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매튜 본 감독, 콜린 퍼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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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겉으로는 007같은 고전적 스파이 영화를 표방하지만 이 킹스맨은 마치 '마이 페어 레이디'같은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얼마나 이에 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느냐면, 첫번째 사진에 나오는 이 아저씨가 악당과 대화를 나눌 때 두 번씩이나 007 영화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리고 '마이 페어 레이디' 영화를 언급한 사람은 주인공 에그시이다. 영화에서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건 또 처음이다. 그리고 매트릭스(에그시와 가젤의 대결)에다가 샤이닝(에그시 엄마가 화장실 문 부수는 장면) 패러디까지 아주 대놓고 가져다 붙이니, 실소가 나온다. 액션 처리 수준에 감독이 그 매슈 본인 데서 이미 B급 영화는 아니지만, B급 영화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영화의 뻔뻔스러운 요소는 사실 이 두가지 말고도 더 있는데, 스파이명에 영국의 기사 칭호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게 다 킹스맨의 중심인 아서가 귀족을 편애하기 때문이다'라고 변명하면서 넘어가는 구석이 있다. 의외에도 영화 설정이라고 은근슬쩍 설명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스킵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이는 교회씬 이야기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2. 영화를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영국 영화는 대체로 그네 국가에서 나오는 음식만큼이나 상당히 따분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영화는 메시지를 남기려고 너무 과하게 노력해서 지루하지만, 어찌보면 한결같은 데가 있다.) 하지만 영국배우와 미국이 합작을 하면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겔러해드는 오래되고 고리타분한 것만을 추구하는 아서에게 지긋지긋해진 나머지, 에그시를 데려온다. 그는 슬럼가 환경과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지만, 겔러해드는 그 '집안 환경'을 바탕으로 킹스맨이 되도록 에그시를 설득한다. 에그시의 아버지도 킹스맨으로, 겔러해드를 지키려 하다가 전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에그시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배우고 있는 것들을 잘 융합해 나간다. 어찌보면 온고지신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겔러해드의 유지를 잇겠다고 결심했는지 악당을 저지하는 총으로 우산총을 챙겨가지만, 현대 무기들의 집중공략으로 인해 믿고 있던 우산총이 망가진다. 위기 상황에서 그는 그 다음 무기로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한 라이터 모양 수류탄을 사용한다. 킹스맨의 매너정신을 배우면서 자신의 엄마를 때리는 새 아빠와 정당하게 1대 1로 승부하려 하지만, 반면 물건을 슬쩍하거나 술잔을 바꿔치기하는 '예전 꼼수'도 선보인다. 킹스맨 선발시험을 치를 때 동거동락했던 록시랑 잘 되려는 기색을 보이더니, 스칸디나디아의 공주가 자신의 '뒤를' 준다고 할 땐 또 거침없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ㅋㅋㅋ 이 녀석 생존비결 제대로 터특했구나.


 


 


 

 3. 두번째 사진 좀 많이 무섭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저걸 일일히 보고 계산했단 말인가(...)


 '좀비 28 시리즈'(28일 후, 28주 후 등)을 생각나게 하는 교회 씬은 전혀 NG나지 않고 한 컷에 끝냈다고 한다. 다시금 이 배우의 역량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콜린 퍼스라고 하는 영국 배우인데, 50대라고 한다. 뭐... 라고? 그럼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잖아? 뱀파이어인가?


 저 교회씬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에 대해선 그 외에도 내용상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스파이가 '분노해서' 죽이고 있는 대상이 백인우월주의 교회집단이다. 둘째, 스파이가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것도 아니다. 백인우월주의 교회집단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다. 셋째, 피가 튀기고 살이 쪼개지는 와중에 흘러나오는 BGM이 웃겨서 보는 관객이 내내 웃음나오게 만든다. 넷째, 분명 백인우월주의 교회집단인데 악당인 흑인이 베포한 무료 유심칩을 받아서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서 뇌가 뜨거워지니 교회의 온 사람들이 광분해서 다들 저 난리.


 랄까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많이 불편한 영화일 것이다. 어차피 난 사이비 쪽에 속하니 푸흐흡거리면서 봤지만.


