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블루레이] 쥬라기 월드 : 콤보팩 (2disc: 3D+2D) - 아웃케이스 없음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 빈센트 도노프리오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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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단 다들 이 영화를 욕하는 것 같으니 쥬라기 월드에 대한 변명을 하겠다. 어쩌면 이 리뷰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에 대한 변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난 이 영화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거든. 무언가를 한참동안 머릿 속에서 생각하게 하는 영화는 정말 기억에 남는다. 그 증거로 다들 이 영화에서 '닌자공룡이 출연한다'고 주장하면서 싫어하긴 하지만, 아무도 '빨리 잊어버려야지'라는 식으로 생각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무서운 것은, 영화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 중 하나에 '공룡스러운 공룡이 나와야 하는 거 아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은 좀 더 크고, 좀 더 무시무시한 공룡을 원한다'라고 주장하는 레이첼의 주장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인간은 거의 언제나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부분만 보게 되는 듯하다. 

 

 

 2. 이 영화에서는 공룡보단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되려 더 상세히 나온다. 이는 옛날에 나왔던 쥬라기 공원 소설과 정확히 일치한다.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쭉 봐온 열혈팬들은 다들 원작소설이 제일 나았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실제로 보다보면 굉장히 재미가 반감된다. 사실 공룡보다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초반에 굉장히 많이 나오는 데다가, 애들이 읽기에는 분량도 상당히 미묘한 구석이 있다. 사실 그렇게 보자면 쥬라기 월드는 다시 쥬라기 공원 초기의 의지로 돌아간 구석이 있다. 2008년에 돌아가신 작가분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악평을 하진 않으셨을 것 같다. 이것은 또한 콜린 트레보로우라는 감독의 초기 데뷔작과 맞아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감독은 1시간 분량의 중편 B급 영화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으로 인해 이름이 알려졌는데, 그 영화가 지적받는 문제 중 하나가 '초반에 시간을 너무 질질 끈다'는 것이다. 단지 소설책과 이 쥬라기 공원의 차이점은 존재한다. 소설책에서는 고대 생물의 원초적 힘에 밀리는 인간의 열등감과 절망이 담겨져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 원초적 힘을 과학과 동물심리학을 이용하여 제어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이 담겨져 있다는 점. 그 결과물로 탄생한 쥬라기 월드를 전쟁에 쓰려고 하는 사람들과 비즈니스로 쓰려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인간들에게 생리적 혐오를 느끼면서도 결국 공룡에 매혹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첨예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난 이 영화가 원작 쥬라기 공원의 진정한 후속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독은 쥬라기 공원 스토리를 고스란히 이용한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이야기를 창조해낸 것이다. 물론 쥬라기 공원의 명성에 낚여서(?) 이 영화를 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지금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전국이 난리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예매율 82%를 돌파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3. 그런 의미에서 쥬라기 월드는 영화 쥬라기 공원 시리즈 중 공룡보다 인간 캐릭터가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라 할 수도 있겠다. 쥬라기 월드 최대의 위기 상황이 닥쳤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하이힐을 절대 벗지 않고 심지어 군인과 같은 속도로 달리는 레이첼이란 인간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대부분은 위의 그림에서 나오는 아이들 두 명을 너무 좋아하더라. 그들은 더이상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다. 심지어 그들의 부모님은 이혼에 관련된 이야기를 더 나누기 위해 그들만 쥬라기 공원에 일주일간 보내버린다. 그런데도 어른보다 더 똑똑하게 위기 상황을 해쳐나가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짠한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요즘 메르스로 인해 유행하기 시작한 사자성어 중 '각자도생'이 있는데, 언뜻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듯한 이 단어를 이렇게까지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한 경우는 이 영화가 처음인 듯 싶다. 영화 엔딩에서마저 부모님이 상황 다 끝난 뒤에 이들을 찾아와서 부둥켜 안고 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혼을 취소하겠다는 소리는 결코 하지 않더라. 그것도 정말 인상깊었다.

 

 동생은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쥬라기 월드에 있으면서도 부모님과 자신의 앞날이 걱정되어 울고 있는데, 형은 무심한 척하면서도 동생을 따뜻한 말로 달래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그 때 쓴 영어인 'No matter what'이 지금 내 카톡 프로필 문구로 저장되어 있다.  

