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선
이상철 외 감독, 길해연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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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미쳤는가? 우리는 평범한가? 쓰잘데기 없는 소리다. 내 주위엔 다 미친 사람밖에 없던데 애초에 정상인이란 게 존재하는가? 아님 다들 정상인들이고 나만 미쳤는가? 이것도 또한 쓰잘데기 없는 소리다.

 저 사진 위에 있는 아이들을 보라. 왼쪽에 있는 아이는 지체장애인이지만 부유한 가정에서 엄마와 형의 돌봄을 받으며 살고 있고, 학교에선 자신을 따르는 짝꿍이 있다. 그러나 그 짝꿍이 수상하다. 지체장애인 아이를 괴롭히는 걸 적극 저지하다가 불량배에게 맞는데, 불량배들은 되려 짝꿍이 지체장애인을 이용해 신발도 사고 시계도 샀다는 것이다. 이는 지체장애아의 아이폰을 훔침으로 인해 거의 기정사실화 될 뻔했다. 그러나 지체장애아는 그 관계를 끝장내지 싶지 않다. 그가 그 짝꿍을 회유하는 방법은, 신체의 불편을 호소하면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남들이 욕을 하던 말던, 나쁘다고 하던 말던 그들은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만난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공생은 이런 관계가 아니었던가? 사람이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주위의 개신교 신자에게 한 번 물어봤다. 하느님의 증인의 병역의무 거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이 녀석은 군대를 간 녀석이라 제3자의 시선으로 보기에 더 알맞았다.) 그 녀석의 말은 이러하다. 개중에는 군대를 가지 않고 감옥에 가서 군대갈걸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군대를 가서는 차라리 감옥에 갈 걸 후회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자신이 정말 총을 잡는 감각을 알고 싶지 않다면, 그것에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수군거린다고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한다. 그 '남들'이 도대체 누군데? 혹은 우리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길과 가능성의 모든 싹을 잘라버려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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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체탄 바갓 지음, 정승원 옮김 / 북스퀘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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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이즈 웰!


                

 이 영화의 배경은 인도로, 성인 세 명이 대학교 시절 학교에 전설을 만들어놓고 잠수를 탄 인물을 찾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나는 내용이다. 시대의 풍운아같은 인상의 주인공을 찾아낸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학교의 수재 차투르였다. 그러나 우간다 출신이라서 그런지 아님 워낙 인상이 비호감이라서 그런지, 평범한 회사원으로 근무중인 그를 보면 약간 맥이 빠지기도 하다. 이래서 대학에선 공부보다는 사실 인맥쌓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거...

 맥이 빠지는 사실 하나 더. 최근 어떤 인간이 대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인간들은 대부분 좌빨이라 씨부렁댔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저 좌빨이란 단어를 의식이 깨인 자로 바꾸면 나에겐 공감가는 말이다. 일단 저 세 얼간이들도, 엑스트라들도 모두 다 일종의 서울대같은 먼치킨 학교 출신이었다는 걸 기억하자. 졸업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나 대학수료까진 갈 필요가 있다.

 

 

                

 그저 총장은 꼰대였을 뿐이다. 그리고 추가로 말이 너무 직설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한 마디만 내뱉으면 학생들은 너무나 깊은 상처를 입어 자살한다. 좀 더 살아있었다면 인도에서 드론을 창조해냈을 학생이 프로펠러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자살한다. 세 얼간이 중 한 명도 생활고와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가지 않는 점수를 두고 자신을 비관하다 총장 앞에서 자살시도를 한다. 총장이라고 해서 그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속상하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의 아들까지 포함하여 그 나름대로 그들을 격려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이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점점 더 이해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청년들도 대체 자기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같은 인간인 그라고 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사회적 흐름은 점점 거세지고, 모두가 그 시스템에 말려가고 있다. 그 흐름을 억지로 거슬러 올라가, 잠시 세 얼간이를 만난 총장은 그들에게 이렇게 절규한다. 너희가 원하는 게 모두 이루어지진 않을 수도 있어. 그리고 내 머릿속에선 이번 시위에서 다친 인간이 엠뷸런스에 실려가는 순간까지도 가해졌던 물대포가 머릿속에 스친다.

