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67

제8회 - 양웅兩雄은 설원에서 당병과 싸우고 여협女俠은 누이에게 자비를 베풀다


   양웅은 ‘두 사람의 영웅(英雄)’을 뜻하며, 여기서는 손오공과 홍해아를 가리킨다. 『사기』권97「역생육가열전(酈生陸賈列傳)」을 보면, ‘양웅불구립(且兩雄不俱立)’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초(楚)와 한(漢)이 대립하고 있을 당시, 항우(項羽)의 공격으로 유방(劉邦)은 싸움을 피하기 위해 성고의 동쪽 지역을 항우에게 내주려고 했다. 그러자 모사(謀士) 역이기(酈食其)가 유방에게 간하기를 “두 영웅은 함께 존립할 수 없습니다.[且兩雄不俱立] 초나라와 한나라가 오랫동안 대적하면서도 결판을 내지 못한다면 백상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역사가 이야기했듯이 이후 ‘양웅불구립(且兩雄不俱立)’은 ‘반드시 어느 한 쪽이 쓰러질 때까지 다투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손오공과 홍해아를 양웅으로 일컬은 것은, 이들 둘의 운명을 나타내는 신탁과도 같은 말이 됐다.



p.269

“저 사람은 좌복야 범원范願... 상주가 당에게 함락됐단 말인가?”


   『자치통감』권190에 “(3월) 임진일(11일)에 유흑달은 고아현을 좌복야로 삼아서 군중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유흑달은 범원 등 200여 기병과 돌궐로 도망하여서 산동이 모두 평정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요원전』에서 다루는 역사는 실제 역사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역사와 관련한 사건과 인물들이 『요원전』에 등장할 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 디테일한 면에서는 작가의 창작이 들어갔지만, 큰 바탕은 실제 사료에서 취한 것인만큼 주의를 가하면서 행간을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이야기의 원전은 역사서가 아니라 『대당삼장취경시화』이기 때문이다.



p.290

“먹어치우는 거야! 이런 기근에 달리 먹을 게 없잖아. 저 여자는 식용으로 팔렸단 말이지!”


   『구당서(舊唐書)』「태종본기(太宗本紀)」에 “이해(627년)에 관중(關中)이 굶주렸다. 남녀를 사고파는 자까지 나타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상기후로 인한 심한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진순신은 “남녀를 매매한 것은 잡아먹기 위해서”고, “단순한 기근이 아니라 소름끼치도록 혹심한 재앙”이라고 이때의 상황을 묘사했다.

   『자치통감』권192에도 이런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628년) 여름, 4월 기묘일(3일)에 조서를 내렸다. 「수(隋) 말기에 혼란하여 흩어졌고 이로 인하여 기근이 들어서 해골이 드러나서 들판에 가득하며 사람의 마음과 눈을 다치게 하였으니 의당 당지에 있는 각 관사(官司)에서 거두어 묻어주라.」”

   그러니까 굳이 기근 때문이 아니더라도, 수당 교체기에 끊임없이 일어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농사를 지을 인력도 부족, 결국 서로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를 순화시켜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기근과 전쟁으로 인한 식인에 대한 역사 시록은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인간에게 있어서 인성을 빼면 뭐가 남는지에 대한 처절한 기록일 수도 있겠다.



p.293

“아니, 용아녀龍兒女잖아!”


   7회에 등장해서 20회에 퇴장할 때까지 강력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처음에는 제천대성의 칭호를 물려받은 손오공을 질투하지만, 결국 질투심을 버리고 손오공에게 제천대성의 힘을 이끌어준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용아녀의 캐릭터를 『아녀영웅전(兒女英雄傳)』의 하옥봉(何玉鳳)의 캐릭터에서 따왔다고 했는데, 별다른 접점이 보이지 않다가 18회에 이르러서야 그 이유를 알려준다. (자세한 것은 차후에)



p.293

“둘 다 배다른 언니야. 위쪽은 호마虎媽 언니, 아래쪽은 녹저鹿姐 언니. 내가 집에서 나와 산에 들어간 뒤로는 거의 본 적도 없긴 하지만...”


   『요원전』에 등장하는 호마・녹저 자매는 『서유기』 44회~46회에 등장하는 호력대선(虎力大仙)과 녹력대선(鹿力大仙)에서 차용한 듯하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호력・녹력・양력대선(羊力大仙)은 삼장법사 일행과 법력 대결을 벌이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요원전』의 호마・녹저 자매 역시 경우는 다르지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서유기』에는 유독 세 명씩 짝을 이루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24회의 진진(眞眞)・애애(愛愛)・연연(憐憐), 26회의 수성(壽星)・복성(福星)・녹성(祿星), 29회의 보상국(寶象國)의 세 공주, 44회에서 호력・녹력・양력대선을 비롯 원시천존(元始天尊)・영보도군(靈寶道君)・태상노군(太上老君)의 세 신상, 74회의 사타동(獅駝洞)의 청모사자(靑毛獅子)・황아노상(黃牙老象)・대붕조(大鵬鵰), 91회의 현영동(玄英洞)의 벽한대왕(辟寒大王)・벽서대왕(辟暑大王)・벽진대왕(辟塵大王)이 그런 경우이다.



p.296

“평정산平頂山!”


   『서유기』에서 평정산 연화동(蓮花洞)은 금각대왕(金角大王)과 은각대왕(銀角大王)이 거처하는 곳이다. 앞으로 이들이 등장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용아녀・손오공・금각・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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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 괴동怪童은 풍랑을 틈타 달아나고 맹아猛兒는 흉검凶劍을 휘두르다


p.239

“화과산에서 붙들린 대성이 어째서 황하에 있었지? 아니... 그보다, 그게 정말로 대성이었을까... 마치 또 다른... 그냥 일개 하등한 요괴 같았어...”


   『요원전』에서 무지기는 “불사신”이며 “어디에나 있”다고 했다. 황허에서 나타난 무지기가 한 개인의 원한으로 불려온 것으로 보아, 무지기는 실체가 없는 인간의 원혼이 만들어내는 원념 같은 것일지 모른다. 반면 화과산에 나타난 무지기는 그러한 개개인의 원념이 모여 집단성을 이루었을 때 나타났었다.



p.244

“당시 천하의 판도로 말할 것 같으면 열에 아홉은 거의 당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습니다만 고개도高開道, 서원랑徐円朗 등 아직도 당에 복속되지 않은 세력이 남아 있었지요. 그 중에서도 유흑달은 하북을 거점 삼아 당에게 마지막까지 완강히 저항한 군웅 중 마지막 한 사람이었답니다.”