 

 P.S 이런 아이들의 각자도생 군상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면 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라는 소설집을 추천한다. 그 단편들 중에 저 이야기랑 비슷한 게 딱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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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
김경묵 감독, 이바울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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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나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1. 탈북한 준은 다소 독하고 영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유소에서 같은 탈북자인 한 소녀가 성추행당할 뻔한 걸 구해준 이후부터 그의 삶은 아주 달라졌다. 그 풋풋한 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영화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주유소 아저씨를 피해 도망가면서 둘이 잠시 일탈의 행복을 맛보고 사랑을 해보고 싶었음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장면이 바뀌는데... 정말 느닷없이 소녀가 SM 포르노물을 찍고 있고 심지어 준마저 지하철 화장실에서 어느 복면 변태에게 포르노물을 찍힌다(...) 다시 생각해도 참 꿈과 희망이 없는 엔딩이로세. 살려면 결국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일까. 아르바이트 만으로는 입에 겨우 풀칠하는 정도밖에 돈을 벌 수 없는데, 가족도 집도 돌아갈 곳도 없고 데이트같은 사치는 더더욱 꿈꿀 수 없는 그들은 그저 정처없이 서울을 떠돌아다닐 뿐이다. 상당히 여유작작하게 살고 있는 내가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는 듯하다. 아무튼 여전히 그 여자와 만나는지 알 수는 없으나, 준은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하다가 폐가 아르바이트로서 어떤 고층 오피스텔을 치우는 일을 맡게 된다.

 

 

 2. 현은 부자 애인 성우와 오피스텔에서 동거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어린 티가 많이 나서 그런지, 애인을 정말 사랑하는지 확신하지도 못하는 티가 많이 난다. 무엇보다 애인 성우가 시시콜콜 해대는 불평불만에 시달리면서 그에 대한 애정이 많이 식은 듯했다.

 

 여기서 하나의 연애팁. '나에 비해 너는 앞길이 창창하잖아'라던지 '우리 그냥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어떨까?'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대부분은 말하는 내용과는 정반대로 소유욕과 집착기질이 꽤 심한 타입이기 때문이다. 남자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요샌 여자도 칼 들고 쫓아올 수 있다. 가급적이면 그런 말이 나오는 순간 잽싸게 깨지라고 하고 싶다 ㅋㅋㅋ 감독이 꽤 그 분위기를 잘 캐치하는 듯.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마음같은가? 처음 그 오피스텔에 들어가서 그와 관계를 나눴을 때의 풋풋함을 잊지 못해서인지 그는 계속 그 오피스텔에 남는다. 하지만 나이도 한창 나이인 데다가, 끼가 넘쳐 천성 집에 틀어박혀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타입이라는 게 그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더군다나 동성 간 채팅사이트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남자가 되어 그는 네트워크상에서 잠깐의 일탈을 즐기게 된다. 그러다 애인 성우가 사실 본처가 있고, 게다가 본 이름은 성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현은 그동안 쌓인 모든 게 폭발한다. 그리고 관계가 깨지는 순간, 그는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다.

 

 

3. 현과 준은 공간 상에선 폐가가 되어버린 오피스에서 만난다. 한 명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고, 한 명은 나락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정신상으로는 그 중간 지점에서 만난 게 아닐까 싶다. 그들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고 서로를 모르는 데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 둘의 동작을 지켜보면서 내가 느낀 그 둘의 관계는 확실히 사랑이었다. '내가 너 같고 네가 나같이 생각되는 게 사랑이다'라는 구절을 어떤 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다. 현실에선 그것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것만으로 만남과 데이트와 접촉 등 연애의 그 모든 과정이 생략되는 사랑이 성립되는 걸 보여준다. 그들은 그 깨달음 상태에서 죽으려 했고, 결국 완벽하게 하나의 괴물이 된다.