 


 


 4. 참고로 이 영화테마에서 빠지면 섭한 게 안경이랑 양복이다. 안경에 대한 언급은 잘 없지만, 에그시가 임무 전 제대로 정장을 차려입을 때 안경을 쓰고 나온다. 이것도 아마 겔러해드의 유지를 잇기 위해 쓰고 나왔다는 영화 설정으로 통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검은 뿔테 안경남에 대한 애정도를 높이기 위한 설정(모종의 음모)이 아닐까. 아니 그보다 분명 슬럼가에 있을 때 '운동신경도 좋고 시력도 겁나 좋았던' 녀석이 안경을 쓰고 나타난 게 수상하다. 안경을 쓸 때 좀 더 고급스러운 인상을 풍긴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기도 했고. 배우가 워낙에 잘생겨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히 잘 어울렸다. 


 난 영국남자도 좋아하고 양복도 좋아하고 마티니도 좋아한다. 겔러해드는 구두를 정할 때조차 깐깐한데, 에그시가 자신을 호출하는 비밀번호를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로 정할 지경이다. 브로그는 남성 구두에서 습기를 없애기 위해 구두에 뚫어놓는 구멍들을 가리키는데, 보통 구두장식처럼 예쁘게 처리하기 때문에 그 목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좋아하는 구두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애지중지 관리해야 한다. 그러니 진정 양복을 사랑하는 사람은 브로그 있는 구두를 신지 않는다! 그리고 책이던 무엇이던 옥스포드가 최고다! 왜냐면 고전이잖아! 멋있잖아!! 결론은 이런 아저씨하고 같이 양복과 칵테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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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연인들 CE - [할인행사], 완전 무삭제판
레오 까낙스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이지컴퍼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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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안 들려!

하지만 네가 멋있게 보여!

 


 1. 일단 나같은 사람이야 리뷰라던가 일기라던가 기타 갖가지 것들을 쓰기 때문에 블로그부터 가면 '아 얘는 그냥 잔지식을 뻐기길 좋아하고 이상한 척하는 평범 하수구나(...)' 이런게 뻔히 보인다. 실제로 작품을 읽으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다는 욕망 반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 반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고. 물론 미셸은 그림을 그려서 자신이 본 형상을 종이에 가둬놓는다. 처음 남주인공을 볼 땐 그를 모델로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질환으로 인해 눈이 슬슬 멀기 시작하고 '의지할' 남자도 생기자 정말 모든 걸 놓아버리고 다리 위에서 저렇게 춤을 춘다. 


 미셸은 어쨌던 간에 이기적인 여자다. 자유를 찾으려는 의지가 없다. 애초에 아버지가 대령이었다고 하니 가난한 집의 딸도 아니다. 영화 내용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녀를 헌신짝처럼 버렸을 줄리앙이라는 남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좋고 부럽고 동경하는 점 첫번째. 저 여주인공 미셸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콜렉션마냥 알렉스에게 늘어놓는다. 퐁네프 다리를 떠도는 동안 그녀의 과거는 그녀의 가슴에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웠던 파편으로 남은 것이다. 그 장면만큼은 아름다웠다. 장면만. 


 


 


호오. 그러고보니 싸이코패스에서 나오는 마츠오카는 이 장면을 흉내낸건가. 상당히 로맨티스트한 아저씨인데?


 2.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셸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남주인공 알렉스. 그는 미셸을 잡는 자신도, 미셸과 헤어진 줄리앙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일단 미셸이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알렉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과거를 전부 말해주겠다고, 그 후에 서로 육체적 관계를 맺자고. 2년 후 알렉스와 다시 만날 때도 그녀는 당장 섹스를 하지 못해서 불행한 남자 두 명과 그 두 명을 비웃는 행복한 남자 (오늘이 그날이랜다...) 한 명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해놓곤 갑자기 피곤하니 집에 가겠다고 말한다. 으악 그만둬 ㅋㅋㅋㅋㅋㅋ 그건 무슨 희망고문이야?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기분 내킬 땐 끌어안아도 주지만 절대 몸도 마음도 완전히 내어주지 않는 미셸에게 알렉스는 애증을 지닌다. 그녀를 그리워하며 쉴새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이전부터 자해를 일삼으며 온 몸을 바쳐 자신을 제대로 쳐다봐줄 사람을 찾던 그는, 미셸이 등장하자 완전히 그녀를 위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거짓말도 하고 사랑도 하고 집착도 한다.


 


 3. 살다보면 한두번쯤 해치거나 죽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사이코패스건 아니건 간에 인간은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전심전력으로 한다면 이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고, 괴로운 감정도 사랑하는 감정도 전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서, 여러가지 요인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할 수 있는 권리를 잘라내면서 얻은 자유.