서원랑徐円朗 → 서원랑徐圓朗 (역사 속 인물, 고유명사이니 통자 대신 본자를 써야, p.406 수말당초 군웅할거도의 徐円朗도 수정)


수말 군웅도


   하왕(夏王) 두건덕(竇建德)이 죽은 후, 두건덕의 남은 장수들은 난을 일으키기로 모의했다. 이들은 점을 봤는데, 유(劉)씨를 주군으로 삼는 게 길(吉)하다는 점괴로 유흑달(劉黑闥)을 주군으로 삼았다. 그 후 유흑달이 유현을 함락시키니 숨어있던 두건덕의 옛날 무리들이 점차 규합해서 반년 만에 두건덕의 옛날 영역을 회복하고 돌궐과 연합해 당을 압박했다. 이와 동시에 돌궐은 지속적으로 당을 침략하기 시작, 결국 고제 무덕 4년(621년) 12월 정묘일(15일)에 (이연은) 진왕 이세민과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에게 명령을 내려서 유흑달을 토벌하게 했다. (『자치통감(資治通鑑)』권189)

   『요원전』 화과산에서 무지기를 제압한 이빙(李冰)은 두건덕 휘하의 장수였다고 했고, 손오공과 같은 배를 탄(글자 그대로!) 홍해아는 ‘유흑달 진영에서는 제법 유명한 몸’이라고 했는데 유흑달 역시 두건덕 휘하의 장수였다. 오공의 마을 사람들을 깡그리 도륙한 이원길은 유흑달을 토벌하기 위해 왔다. 두건덕과 유흑달은 『요원전』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인물과 인물을 연결하는 고리인 셈이다.



p.245

“그러던 어느 날 밤에는 결국 한 무리의 도적떼가 쳐들어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는 두목의 여자로 끌고 가 버렸지. 어머니는 도중까지 나를 데리고 갔지만, 도적들이 거치적거린다면서... 나를 발가벗겨 나무에 매달아놓고는 그대로 가버리더군. 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나를 구해준 것이 바로 유흑달 어르신이란 말씀이야.”


   홍해아의 가슴 아픈 옛 과거는 『서유기』40회에서 삼장법사와 그 제자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미혹에 빠뜨릴 때 사용한 방법과 그 묘사가 같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홍해아는 삼장법사의 고기를 먹기 위해 삼장법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드디어 삼장법사를 발견한 홍해아는 삼장을 낚아채려 하다가 그 주위에 있는 무시무시한 세 제자들 때문에 머뭇거린다. 홍해하는 삼장의 “착한 마음씨를 발동시켜 흘려놓고 기회를 엿보아 채뜨리(或者以善迷他,卻到得手)”기 위해 “으슥하게 후미진 산비탈로 들어가 몸뚱이 한 번 꿈틀하더니, 단숨에 일곱 살쯤 들어 보이는 장난꾸러기 어린애로 둔갑한 다음,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 알몸뚱이가 되어 굵다란 밧줄로 제 팔다리를 꽁꽁 묶어 가지고 높다란 소나무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고래고래 악을 쓰기 시작했다.(去那山坡裡,搖身一變,變作七歲頑童,赤條條的身上無衣,將麻繩綑了手足,高吊在那松樹梢頭,口口聲聲只叫:)”


p.247

“장남 건성健成은 만만치 않은 인물이고 둘째 세민도 교활한 위인이지만, 셋째 원길은 하찮은 인간이라지.”


   형과 아우를 죽이고 황제가 된 이세민의 영향으로 분명 이건성과 이원길은 사료에서 폄하되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원길은 정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진순신은 그의 저서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中国の歴史)』에서 여러 사료에서 보이는, 마저 다 지우지 못해 남아있는 이건성의 공적에 대한 흔적들을 열거했었는데, 이원길의 경우에는 아예 그런 것도 없는 듯 했다. 이원길은 “무예가 남보다 뛰어난 청년이었으나 젊음을 믿고 난폭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참가한 전투 족족 패배했으며, 너무나 잘난 둘째 형 이세민에게 콤플렉스를 느꼈던모양이다. 『요원전』에서 묘사한 모습도 역사에 기록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치통감』권 187에 기록된 이원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옮겨본다.


이원길(李元吉)은 성격이 교만하고 사치하여, (...) 항상 두탄(竇誕)과 더불어 놀며 사냥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농작물을 유린하고 밟았다. 또 멋대로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풀어놓아 백성들의 물건을 빼앗게 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활을 쏘아 그들이 화살을 피하는 것을 보았다. 밤에는 부(府)의 문을 열어놓아 다른 방에서 간음(姦淫)하는 것을 드러냈다. (...) 이원길은 어리고 약하며 지금 해야 할 일을 익히지 못하였으니, (...) 진양에는 강한 군사가 수만이고 식량도 10년은 지탱할 곳이고 왕을 일으킨 터전인데 하루아침에 이를 버렸다.


   사족이지만, 『요원전』에서 묘사한 이원길의 캐릭터는 이학인(李學仁)・킹곤타(きんぐ ごんた, 王欣太)의『창천항로(蒼天航路)』에 나오는 원소(袁紹)의 셋째 아들, 원상(袁尙)과 매우 닮았다.



p.261

“이 늙은이의 이름은 통비공通臂公이라고 한다!”



   『요원전』에서 통비공은 손오공이 제천대성으로 자각하기를 위해 그 주변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주인공의 갑작스런 정체성 혼란과, 그 혼란을 타파하면서 존재로서의 자각을 일으키도록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구도를 『암흑신화(暗黒神話)』에서 타케시(武)와 타케우치(竹內), 『공자암흑전(孔子暗黒伝)』에서 하리하라(ハリハラ)와 개명수(開明獸)의 관계로 그린바 있다. (이 구도를 살짝 비틀어 버린 것으로는 「무면목無面目」에서 혼돈混沌과 동방삭東方朔・태백금성太白金星의 관계이다.)


      


   『서유기』에는 통비공이 등장하지 않지만, 통비공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통비원(通臂猿)가 등장한다. 1회에서 통비원은 죽음을 슬퍼하는 손오공에게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방법을 가르쳐준다. 통비원의 조언으로 손오공은 윤회의 그물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제천대성’의 칭호까지 얻는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2회 이후에는 통비원후(通臂猿猴)라 하며 두 마리씩 등장을 하는데, 무기를 마련하려는 손오공에게 용궁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 사해용왕들에게 여의금고봉[如意棒]을 비롯해 신발, 갑옷, 투구를 얻게 한다.

   『서유기』58회를 보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네 마리 원숭이[四猴混世, 사후혼세]”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통비원후이다. 통비원후는 “일월을 잡고 온갖 산천을 압축시키며, 길흉화복을 판별하고 건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拿日月,縮千山,辨休咎,乾坤摩弄)”고 했다.

   물론 옮긴이 註에서도 설명했듯이 통비공은 『삼수평요전(三遂平妖傳)』의 통비원후 원공(通臂猿猴袁公)에서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한데, 뒤에 『평요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천현녀와 백운동(白雲洞)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후지타 카즈히로와의 대담에서 통비공은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의 “『닌자 무예장(忍者武芸帳)』에 나오는 무풍도인(無風道人)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얘기했다.



