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소설가 김훈과 문경새재

   2009년 12월 3일. 오전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8시 30분까지 종각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어제 밤에 모든 것을 준비했으나, 항상 아침이면 바쁘기 마련이다. 늦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수밖에. 

   8시 10분. 조금 일찍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했다. 이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정말 가기는 가는구나.  

   작가 김훈은 이미 문경새재에 관한 글을 『자전거 여행』에서 두 장에 걸쳐 썼다. 게다가 올 10월 『공무도하』를 탈고하고 찾아간 곳도 새재길이다. 다녀온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 길을 독자들과 함게 또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득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하긴 그는 자신의 안에서 해결되어지지 않은 궁금증이나 관심있는 사유를 에세이와 소설에 반복해서 써왔다. 정다산, 우륵의 악기와 가야의 철기 무기들, 울돌목과 충무공, 남한산성에서의 임금의 치욕, 러브호텔과 그 치양막들 등. 그는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에세이든, 소설이든, 칼럼이든 가리지 않고 그의 사유를 펼쳐왔다. 계속해서 새재를 넘는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다음 작품에서는 '길'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앞에 보이는 버스 커버를 유심히 들여다 봤다. 뭐라 써있는 일본말보다는 오른쪽 하단에 있는 숫자가 눈에 띈다. 예전같으면 별 의미없을 숫자가 요즘엔 왠지 중압감을 주는 것 같았다. 무슨 뜻일까? 루저는 앉지 말라는 건가?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몸을 맡겼다.   



   8시 50분에 출발한 버스가 11시 40분에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도착했다. 인솔을 따라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김훈 작가님이 며칠 전 미리 답사를 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식당을 예약했다고 했다. 맛이 없었어도 맛있었다고 할 충성스런 독자들이 모여 있었건만, 그날 음식은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화랑 성냥을 보고 사진 한 방 찍다.   

  

   새재를오르기 전 하늘은 어두웠고, 비가 내릴듯 한 모습이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날씨였다. 날씨 때문에 예정에 있던 문경새재 박물관 관람은 취소하고 바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자, 제 1관문, 주흘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작가님의 즉석 강연이 시작됐다.     

 

   새재길을 걸으며 작가님 뒤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보니 작가님의 걷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좀 특이하신 걸음걸이였다. 팔을 굽히지 않고 쭉 뻗은채로 걸음을 빨리 해 걷는 모습. 이런 모습,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아비정전』에서 본 것 같다. 


   작가님의 걸음걸이는 아비의 걸음걸이와 비슷했다. 그 때 아비의 저 걸음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생모에게 복수의 심정으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빨리 걷는 걸음이었다. 영화는는 카메라가 마치 그런 아비를 붙잡는 것처럼 갑자기 느려진다. 작가님은 왜 빨리 걸으셨을까? 내가 카메라가 되어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계속 걷다가 잠시 마당바위에서 멈춰 '길'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제2관문에서 하실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따라온 YTN취재 때문에 그림이 나오는 장소에서 말씀을 하셨다. 예민한 사람 같으면 헝클어진 일정때문에 살짝 짜증이 날 상황이기도 했으나, 개의치 않으시고 바로 강연에 들어갔다.   

 

YTN취재팀의 요청으로 즉석에서 『공무도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로 제 3관문까지의 오르막까지 계속 쉼없이 걸었다. 가끔씩 내리는 비와 진눈깨비, 그리고 안개라하기엔 너무나 짙은 운무까지. 새재길은 점점 더 현실적이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왔다. 3관문을 지나서 내리막길을 지나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으로 향했다. 

 

산 속에 위치한 덕분에 『퀴즈쇼』의 '회사'가 생각났다. 나도 곧 우주로 가게 되는 것일까?

 

   잠시간의 생태교육을 마치고, 세미나실을 빌려 작가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 날 있었던 대화를 동영상으로 옮겨본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자리도 좀 뒤에 앉았던 터라 상태가 참담합니다. 화면은 가급적이면 보지 마시고 볼륨을 크게 키워 들으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마치고 버스에서 문학동네에서 마련한 선물을 받았다. 『풍경과 상처』 소책자와 북마크, 그리고 공무도하 연필까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 어찌할 줄 몰랐다. 고마운 마음에 아직까지도 어찌할 지 모르는 마음뿐이다. 특히 『풍경과 상처』 는 저 크기에 실제 책이 다 들어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읽기는 좀 힘들 것 같고, 위스키 샘플처럼 바라보면 흡족할 새로운 종류의 책인 것 같다.



