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 후쿠시마가 전하는 원전의 진실과 미래를 위한 제안 생각하는 돌 5
다쿠키 요시미쓰 지음, 윤수정 옮김 / 돌베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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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여러 사람들과 영화관에서 모여서 같이 봐야 하는 영화다.


 최근 영화를 방영해주는 방송사가 늘어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혼자 보는 영화'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영화는 여럿이서 같이 보아야 더욱 실감이 난다. 어느 광고에서 그렇게 말했듯이 깔깔 웃으면서 뒷좌석을 뻥뻥 차고 몸짓 발짓으로 생쇼를 해도 괜찮은 영화관은 없다. 영화관도 일종의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야 한다. 사회적 가치관에 묶여있다고 봐도 될 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원 이상의 돈을 내면서 굳이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최대한 큰 스크린과 성대한 음향효과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고,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시사회부터 먼저 맛보려는 영화 얼리어답터들도 있고, 맘에 드는 감독이라던가 배우가 출연했을 경우 관객수를 한 명이라도 더 늘려서 그 영화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회참여의 의미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어있는 것을 더러 보려는 심술궂은 마음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서 카트가 그렇다. 그런 종류의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일부러 좌석을 휙 돌아본다. 나 말고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까, 관객 수는 얼마나 될까 유추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이 후쿠시마의 미래도 그런 경우이다. 혹시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전국적으로 소정의 증정품 그리고 다과와 함께 무료로 상영해주는 상영회를 찾으시길 바란다.

 

 

2. 후쿠시마의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일본 전역 중 후쿠시마와 가까운 지방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라고 해야 맞겠지만.)은 자신들의 악몽같은 삶을 '스트레스'라는 문자로 압축한다. 그들에게는 최근 쓰나미, 지진,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삼중고가 한꺼번에 닥쳤다. 일본 언론에서도 잘 방영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삶을 이 영화는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나레이션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와닿는 건 피난민과의 인터뷰 중 '스트레스'라는 단어 한 마디였다. 인터뷰에 응한 이는 옛날에 어부로 일했다고 하는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었는데, 방사능이 자신이 일터인 인근 바다에 퍼진 이후로 조업을 금지당했다. 그에게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어부로 일하더라도 자신이 잡는 물고기가 '오염물' 취급당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아직도 재난민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지 않고 있으며, 협동조합이나 일부 자선가들이 기부하는 생필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멍한 표정은 동정을 넘어 일종의 공포를 자아낸다. 그의 내부에서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은 치명상을 입은지 오래였고, 심지어는 존재감조차 부옇게 보였다. 이어지는 전문가의 인터뷰. 그는 자신들이 망가져가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지녀온 모든 특성들이 부서지고 있다고 하소연하며, '끔찍한 생각만 들어 매우 두렵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내고 있다.

 

3. 이런 상황이니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전부터 아이들의 먹거리와 교육에 특히 깐깐했던 일본의 어머니들은 이제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자신들이 평상시 다니던 산책로, 아이들이 뛰놀았던 놀이터를 일일히 측정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그에 대한 효과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버섯이나 키가 큰 나무 등에서 방사능 측정치가 유달리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이전에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잠깐 거론되었던 검은 먼지는 가로수길의 작은 관상용 나무를 뒤덮고 있다가 이 어머니들에게 발견되었다.

 
 이제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일본에서도 옛말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의 어머니들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정부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선포한다. 여전히 그들은 일본 특유의 조용하고 날카로운 권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시청으로 가서 방사능의 위험 수치를 재설정해 달라고 권유하는 어머니 대표는 다소 험상궂기까지 하며, 일본 국회를 포위하는 100만명의 일본 시민들은 자못 시끄러운 음악과 큰 소리를 내며 후쿠시마에 아직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대피할 것을' 종용한다. 폐를 끼칠까 항시 조심하는 그들의 문화를 그들이 스스로 깨고 있다.