   하지만, 무예에 능통한 원숭이 이야기의 원류는 아무래도 『오월춘추(吳越春秋)』권9에 실린 원공(猿公)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范蠡對曰:「(...) 今聞越有處女,出於南林,國人稱善。願王請之,立可見。」越王乃使使聘之,問以劍戟之術。處女將北見於王,道逢一翁,自稱曰袁公。問於處女:「吾聞子善劍,願一見之。」女曰:「妾不敢有所隱,惟公試之。」於是袁公即杖箖箊竹,竹枝上頡橋,未墮地,女即捷末。袁公則飛上樹,變為白猿。遂別去。

범려(范蠡)가 아뢴다.

“(...) 지금 월(越)나라에 한 처녀가 있는데, 남림(南林)땅에 살며 백성들로부터 검술이 뛰어나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청컨대 왕께서 그녀를 부르셔서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월나라 왕은 이에 사신을 보내 그녀를 초청하여 검술(劍術)을 보고자 했다. 처녀는 왕을 알현하러 오던 길에 원공(袁公)이라 자칭하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가 처녀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에 그대가 검에 능하다고 하는데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처녀가 말했다.

“이 몸은 감히 숨길 재주가 많지 않사오나, 공을 위해 한번 펼쳐 보이겠습니다.”

   이에 원공이 죽장으로 재빨리 그녀를 찔러 들어갔으나 그가 땅에 내려서기 전에 그녀는 날카롭게 세 번을 반격했다. 원공은 나무위로 뛰어 오르더니 하얀 원숭이로 변하여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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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 처형장에 귀곡성鬼哭聲이 울려 퍼지고 황하黃河에서 오공이 크게 노하다


p.194

“우리는 수 양제의 압정에 맞서 싸웠다. 당을 세운 이연과 다를 바가 없거늘, 어째서 우리는 역도逆盜로 몰려 죽어야만 했단 말이냐. 대성이라면 원수를 갚아다오.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게...”


   이들 모두 무지기의 꾐에 넘어가 죽은 민중들이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무지기는 말을 잘하는 요물이다. 그는 항상 이치에 맞는 말을 한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중노동에 혹사당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끌려가고, 난세가 찾아오면 빼앗기고, 기근이 일어나면 굶어죽는 민중의 삶. 민중의 삶은 원통함과 억울함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무지기는 바로 이런 민중들의 원통함과 억울함에 스며들어 민중들을 자각시켜 또 다른 난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무지기는 이러한 민중의 난이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지기는 민중들의 원통함을 바탕으로 큰 난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죽은 민중들의 원통함으로 살아가는 요물이기 때문이다.

   원혼들이 지금 손오공/대성에게 접근하고 있고, 손오공은 이 원혼들로 인해 자아를 더욱 잃어가고 있다. 무지기가 물속에 잡혀 있어도 끊임없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윤회(輪廻, Saṃsāra) 때문이다.

   어쩌면 『요원전』은, 이러한 무지기의 윤회를 끊기 위한, 번뇌에 속박된 현상 세계인 차안(此岸, 이 언덕)에서 벗어나 열반(涅槃, Nirvāṇa)의 세계인 피안(彼岸, 저 언덕)으로 가고자하는 장대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p.196

“소승은 하직 수행 중인 몸입니다만 독경讀經쯤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들의 보리菩提라도 빌어주도록 하지요.”


   드디어 등장한 현장(玄奬) 스님! 현장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을 소개하는 p.200에서 하기로 한다.

   보리란 산스크리트 보디(Bodhi)를 음역한 말로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참다운 지혜, 깨달음, 또는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 과정을 일컫는다. 이 보리를 얻은 뒤에는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현장이 망자들의 보리를 빌어준 것은 몸과 마음의 고뇌와 속박의 원인인 번뇌로부터 해방되는 것, 즉 망자들의 해탈(解脫, mokṣa )을 기도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p.197

“이시 무진의보살 즉종좌기 편단우견 합장향불 이작시언 세존 관세음보살 이하인연 명관세음 불고무진의보살... 爾時 無盡意菩薩 卽從座起 偏袒右肩 合掌向佛 而作是言 世尊 觀世音菩薩 以何因緣 名觀世音 佛告無盡意菩薩...”


해석: 그 때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드러내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여쭈시되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시되...


   망자들의 원한을 달래주기 위해 현장이 암송하는 것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Saddharma Puṇḍarīka Sūtra)』 (제7권)의 제25품(品)인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다.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法華經)』으로 불리는데 이 명칭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백련화(白蓮華)와 같은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제경(諸經)의 왕으로 생각되었고,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은, 불타(佛陀)는 아득하게 멀고 오래된 옛날부터 미래 영겁(未來永劫)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超越的存在)로 되어 있고,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는 대도(大道, 一乘)를 보이기 위함이며,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위키백과 묘법연화경 참조) 『묘법연화경』은 동국대학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클릭)에서 e-book으로 읽을 수 있다.

   『요원전』에서 현장이 독경하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주된 내용은 ‘옮긴이註’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대중들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거나 생각하면 그 신통력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인데, 실제로 현장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외우면서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긴다. 한 번은 『요원전』제99회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한 번은 『요원전』「서역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p.200

“아... 어찌된 영문일까... 머리가 맑아졌어... 그 무시무시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아... 난 어찌 되었던 거지... 어째서 이런 곳에...”


   억울하게 죽은 망자들의 보리(菩提)를 빌어주기 위해 현장이 암송한 「관세음보살보문품」으로 손오공 또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는 손오공의 야성(野性)을 제어하기 위해서 긴고아주를 외우고, 고통으로 인해 그 야성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반면, 『요원전』에서 현장의 독경은 망자들의 원혼으로 자아를 잃은 손오공이 고통을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한다.



p.201

“저는 형주荊州에서 온 현장玄奬이라고 합니다. 겨우 전란이 가라앉아 상주相州를 순례하고 장안으로 들어가던 참입니다.”