 

 

 

 

 

 

 너무 과한 해피엔딩이 약간 눈에 거슬렸지만, 지금같이 힘든 때엔 이런 터무니없이 긍정적인 영화라도 봐야 속이 좀 트일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잠든 새벽 2시까지, 일하느라 터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 이 영화를 끝까지 지켜봤다.

 처음 이 영화를 볼땐 연애스토리에서 상당히 유치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백미였다. 너무너무 재밌었다. 나이 먹을수록 점점 감성도 수준도 아이가 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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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말하는 대로
미이케 타카시 감독, 후쿠시 소타 외 출연 / 알스컴퍼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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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과 죽이고 싶은 마음은 같아.

 

 

 1. 신?이라기보단 도깨비에 가까웠다. 사람을 가지고 놀아서 그렇지(...) 달마 빼고는 귀여운데다가 뭔가 다들 약간씩 어수룩한 데가 있어서, 이 신들에게 종일 먹히고 찢기고 맞아죽는 애들조차 한 세번째 인간이 죽을 때까지 울고불고하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는 지경. '내가 이런 장난감같은 애들에게 죽는다고? 믿을 수 없어.'라고 하는 것 같은? 동시에 사람 죽음을 굉장히 가볍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섬찟한 면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원작을 굉장히 잘 살린 수작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특히 영화 홍보에서 그런 점이 잘 보여지는데, 위의 사진은 신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들이 각자의 신을 들고 사진을 찍은 장면이다. 우와 하지마 ㄷㄷㄷ 고양이 들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성우를 보면 대략 아연실색해진다.

 

 

 

 2. 사실 원작의 분위기는 미이케 다카시가 여태까지 연출한 공포영화와 상당히 분위기가 잘 맞는다. 아예 원작 만화가 영화로 상영될 것을 노리고 만든 게 아닐까 생각될 만큼. 굉장히 허무한 개그를 연출하는데,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사람이 죽거나 뭔가 피해를 입거나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개그가 연출되는 그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진지하기 때문에, 마침 개그에 피식거리는 순간 비극스런 장면이 나타나고 순간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면서 우리는 마치 피를 흘리는 그 광기의 순간을 즐긴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감독이 즐기는 소소한 히트앤런 식의 장난인데, 이것 때문에 기분나쁘다고 이 감독을 싫어하는 사람도 부지기수. 무슨 파워레인저같은 전대물을 보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었던데, 그것도 아마 감독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노렸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가. 이는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 중 하나인 '식녀 쿠이메'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연출이다. 아무래도 감독이 자체적으로 만든 영화인데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연된 작품인지라 식녀 쿠이메는 점수가 높고 신이 말하는 대로는 낮은 것 같은데, 이 감독의 존재 자체가 일본 호러 영화계의 신선한 충격이므로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 보셔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식녀 쿠이메도 추천하지만, 이 영화보다 엽기의 강도가 훨씬 높으므로 민간인들은 이 쪽 영화를 보시면 된다. 난 솔직히 신이 말하는 대로 영화의 강도가 너무 낮아서 아쉬웠다.

 

특히 난 저 악역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동성애와 적그리스도 쪽으로 자꾸 밀고 나가는 티가 나서 말이죠... 살짝 좀 그랬음. 하긴 원작에서 나오는 캐릭터가 원래부터 그런 애라서 어쩔 수 없는 듯. 그 캐릭터의 그 성격만은 바꿀 수 없었다던가.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지. 하지만 좀 덜 노골적이었어도 좋았을 것을. 아, 맨 위에 있는 저 대사는 마음에 들었다.  