 내가 미셸을 두번째로 동경하게 된 건 그녀가 다시 알렉스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알렉스는 자신을 나락에 건져서 다시 더 깊은 나락에 떨어뜨렸던 그녀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한다. 


 "넌 애초에 너무 겁이 많아."

 

 이 말 때문에 그녀를 거절할 줄 알았더만, 전처럼 사랑하진 못 한다길래 그런 줄 알았건만 왠걸. 미셸의 몸을 핥듯이 쳐다보는 그의 시선은 결코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미미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러운 현실을 삐딱하게 꼬아서 보는 약간의 유머감각이라 해야 할까. 처음 등장했을 때의 절룩거리는 알렉스는 보는 사람이 짜증날 정도로 진지했다.


 알렉스는 미셸을 끌어안고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배를 집어타고 그녀와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집착하지 않고, 추하지 않게 사랑하는 법을 익혔으리라 믿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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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원 : 일반판
이원석 감독, 한석규 외 출연 / 해리슨 앤 컴퍼니(H&Co.)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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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는 게 곧 전쟁이지요.

1. 외로움에 치를 떠는 독수공방 왕비 컷 한 편. 

 일단 이 왕비의 배경부터 설명하자면, 그녀는 선왕 때 왕비 간택에서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선왕의 동생, 즉 지금의 왕에게 냅다 떠맡겨진 신세가 되었다. 전부터 서로 눈짓으로 사랑의 마음을 주고 받고 있었으니 '계획대로다'라고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왕이 죽을 때까지 형인 선왕에게 받고 있었던 터라 잔뜩 열받은 그는 왕이 될 때까지 그녀와 정을 통하지 않는다. 물론 이 왕비 빼고 다른 여자들과는 실컷 즐긴다 ㅋㅋㅋㅋㅋ 그러다가 공진이라는 천재 상의원이 등장하면서 이 영화는 무려 왕비 네토라레까지 치닫는다. 옷 치수를 재는 도중 순간적인 욕망에 몸을 떠는 배우의 심리적 연기가 극단에 치닫는데, 여기에서 메이크업까지 약간 지워서 남자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소녀의 얼굴을 그대로 담아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한창 그러다가 영의정 딸인가 하는 기가 세고 대찬 여자애에게 왕이 휘둘릴 즈음하여 영화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옷을 중심으로 하고 만든 영화라서 클라이막스를 보려면 옷이나 지켜보며 한참 기다려야 한다. 그게 이 영화의 단점이라면 단점일 것이다. 시간을 질질 끈다.

 

 

 

2. 그러나 이 옷들의 색상이 상당히 현란하여 또 꽤 볼만하므로 가급적이면 영화관이나 대형스크린으로 보시길 바란다. 블루레이면 더 좋다. 

애초에 이 영화는 인터넷 평을 믿지 않는 게 좋다. 일단 이 영화가 욕을 먹는 이유가 모두가 불행하여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일단 영화를 만든 이원석이란 사람이 신인 감독이기 때문인데, 이 감독의 2012년 데뷔작인 '남자사용설명서'를 보면 연애에 관해서 다루는 게 장난 없다. 게다가 영화에 사용된 색감도 정말 훌륭한데, 이것이 상의원에서도 그대로 발현된다.

 

 

 

 3. 사는 게 곧 전쟁이라는 말은 '인생은 곧 실전이다'라는 말과 연관된다.


 노력하는 자는 천재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천재는 곧 이상을 안고 비명횡사하기 마련이다. 왕비가 입고 등장한 그 화려한 웨딩드레스는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 된 그녀를 위해 공진이 온 마음을 쏟아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얻을 수 없는 사랑을 꿈꾸고 있는 왕비는 그를 스쳐지나가 버린다. 결국 그의 이루어지지 못한 바람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은 훗날 실전을 잘 견뎌서 공진을 희생시킨 조돌석의 공으로 돌아가 박물관에 전시된다. 그 웨딩드레스는 살아서는 결코 남자의 손을 타지 못하는 왕비의 얼굴만큼이나 차갑다. 

 보는 내내 상당히 피곤하고, 쓸쓸하고, 추워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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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년을 만나다 & 한국단편영화 퀴어컬렉션 1 (2 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주)인디스토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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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헐거워졌어?