 

 

4. 후쿠시마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그들 중 17명은 체르노빌로 여행을 떠난다.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기 이전, 체르노빌에서도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도시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보고 싶었다. 체르노빌이 폭발했어도 그럭저럭 생존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비록 일본과는 거리가 꽤 떨어진 나라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 장소와 그 사람들의 운명이 자신들의 미래라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들도 이후에 괜찮아질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연히 그 희망은 산산히 부서졌다.

 

 늘상 단체여행을 가면 그러하듯이, 체르노빌에서도 그들은 사진을 찍으며 연신 감탄하기 바쁘다. 하지만 그들이 찍는 풍경은 황폐해지다 못해 그로테스크해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주변 폐가의 모습이다. 게다가 그들이 여행에서 항상 자신의 옆에 가지고 다니는 게 있으니,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노란 방사능 측정기이다. 체르노빌에 진입했을 때 유달리 경고음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다시 함성을 지른다. 그러나 그 함성은 감탄사라기보다는 경악에 가까웠다. 그들은 현실도피를 하거나 반복되는 일상의 피로를 풀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직시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겪는 걸 감수하더라도 현실에 대해 올바로 알기 위해, 그동안 무심하게 지구의 자원을 낭비해왔던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영화 속 일본 사람들에게나 관객들에게서나 그 사실을 실시간으로 인지시켜주고 있는 게 바로 방사능 측정기의 날카로운 기계음이다. 

 

 

 5. 사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는 이 영화 속에 들어 있다. 아무리 언론에서 한국의 신생아 수가 급감하고 있다고 소란을 부리더라도 어차피 주변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은 많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도 많더라. 난 이왕 내 아이에게 투자하기도 벅찰 정도로 박봉인 인생, 절약하고 저축해서 그 아이들에게 투자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는 후쿠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기 전엔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 일이었다. 상당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나 생각도 보수적인 나로서는 녹색당 당원이 되는 것조차도 상당히 '좌파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바다 어딘가에 방사능이 집적된 곳이 상당하다는 뉴스를 보고서 생각을 더욱 진보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남자친구도 아마 일본에 친한 선배가 없었더라면 내 생각에 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남자친구는 선배가 후쿠시마에서 꽤 먼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도감도 잠시, 그 선배가 연락을 잠시 끊었을 때 남자친구는 걱정에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선배가 먼저 연락을 함으로서 연락이 이어질 수 있었는데, 그 선배의 말로는 '심한 두통을 느껴서' 겁을 먹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고 한다. 영화에선 체르노빌 사건 이후 피폭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강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코바린 마을이 등장한다. 그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두통'을 겪어서 잠시 책상에 엎드린 적이 있는 아이들이 60%를 넘는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학교는 어느 정도 북한 학교 느낌마저 감도는 딱딱한 분위기였으며, 아이들은 몸이 아파서 수업을 듣지 못하는 자신들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듯했다. 땡땡이를 칠 수 있는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6.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이 산간지방인 데다가 땅도 조그만 우리나라는 몇 기만 지어도 핵발전소 밀집지역이 된다. 게다가 몇몇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우리는 남한과 북한으로 구분되어 있다. 위험지역을 완전히 벗어나려면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이미 세계 어디에서도 처리할 수 없다는 핵폐기물이 경주에 쌓이고 있다. 문무대왕의 안부는 둘째치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후쿠시마 사건 피폭 지역 주민은 말한다. 각자 살 길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고. 

 

 이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4년 11월호' 리뷰에서 말했듯이 나는 '올바른 소비'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돈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데도 중요하지만, 선물해도 적당하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데 그보다 더 좋은 물품은 없으며 내 가치관을 표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금은 녹색당 당원이 되어 당이 활동할 기금을 달마다 내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보다 더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설계하고 있는 몇 가지 계획 중 하나는 내 월급 10분의 1을 환경을 위해 쓰는 것이다. (생협 회원이 되거나 야채 꾸러미를 사는 등.) 사실 교회가 나라를 뒤덮고 있고 개신교가 공공장소를 마음껏 활보하는 상황에서 난 '10분의 1은 환경에 투자하는 켐페인'같은 게 아주 적극적이고 대중적이기까지 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개신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거액의 돈을 교회에 바쳐서 정신적인 안식을 얻느니 차라리 사회에 더 효과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언가에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사실 전세계 사람들이 자기 월급의 10분의 1을 환경보존에 쓴다면 당장 오늘서부터라도 환경재난은 일어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내가 독선적이고 독재주의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일단 자유도 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있을 때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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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 일반판 (2disc)
부지영 감독, 염정아 외 출연 / 에이스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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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좀 위험한 드립을 치자면 이 영화의 명장면 카트라이더(...)는 마지막에 나온다.