   20시 30분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한 것을 끝으로 길었지만 짧았던 김훈 작가님과 함께 걷는 일정이 끝났다. 다른 독자와의 대화처럼 2~3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12시간을 함께 겪고 같이 길을 걷는 경험은 작가-독자와의 관계에서 한꺼풀 더 들어간 느낌이 들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작가로서의 김훈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김훈을 조금 엿본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내가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 조금 더 개인적인 느낌으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귀한 기회를 마련해준 알라딘, 문학동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함께 해주신 김훈 작가님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덧붙임 

1. 이날 독자와의 대화는 다른 때와 비교해보면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추운 날씨 속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약 3시간을 걷다가 갑자기 따듯한 실내에 들어와 몸의 긴장이 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독자들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도대체 왜?인구단」현용민   

 

반면 김훈 작가님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꼿꼿이 허리를 펴 앉은 상태로 많은 질문들을 듣고 답변하셨습니다.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강철 체력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작가님도 이러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도대체 왜?인구단」현용민 

 

2.  생태학습관에서 있었던 질문 중 두 개가 빠졌습니다. 제가 질문하느라 촬영을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간단한 질문이어서 간단하게 적어봅니다.  

첫번째 질문: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은 각각 다른 매체로 각색되었습니다만, 그 내용은 원저작물과 상이합니다. 다른 매체로 각색된 선생님의 작품들을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2차 저작물은 그것을 각색한 사람들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인정하고 개입은 안한다. 

두번째 질문: 선생님께 있어서 『삼국유사』란 어떤 의미입니까? 

답변: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 중 현존하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둘 뿐이다. 그렇기에 두 책 다 내게 있어 소중하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지었는데 그의 생애는 몽골이 고려를 침략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가 나이 일흔에 이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삼국사기』만 역사서로 인정하고 『삼국유사』 는 가벼이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삼국유사』 는 마음의 역사다. 

 

3. 오전에 글을 한 번 날렸습니다. 알라딘은 유튜브와 연결이 잘 안되는 것인지... ㅜㅜ  

 

4. 그날 트레킹에 YTN취재팀도 같이 와 취재를 했었습니다. 언제 방송하나 궁금했는데 지난 12월 8일에 방송했습니다. 느즈막히 올려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톨트 2009-12-0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어이 가셨군요^^

Tomek 2009-12-08 09:18   좋아요 0 | URL
넵. 운좋게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네요. ^.^;;;
 
그냥. 좋다고요 ^^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한없이 미루는 목록들이 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그 중 한 명이다. 내가 그의 소설을 읽은 것은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한 권 뿐이다. 그 책도 딱히 마르케스가 끌려서 읽은 것도 아니고, 김기덕 감독의 『활』과 『시간』에서 마르케스의 그 소설이 잠깐 언급되어서 '학습의 목적'으로 읽은 것이 다이다. 게다가 민음사에서 출판한 그 소설은 갈색 잉크로 인쇄가 되어 있어서 읽기에 상당히 거슬렸었다! (그리보면 책은 처음의 형식에서 별로 진화하지 않은 것 같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인간이 처음 책을 만들었을 때 부터 완벽한 형태였다는 얘기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변화를 거부하는 참으로 보수적인 매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몇 년 후 어디선가 누군가가 『백년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한 번 읽어볼 마음에 서점에 가서 책을 펼치다 마태복음 1장에서 느꼈던 계보도를 보고 그냥 덮어버린 기억이 있다. 거기까지가 마르케스와의 인연이다. 

   그러다 며칠 전, Forgettable님이 초보자도 접근할 만한 마르케스 목록을 알려주어서 리스트에 작성해본다. 지금은 못읽겠지만, 언젠간 읽을 수 있겠지. 

 

*덧붙임 

   목록을 작성해주신 Forgettable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12월 05일에 저장

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12월 05일에 저장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12월 05일에 저장

콜레라 시대의 사랑 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09년 12월 05일에 저장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orgettable. 2009-12-05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E-book의 형식도 기존의 책과 거의 흡사하군요 ㅎㅎ
언젠가 마르케스의 작품들에 흠뻑 빠지실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 세상에 좋은 책들은 너무 많고, 개개인의 취향은 다양하죠 ^^

Tomek 2009-12-07 10:11   좋아요 0 | URL
조만간 올듯도 하지만... 세상엔 책이 너무 많죠... ^.^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렇기때문에 그 실체를 모르는 그런 사람이 있다. 다산 정약용 또한 그럴것이다. 실학자, 사상가, 경륜가, 경학자, 의학자, 역학자, 음악가 게다가 천주교도 아니 천주학자인 정약용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어떤 인간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인간은 가고 그가 남긴 자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었는지는 아닌가 생각해본다. 