말 그대로 게이영화 소개이므로 거부감 있으신 분들은 조용히 뒤로가기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1. 매우 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세 사람.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쭉 설명하자면 진정한 피해자, 가해자에게 뻑간 주인공, 진정한 가해자. 퀴어영화 20은 매우 짧은 동성애 영화지만, 이성애자를 포함하여 동성애자 중 그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 요소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야말로 퀴어영화라 할 만하다. 분위기는 무거운 걸 넘어서 상당히 불편한 분위기이므로 다큐멘터리같은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닥 추천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매우 짧은 단편영화라서 줄거리를 이야기하기도 대략 난감하지만,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도록 노력하겠다. 꽤 유명해진 영화라서 이미 전체 줄거리에 완결까지 설명해 놓은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인디플러그에 아직도 이 영화를 판매하고 있을 테니 가급적이면 구입해서 보는 걸 추천한다. 할리우드는 둘째치더라도 독립영화 만드는 분들은 그 푼돈 받으며 먹고 산다.

 

 

  2. 주인공은 고교시절 악의 꽃 시집을 읽는 꽃미남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떤 놈팽이의 마수에 걸려들어 게이가 된다. 일단 내가 싫어하는 모든 걸 다 갖춘 이 능구렁이의 태도는 이러하다. - 고교시절 왕따 두 명을 거느렸는데, 곱상한 한 명은 놀아주는 대신 음울해 보이는 애는 대놓고 성희롱했음. 곱상한 한 명과는 뭘 했는지 이하생략한다. - 여친이 있는데도 주인공과 호텔에서 떡을 치고(...) 바람 안 폈다고 거짓말함. 그러고나서 주인공 바꿔줌. 여친이 왜 의심 안 하는지는 이하생략한다. - 그러면서 주인공은 자기 말고 다른 남자 못 만나게 한다. 이... 이것은? 내가 바람펴도 너는 절대 피지 말라는 태양의 <나만 바라봐>??? 아무튼 가히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고등학교 시절 이 능구렁이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걸 보았다(...) 고등학교 시절의 첫 사랑을 그대로 지고 가는 것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게이 바를 가서 다른 남자들을 만나봐도 그 얍삽한 시키랑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의외로 날 찾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다 그치가 그치였고'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퀴어던 아니던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아마도 이성애자 남자들은 '그년이 그년이고'라고 생각하겠지. 동성애자 여성도 마찬가지.

 

 

3. 아직 20대를 벗어나진 않았지만 20살을 넘어 2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고, 뻔한 걸 알면서도 아직 애인을 두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러하다. "이 세상에 완전히, 영원히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많이 만나라." 물론 이 세상은 양다리 혹은 문어다리에 아직도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세속의 욕을 피해가기 위해 '썸'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이 얼마나 발음하기도 간단하고 편한 단어인가. 지식이 별반 없어서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학교시스템이 상당히 엿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특히 처음부터 가해자(선생)와 피해자(학생)가 정해져 있는 사회가 그렇다. 물론 학생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지간히 특수한 경우 아니면 성립 불가능하다. 딱히 대학을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20살이 되면 세상이 내 앞에 열린다. 가해자도 되보고 피해자도 되보라. 혹은 그 둘 아무것도 하지 말아봐라. 마음껏 날뛰되, 마음 속에 플라톤 하나는 모셔보라. 이 세상에 진리는 하나뿐이며, 내 진짜 사랑은 내 진짜 모습을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는 판도라의 희망. 지금까지의 내 경험에 의하면, 그닥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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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O.S.T.
미누 (MiNU) 작곡 / 소니뮤직(SonyMusic)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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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불쌍하네. 할아버지 생각을 누가 하나. 나밖에 하는 사람이 없는데...

 

 1. 워낭소리에서 상당히 거북해서 주인공인 소보다도 더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할아버지였다. 그 분들이야 투닥투닥 싸우면서도 나름대로 사는 재미가 있을테니 잘 살겠지만, 몇몇 관객들이 보기엔 상당히 거북해보였고 그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엄마의 부탁으로 인해 이 영화를 보러 같이 영화관에 가기 직전까지도 그 트라우마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워낭소리가 워낙 거하게 욕을 먹었기 때문에 편집한 건지, 아님 원래 할아버지 성품이 착한지는 모르겠지만(제발 후자이길 바란다.) 상당히 볼만했다. 여자 집안에서 사윗감을 찾다가 어머니를 일찍 잃은 남자를 데릴사위로 데려온 것도 유별나다. 게다가 상당히 장수하셔서, 할아버지는 100살까지 살다가 죽기를 꿈꾸고 있었다.

