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tic Mr. Fox』 내가 나이가 든 것인가...

      

   『Fantastic Mr. Fox』 책을 읽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책이 언제 영화가 되었나요? 게다가 웨스 앤더슨 감독에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빌 머레이(@.@)라니!!  

   도대체 어떤 영화가 나왔을지 궁금합니다. 예고편을 보니 책보다는 덜 위악적인 것 같아 다행이고, 또 『찰리와 초콜렛 공장』이후로 그럴싸한 Roald Dahl원작의 영화가 나올 것 같아 기대됩니다.  

   크리스마스 개봉 예정이고, 지금 시사회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알라디너분들께서는 아래 있는 홈페이지로 가서 지원하세요. ^.^  

 

홈페이지 가기 

 

* 덧붙임 

1. 이 예고편을 보니까 엉뚱하게도 무적핑크님의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동화」중, [여우와 포도]편이 생각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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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오후, 업무에 관련한 자료 검색을 하던 중,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8등신에 슬픈 눈매’ 가야 소녀 복원
(기사 읽기 클릭) 

권력자 무덤에 순장된 10대 여성
고대한국인 대상 첫 과학적 성과 

 


   이달 초, 유골이 출토되었다는 소식에는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막상 복원된 모습을 보고나니, 1500여년 전 그 시대를 살았을 소녀의 모습에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현의 노래』에 나온 순장된 왕의 시녀 아라가 떠올랐다.  

   내게 있어 순장은 '지배자가 죽을 때 아랫사람들을 같이 묻는다'는 개념화된 지식으로만 여겨졌었다. 하지만, 『현의 노래』를 읽고 나서 그 개념화된 순장이 실체가 되어 다가왔다. 김훈이 묘사한 순장을 조금만 들여다 보자. 

   
 

   왕의 관이 석실로 내려올 때, 문무의 두 순장 중신들은 흰 수염을 가지런히 하고 눈을 감았다. 군사들이 석실의 돌뚜껑을 덮을 때 쇠나팔이 길게 울렸다. 순장자들의 구덩이마다 배치된 군사들이 일제히 돌뚜껑을 들어올려 구덩이를 덮었다. 구덩이를 덮을 때, 울음소리나 비명소리가 한 줄기도 새어나오지 않으면, 백성들은 그 적막을 죽은 왕의 덕으로 칭송했다. 간혹 구덩이 뚜껑을 덮을 때 흑, 흑 젊은 여자들의 웃음인지 비명인지가 새어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불경하고 요망한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또 돌뚜껑이 덮이는 순간, 뚜껑을 밀치고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자들도 더러는 있었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몽둥이로 사지를 부러뜨려 구덩이 안으로 밀어넣었는데, 그 일도 사람들은 애써 기억하지 않았다. 때로는 장례 전날 밤, 소복을 입은 채 달아난 처녀들도 있었다. 군사들이 갈대숲과 바위 틈을 뒤져 처녀들을 붙잡아 여러 토막으로 베었다. 군사들은 처녀의 몸 토막을 우물에 던지고 흙으로 메웠다. 처녀의 부모들이 쇠터의 노비로 끌려갔고 살던 집은 헐렸다. 처녀들의 도망은 없었던 일로 바뀌었는데,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참담한 일을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별 中)

 
   

   순장에 선택되는 것은, 그시대에선 자연사나 다름 없었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블합리하지만, 따를 수 밖에 없는 그 시대의 질서였다. 그러나 아라는 달랐다. 그녀는 그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받아들여야 할 어쩔 수 없는 죽음과 하나의 생명체로서 삶을 이어가고 싶은 본능 사이에서 그녀는 질서를 받아들이는 대신 삶을 선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그녀가 우륵과 니문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결국엔 그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왕의 충성스런 신하들 덕분에 아라는 결국 순장되고 만다.

   
 

   아라는 상여의 왼쪽에서 올라왔다. 붉은 비단천을 휘감은 몸뚱이가 삼줄로 묶여 있었고, 긴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늘어졌다. 눈을 가렸고, 입에 재갈이 물려 있었다. 

   상여는 더욱 다가왔다. 아라의 머리카락에서 햇빛이 부서지면서 흘러내렸다. 