 

 '줄탁동시'라는 단어는 병아리가 부화할 때 어미닭도 껍질을 밖에서 같이 깨어주어야 병아리가 무사히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때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어미닭이 너무 일찍 껍질을 깨면 병아리가 죽거나 기형이 될 수 있으며 어미닭이 너무 늦게 껍질을 깨도 병아리가 숨이 막혀 죽을 수 있다고 한다. 전남친이 이 단어를 상당히 좋아하는데다 나에게 자주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알아도 무시했다. 뭐 그렇다고 딱히 안타깝다거나 아쉬운 마음도 없는게, 난 어미닭도 알 속의 병아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말할 게 있으면 니 입으로 직접적으로 말해라. 짜증나게 하지 말고. 솔직히 이 영화도 퀴어전문잡지 삐라에서 해설을 보지 않은 채 봤더라면 싫어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해설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현 또는 준이 준 또는 현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왠지 에반게리온의 한 장면을 베낀 것만 같아서 거부감이 일었다. 그 영화 자체가 에반게리온에 대한 해석이었다면 또 몰라.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내 가치관에 정말 잘 맞아떨어진다고나 할까? 역시 난 방랑벽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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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연대기
백운학 감독, 손현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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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어리석죠? 실수로 저지른 죄를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저지르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더 큰 죄를 저지르고…

 

 1. 평소 범인은 범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경찰정신으로 똘똘 뭉친 최반장은 특급 승진을 앞둔 상태이다. 그러나 행복의 절정기에 불행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던가. 그는 어느 괴한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실수로 괴한을 살해하고 만 그는 당황하여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도망친다. 하지만 다음날 그 괴한의 시체가 크레인에 매달린 채 발견된다. 그것도 경찰서를 향한 채로.

 

 

 2. 평소 자신의 옆에 있던 동료, 자신이 키웠던 자신들의 식구들이 집요하게 '범인'을 쫓기 시작하자, 최반장은 초조함과 분노로 점점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욕하는 사람들도 손현주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를 많이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최형사 자체가 손현주에게 딱 어울리는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느끼고 유혹에 약하기도 하지만 성품이 그렇게 모질지도 못하고, 끝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성격. '웃지 마 니 얘기야' 메시지를 끊임없이 날리는 그의 대사 하나 연기 하나를 숨죽여 지켜보게 된다. 심지어 이 영화에 나오는 어떤 남자배우나 여자배우보다 얼굴이 고와보인다 ㅋㅋㅋ

 

 

 3. 이 영화의 묘미는 맨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 등장하는 짧은 영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선설을 대표하는 것 같다는 착각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지만, 결국 귀결은 성악설이다. 최반장은 범인이 되고,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져 나락으로 떨어질 즈음에 자신이 경찰에 몸담았던 초기의 그 마음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진정한 범인'은 그와 정반대로의 길을 걷는다.

 

 난 감독의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적 동력은 살아있는 한 무한하며, 제대로 작동하는 한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나오는 범인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종류에 속한다. 단지 감독이 그를 어떻게 악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는 알겠다. 첫째, 지나친 인정욕구. 자신의 죄를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극도로 손에 피를 묻히기를 꺼려하는 그의 태도는 치사하다 못해서 강박증적이기까지 하다. 둘째, 오만. 그는 모든 수를 써서 자신이 위에 군림하려 들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조종한다. 시체를 허공에 매달아서 경찰서를 내려다보게 만든 것도 이런 이치일 것이다. 이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를 떠올리게 한다. 동성애자 코드도 비슷.

 

 셋째, 살인도 노동이다. 그것도 굉장히 힘이 드는. 그걸 남에게 하도록 뒤에서 시키고 자신은 구경하는 사람이 진정한 나쁜 놈이다.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그 생각을 더욱 굳혀주었다. 이전에 '사람은 날 때부터 착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악한 사람은 있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 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천국은 없을지라도 지옥은 기본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걸 보면 어쩌면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감독의 말이 맞을지도;;; 이 영화로 인해 내 기본적인 철학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난 역시 나쁜 사람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마도 평생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남들과 기준이 좀 다를 뿐이지.

 

 사실 정치적으로 위험한 발언이긴 하지만(...) 그래서 난 박정희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강남개발을 보라. 박흥숙을 보라. 그럼 악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에 대해선 다음 리뷰 <루리색에 흐려진 일상 2권>에서 설명하겠다. 우연의 일치로 인해 이와 정말 똑같은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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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
모리 준이치 감독, 마츠오카 마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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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말을 하는 키가 큰 남자에게는 약한 것 같다.