 

 게다가 할머니와 꽃구경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승에 관련된 이야기를 진중하게 하시는 걸 보면, 연륜을 담고 있는 분이셨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머니에 대해 설명할 때 자세히 언급하겠다.

 

2. 할머니에게 짖궂은 장난도 잘 치시는 데다가, 강아지를 매우 사랑해서 몸이 아파 앓아누울 때조차 강아지를 옆에 끼고 계셨다. 게다가 할머니를 위해 노래를 잘 불러드린 듯한데, 엔딩 크래딧에서 할아버지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다시 나오므로 영화가 끝났더라도 왠만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길 추천한다. 할머니가 잔소리를 할 때면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시면서 입을 꾹 다무는데, 할머니가 칭찬을 하면 금새 입 안으로 머금듯이 '히잉'하는 웃음소리를 내신다 ㅋㅋㅋ

 

 노인대학에서 상당히 별난 할아버지로 소문나셨을 텐데 워낙 몸이 안 좋으신 데다가 외딴 집에서 사시니 세간소문엔 연연하지 않으셨을 듯. 아무튼 요즘 시대에서조차 상당히 보기 드문 천연계(?!) 남성이었다.

 

 

 3. 사실 이 영화에서는 대사보다도 침묵이 더 값어치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할아버지의 숨소리는 너무도 가냘파서 금방이라도 뚝 끊어질 듯이 보인다. 노부부의 자식들이 노부부 앞에서 싸움을 할 때에도 할아버지는 무서우신 건지 기가 막히신 건지, 별 소리 못하고 숨죽여 울기만 할 뿐이었다. 약간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한없이 나약해보이는 남성이었다.

 

 그러나 몸이 좋지 않은데도 기어코 할머니를 따라가서 농사일을 하려 애를 쓰는 장면이라던가, 자녀들이 오기 전에 혼자서 벽에 거울을 달기 위해 애쓰는 장면(상당히 컸지만 아마도 젊은 시절에는 그 거울을 번쩍 들어 벽에 다는 건 할아버지에겐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병세를 지켜보다 지쳐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는 장면은 남성성을 넘어선 할아버지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도 무력감과 자괴감의 표출 없이 일상을 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히 할머니를 걱정해서 참았으리라.

 

 할아버지는 자신의 남성성을 암흑으로 표출한다. 그는 꽃이 피면 지듯이, 인간도 나고 죽으며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허무가 묻어 있다. 그의 생각 속에서 그가 머지않아 떨어질 저승은 그저 황무지일 뿐이다.

 

 

 

4. 그러나 할머니는 그 생각에 침묵과 무시로서 끈질기게 반대한다. 할아버지의 꺼림찍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기어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장으로 가서 여태동안 살아가면서 잃어버렸거나 죽은 아이들의 내복을 산다. 그리고 내복을 하나하나 불태운다. 저승에 있을 그 아이들에게 입히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국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그녀는 할아버지의 옷을 태운다. 저승길을 걷고 있을 할아버지가 춥지 않게 런닝셔츠까지 잊지 않고 불태운다. 그녀는 내세를 믿으며, 그 곳에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화장은 서양에서 그닥 반기는 풍습이 아니다. 부모가 준 신체를 보존해야 한다는 유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화장을 장례 의식으로 생각하는 곳은 불교뿐이다. 불교는 마음이 거울이며, 그 거울을 항시 들여다보고 닦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마음 들여다보기'에 비해 화장은 생물의 궁극적인 육체정화의식이다. 난 장담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질질 짜면서도 속으로는 '설마. 저 할아버지 할머니도 물어뜯고 치고박고 싸우던 시절이 있었겠지.' 라고 못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으리라고. 혹은 '여름에 저 시골 한 번 다녀가 볼까? 할머니랑 사진도 찍어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신문기사에 의하면 벌써부터 그 부근에 이상한 관광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장한다. 영화는 영화로 끝내자고. 그들은 적어도 영화에서는 대체로 행복한 순간을 살았고, 그 중 한 쪽은 완전한 정화의 순간을 거쳤다. 삶을 고독사로 끝내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서 말이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달고 다닌다. 당신은 당신의 옆에서 76년 가량을 살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당신이 죽으면 죽은 당신이 불쌍하다고 울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자격이 생길만한 인간으로 자신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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