   지관이 요령을 흔들며 상여 앞으로 나아가 두 번 절했다. 태자의 구덩이 남쪽으로, 아라의 구덩이는 얕고 좁았다. 그 옆에 두 쪽짜리 돌뚜껑이 놓여 있었다. 지관이 아라의 구덩이 속에 토기 세 개를 넣고, 먼 가야산 쪽을 향햐 두 번 절했다. 내위군 한 명이 달려들어 아라를 밀쳤다. 아라는 구덩이 안으로 쓰러졌다. 지관이 밥 한 그릇을 구덩이 속으로 던졌다. 군사들이 돌뚜껑을 밀어서 덮었다. 지관이 우륵 앞으로 다가왔다.  

(월광 中) 

 
   

   그녀의 죽음은 어떻게 찾아왔을까. 구덩이 안에서 돌뚜껑이 덮어지는 광경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후 그 적막함은 어떤 느낌일까. 원하지 않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시나브로 맞이해야 하는 그 절망감은 어떤 느낌일까. 이 어쩔 수 없는 불합리함에 분노하지 못하고 체념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라의 죽음은 이렇게 경험하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질문만을 내게 남겨주었다. 

   그런 그녀가 현대 과학의 힘으로 그 때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그녀의 모습은 다부져 보이지만, 눈빛은 왠지 슬퍼보인다. 1500여년 전의 아라는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려 지금 다시 나타났을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듣더라도, 지금은 그 당시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 체념하고 공포에 떨었을 수많은 가야의 아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더이상 무서워 말라고. 외로워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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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한 너무나 매니악한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2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는 구분되어지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본격 제 2차 세계대전 만화』 1권과 2권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이미 1권에서 거의 했고, 책의 형식 또한 1권의 틀 안에서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본격 2차 세계대전 만화2권 내고 변명하는 만화」를 올린다. 이 만화를 읽으면 -역시 굽본좌!! 숭배하던가 아니면, 뭐 이런시키가!! 불쾌해하던가- 구매의사가 확실히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http://ww2comic.egloos.com/1768295
 

 

   그래도 조금 몇 마디 붙인다면, (작가도 언급했지만) 많은 양을 다루려 해서인지 글자 폰트가 줄어들어 읽기에 좀 벅차다. 하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1권에 비해 패러디 해설의 양이 줄었다. 패러디가 줄었다기 보다는 일부러 해설을 자제한 것 같은데, 블로그에 가보니, 아예 『해설서』를 준비 중인 것 같았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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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흐름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것일까? 요즘들어 읽는 책들은 왠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책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또한 그 목록에 추가시켜야 할 작품이다. 

   일단 이 책의 위치 선정이 애매하다. 교양만화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패러디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마도 이 만화가 디시 카툰 갤러리에서 연재되었기 때문에, '변방문화(오타쿠, sub culture)'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2차 세계대전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그 변방문화를 이용한 패러디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만화가 화제가 됐고, 책으로도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불편한 책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2차 세계대전사에 대한 지식과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수많은 패러디까지 알고 있어야 이 만화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수고를 덜기 위해서 각 장(章) 말미마다 패러디에 대한 해설을 달고 있지만, 편하게 읽기에는 조금 벅차다.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는 모르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기 보다는, 아는 만큼 킬킬거리며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최규석의 『100도씨』와 같은 궤를 하기 보다는, 최의민의 「불암콩콩코믹스」,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와 같은 궤를 한다.   

 


최의민의 「불암콩콩코믹스」 전선을 가다 中, 그리고 밑에 달린 '해설' 베플. 그냥 읽어도 재미 있지만, 밑에 깔린 사실들을 이해할 때, 그 재미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말년의 「이말년씨리즈」 65화 동물의 읍내 中. 동물의 '왕국'을 패러디한 제목부터, 한참 문제시되는 학생들의 '빵셔틀', 김성모 만화, 꿀벅지, 속담, 명견 실버까지. 이말년의 패러디는 한계가 없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독자들이 느끼는 기복이 심한 편이다. 

 

   그러나 패러디만 일삼는다고 만화 자체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2장 [폴란드 기병대의 영광]에서는 전쟁 역사속에서 인간과 함께한 말(馬)이 화자로 나와 독일군과 폴란드 기병대간의 전투를 서술, 인간, 가족으로서 겪는 전쟁의 고통을 말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12장 [레닌그라드, 가족]에서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의 가족사를 들어, 전쟁이 개인에게 가혹한 운명을 주지만,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개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패러디부분 또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 한에서 배꼽을 쥐며 낄낄거렸고. (개인적으론 스탈린-라이토 『데스노트』 패러디가 가장 웃겼다.)  