 사실 몇몇 마트들이 이것 때문에 저 은색 카트를 내구성 좀 더 약한 플라스틱 카트로 만들었다 카더라(...)

 

 영화의 반응은 상당히 싱거운 편이다. 난 처음에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흥행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확 피부에 와닿았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절대 상업영화가 될 수 없었음을.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나라가 원하는 현실도피성 이야기를 절대 그려내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애니메이션 계의 우로부치 겐급 각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회사는 절대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고 비웃음과 여성노동자들이 상처받을 만한 말만 골라 하면서 노동조합 사람들을 감방으로 정규직으로 차례차례 보내버리는데, 노동자들은 너무 순박해빠져서 저항하지도 못하고 때리면 맞고 끌어가면 끌려가기만 한다. 영화 막판에 카트 끌고 경찰들과 물대포의 포위를 뚫는 장면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설령 그들이 영화 속에서 마트를 뚫고 달려나간들, 마트 기물을 몇 개 부순들, 실상 그들의 가난한 일생에는 별반 변하는 게 없음을 영화 맨 마지막의 자막이 명확히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떤 미국의 대학교에서 한 '멸종' 위기에 있는 인디언이 강당에 섰다. 그는 백인이 아메리카 땅을 '발견'하기 전에 자신과 자신의 조상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백인들이 어떻게 그들을 멸종 위기에까지 몰아넣었는지, 자신의 부족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매우 차분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에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연민을 느껴 그와 그의 부족들을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아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별별 해결책을 다 제안해도 인디언이 거절하자 그 학생들은 되려 분노하기 시작하고, 이번엔 그 인디언이 왜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자신들에게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끝까지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은 동정을 구걸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라고.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홈에버 노동조합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복직을 포기하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강제해고된 사람들을 모두 복직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들도 처음에 해고되었을 땐 복직하여 인간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의욕과 희망을 가지고 노조에 가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경을 겪으며 그들의 마음은 멸종 위기에 있는 인디언과도 같은 마음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대게 서브컬쳐들은 지지 않는 마음과 의욕, 사랑만 있으면 모두 이루어질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보된' 기업들은 언뜻 보면 따뜻해보이는 바람으로 그 촉촉한 감정을 싸그리 말라붙게 만든다. 그 과정은 영화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에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 영화에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까지 있어왔던 사실들을 쭉 나열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과 맞서 싸우는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다. 근데 각색된 영화던 다큐멘터리이던 꼭 등장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투쟁하는 주인공의 '가족들'이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서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꼭 그렇게 잘되리라는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슬슬 가족이 덫이 되는 장면이 카트의 명장면이다. 제일 먼저 홈에버의 노조 개념을 주장하던 문정희 역의 '싱글맘'은 아이를 노조 천막으로 데리고 나오다가 그 아이마저 잃어버릴 뻔하자 변심한다. 길게 말은 하지 않지만, 다른 회사에서도 정규직 노조를 만들려던 경험이 있었던데다 이혼까지 겹쳐 힘든 여정을 겪은 듯하다. 염정아가 맡은 '두 아이의 엄마'는 그나마 카트에서 정상적인 가족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건축일로 집에 멀리 떨어진 상황이라 그녀가 해고당하고 노조에 가입한 일을 일체 모르고 있다. 고등학생 아이가 걱정하고 있는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내가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보겠다'라는 말을 꺼내지만, 그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를 이해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나오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 고등학생 아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머니가 노조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고 사회의 쓴맛에 대해서 알게 되는 장면이 또 하나의 재미다. 편의점 점주가 약속한 알바비를 쌩까먹기 위해 푼돈을 주고 일부러 큰소리를 치면서 남자아이를 내쫓는데, 연기가 압권이었다(...). 평소에 버럭하는 성격이 있는 그도 점주가 쌍욕을 하면서 눈을 뒤집고 덤벼들자 공포심을 느꼈는지 한 마디도 못하고 물러나온다. 그래서 같이 알바하던 여친이 편의점에 돌멩이 던져서 깨뜨리는데 점주가 미친듯이 달려들어서 남자주인공을 유리파편에 내팽개치고 막 치는 거임. 레알 사회의 쓴맛이 거의 내여귀 동인지 200일 전쟁 수준이었음;;; 그 때부터 남자주인공이 여자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서 간 처음부터 끝까지 지가 했다고 거짓말 했는데 레알 꼬맹이로만 보이던 것이 남자로 보이면서 개씁쓸해짐... ㅠㅠ 거짓말하면서 어른이 되는 거냐...