 

 

 3. 네팔에 지진이 일어났다. 예배당에 모여서 기도를 하던 서른 명 넘는 인원들이 한꺼번에 희생되었다. 외모, 재력, 능력은 확실히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운 때문에 모든 것을 말아먹기도 하고, 모든 게 다시 리셋되어 새 인생이 시작되기도 한다. 언제나 확실한 것은 없다. 신에게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죽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렇다.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을 눈앞에 둔 존재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능성이란 잔인한 말이기도 하다. 오늘내일 자연의 대재앙 속에 던져지거나, 차에 치이거나, 자다가 숨이 멎거나, 삶은계란을 먹다가 목에 걸리거나, 기타 등등의 웃기지도 않는 일들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평범하게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암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도 있다. 평범하게. 그래서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실행하는 게 중요한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통한 건 원통한 거다. 그럴 땐 저주하듯이 툭 내뱉고, 다시 앞으로 나가면 된다. "그래. 모든 건 신이 말하는 대로." 모르긴 몰라도 이 작품은 40대 혹은 50대가 되어서 초상집을 두 탕 이상 뛰고 소주를 한 짝 정도를 마셔야 하는 운명이 되어 출렁거리는 뱃살을 가다듬고 '야이씨 좀 작작 죽어라'라고 저주를 퍼붓는 회사원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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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제로 다크 서티 : 킵케이스 한정판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제이슨 클락 외 출연 / 플레인아카이브(Plain Archive)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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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세상과 싸우는군.

 

 

 1. 새벽에 잠이 오질 않아서 영화를 봤다. 추천받은 것도 있고, 아무래도 계속 2시간짜리 영화를 보다보면 잠이 좀 올까 생각되서였기도 하다. 그런데 왠걸, 더 잠이 오질 않았다. 영화 내내 빈라덴을 추격하는 요원들에게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나에게도 전이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뿐이긴 하다만, 딱히 군대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이 영화를 보는 덴 지장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미국 특수부대의 특성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특정한 작전을 수행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수염을 기르고 사복을 입는 등 자유로운 상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미국 부대는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들어서 이들을 보고 약간 놀랐었다.

 

 

 2. 전투씬도 전투씬이지만 특히 주택에 사는 제 3자가 빈라덴일 확률을 따지는 높으신 분들을 조소하는 주인공의 대사들이 인상깊었다. 사실 쉽게 어느 편을 들 수 없는 입장이었던 듯하다. 정말 빈라덴이 아닐 경우 정치가들이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문제라던가 인권 논란의 재발이라던가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고,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빨리 끝내버려야 더이상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가 주인공의 입장인데, 이 감독은 철저하고 집요하게 주인공의 입장 쪽으로 파고든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일단 빈라덴을 제외하더라도) 다분히 정치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신념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정치계의 약자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CIA 내부에서는 그녀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주인공의 상사인 지부장은 '너 찍혔어'라는 말을 계속 하는데, 딱히 파키스탄에서의 입지 뿐만이 아니라 CIA 자체도 목적어에 포함될 것이다.

 

 

 3. 루시퍼 이펙트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선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포로에게 가한 학대를 필립 짐바르도가 수행한 교도소 실험에 빗대고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간수가 아닌 사람이 간수 옷을 입고 죄수가 아닌 사람이 죄수 옷을 입은 채 진행했다가 굉장한 상황(...)들이 일어나서 중도에 마무리해야 했던 실험이다. 사람은 상황에 휩쓸리기 쉽고, 그런 분위기를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어찌보면 주인공은 분위기를 바꾸기보다는 아예 상황을 종료시킴으로서 모든 것들을 끝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설령 10몇년간 빈라덴을 쫓던 자신의 사명의 종료를 초래하더라도, 갈 곳이 없어진 자신에게 다가올 각종 트라우마를 감소하더라도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이 가장 생존하기 쉽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언제나 가장 고통받는 건 평범한 민간인들과 약자들이다. 여담이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나라 혹은 국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정말 '끝까지 가는데', 우리나라는 어째서 광주를 포함한 자국민들에게 고문을 가할까 싶었다. 그것도 나라를 위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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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비포 선라이즈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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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나중에 너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하자.사랑은 점점 식어갈테고...과거의 남자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 거야. 근데 그게 바로 나야. 셀린느: 넌 모를거야, 왜 지금이 내 인생에 그토록 중요한지.   