   리뷰가 갈팡질팡했는데, 지금도 갈팡질팡하다. 교양만화로써 이 책을 선택한다면 비추한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사와 지금 10, 20대들의 관심사와 변방문화(오타쿠, sub culture)를 함께 이해하고 싶으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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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전히 매니악한, 그러나 재미 있는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1-25 13:18 
       역사는 구분되어 지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1권과 2권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이미 1권에서 거의 했고, 책의 형식 또한 1권의 틀 안에서 진행되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본격 2차 세계대전 만화2권 내고 변명하는 만화]를 올린다. 이 만화를 읽으면 구매의사가 확실히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ht
 
 
 
[후기] 작가 김훈과 함께 걸은 문경새재

 

   이번에 알라딘에서 또 가슴 설레는 이벤트를 개최한다. 평일 목요일이란 시간대는 직장인들을 옥죄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당첨이 됐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올해 운은 이번달에 다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좀 불안한 마음이다. 게다가 2주전에 독자와의 만남에 갔다왔으니, 만약 당첨이 된다 하더라도 만남을 갖지 못한 다른 수많은 알라디너들께 죄송한 마음이고. 정말이지 모순된 하루 하루를 지낸다.

   그 불안한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자 손민호 기자의 기사를 올린다. 그는 이미 한 달전에 김훈 작가와 문경새재를 '넘었다'. 그날, 12월 3일 문경새재를 넘으시는 분들께는 쏠쏠한 예습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께는 대체 경험이 될 것이다.   

 

 

백두대간 속 백미 구간 ⑦ 소설가 김훈과 문경새재  

[중앙일보] 2009.10.08 00:03 입력 

 

자전거 놓고 걸어서 넘는 길, 햇살 한번 오지게 부시다. 고조선의 백수광부는 물을 건너면 죽을 줄 알면서도 건넜다. 여기 삶이 싫었으니까. 고개를 넘는 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백두대간은 산 줄기다. 그 거침없는 산맥은 땅을 경계 짓고 왕래를 가로막았다. 백두대간으로 인하여 세상이 나뉘고 풍속이 갈리었다. 산 이쪽 사람은 산 저쪽을 동경했고, 산 저쪽 사람은 산 이쪽을 상상했다. 벽처럼 앞을 막고 있는 저 산만 넘으면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산 이쪽과 저쪽에서 사람은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막연하고도 간절했다. 그래서 사람은 산에 길을 내기 시작했다. 가장 얕고 낮은 목을 노려 산을 넘었다. 고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은 수많은 고개를 대나무 마디 모양 등줄기에 업고 있다. 진부령ㆍ미시령ㆍ한계령ㆍ대관령ㆍ싸리재ㆍ죽령ㆍ하늘재ㆍ새재ㆍ추풍령ㆍ육십령 등 이름난 고개만 해도 헤아리기 어렵다. 그 고개는 전혀 다른 두 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자 분기점이었다. 고개로 인하여 호남과 영남이, 영남과 충청이, 영서와 영동이 구획되었고 또 연결되었다. 

이번 달 week&이 오른 백두대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개 문경새재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한양과 동래를 잇는 가장 빠른 길 위에 있었다. 조선시대 행정과 교역의 대부분이 이 50리 고갯길을 넘나들며 이루어졌다. 하여 고갯길 굽이마다 숱한 사연이 쟁여져 있고 포개져 있다. 고개가 험할수록 쌓인 이야기는 눈물겹고 가슴 저민다.  

그 고개를 소설가 김훈(61)과 함께 넘었다. 일찍이 자전거를 타고 문경새재를 넘었던 백발의 소설가는 볕 좋은 가을 날 두 발에 의지해 고개를 넘었다. 고개를 넘는 일은, 일종의 상징 의례다. 할 얘기가 많았다. 

손민호 기자 

소설가 김훈과 문경새재를 넘었다. 고개를 넘고서 소설가는 말했다. “고개를 넘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 단순한 이치를 왜 우리는 애써 모른 척하며 살고 있는지. 

 

# 당면한 일을 당면하다

김훈은 막 원고를 탈고한 상태였다. ‘네이버’에 5개월 넘게 연재했던 장편소설 『공무도하』 집필을 마치고 겨우 한숨 돌린 참이었다. 안부 전화를 빙자한 섭외 전화는 그 틈을 노렸다. 

-원고도 마감하셨으니 바람도 쐴 겸해서 산이나 함께 가시죠. 

“신문에 나오는 일이냐?” 

-네. 신문기자는 신문에 나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안 간다.” 

-왜요? 

“산에 놀러가는 일 따위로 어찌 신문에 나올 수 있겠느냐?” 