 

 혹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임금 제대로 못 받고 내쫓긴 분이 있다면 청년유니온에 연락해보시길. 거기서 노무사도 연결해주고 왠만한 일은 무료로 처리해준다.

 

 

 

이전에 일베를 들어갔을 땐 자신들을 '저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저렴한 인력'이라 자랑했던 인간들이 일부 있었는데, 지금은 그들마저 일베에서 축소되고 말았다. 일베하는 사람들 중 부자들이 자신의 비싼 스포츠카나 시계를 사진으로 찍어서 인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수치심 느낄 필요가 없다. 이 영화를 느끼면서 거리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아무리 이런 영화들이 씁쓸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고, 물건 값은 오르고 있고, 최저임금은 거의 제자리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보니 꿈을 꾸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결국 영화를 포함한 서브컬쳐는 싫던 좋던 점점 실용주의 계열로 갈 것이라 본다. 기술로 꿈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꿈을 소비할 자원을 얻는 덴 한계가 있다. 수치심 따위 좀 벗어던지자. 현실을 먼저 인식해야 판타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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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마와리와 나의 7일
히라마츠 에미코 감독, 나카타니 미키 외 출연 / 하은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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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영화는 히마와리라는 유기견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끼 때부터 몸이 병약했던 히마와리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밀쳐져서 젖도 못 먹고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해서,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유달리 손을 많이 썼다. 그런 탓인지 형제들은 차례대로 분양되지만 히마와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남는다. 그나마 히마와리의 어머니도 덩치 큰 사냥개에게 물려죽어, 주인들은 정말 열심히 그녀를 키운다. 하지만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요양소에 맡겨지는데, 히마와리는 할아버지를 찾으러 집에서 도망치지만 그 넓은 일본 열도에서 찾을 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이전에 살던 집도 헐리고 히마와리는 떠돌이 들개 신세로 전락한다. 수컷 떠돌이 개를 만나 강아지도 세 마리나 낳게 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는 이 세상은 히마와리에게 너무나 각박하고 차갑다. 결국 마지막 희망인 농가로 내려오지만 거기에서도 '논밭을 못 쓰게 만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결국 주민들은 보건소에 들개를 잡아달라고 신고하기에 이른다.

 

 

2. 보건소 직원인 주인공도 이 각박하고 차가운 세상에 적응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일하던 동물원이 문을 닫은지 8년이 되었고,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지는 5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하고 싶은 일도, 같이 살고 싶은 사람도 잃어버렸다는 데 완전히 적응이 되진 못한다. '보건소에 온지 일주일이 지난 개들을 죽여야 하는' 자신의 일에 분노를 느끼지만 그나마 그게 동물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라는 데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유기견을 맡아 기를 수 있는 집을 최대한 열심히 찾아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개의 수명을 일주일 더 늘렸다가 들키면 보건소 소장에게 꾸짖음을 당하니, 스트레스는 쌓일대로 쌓인다.