   현장 스님에 대한 평가는 “중국은 물론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요 변역가이며 불교학자”란 첸원중(錢文忠) 교수의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에는 어떠한 과장도 들어가 있지 않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사실상 『요원전』의 주인공이며, 왜 『요원전』이 『서유기』가 아니라 『대당삼장취경시화』를 이야기하는 지에 대한 이유가 바로 현장이라는 인물에 담겨 있다. 그의 대한 평가는 차차 해나가기로 하고 여기서는 현장 스님의 탄생에서부터 상주를 지나기까지의 행적을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현장법사는 수 문제(隋文帝) 개황(開皇) 20년(600년)에 태어났다. 속성(俗姓)은 진(陳)이고 진류(陳留) 사람으로 한(漢) 나라 태구(太丘)의 현장이었던 중궁(仲弓)의 후손이다. (法師諱玄奘,俗姓陳,陳留人也。漢太丘長仲弓之後。)

   사남매 중 막내였는데 둘째 형인 장첩(長捷)은 먼저 출가하여 동도(東都, 洛陽)에 있는 정토사(淨土寺)에 머물고 있었다. 현장이 능히 법을 가르치고 전할 만 하다는 것을 알고는 절로 데리고 가서 경전(經典)을 외우고 익히게 했다. (其第二兄長捷先出家,住東都淨土寺。察法師堪傳法教,因將詣道場,誦習經業。)

   현장은 13세에 대리경(大理卿) 정선과(鄭善果)의 특채로 승려로 뽑혔다. 이후 경 법사(景法師)에게 『열반경(涅槃經)』을, 엄 법사(嚴法師)에게 『섭대승론(攝大乘論)』을 배웠는데 한 번 들은 것은 다 알았으며, 두 번 본 뒤에는 다시 의심이 없었으므로 대중들은 모두 경탄했다. 그래서 법좌(法座)에 올라 그대로 강술하도록 하니 읽는 억양이나 해석하는 표현이 모두 스승과 똑같았다. 그의 훌륭한 소문과 명성은 이로부터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13세였다. (一聞將盡,再覽之後,無復所遺。眾咸驚異,乃令昇座覆述,抑揚剖暢,備盡師宗。美問芳聲,從茲發矣。時年十三也。)

   그 뒤 수 양제가 암살당하고, 군웅들이 일어나 천하에 전란이 끊이지 않자 현장은 형에게 장안(長安)으로 가자고 했다. “이곳이 비록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긴 하지만 사람이 죽고 화란(禍亂)이 이처럼 심하니, 어찌 이곳을 지키다가 죽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당(唐)의 황제[高祖]가 진양(晋陽) 사람들을 데리고 이미 장안에 계시며 천하 사람들이 부모처럼 의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형님, 함께 장안으로 갑시다. (此雖父母之邑,而喪亂若茲,豈可守而死也!余聞唐帝驅晉陽之眾,已據有長安,天下依歸如適父母,願與兄投也。)”

   하지만 현장과 그의 형이 장안으로 갔을 때는 중원 전체가 혼란에 휩쓸린 터라 도성에는 수업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승려들이 상대적으로 전란에서 벗어난 면촉(綿蜀, 四川)으로 떠났다. “장안에는 불법(佛法)을 강하는 일이 없으니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습니다. 촉나라로 가서 수업(受業)하도록 하십시다. (此無法事,不可虛度,願遊蜀受業焉。)”

   당시에는 천하가 기아로 허덕일 때였으나 그래도 촉(蜀) 지방만은 양식이 풍부했다. 이 때문에 사방의 승려들이 많이 몰려들어 강좌에는 항상 수백 명이 사람들이 모였다. 그 가운데 현장의 이지(理智)와 큰 재주가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오(吳)・촉(蜀)・형초(荊楚)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時天下饑亂,唯蜀中豐靜,故四方僧投之者眾,講座之下常數百人。法師理智宏才皆出其右,吳・蜀・荊・楚無不知聞)

   현장은 출가한 지 8년 후, 21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성도에서 정식으로 수계하고 구족계를 받았다. 여름 안거(安居) 때에는 율(律)을 배워 5편(篇) 7취(聚)의 종지(宗旨)를 한 번에 터득했다. 익주(益州)에서 경론(經論) 연구를 다 마치고 법사는 다시 장안으로 들어와 뛰어난 종지를 배울 생각이었으나 법률 조식(條式)에 어긋나기도 하고 또 형의 만류도 있어서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即以武德五年於成都受具,坐夏學律,五篇七聚之宗,一遍斯得。益部經論研綜既窮,更思入京詢問殊旨。條式有礙,又為兄所留,不能遂意)

   이에 현장은 몰래 상인들과 더불어 일행이 되어 배를 타고 3협(峽)을 거쳐 양자강(揚子江)을 건너가서 형주(荊州)의 천황사(天皇寺)에 이르렀다. 이곳의 승려나 속인들도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지가 오래이던 터라 모두들 이렇게 오신 김에 설법을 해달라고 간청했다. (乃私與商人結侶,汎舟三峽K,沿江而遁。到荊州天皇寺,彼之道俗承風斯久,既屬來儀,咸請敷說。)

   강의가 끝나자 다시 북쪽으로 유람하면서 선덕(先德)들을 찾아 물었다. 먼저 상주(相州)에 이르러 혜휴(慧休) 법사를 만나 의심나는 것을 질문했고, 또 조주(趙州)에 가서는 도심(道深) 법사를 뵙고 『성실론(成實論)』을 배웠다. (罷講後,復北遊,詢求先德。至相州,造休法師,質問疑礙。又到趙州,謁深法師學《成實論》)

   『요원전』에 첫 등장한 현장은 바로 이 시기의 현장이다. 첫 등장에서 현장은 “수행중인 몸”이라며 자신을 한껏 낮추었지만, 그의 명성은 위에 기술한 대로 오(吳)・촉(蜀)・형초(荊楚) 지방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충분히 안주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현장은 불교에 대한 학구적・종교적인 열망으로,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인도로 기어이 간다. 바로 그 때문에 중국의 불교(와 한국과 일본의 불교)는 더욱 풍요로워졌으며, 부가적으로 장쾌한 신마소설(神魔小說) 『서유기』를 읽을 수 있게 됐다.



p.203

“두건덕의 잔당으로 당에 반기를 든 유흑달劉黑闥과 한패인 홍해아紅孩兒라는 녀석이외다. 나이는 젊지만 상당히 만만찮은 녀석이었지요. 이제 장안으로 호송되면 아마 참수될 겁니다.”


   ① 유흑달이 두건덕 휘하에 들어가게 된 경위는 『자치통감(資治通鑑)』권188에 나와있다. “유흑달은 장남(漳南)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날래고 용감하며 교활하였는데, 두건덕과 잘 지냈으며, 뒤에 도적떼가 되어, 학효덕, 이밀, 왕세충을 돌며 섬겼다. (...) 왕세충이 유흑달로 하여금 신향을 지키게 하였는데, 이세적(이 당시 이세적은 위징과 함께 두건덕에게 투항한 상태였다)이 그를 쳐서 포로로 잡아 두건덕에게 바쳤다.” 유흑달의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1회 고아현 항목(p.037) 참조.