-산에 놀러가는 일 따위를 기사로 만들어 쓰는 게 여행기자의 밥벌이입니다. 저는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입니다. 

“그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나는 소설가다.” 

-그럼, 산에서 소설 얘기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좋다. 소설 얘기만 하는 조건으로 가겠다. 그래,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 

-어디를 가고 싶으십니까. 선배가 우리 산하를 낱낱이 알고 계신 까닭에 미리 네 가지 코스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남덕유ㆍ선자령ㆍ삼봉산ㆍ문경새재 중에서 어떤 걸 고르시겠습니까. 

“새재가 좋겠구나. 새재에 가면 나눌 얘기가 많겠구나. 그건 그렇고, 너는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느냐?” 

-선배도 20년 전엔 많은 사람을 괴롭히셨습니다. 저는 당면할 일을…. 

“됐다, 됐어. 간다고 했다.” 

김훈은 신문기자 출신 작가다. 김훈을 “선배”라 부른 이유다. 김훈은 말을 할 때에도 제 문장처럼 말을 한다. 구어체를 구사하지 않는 현대인의 말투는, 낯설면서도 묘한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란 구절은 그의 소설 『남한산성』에 나오는 대사다.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빈궁과 대군을 받들어 강화로 가면서, 다시 말해 죽으러 길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역시 김훈의 상용어구다.  

 

# 길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문경새재는 본격 산행이라기보다 트래킹에 가깝다. 계곡을 타거나 능선을 오르는 코스는 문경새재에 없다. 옛날처럼 굽이굽이 고갯길도 사라졌다. 관광객을 위한 신작로, 이게 문경새재의 오늘 모습이다. 김훈이 이날 산행을 “산보”라 명명한 까닭이다.  

문경새재는 500년 이상 묵은 길이다. 조선 태종 때 처음 닦았다. 문경의 새재란 뜻으로, 새 조(鳥) 자를 써 ‘조령’으로도 불린다. 새재가 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새도 날아서 넘지 못하는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닦은 고개, 하늘재와 이유릿재(이화령) 사이에 있는 고개, 서울로 가는 샛길이 된 고개 등등 여러 주장이 난무한다. 

여기서 하늘재는 새재 북쪽에 있는 고개다. 신라시대 때, 정확히 서기 156년에 뚫었다. 문헌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도로이자 고개로, 새재가 개통하기 전 충청과 영남을 잇는 대표적인 길이었다. 하나 새재도 지금은 길로서의 수명을 다한 상태다. 일제 때 이화령에 터널이 뚫린 뒤 새재는 버림받았고, 이화령 역시 경부고속도로가 추풍령을 지나면서 한 세대 넘게 잊힌 길이 됐다. 길에도 흥망성쇠가 있는 것인지, 최근 개통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이화령을 통과하면서 이화령엔 다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새재는 박정희 정권 때 국토 순례 길이라 명명돼 보존되다가 최근 관광 명소로 거듭나면서 반듯하고 환하게 단장됐다.  

김훈은 새재에 얽힌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50만 부 이상 팔린 여행 산문집 『자전거여행』에서도 김훈은 두 개 장을 헐어 새재와 하늘재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훤히 아는 길을 그는 왜 굳이 다시 걸으려 했을까. 문득 그의 소설 첫 머리가 떠오른다. 김훈은 4월 27일 『공무도하』 연재를 시작하며 아래와 같이 적었다. 

“제목으로 정한 ‘공무도하’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서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 백수광부의 시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훈에 따르면 백수광부는 넘지 못할 경계를 넘다 목숨을 잃었다. 강을 건너는 일과 고개를 넘는 일은, 어딘지 닮은 구석이 있다. 

  

* 퍼온 글이라 다 게시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읽으실 분들은 아래 글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중앙일보 기사 바로 가기 

손민호 기자 블로그 바로 가기 

 

*덧붙임 

1. 기사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원 기사에는 없으나, 저작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뜻에서 블로그에 있는 표기를 따랐습니다. 

2.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연금술사의 말을 믿어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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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기] 작가 김훈과 함께 걸은 문경새재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2-07 11:49 
       2009년 12월 3일. 오전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8시 30분까지 종각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어제 밤에 모든 것을 준비했으나, 항상 아침이면 바쁘기 마련이다. 늦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수밖에.     8시 10분. 조금 일찍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했다. 이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정말 가기는 가는구나.&#
 
 
톨트 2009-11-25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어이 가실 듯한 예감이 드는군요^^

Tomek 2009-11-25 18:32   좋아요 0 | URL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