 

 

3. 몇몇 배우들이 대사를 국어책 읽듯이 읊조려서 그렇지 주인공의 연기는 상당히 좋았다. 동물과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정확히 던지고 있었다. 또한 연기 속에서 그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개를 만난 인간이 성장하는 내용을 담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히마와리는 동물을 사랑하는 주인공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주제였다. 히마와리는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로서 철저히 자신을 강하게 어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인간에게서 겪었던 박해때문에 인간에게 마음을 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추운 철창 우리에 새끼들과 같이 갖혀있어야 했다. 결국 한파 속에서 새끼 한 마리를 잃자 남은 새끼들이라도 지켜야겠다는 그녀의 절박함은 더해졌다.

 

 다행히 히마와리가 새끼들을 워낙에 잘 키운 탓에 그들은 일주일 내에 상당히 기운차고 통통하게 자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새끼들만 데려가려 하고 히마와리는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 보건소 소장이 난폭한 들개를 죽이지 않은 것도 모자라 처분 기간을 늦춘 것에 굉장히 화를 냈고, 히마와리가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증이 있어야 보건소에서 내보낼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너무나 속상해서 국회의원이 있는 앞에서 소장에게 화를 내지만, 히마와리가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자신과 다른 인간들의 어리숙함 때문에 히마와리가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없다. 그는 히마와리가 처분되기 전 며칠간 히마와리와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으며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건다.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빈다. 과연 히마와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온정을 기억하고 그와 다른 인간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4. 국회의원은 히마와리가 죽기 직전에 그를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히마와리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배우들은 죄다 국어책 읽듯이 연기했고, 히마와리는 마취하지 않았는데도 비틀비틀거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약에 취한 연기를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인간보다 개를 더 돋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내 말투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실 이 영화는 그렇게 해서 히마와리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다. 처음에 히마와리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다 보여줘서, 인간들이 말하는 떠돌이 들개가 사실 태어날 때부터 들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에 힘입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야성의 부름에서 주인공 개 벅은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야성을 일깨워 늑대의 무리 속에 섞여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히마와리도 결국 생존에 성공하지만, 이 녀석은 짖지도 않고 물지도 않는 '온순한 개'가 되어 인간에게 복종하는 길을 택한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에 대해서 우리 인간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각각 얻는 게 있고 잃는 게 있기 때문이다. 벅이 안락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사냥꾼의 총 앞에 마주서는 위험을 무릅쓰게 되었다면, 히마와리는 새끼들의 목숨을 보장받고 새끼들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주인공을 새 주인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들개들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일단 개들의 대다수는 사냥견이 아닌 이상에야 자연의 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종족들이다. 그 개들이 멀쩡히 살아가려면, 인간과의 동거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인간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여러가지 사정으로 길을 잃었거나 버려진 개들은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그들은 보호소의 차가운 창살 아래서 떨면서 기나긴 일주일을 보낸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카메라는 최대한 몸을 낮추어 히마와리의 얼굴을 정면에서 담는다. 변화하는 히마와리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담기 위해서다. 히마와리와 나의 7일이 히트를 친 이유는 단지 카메라의 낮은 시선 그 하나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영화답게 참 쓸데없는 대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그러나 히마와리는 그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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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화 씬 시티는 폭력과 섹스를 잘 조화시켜 느와르의 극한을 달림으로서 딱히 인간의 내장이라던가 기타 고어 장치를 시시콜콜 늘어놓지 않고서도 말초적인 흥분을 제공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그리고 영화 씬 시티가 원작을 200% 살린 영화로서 단연 돋보이는 이유는 색감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 난 씬 시티 원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씬 시티가 만화같다고 인식했다. 흑백 대비가 심각할 정도인 이 만화를 감독이 어떻게 해결을 했는지 아는가? 아예 흑백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피의 빨간색과 금발머리라던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색을 중간에 등장시키는 과감함을 보였다. 아예 인물을 실루엣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림처럼 표현한 장면도 있다. 고어와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아름다운'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씬 시티 1탄을 예술영화 취급한다. 난 그걸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씬시티 팬 중 한 명이다. 일단 사람들이 가장 불편해했던 게 엔딩크레딧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만 없으면 스토리가 강물처럼 줄줄 흘러가는 지라 스토리가 금방 모여 옴니버스 구성을 이룬다. 그러나 1탄이 상영되었던 2005년은 블루레이라던가 감독판이 대중들에게 생소하게 들렸던 때인지라, 그렇게 이 영화는 난해한 영화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2탄은 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가한 듯하다. 일단 팜므파탈로 등장하는 에바 그린 포스터가 그렇다. 왠만하면 선정성은 눈감아주는 미국에서조차 가슴골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인다고 포스터가 금지당했다(...)