   ② 드디어 홍해아가 등장했다. 홍해아는 『요원전』에서 현장과 오공의 뒤를 숨이 막히게 쫓는, 참으로 지긋지긋하면서도 애처로운 캐릭터이다. (무려 85회까지 등장한다.) 『요원전』에서는 홍해아와 관련한 서브 캐릭터들이 마구 등장해 『요원전』의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이는 『서유기』에서도 그렇다. 『서유기』는 대부분이 단발성 캐릭터와 상황의 연속으로, 마치 게임에서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게임 내러티브 방식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연속성을 지닌 캐릭터가 바로 홍해아이다. 홍해아는 40~43회에 걸쳐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지만, 홍해아의 삼촌인 여의진선(如意眞仙)이 53회에, 59회~61회에 홍해아의 어머니인 나찰녀(羅刹女)와 우마왕(牛魔王)이 등장한다. 또 우마왕은 손오공의 의형제로 3회와 4회에 걸쳐서 등장하니 이정도면 『서유기』의 중심 플롯을 지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풀어나가기로 한다.



p.206

“나리, 이제 곧 삼문협三門峽의 난소難所에 들어서는뎁쇼.”


   p.202에서 교위의 말을 보면 “여기서부터는 뱃길로 황하를 거슬러 올라갈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으므로, 이들은 지금 황허[黃河]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뱃사공의 말을 보면 이들은 창장[長江, 陽長江]에 있다. 삼협은 창장에 있는 쥐탕샤[瞿塘峽, 구당협], 우샤[巫峽, 무협], 시링샤[西陵峽, 서릉협]의 세 협곡을 말한다. 쓰촨성[四川省, 사천성] 펑제[奉節, 봉절]에서 후베이성[湖北省, 호북성] 이창[宜昌, 의창]에 이르는 사이에 있으며, 옛날부터 항해가 어려운 곳으로 유명하며 총 길이가 204km에 달한다. 난소는 이창의 옛 이름을 말하므로, 이들은 황허를 거슬러 오르는 게 아니라 창장을 거슬러 오르는 셈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루트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먼저 삼문협을 지나 난소에 들른 후 창장을 계속 따라 내려가다가 산양독(山陽瀆)을 타고 화이허[淮河, 淮水]에서 통제거(通濟渠)를 이용, 황허로 빠져서 거슬러 올라가 광통거(廣通渠)를 이용해 장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데, 이런 루트를 사용할 바에는 차라리 육로가 낫겠다. 엄청난 물량도 아니고, 고작 죄수 한 명에 야인 하나를 호송하는데 이런 불합리한 루트를 이용할 이유는 없다. 그냥 황허와 창장을 합쳐버린 모로호시 다이지로 선생의 대륙적 기상이라 퉁치고 넘어가도 무방할 듯하다.


수 대운하 지도



p.215

“제... 제기랄... 하백河伯... 용왕龍王... 아니면 하다못해 그 어떤 요물이라도 좋다... 나의... 나의 이 원한을 풀어다오... 그리 하면 내 오장육부를 바칠 테니... 제기랄... ”


   하백과 용왕은 모두 물의 신이다. 둘 다 『산해경』에 기록이 있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른 소박한 모습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는 하백은 음탕하고 탐욕스런 강의 신이며, 용왕은 사해바다를 다스리는 바다의 신이다. 물론 둘 다 물의 신이므로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거처를 마련해놓고 살고 있다.

   『서유기』에서도 하백과 용왕이 등장하는데, 하백은 46회에 영감대왕(靈感大王)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며, 용왕은, 2회에서 손오공에게 삥을 뜯기고, 10회에선 승상 위징(魏徵)에게 목이 베이며, 14회에선 욱하고 뛰쳐나온 손오공을 달래서 다시 삼장법사에게 돌아가도록 권유하기도 하지만, 43화에선 외질 소타룡(小鼉龍)이 친 사고를 수습하고, 45회에선 도가와 불가의 법력대결로 끌려나오며, 63회에선 잘못 들인 사위 때문에 온 집안이 깡그리 도륙당한다.

   『요원전』에서는 이런 깊은 원한으로 무지기가 응답을 하는데, 무지기는 황허 밑바닥에 묶인 무지기이기도 하지만, 제천대성의 칭호를 내려 받은 손오공이기도 하다. (물론 무지기는 황허에서 사로잡혔다는 고사는 없지만, 수괴이기 때문에 용왕과 같이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이 저주로 두 무지기가 응답하고 일어선다.



p.226~227

원한으로 불러낸 무지기와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왕 교위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제괴지이』「요괴잉어[妖鯉, 요이]」편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금초(金焦)라는 사내가 굉욱(轟郁)을 죽이고 양식어장을 빼앗자, 굉욱은 잉어로 변해 금초의 잔칫상에 올라 기어이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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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요원전西遊妖猿傳 대당편大唐篇 - 오행산五行山의 장章


제5회 - 쌍차령雙叉嶺에서 괴동怪童이 범을 잡고 단두파斷頭坡에서 교위校尉가 수레를 멈추다


p.165

“모르는 일이야. 화과산과 우리 이가촌 뒤편 쌍차령雙叉嶺은 그 막이 맞닿는 산이 아닌가.”


   쌍차령은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떠나는 길에서 여섯 번째 재앙과 환난을 당하는 곳이다. 아직 손오공을 비롯한 세 제자들을 만나기 전인 상황으로 장안(長安)을 떠날 때 따라온 두 종자들이 요괴들에게 산채로 잡아먹히는 광경을 목격한 곳이기도 하다. 『요원전』에서는 화과산이 쌍차령과 맞닿아 있다고 했는데, 『서유기』에서는 쌍차령은 (손오공이 석가여래에게 벌을 받고 있는) 오행산과 맞닿아 있다. 삼장법사는 이곳에서 사냥꾼 진산태보(鎭山太保) 유백흠(劉伯欽)을 만나 호랑이[寅將軍]에게 잡아먹힐 뻔한 고난에서 벗어나고, 또 손오공을 만나게 된다. 『서유기』에서 묘사한 쌍차령은 다음과 같다.


寒颯颯雨林風, 響潺潺澗下水。 香馥馥野花開, 密叢叢亂石磊。 鬧嚷嚷鹿與猿, 一隊隊獐和麂。 喧雜雜鳥聲多, 靜悄悄人事靡。 那長老, 戰兢兢心不寧; 這馬兒, 力怯怯蹄難舉。

   차가운 나무숲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아찔한 계곡에는 시냇물이 무섭게 흘러내린다.

   향기로운 들꽃이 여기저기 활짝 피고, 겹겹으로 포갠 바위 더미가 아찔하게 솟구쳤네.

   시끄럽게 우짖는 사슴하며 원숭이 떼, 이리 뛰고 저리 뛰노는 향노루하며 고라니의 무리.

   어지럽게 지저귀는 산새 소리에, 인적은 하나 없이 적막하구나.

   삼장 법사 금선 장로 불안하여 전전긍긍, 끌려가는 짐승도 겁먹고 앞발굽을 머뭇거리네.



p.166

“이 유백흠이라는 사내는 ‘진산태보’라는 별명을 지닌 이 마을의 사냥꾼이랍니다. 쌍차령을 자기 안마당처럼 돌아다니며 사슴이나 멧돼지를 잡아 생계를 잇는 사냥꾼으로서 그 솜씨는 이 부근에서 제일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사내...”