 

 


 

 

눈치채셨나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으슥한 데로 가는 이 두 남녀를 ㅋㅋㅋ

 

 1. 만약 여행지(특히 독일 베를린)에서 여자를 꼬시고 싶은 남자라면 이 남주가 여자를 데려가는 장소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봐도 좋을 것이다. 참 많은 곳을 데려가지만 일단 내가 '오호 이 녀석 제법인데?'라고 생각했던 곳을 꼽자면, 열차 안 레스토랑과 노천 카페와 안락한 소파가 있는 24시간 레스토랑과 강이 흐르는 다리 위와 마지막으로 풀이 돗자리처럼 깔린 공원 위이다. 특히 이 자리에서 거사(!)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꼭 확인하고 나서 같이 누우시길! 물론 이 글을 읽는 남성분과 거기까지는 가지 않으려 하는 여성분도 있을테니 뺨 몇대맞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아무튼 난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껄껄 웃었다. 고수다 이 남자.

 


 

 

 2. 첫 내용은 전철 안 독일 부부의 싸움으로 시작된다.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데다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자 여주 셀린느는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맞은편 좌석에서 제시를 발견한다. 마침 그도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고, 그 인연을 시작으로 여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다 그 둘은 자리를 옮겨서 아예 마주보고 이야기를 한다. 목적지는 제시 쪽이 더 가까운데, 그는 열차에서 내리다가 다시 올라타서 셀린느와 원나잇을 보내자고 꼬신다. 셀린느도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나중에 그 자리에서 내려서 같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아무리 여행을 하느라 가벼운 기분이었다고는 하지만 제시는 유럽도 아니고 미국에서 살고있는데다가, 프랑스어도 독어도 아무것도 못하고 단지 영어만 하는 남자인데도 그녀가 선뜻 그를 따라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녀로서도 사실 상당히 의외의 사건이 아니었을까.

 


 

 

 3. 킨스키의 자서전은 우리나라에선 번역이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죠르쥬 바떼이유는 상당히 명성있는 인물이므로, 셀린느가 들고 있는 저 책 강력하게 추천한다.

 

 생각해보면 사랑은 일상에서 연기하느라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평소 모습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당히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셀린느와 제시는 싸우기도 하고, 서로에게 원나잇을 하자고 주장하면서도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막차를 타게 되서야 서로 나중에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은근히 서로에게 '원나잇으로 끝낼거지?'라고 물어보고 '그래 난 괜찮아'라고 혼잣말하며 기싸움하는 게 풋풋하고 귀여웠다 ㅋㅋㅋ

 

 그러나 워낙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다 핸드폰도 변변한 게 없는 80~90년대 시기이다보니 그들의 금방 끊어질 게 뻔한 약속은 처량맞기까지 하다. 이 영화 다음 작품인 '비포 선셋'을 보면 이들은 처음 약속했던 5년 후도 그 다음 약속했던 1년 후도 마지막에 약속했던 6개월도 아닌 9년 후에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한 명은 결혼까지 한 상태로.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마 비포 선셋이란 작품 안에서 따지겠지만. 이 작품 안에서 힌트를 아예 찾아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셀린느는 '요즘 시대 젊은이들은 실체를 모르는 적과 싸우고 있어.' 최근 사회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던 왼쪽으로 돌리던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먹고 살기에 힘들 정도는 아닐 정도로 살고 있지만, 무력감과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이 너무나 즐비하다. 이 영화를 쓰레기 포르노물이라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하루 만나 ㅅㅅ를 하고 헤어지는 작품으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그들의 만남 뒤엔 그들이 해야될 일들이 산더미처럼 남아있고, 무작정 사랑에 빠진 상대를 따라가기엔 이 세상이 너무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우며, 너무나 빨리 변하는 시간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도 빨리 변할 게 너무 빤히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작전상 후퇴를 취했던 게 아닐까?

 

 그러게 왜 남자는 차에 굳이 다시 올라탔으며, 왜 여자는 굳이 열차에서 내려서 덧없는 인연을 만들었을까? 왜 그들은 모든 걸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질문한다면 다시 셀린느의 말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이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해.' 말은 바람과 같다. 하지만 말은 사람의 마음에 주문을 걸어, 심장에 자물쇠를 채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 뿐입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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