   여기 저기 다산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으나, 찾는 책들은 별로 없거나(내가 몰라서 안보이거나) 혹은 절판된 책들 뿐이다. 이 리스트는 계속 업데이트해야할 것 같다.  

 

*덧붙임 

리스트를 채워주신 순오기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다산 1-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9년 12월 05일에 저장
품절

다산 2-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9년 12월 05일에 저장
품절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9년 12월 05일에 저장
품절
다산 정약용의 일일수행 1- 참된 나 찾기
박석무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9년 12월 05일에 저장
구판절판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9-12-0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흑산도 하늘길은 이미지가 안 뜨는 걸로 올렸네요.
요거 말고 다른 책은 이미지가 뜨는데~ 바꾸시면 어떨지... ^^

Tomek 2009-12-08 09:22   좋아요 0 | URL
제가 리스트에 올린 것은 청소년판이었더군요. 수정했습니다. ^.^
 
꿈이 없는 시대에 꿈을 꾼다는 것
- 솔직 담백 군대 이야기
주호민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들에게 있어 군대는 폭력에 길들여지고, 그 길들여지는 것을 시스템으로 익히는 사회의 훈련장이다. 사회의 작동 원리는 직접적인 폭력은 없으나, 그보다 더 정교한 방법으로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막내일때는 죽을듯한 폭력에 길들여지고, 그 폭력에 길들여진 막내가 고참이 되어서는 그 길들여진 폭력을 이용해 그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돌고 도는 영겁의 관계가 존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우리'가 군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내가 당한 폭력에 대한) '분노'와 (그 폭력을 이용해 지위를 누린) '죄책감'이다. 이 분노와 죄책감이 서로 뒤엉켜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군대에 입대하는 꿈을 자주 꾼다.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나는 군대를 제대했는데, 병무청에서 전산착오가 있으니 다시 가라고한다. 울며겨자먹기로 군대에 가니 그곳에는 내 옛 고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몸상태가 안좋을 때 꾸는 꿈 내용일 것이다.  

   매체에서 군대 이야기를 다루지 않은 이유를 난 이렇게 생각한다. '분노'를 이야기하기엔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식'이 같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한 분노를 이야기하려면 내가 저지른 죄의식도 같이 고해성사해야 한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잊고 지내는 편이 낫다고 아마 대다수의 남자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분노가 아닌 죄의식으로써 군대를 다룬 최초의 작품은 아마도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자』일 것이다. 

   만화가 지망생 주호민을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든 『짬』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어정쩡하고 독특한 위치에 있는 만화다. 그는 이 지옥같은 군대생활을 '아~ 군대 한 번 더 가보고 싶다'는 말도 안 돼는 생각이 잠깐 들게 할 정도로 재밌고 따듯하게 그려냈다. 아무리 요즘 군대가 신체적인 폭력이 없어졌다고 해도(정말 그렇게 됐다고 믿고 싶다!!) 인간적 수치심을 불러 일으킬 언어 얼차려는 분명 존재할 것이고, 자신의 편함을 위해 수많은 자기 합리화와 떠넘김이 이루어지는 곳이 군대일 텐데, 그의 작품에서는 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 없다. 

   군대가 편해졌기 때문에 주호민이 이렇게 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와 나의 군입대 기간은 겨우 5~6년 정도의 차이뿐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에 군대를 체험했다). 아무리 편해져도 군대는 군대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군대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계속 그 자리에 맴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짬』이 따듯한 이유는 작가 주호민의 천성 때문이다. 그는 천성이 따듯한 사람이다. 그의 최신작 『무한동력』을 보면 그가 얼마나 따스하고, 애정이 많은지 알 수 있다. 그는 차가운 '오늘의 현실'과, 기성 세대들에게 '88만원 세대'로 개념화된 그의 친구들을 더없이 따스하게 안는다. 목표가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어 방황하는 그의 친구들을, 그리고 그들을 방황시키는 이 사회를, 그는 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같이 '꿈을 갖고' 살아가자고, 웃으면서 긍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자전적인 만화 『짬』에서 그의 군생활을 긍정할 수 있었다. 웃으면서 긍정하기. 이것이 주호민 작품의 가장 큰 힘이고 미덕이다. 