   ‘진산태보(鎭山太保)’라는 뜻은 “고을의 중심이 되는 산[鎭山, 主山]을 지키는 태보[벼슬아치, 관리인]”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유기』13회와 14회에 등장하는 유백흠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는, 삼장법사가 아직 세 제자들을 만나기 전, 이 제자들의 역할, 즉 삼장법사를 재앙과 환난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또한 제자 중 하나인 손오공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유백흠은 호랑이를 “들고양이[山貓]” 정도로 치부하면서 사냥해서 잡을 정도의 무예와 담력을 지닌, 일명 상헌터라 할 수 있다.


이런 느낌? (윤태호 作 『미생』에서 인용)


   『서유기』에서 유백흠은 어느 정도 삼장법사와 동행하지만, 국경 근처에 이르자, 호위를 포기하는데, 이로 보아 유백흠의 캐릭터는 실제 역사에서 현장스님이 당(唐)의 국경, 옥문관(玉門關)을 벗어날 때 큰 도움을 주는 호인(胡人) 석반타(石磐陀)에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석반타의 큰 도움으로 현장스님은 옥문관을 벗어나지만, 그 직후 석반타는 동행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석반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1권, 『현장 서유기(玄奘西游记)』 제5강에 나오며 『요원전』에서도 87회~100회에 걸쳐 등장한다.

   참고로,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창조한 유백흠은 『제괴지이』「구도왕(拘屠王)」의 어설픈 구도왕 왕이와 닮아 보인다.




p.167

“앗, 이런! 범이다! 이 발자국 크기로 봐서는 아무리 나라도 당할 재간이 없겠어. 거기다 가깝지 않은가!”


   『요원전』에서는 유백흠이 호랑이 발자국을 보고 꽁무니를 치는 것으로 나오지만 『서유기』에서 유백흠은 삼장법사 앞에서 호랑이 사냥을 한다. 『서유기』에서 유백흠과 호랑이의 일대격전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怒氣紛紛,狂風滾滾。怒氣紛紛,太保沖冠多膂力;狂風滾滾,斑彪逞勢噴紅塵。那一個張牙舞爪,這一個轉步回身。三股叉擎天幌日,千花尾擾霧雲飛。這一個當胸亂刺,那一個劈面來吞。閃過的再生人道,撞著的定見閻君。只聽得那斑彪哮吼,太保聲狠。斑彪哮吼,振裂山川驚鳥獸;太保聲狠,喝開天府現星辰。那一個金睛怒出,這一個壯膽生嗔。可愛鎮山劉太保,堪誇據地獸之君。人虎貪生爭勝負,些兒有慢喪三魂。

   싸움터 분위기는 노기등등, 모진 돌개바람은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데,

   노기등등한 싸움터에 사냥꾼은 뚝심을 뽐내고, 미치광이 돌개바람에 얼룩무늬 호랑이는 기세를 뽐내고 티끌을 뿜어낸다.

   저편이 아가리를 쩍 벌려 송곳니를 드러내고 앞 발톱 춤을 추니, 이편은 빙그르르 몸을 돌려 잽싸게 피한다네.

   하늘을 떠받든 세 갈래 강철 작살, 햇볕 아래 눈부시게 빛나니, 수천 가닥 얼룩진 꼬리가 안개를 휩쓸고 구름장을 흩날린다.

   저편의 작살은 앙가슴을 마구 찔러들고, 이편의 송곳니와 두 발톱은 면상을 할퀴어 한입에 삼켜버리려 한다.

   선뜻 돌아가는 몸짓에 잘 피해내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겠으나, 정면으로 마주쳤다가는 염라대왕을 만나보기 십상이라네.

   들리는 것이라곤 얼룩 범의 포효성에, 진산태보의 사나운 기합 소리,

   얼룩 호랑이의 포효성에 산천초목이 흔들려 쪼개지고, 날짐승 길짐승이 놀라서 달아나며,

   진산태보의 사나운 기합 소리, 천궁을 활짝 열고 일월성신 나타내라 호통을 친다.

   저편의 금빛 눈동자가 살기를 드러내면, 이쪽은 대담한 배짱에 노여움이 치솟는다.

   솜씨 좋은 진산태보 유백흠이 여기 있다면,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산군이 저기 있으니,

   사람과 호랑이가 목숨을 탐내어 승부 다투는데, 자칫 굼뜬 동작 보였다가는 삼혼칠백을 몽땅 날릴 판이라네.



p.168~171

손오공과 호랑이와의 사투


   손오공과 호랑이와의 사투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서유기』 13회에서 유백흠이 호랑이를 사냥하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물론 『서유기』 14회에도 손오공이 호랑이를 때려잡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여의봉으로 단 한방에 머리를 후려갈겨 박살을 내버리지, 이렇게 사투를 벌이지는 않는다. 삼장법사는 손오공이 호랑이를 단매에 때려잡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天那!天那!劉太保前日打的斑斕虎,還與他鬥了半日;今日孫悟空不用爭持,把這虎一棒打得稀爛。正是強中更有強中手!」

“아이고, 하느님 맙소사! 지난번 유태보가 얼룩무늬 호랑이와 싸웠을 때도 반나절이나 걸려서야 겨우 때려잡았는데, 이제 손오공은 엎치락뒤치락 드잡이질도 않고 몽둥이질 한 번에 호랑이를 묵사발로 만들다니, 이야말로 ‘강자 중에 더 힘센 강자가 있다’는 그 말이 맞는구나.”


   손오공은 잡은 호랑이 가죽으로 옷을 해 입는데, 이것은 『요원전』에서도 같다. 참고로 p.170 네 번째 컷에서 손오공이 호랑이 목을 뒤에서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건 『수호전』 22회에서 무송(武松)이 경양강(景陽崗)에서 술에 취한 몸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모습과 흡사하다. 무송은 “왼손으로 호랑이의 정수리 가죽을 꽉 움켜잡고, 철퇴만 한 오른 주먹을 슬그머니 들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정신없이 내리쳤다”고 했다. 무송은 『제괴지이』「창귀(倀鬼)」편에도 보이는데, 거기에서도 호랑이를 때려잡으며 주인공인 아귀(阿鬼, 燕見鬼)를 구해주는 역을 맡았다.




p.179

“이 지경까지 자아를 잃었을 줄이야... 별 수 없지. 지금은 일단 현녀玄女 쪽을 찾아가볼까...”