 

 1. 일단 내 엄마아빠의 나이에서는 '리틀 포레스트'라는 이름만 듣고 다른 영화로 착각하시는 경우가 많으니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이치코는 코모리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이치코 어머니가 워낙 독특한 인물이라 그 어머니와 같이 낯선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뭐 왕따를 당하는 건 아니지만. 워낙 시골 사람들이 순박하고 이치코 어머니 또한 혼자 농사지어 자급자족할만큼 생활력이 있다보니 피해를 주진 않는다고 생각하고 냅두는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가 이치코가 고등학생이 될 때 홀연 집을 나가버리고, 이치코도 집을 나와서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사회의 냉정함과 거듭되는 연애의 실패를 견디지 못해 코모리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2. 그녀는 말한다. 자신은 도망치듯이 코모리 마을로 왔기에, 아무 생각도 없다고. 그녀를 지켜봐온 유타라는 남자애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꾸물거리는 성격이라고. 주위의 사람들은 이치코에게 묵언으로 '무언가 결정을 내리길' 촉구한다. 코모리 마을에서 떠나던가 아니면 확실히 정착을 하라는 것이다. 이치코는 밤중에 집에서 틀어박혀서 등불을 켜고 책을 읽지만, 한편으로는 깜깜한 밖에 신경을 온통 기울인다. 난 이 영화에서 이런 인물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갖혀있는 여자다. 문학에서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페미니즘에서 수많이 거론하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이다. 혹은 마녀라고도 한다. 이 작품을 쓴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명 중 하나가 <마녀>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마을 이름을 보면 히키코모리의 '코모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으면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지만, 한편으론 사회와 자연 둘 다에 포위되어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그러나 이치코의 생각만큼은 자유롭다. 그녀의 생각은 독백으로 하염없이 흘러간다. '사람들이 껍질을 버리는 걸 보니 아깝다. 저 껍질로 요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좀 더 몸에 좋게, 맛있게 만들 수는 없을까?', '양배추로 케이크를 만들면 어떤 맛이 날까?'

 

 그녀가 음식을 직접 만들어 '혼자' 먹으면서 몸을 치유한다는 것도 신선하다. 수많은 음식문학들이 '음식은 정성'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서 몇몇 독자들이 눈초리를 찌푸릴 수밖에 없는 건, 그는 '타인을 위한', '문화가 들어있는' 음식의 개념을 작품 속에서 너무나 강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꼭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의 몸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음식의 형태라던가, 특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개념 자체가 너무 좋았다.

 

 

  3. 그러나 나는 담배를 피우는 이치코의 엄마가 왜 자꾸 눈에 밟힐까? 고등학생 시절 이치코는 엄마에게 머위된장을 만들어달라고 명령투로 말하고 학교로 간다. 엄마가 사라졌던 날이다.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마치 이치코가 건방져지니까 귀찮아서 집을 떠난 듯한, 그녀가 비정상이라는 듯한 암시가 들어있어서 화가 났다. 귀농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로 귀농하는 건 그냥 수도권 내부에서 이사를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고, 준비도 많이 필요하다. 이치코의 엄마가 평소에 그렇게 부지런히 살지 않았더라면, 이치코는 코모리 마을로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치코는 그 속마음도 모르고 '엄마는 내가 가족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걸까?'라는 철없는 생각을 한다. 원작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뒷수습이 부족하기는 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귀농 차원에서 좀 더 들여다보자. 월든에서는 '꼭 양서를 읽어야 하며 책을 너무 다방면으로 읽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진보적이지만 굉장히 원리원칙적이고 무엇보다 양서의 개념이 상당히 제한적인 소로우의 글은 읽는 사람을 약간 피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치코는 엄마의 서가를 발견하고, 책을 읽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자신의 책은 자신이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치코를 제재한다. 그래서 이치코는 '크게 휘두르며'같은 요즘 만화도 잘 읽는 유연한 성인으로 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치코는 엄마의 편지에 머위된장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건 아쉬워하면서, 정작 엄마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잔인하게도 '이치코의 엄마'로만 남게 되었다. 불쌍한 여자. 그러나 그녀를 전혀 불쌍히 여겨주지 않고 심지어 엄마 이전에 여자로 보지 않는 영화는 결국 가족애를 강조하며 식상하고 뻔뻔하고 재수없고 모든 솔로여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극악한 엔딩으로 치닫는다.