   분노와 죄의식으로 점철된 군대 생활을 너무 나이브하게 그려낸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세상을 긍정하는 작품을 난 아직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작품이 많이 나오고 난 후에, 그 때가 되면 이 작품을 비판하겠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짬 시즌2』 여전히 따스한 그의 시선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7-10 08:01 
    남자들에게, 아니 군필자들에게 있어 군대란 기억은 거의 대부분이 악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난 분명 전역을 했는데 전상상의 실수로 다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절망적인 통보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군대에 가니 그 지옥 같던 선임들이 날 기다리고 있더라는 꿈은, 정말이지 아마 대부분 꿔봤을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시대와 공간과 사람이 전부 다른 개별적인 경험이 어떻게 똑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는지.   원경험에서 2차로 각색된
 
 
 
'시간 너머'의 세계로 건너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발로 꾹꾹 밟어 쓴 풍경과 상처 그리고 아름다움

   요즘들어 김훈의 책을 '과하다'싶을 정도로 많이 읽었다.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오면 좀 그 양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어찌된 게 더 늘어났다. 10대 초반에는 이문열(이게 다 『삼국지』 때문이다), 중반에는 이현세, 10대에서 20대를 관통하는 조정래. 20대 초중반의 하루끼. 20대 말의 이토 준지와 고우영 그리고 30대에 만난 박민규, 성석제. 그 외에는 이렇게 전작을 파고든 작가는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영화와 음악은 그 목록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원래 천성이 그런가.) 

   짧은 시간에 그의 저작들을 읽다보니 괜시리 겹치고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원래는 『공무도하』 리뷰에 적었어야 했는데, 대충 날림으로 생각하고 적다보니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 같다. 리뷰의 완성은 죽기 직전에야 완료되는 것인가. 아무래도 리뷰는 끊임없이 덧붙여져지는 숙명인가 보다.

   『풍경과 상처』에서 김훈은 강진을 돌아보며 정다산과 그의 형 정약전에 대한 글을 썼다. 성리학의 시대이념이 만들어낸 정약용이 천주교도가 되고 그의 형 정약전과 매형인 이승훈도 역시 천주교도가 된다. 그러나 1801년 정약용의 적극적인 배교로 주문모 신부의 존재가 폭로되어 잡혀들고 매형인 이승훈 또한 잡혀들게 한다. 국청 마당에서 형틀에 묶인 정약용과 이승훈의 대질 심문. 매형과 처남이 서로를 저주하는 지옥같은 광경. 그 속에서, 이승훈 역시 자신이 정약용에게 영사를 주었다고 폭로한다. 이당시 정약용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러한 적극적인 배교로 정약용과 정약전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기나긴 유배생활을  한다. 살기 위해서 국청 마당에서 느꼈던 치욕. 조선시대 엘리트였던 정약용은 얼마나 치욕적이었을까. 그리고 자신이 천주교도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함께 수학한 사람들과 자신의 매형을 배신해서 얻은 목숨을 이어간다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평판은 어떠했을까.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 생활에서 수 많은 빛나는 저작을 저술했어도, 자신의 생애에 파고든 치욕에 대해선 한 줄 쓰지 않았다. 그는 그 치욕을 감수하고 살아갔다. 

   『자전거 여행 2』에서 김훈은 정약용의 고향 양수리 두물머리를 보며 정약용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한다. 이런 치욕을 감수하고 유배생활을 마친 정약용은 자신의 호를 열수(洌水)라 하고 죽을때까지 그 호를 썼다. 열수는 한강의 옛말이고 그가 태어난 양수리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는 곳이다. 정약용은 조선 성리학이 키워낸 시대이념의 엘리트였으나, 천주교와 기나긴 유배생활로 조선의 현실을 비판한 '리얼리스트'가 되었다. 그의 생애는 그가 태어난 두물머리 처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듯, 그렇게 합쳐졌다.

   『공무도하』의 장철수는 창야(倉野)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농대를 졸업하고 학교 주변에 머물렀다. 공장의 파업으로 노학연대에 참가하고, 사고인지 의도인지 모를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추도사를 한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그는 세상을 단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을 긍정하기 때문에 단념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세상은 아니라고 한다. 노목희는 그가 '이런'이라고 규정하는 '이런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연행됐다. 그가 풀려남과 동시에 일급 수배자들이 일제히 연행됐다. 형사와 장철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결과는 안다. 그는 밀고를 하고 배신을 했다. 공권력의 힘 앞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동지들을 배신한 그 치욕을 장철수는 '한 세상이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아득한 곳을 향해 돌아서는 느낌'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유배가듯 해망(海望)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그 때의 일은 내색하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 치욕을 몸에 담고서 살아간다. 