   ‘현녀’라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구천현녀(九天玄女)’일 것이다. 구천현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수호전』 41회에서 송강(宋江)이 구천현녀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고 천서(天書)를 받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통비공이 이야기하는 현녀는 『평요전(平妖傳)』의 구천현녀일 것이다. 같은 존재이긴 하지만, 『수호전』의 구천현녀가 서왕모에 가까운 권위 있는 모습의 이미지라면, 『평요전』의 구천현녀는 전사에 가까운 이미지를 지닌다는 차이점이 있다. 자세한 것은 오공이 백운동(白雲洞)에 들어가는 10회에서 기술하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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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 이빙은 다시 한 번 대성大聖을 상대하고 신군神君이 신쇄神鎖로 요원妖猿을 묶다


p.122~123

무지기의 이미지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창조한 무지기는 중국의 신화와 소설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 이미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퀴클롭스(Κύκλωψ, Kuklōps), 더 소급하자면, 호메로스(Ὅμηρος, Hómēros)의 『오뒷세이아(Ὀδύσσεια, Odýsseia)』 제9권에 등장하는 퀴클롭스 폴리페모스(Πολύφημος, Polyphēmos)의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특히 p.074에서 무지기의 첫 등장이 ‘동굴 속, 외눈박이 거인, 식인’의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하다.


벌떡 일어서더니 내 전우들에게 두 손을 내밀어 한꺼번에

두 명을 마치 강아지처럼 움켜쥐더니 땅바닥에 내리쳤소.

그러자 전우들의 골이 땅바닥에 흘러내려 대지를 적셨소.

그러더니 그자는 그들을 토막 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산속에 사는 사자처럼 내장이며 고기며

골수가 들어 있는 뼈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웠소.

- 천병희 역 『오뒷세이아』 제9권 288행~293행 -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퀴클롭스 상



요크셔 박물관의 퀴클롭스


   하지만,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머드멘』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요원전』의 무지기가 『머드멘』의 아엔과 동일한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머드멘』에서 아엔은, 인류의 조상 키우나기에게 불을 주어 지혜를 갖게 했지만, 그 때문에 키우나기와 나미테를 숲에서 쫓겨나게 했다. 즉, 아엔은 성서의 뱀, 사탄 같은 존재다. 아엔은 파푸아 뉴기니의 원주민들의 삶, 즉 숲을 파괴하는 악한 존재이지만,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원주민들에게 카고(재물)을 내리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엔은 인류에게 풍요를 주는 대신 낙원에서 몰아내는 이율배반적인 존재이다. 『요원전』의 무지기 또한 민중에 대한 억압이 극한에 다다랐을 때 민중의 원통함 속으로 스며들어 그 원한을 바탕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악귀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란은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부른다. 이런 면에서 무지기의 존재 역시 이율배반적으로 볼 수 있다.

 

하야토, 나미코 & 아엔


코도와 & 아엔


   『머드멘』에서 아엔의 반대급부로 “위대한 가면(혹은 위대한 자)”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요원전』에서 무지기의 반대급부는 누가 될까? 불법(佛法)? 아니면 또 다른 원숭이 신[外道]?


   



p.126

“이 이빙에게 힘을 빌려주소서. 과거 우왕께서 무지기를 옭아매셨던 그 사슬로 요괴를 붙들 수 있도록 해주소서.”


   물론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우왕(의 명을 받은 경진庚辰)이 무지기의 목에 큰 쇠사슬을 꼬았다(頸鎖大索)’는 고사가 있지만, 이랑진군에게도 그에 걸맞는 신화/전설/이야기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맥망관초본고본잡극(脉望館鈔本古今雜劇)』에 실려 있는 네 편의 희극 중 「이랑신쇄제천대성(二郞神鎖齊天大聖)」, 「관구이랑참건교(灌口二郞斬健蛟)」, 「이랑신사쇄마경(二郞神射鎖魔鏡)」 세 편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물속에 살던 요괴를 잡은 이랑신을 중심으로 서술됐다.



p.137

“상제上帝가 대성 어르신을 붙들고자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치고 있는 것 같구먼.”


   상제는 고천상성 대자인자 옥황대천존 현궁 고상제(高天上聖大慈仁者玉皇大天尊玄穹高上帝), 간단하게 줄여 옥황상제를 말한다. 도교의 신은 너무 많아 목록을 적는 것도, 위계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지만, 최고신의 위계는 확고부동하게 정해져있다. 도교의 신령 가운데 최고 지존은 ‘삼청(三淸)’의 세 천신(원시천존元始天尊, 영보천존靈寶天尊, 도덕천존道德天尊)과 이들을 보필하는 ‘사제(四帝)’이다. 사제 중 가장 존귀하고 숭앙받는 이가 바로 옥황상제인데, 천도를 주재하고,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주재하는 최고 신령이다.


   천라지망이란 “하늘의 그물, 땅의 그물”이라는 뜻으로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경계망 또는 재액”을 비유할 쓰는 말이다. 『서유기』5회에서, 태백금성의 중재로 무단이탈의 죄도 사해주고 제천대성이란 그럴듯한 직함까지 얻은 손오공이, 서왕모(西王母)의 반도복숭아를 다 따먹고 태상노군(太上老君, 道德天尊)의 금단을 몽땅 훔쳐 먹은 후 반도대회에 쓸 술과 음식을 모조리 훔쳐 먹는 대형 사고를 치고 화과산으로 도망간 후, 상황을 보고받은 옥황상제가 노발대발 분노하며 손오공을 잡으라는 명을 내리는 장면에서 나오는 말인데,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玉帝大惱。即差四大天王,協同李天王並哪吒太子,點二十八宿、九曜星官、十二元辰、五方揭諦、四值功曹、東西星斗、南北二神、五嶽四瀆、普天星相,共十萬天兵,布一十八架天羅地網下界,去花果山圍困,定捉獲那廝處治。

   옥황상제는 노발대발, 그 즉시 사대 천왕(四大天王)을 출동시켜 탁탑 이천왕과 나타 삼태자 부자를 돕게 하고 이십팔수(二十八宿), 구요성관(九曜星官), 십이 원신(十二元辰), 오방게체(五方揭諦), 사치공조(四值功曹), 동서성두(東西星斗), 남북이신(南北二神), 오악사독(五嶽四瀆), 보천성상(普天星相)을 지명하여, 도합 10만 천병(天兵)을 이끌고 하계로 내려가, 화과산을 천라지망 열여덟 틀로 물샐틈없이 포위해 놓고 그 요망한 원숭이 놈을 기어코 잡아 처단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詩曰:

天產猴王變化多,偷丹偷酒樂山窩。只因攪亂蟠桃會,十萬天兵布網羅。

   이런 시구가 또 있다.

   저절로 태어난 원숭이 임금 변화무쌍해,

   금단을 훔쳐 먹고 술을 훔쳐 제 소굴에서 즐기니,

   반도연회 큰 잔치를 어지럽힌 죄로, 십만 천병이 천라지망을 펼치는구나.



p. 145

“이런... 큰일이다. 저것은 우왕이 만들어 이랑진군에게 전해지던 박요쇄縛妖鎖아닌가!”


