어느 곳에든 자리한 무덤 사진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렇다. 책에는 삶의 가까이에 있는 무덤 사진이 많은데 작가는 사진을 찍다보니 이곳이 숲이 있었을 장소인데 싶었고, 숲이 어디로 갔는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경작지가 늘어가는 것 또한 숲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지만, 경작지에 있는 무덤은 숲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작지의 한 부부처럼 느껴진다. 경작지든 경작지에 있는 무덤이든 숲을 사라지게 하는 것들이긴 할 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홀로 남겨진 시간을 맞이한다. 사라지는 숲과 어느새 잊힌 추모의 파편 사이에서 무심한 자연의 흔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흔적에 발을 딛고 있으면 평행선처럼 맞물릴 수 없는 감각의 표상이 머릿속에 맴돈다. 숲이 묘를 만들고, 묘는 더 이상 사람들이 파헤칠 수 없는 일정한 지대를 만든다. 그 구역을 따라 뻗어가는 사선들과 불규칙한 굴곡의 이끌림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그 앞에 앉아, 또는 그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며 맞닿을 수 없는 시간을 사색한다.

 


  작가는 전북 고창의 풍경을 주로 담았다. 이 지역은 옛 삼한의 모로비리국이라나. 숲이나 들판의 고인돌뿐만 아니라 붉은 황토밭 사이에 자리한 무덤 사진. 붉은 황토밭, 아직 무언가를 심어놓기 전 갈린 붉은 황토밭 한켠에 자리한 묘를 보고 있으면 묘라기보다는 그냥 밭의 한부분으로만 생각된다. 무덤은 산 속에나 자리하는 것만 같았는데 옛 고인돌이나 무덤을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황토밭, 경작지 속의 묘지는 묘하게 이질적이지 않다. 차라리 어느 산 속에서 마주한 웃고 있는, 스마일 스티커와 같이 보이는 무덤이 더 이질적이라고 해야 할까. 넓은 경작이 한켠, 묘의 풍경이 스마일 모양으로 여겨지는 건 작가가 버드 아이 뷰로 찍었기에 볼 수 있는 이미지일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심스럽고 무서움을 주는 무덤이 아니긴 한데, 붉은 황토밭 속의 무덤은 그 붉은 색깔 때문인지 더더욱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왜인지 숲에 있을 때보다 더더욱 무덤으로 인식된다고 할까. 숲속에 초록색과 익숙하거나 겨울의 메마른 숲 속에 희미하거 푸석한 모습이 익숙해서 몰랐던 너무나 또렷한 경계. 붉게 테두리쳐 놓은 듯한 저,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공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공간.

과거와 미래의 공간. 하늘과 땅의 공간. 선주민과 미래 주민의 공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공간. 가시적이지만 비가시적인 세계.

그래서 한쪽을 더 자세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

 

  

  이러한 사진집을 내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무덤 사진 외에 개간으로 황폐한 산의 모습 또한 담겨 있다싱크홀처럼 초록색이 뭉텅 비어버린 산숲의 모습그러나 산은숲은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치유력으로 오랜 시간 동안 그 푸르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이러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파괴한 산의 모습을 통해 숲의산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끔 하려는 것이다작가는 미래 세대에 빌려온 자연을 어떻게 돌려줘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 기록을 했다고 얘기한다.


 

새의 눈으로 사람들의 숲을 본다. 숲이 사라지는 대신 경작지는 늘어만 간다. 늘어난 경작지만큼 숲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이곳도, 도시도, 경제적 경작지는 늘어만 가는데 그 빌딩 숲에서 신선한 바람은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은 바람과 숲의 동무였는데

 


  이 책 속에서 명징하게 살아남은 말은 푼크툼(punctum)’이다. 이 말은 롤랑 바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사진을 감상할 때,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마다 사진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나의 푼크툼은 처음 적은 그 느낌처럼 아득하다’, 그리고 슬프다’. 숲에 자리한 무덤, 경작지 그리고 또렷한 무덤의 경계, 그건 숲의 파괴인 걸까. 인간과 자연은 대립인가,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인가.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산의 숲의 무너짐과 회복을 보고 있는 저 무덤은 생명력이 있는 건가.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난다는 것은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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