 

 

 4.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거대한 사기를 쳐놓을 수가 있는가? 이에 대한 뒷감당은 어찌할 것인가? 귀농이 저렇게 행복하기만 한가? 결코 아니다. 그것도 지고 가야 할 하나의 삶이다. 여자의 삶이 저렇게 아기자기하기만 한가? 유타라던가 저 남자 마을 주민들 중 하나만 흑심을 품었다면, 리틀 포레스트는 내용이 결코 저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주류의 삶에 서슴없이 침을 뱉고,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런 힐링 영화들에는 질릴대로 질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작가도 먹고 살 거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다른 데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술 쪽으로 밥먹고 살려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냉정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뭐하러 돈에 목숨을 걸고 뭐하러 상업적인 쓰레기 작품을 쓰는가? 그래서 나는 리틀포레스트에 대한 우리나라의 유독 심한 혹평 속에서 조금 관대하게 리뷰를 쓰려고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거론했다. 심지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4시간씩이나 되지만,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하고 여태까지 본 영화 중에 제일 시골생활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코모리의 풍경은 아름다우며 정말 아무 생각없이 마음을 비우고 보면 너무 재밌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와서는 꼭 이런 영화나 책을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

 비소설: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소설: 존 쿳시의 추락 http://vasura135.blog.me/80179239627

 만화: 알콩달콩 깨알같은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귀촌과 귀농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른 리뷰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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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기생수 파트 2 : 렌티큘러 800장 넘버링 한정판 (2disc)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 아사노 타다노부 외 출연 / 더블루(The Blu)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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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1.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게 신이치 여자친구 무라타 사토미. 하시모토 아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를 등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 중에서 기억나는 게 씬밖에 없다니 ㅋㅋㅋ 아마 또 다른 (기생수) 여주인공인 료코의 이미지가 강력해서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료코가 총을 맞아가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고 결국 남주인공의 손에 그 아이를 넘겨주는 장면은 감동과 섬뜩함을 같이 표현해야 하는데, 그 어려운 감정처리를 잘 해냈다. 하지만 그런 식이었다면 과감하게 여자친구와의 씬을 지우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원작에선 지구가 기생수에 반쯤 둘러싸이는 세계 안에서, 오른손이와 세포가 섞인 남주 그리고 여주가 애도 낳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리고 있는데(혹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솔직히 영화에선 그런 암시가 반만 들어가 있어서 어딘가 이상했다.

 

 

 2. 특이한 점은 은연중에 고토(왼쪽)보다는 히로카와 다케시(오른쪽)를 원작에서보다 더 강조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이 인물을 보고 나서 '원작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라고 한참동안 생각할 정도였다. 만화, 애니 그 어디를 봐도 제일 샤프하고 잘생긴 인물로 나온다. 보통 사람이 냉정하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쏟아냄에도 불구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시장까지 올라간 걸 볼 때 확실히 이 정도 매력이 있어야 현실적인 듯하긴 하다. 자세히 보니 배우가 2013년 영화 고양이 사무라이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키타무라 카즈키이다. 방송과 영화에선 여기 출연한 배우 그 누구보다도 상당한 경력이 있는 배우인데, 이 역할을 맡은 걸 보면 감독이 어지간히 다케시라는 인물에 빠졌나보다. 확실히 연단에서 금방 자신을 총으로 쏴죽일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는 장면은 어느 정도 장엄한 데가 있었다. 하지만 원작의 핵심 코드는 인구 수를 줄여야 한다는 파시즘적인 이론은 아니었을 텐데...?

 

 

 3. 차라리 주제를 오른손이와 신이치의 우정에 맞춰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그런데 쇼타가 멋있는 연기만 엄청 하는 인물이다보니, '신이치'가 볼썽사납게 울어야 하는 부분에서 삐끗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오른손이를 잃고 슬퍼하는 장면만 롱테이크로 찍기엔 무리가 있었겠구나 싶기도... 경력은 많은 배우인데, 감정연기가 부족한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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