   『관지문정(灌志文征)』 권5 『이공자치수기(李公子治水記)』에 실린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빙과 매산칠성이 해마다 홍수를 일으켜 사람들을 괴롭히는 얼룡을 잡았을 때, 때마침 어린 손자를 얼룡의 제물로 바칠 뻔했던 노파를 만났는데, 그 노파가 쇠사슬을 전해주자 이랑이 그 쇠사슬로 얼룡을 묶어 복룡관 돌기둥 밑의 깊은 못에 가두어 그때부터 다시는 수해로 인한 우환이 없었다고 한다. (終复擒之于新津縣童子堰。方返至王婆岩,遇前日茅屋泣孫老嫗,持鐵鎖鏈來謝贈之。二郎即以此鎖鏈鎖孽龍,系之于伏龍觀石柱下水深潭中,后遂無水患。)

   위앤커는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에 의하면 그 노부인은 바로 관음보살이었으며 스스로를 왕파(王婆)라 불렀다고” 했는데, 중국의 고대 신화와 도교와 불교가 서로 섞여있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예로 볼 수 있겠다.

   이 이야기는 『서유기』 47회~49회에 걸친 차지국(車遲國) 원회현(元會懸) 진가장(陳家莊)과 통천하(通天河)의 영감대왕(靈感大王)과의 이야기로 차용되기도 했다.



p.148

“이것은 통비通臂! 그런 재주를 부리는 걸 보니 역시 요물이었나!”


   드디어 등장한 통비공! 하지만,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으니, 통비공에 대한 이야기는 제7회로 미루기로 한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4회에 등장한 통비공은 캐릭터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일개 수상쩍은 노인네’에 불과했는데, ‘메인 스토리와 관계없는 지점(5회 초반)에서 슬쩍 움직이니 캐릭터가 확립’된 특이한 경우라고 후지타 카즈히로와(藤田和日郎)의 대담에서 밝힌 바 있다. 이 대담은 『요원전』7, 8권에 권말부록으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p.153

“어찌 보고 자시고, 싸움보다도 홍수 때문에 뭐 남아난 게 없네 그려. 원길이가 정말로 고아현을 격파했나?”


   『자치통감』권189와 권190을 보면, 621년 “12월 정묘일(15일)에 진왕 이세민과 제왕 이원길에게 명령을 내려 유흑달을 토벌”하라는 당고조의 조칙이 있었고, 622년 3월 “임진일(11일)에 유흑달은 고아현을 좌복야로 삼”았으며, 그 후 유흑달이 패배, 유흑달은 돌궐로 도망하고 하북은 평정되었다. 도망한 유흑달이 돌궐을 이끌고 산동을 노략질한 게 622년 “6월 신해일(1일)”이라고 적혀있으니, 『요원전』에서 손오공이 제천대성의 칭호를 받고 긴고아를 쓴 때와 무지기가 깨어나 다시 물속에 묶인 때와 고아현의 죽음은 622년 3~6월 사이의 홍수가 범람한 어느 날인 듯하다. 물론 역사와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라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

   고아현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유흑달이 죽을 때 고아현의 이름이 한 번 언급된다.

   『요원전』에서는 이세민이 이원길을 도우러 달려왔으나 홍수의 도움으로(요원의 도움으로) 도울 일이 없었다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역사에 기록된 것은 이와는 다르다. 『자치통감』권191을 보면, 624년, 이세민이 돌궐과의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이원길에게 자신과 함께 싸움에 임할 수 있는지(선봉에 나설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원길이 두려워하니, 이세민은 “네가 감히 나가지 못한다면 나는 마땅히 혼자서라도 가겠으니, 너는 여기에 남아서 이를 보아라.”라고 호통을 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고종의 뒤를 잇는 이세민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곡필이 들어간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원길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이런 초월적 존재들의 전투(무지기-이빙)가 인간의 역사(이원길-고아현)에 영향을 주는 내용의 이야기를 『공자암흑전』「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다」편에서도 그린 적이 있는데, 공자[孔丘]와 양호(陽虎)의 싸움으로 치우(蚩尤)가 깨어나고 그로 인해 수극토(水克土)의 형국으로 홍수가 일어나 오(吳)나라와 제(齊)나라의 싸움에서 오나라가 승리를 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요원전』이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Ίλιάς, Iliad)』와 『오뒷세이아』의 자리에 놓이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p.154

“오-공- 아무데도 없구나... 역시 죽었나...?”


   아쉽게도 신양선인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서유기』에서 수보리조사(須菩提祖師)와 거의 흡사하다. 수보리조사는 손오공에게 성과 이름을 내려주고 장생(長生)의 도리와 72가지 변화 술법, 그리고 한 번에 십만 팔천 리를 갈 수 있는 근두운(筋斗雲)을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1회와 2회에 걸쳐 등장한 이후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서유기』에서 수보리조사는 도가의 선인이지만, 원래는 인도의 고승 수부티Subhūti의 높임말로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하나로, 천성이 자비심이 많아 출가하여서도 늘 선행을 베풀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수보리조사가 손오공을 추방했을 때 “앞으로 네가 어떤 화란을 일으키고 흉악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내 제자였다는 소리만큼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 만약 네놈의 입에서 일언반구라도 그런 말이 나왔다가는, 내 당장 알아차리고 가서 네놈의 원숭이 껍질을 몽땅 벗겨내고 뼈다귀를 바수어버릴뿐더러, 그 혼백을 십팔층 지옥에다 처박아 놓고 만겁(萬劫)의 세월이 지나더라도 두 번 다시 환생을 못 하게 만들어버릴 테다!” 하고 엄포를 놓지만, 손오공이 이 약조를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오공은 67회에서 타라장(駝羅莊)의 이노(李老)에게 자신이 수보리조사에게 도술을 배웠다는 것을 밝히지만, 아쉽게도(?) 수보리조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 더 들자면, 『수호전(水滸傳)』의 왕진(王進)의 역할과도 비슷하다. 1회에서 태위 고구(高俅)의 미움을 받아 몰래 도망하는 왕진은 사가촌(史家村)에 들러 후에 양산박의 108두령 중 한 명이 되는 사진(史進)을 가르친다. 『수호전』의 초반은 고구가 왕진을 이끌어내고, 왕진이 사진을 이끌어내며, 사진이 노지심(魯智深)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이들은 그 뒤에도 계속 등장하지만, 왕진은 이후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요원전』에서도 신양선인은 손오공을 수렴동으로 끌어들이고 무지기를 만나게 한 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비롯해, 이빙과 제천대성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제천대성의 칭호를 받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이후의 역할은 통비공이 맡았다.

   굳이 『수호전』을 언급하는 이유는, 『요원전』에 『수호전』의 인물들과 에피소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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