   장철수가 해망에서 고향 창야로 돌아오는 계기는 그의 신장을 떼고 받은 돈으로 '바다에서 고철을 건진 죄'의 값을 갚고 나서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그의 죗값도 그의 신체도 일정한 돈으로 환산되고 그의 신체와 죗값의 등가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정약용이 그의 치욕과 죗값을 빛나는 저작으로 대신했다면, 장철수는 그의 노동과 신체로 그의 치욕과 죗값을 대신했다. 조선 성리학이 지배이념인 시대와 돈이 지배이념인 시대의 절묘한 대구처럼 보인다. 다산이 지금 이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면 장철수처럼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읽은이의 흰소리로 들릴 수도 있고 비약이 너무 심한것 같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장철수의 모습에서 다산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치욕을 드러내지 않고 몸에 담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남아있는 자들의 이런 저런 평가는 하나마나한 소리로 들린다. 김훈은 다산과 장철수를 통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치욕을 감내하고 같이 살아가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런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 덧붙임 

   1. 2000년 여름에 다산초당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다산 초당을 직접 보고 들었던 생각은 "캬~ 이거 완전 꿀 빨고 계셨겠구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한여름인데도 시원한 위치에 초당의 크기도 예상보다 굉장히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찾아 읽어보니 지금 초당은 증축된 것이라 합니다. 조금 옮겨 봅니다. 

 

   
 

   여기서 잠깐 한 호흡 돌리고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면 이내 다산초당이 보인다. 이름은 초당이라고 하였건만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 지붕으로 툇마루가 넓고 길며 방도 큼직하여 도저히 유배객이 살던 집 같지가 않다. 나도 본 일이 없지만 실제로 이 집은 조그만 초당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무너져 폐가로 된 것을 1958년 다산유적보존회가 이처럼 번듯하게 지어놓은 것이다. 다산을 기리는 마음에서 살아 생전의 오막살이를 헐고 큰 집을 지어드린 것이라고 치부해보고도 싶지만, 도무지 이 좁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크기여서 그것이 못마땅하다. 더군다나 예비지식 없이 온 사람들은 유배객 팔자가 늘어졌다는 생각만 갖고 가니 이것은 허구 중의 허구이다   

유홍준 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다산 초당의 허구와 진실」 中

 
   

 

   2. 그러면 다산 초당의 크기는 얼마했을까. 미당 서정주 시인의 외할머니가 살았던 크기로 짐작해봅니다. 그래도 그보단 조금 더 컸겠지요. 『풍경과 상처』에서 조금 옮겨봅니다. 아마도 『공무도하』에서 방천석이 살다가 오금자에게 주고, 장철수와 후애가 같이 사는 그 집도 이랬을지 모르겠습니다.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아서 옛모습 그대로라고 마을의 어른들은 말했다. 눈물송이 같은 버섯의 초가집이었다. 쌀뒤주만한 방 두 칸은 흙벽이 드러나 있었고, 그 끝에 흙으로 부뚜박을 빚은 부엌 한 칸이 달려 있었다. 처마가 흘러내려 그 끝이 땅에 닿을 듯했다, 건넌방 앞으로 땟국에 절은 툇마루가 놓여 있었다. 어른 한 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의 작은 툇마루였다. 시 속에 나오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였다. 미당의 어머니의 처녓적 손때와 외할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는 툇마루였다. 미당의 생가는 이 외갓집에서 질마재 네거리를 건너간 산 아래 있었다.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는 아이가 어머니의 매를 피해 이 외갓집까지 달려오려면 한 십여 분 걸릴 것이었다. 마루에 비치는 외할머니의 얼굴과 나의 얼굴이 나란히 손자의 낙원이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나' 그리고 '외할머니'의 모습이 함께 비치는 이 때거울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었다라고 미당은 적었다. 

   그 툇마루는 지금도 사람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때에 절어 있었다. 

『풍경과 상처』 「오줌통속의 형이상학」 中

 
   

 

   3. 김훈의 데뷔작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서 '장철민'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고향은 강원도 어느 산골 태생이고 농고를 졸업했습니다. 군대를 갔다온 25세부터 6년간 포크레인과 택시를 운전하다 소방관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소 '의도적인 사고사'를 당합니다. 그는 죽어서 모든 비난을 받지만, 그는 죽었기 때문에 그 치욕을 감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직으로 처리되지요. 데뷔작에서 김훈은 정약용의 '순결과 치욕'에 대한 입장이 덜 정리된 것 같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12-05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5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5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5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5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