 

 

또한 만화에서의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 철저히 팜므파탈 스타일을 강조했다. 사실 만화에서 보이는 에바는 단발머리에, 두꺼운 화장만 아니면 항시 침착한 얼굴이라 부잣집 마나님같이 보이는 인상인데 말이다. 아무튼 영화의 에바 그린도 이쁘므로 나쁘지 않다. (응?)

 
 아무튼 씬 시티 인물들 중에서도 이 여자가 워낙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다보니 (심지어 연기까지 잘함.) 2탄의 중심은 그녀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을 수렁에 빠뜨려 명성을 얻어가던 중 부잣집 남자를 틀어쥐었지만, 갑자기 시장님과 경찰들이 바 뒷구석에서 포커치기 바쁘고 폭력이 난무하는 씬 시티에서 '남자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옛 애인 중 하나였던 드와이트와 그 친구를 이용하여 부잣집 남자마저 살해하고, 매력적인 과부로 이미지를 바꾼다. 그러나 드와이트와 그 친구를 제거하는 데 실패하여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으로 또다시 어느 풋내기 남형사를 지목한다. 남자로 남자를 막으려는 그녀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2. 자칭 로맨티스트인 나쁜 남자(...) 드와이트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인 마브의 활약이 너무나 눈부신 나머지 가려질 뻔한 캐릭터가 있다. 바로 마법같은 손놀림으로 사람을 온통 홀리며, 겁대가리도 없는 겜블러 조니이다. 그 유명한 조셉 고든 레빗을 이 작품으로 인해 보게 되다니 영광이다. 다친 연기를 상당히 잘 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철렁했다. 씬 시티 시장에게 겜블러로서 한 번 우승하고 나서 왼손이 완전히 꺾여버리는데, 왼손을 적당히 부들부들 떨면서 절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신체 건장한 남자 배우가 부상당한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줘야 하는 건 쉽지 않은데, 특히 할리우드 배우같은 경우는 더하다. 어딘가에선 반드시 멀쩡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전에 토르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예수 역할을 했던 영화에서도 그랬고.) 그러나 이 배우는 정말 길 잃은 새끼새마냥 보여 보는 사람에게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씬 시티 시장이 인정하지 않는 아들에다가, 어머니가 마음 여린 창녀라는 캐릭터 설정도 그렇다. 결국 시장에 의해 제거당하지만 포커로 시장에게 항거하려는 그의 아이디어는 상당히 기발했다. 사실 씬 시티에서 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상당히 아쉬울 정도다. 널 잊지 않으마 ㅠㅠ

 3. 한가지 맘에 안 드는 건 씬시티 1탄에서 죽은 하티건이 왜 유령으로 다시 등장해서 낸시 곁에서 맴도냐는 거다;;; 시장이 거울에서 하티건을 보고 멍 때리는 장면에서는 무슨 공포영화 보는 줄? 씬 시티에 한 번 들어간 사람은 귀신이 되서도 못 벗어난다는 거냐? 어차피 스토리 상의 내용이 맘에 안 드는 것 뿐이지 영화는 상관없으므로 점수에 반영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드와이트가 우유부단한데다 천하의 바람둥이라서 이 녀석이 중심인물이 되면 스토리가 개판이 되기 때문인가. 아무튼 하티건은 유령이라 낸시가 알콜중독에 걸려도, 방황을 해도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게다가 복수심에 불탄 낸시는 사람까지 죽이고 말았다. 앞으로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영화로 끝까지 지켜보고 싶지만, 씬 시티가 9년걸려 2탄을 낸지라 그 다음 시리즈를 영화로 방영하려면 또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게다가 2탄이 흥해야 그 다음 영화들도 계속 낼 수 있을텐데 이런 흥행이라면 금방 적자가 될 판이다. (이걸 보러 영화관에 갔더니 관객이 나 혼자밖에 없더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니 아무래도 원작 만화책을 사야만 할 것 같다. 마침 인터파크에서 1~7권 묶음으로 30% 세일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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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라이즈 비니스 - 할인행사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해리슨 포드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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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반전이 설정되어서 그랬으려니 생각했지만 여자주인공이 과거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연회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던가, 크리스탈 잔을 깨뜨렸다던가, 그대로 시속 60마일로 차를 몰다 들이받았다던가 하는 것들이 대화 속에서 암시될 뿐이다. 난 이 영화가 끝까지 이 여주인공의 시점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여주인공의 흑역사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쨌던 이 여자는 신경이 약간 불안정하다는 걸 관객들은 직시해야 한다. 1인칭 시점은 소설이던 영화던 언제나 눈속임과 거짓말이 존재한다. 심지어 욕실 바닥에 놓여진 수건에까지도 의심의 시선을 던져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스포일러부터 질러야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볼 사람은 이후의 내용을 읽지 않으면 된다.

 

 2. 평화로워 보이는 가정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묻혀 있는가. 교수인 남편의 정부다. 그녀는 하룻밤의 정사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는 교수에 의해 살해당해 호수 바닥에 묻혀 있었다. 그녀가 연약한 여대생이었다는 설정은 단지 우연히 짜맞춰진 게 아닐 것이다. 이미 자본주의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착취한다.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조건이 자원이고, 그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이상 우리는 누군가를 깔아뭉갠 뒤 그 위에 집을 지어 살아야 그 기득권 내에 들어갈 수가 있다. 교수의 아내로서 거의 매일 열리는 연회 속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여자주인공은 처음엔 유령의 정체에 대해 헛다리를 짚는다. 그러나 똑똑한 남자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게 바로 오지랖 넓은 여자다. 그녀는 결국 이성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편견으로선 극복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하기 위해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든다. 다행히 그녀의 옆엔 그녀와 같이 오지랖이 넓은, 하지만 똑똑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유령에게 대화를 해보라 조언한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여자주인공은 이에 용기를 내서 남편 정부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까지 갔다오기도 한다.

 

3. 그러나 결국 그들은 교류할 수 없는 존재였다. 유령퇴치에만 골몰하기 시작하는 남편을 희생양으로 바치고 사건이 종결되었기에 망정이다. 근본적으로 철이 없는 이 교수의 아내는 남편이 베일을 벗기 직전까지도 유령의 메시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이 유령이 남편과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공포감과 남편이 자신 몰래 바람을 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표류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물쇠가 고장난 문을 포함하여 영화의 모든 장치들이 그녀에게 도망치라 설득하지만 그녀는 마치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집에 머물 뿐이다. 처음부터 교수 부인이 아니라 교수만을 노리고 있던 유령이 차라리 그녀보다 더 현명하다 할 수 있겠다. 창문과 문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물과 무의식을 연결시킨 것도 그렇고, 감독은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의 틀 안에 들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영화나 인디영화가 점점 발달하여 관객들의 입맛이 고급으로 진화함으로 인해 이 영화는 더욱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4. 그러나 나는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라 추천해주고 싶다. 28주후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다니고, 급기야는 스티븐 킹의 셀처럼 전파까지 사용하는 좀비들이 나타나고 있는 시대이다. 단지 나타남으로서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혼란감을 주는 유령은 드물다. 괜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영화가 아니다. 한 번 감상함으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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