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빌려줄래? - 멈출 수 없는 책 읽기의 즐거움
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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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너무 컸나? 조금 싱거운 느낌. 기발하거나 완전 재치 넘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중반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 빙고’부터 키득키득 웃음 터지면서 조금씩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진다. 책읽기 만큼 글쓰기에 대한 위로와 격려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읽기 환자들은 결국 쓰기로 나아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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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8-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딱 그랬어요. 앞 절반은 뭐 이런걸, 싶었고요. 후반부에 피식 웃으면서 공감했어요.
(읽고 팔았습니다)

잠자냥 2020-08-22 14:10   좋아요 0 | URL
저도 (읽고 팔았습니다....) ㅋ

lotos 2021-04-12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마지막 문장이 저를 구원해주네요.

잠자냥 2021-04-13 09:3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저도 그렇습니다. ㅎㅎ
 
낙천주의자의 딸 - 유도라 웰티의 소설
유도라 웰티 지음, 왕은철 옮김 / 토파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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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죽어도 또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인생을 살아나가야 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사랑과 상실, 추억이 잔잔하고 섬세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어쩐지 코끝이 시큰해지는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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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대산세계문학총서 159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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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으면서도 어쩐 일인지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읽노라면 신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가톨릭 신도였고, 종교적 색채의 작품을 많이 써왔던 엔도 슈사쿠. 이런 소개만 보면,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가 신이나 믿음, 종교적인 구원의 문제를 강하게 주장하는 작품들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는 참으로 묘한 작가이다. 나처럼 종교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에게조차 엔도 슈사쿠의 작품은 별 거부감 없이 읽힌다.  게다가 시간이 조금 흐르면 또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싶어진다.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신이 정말 존재할까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하고, 믿음이라는 게 무얼까 고민해 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엔도 슈사쿠가 작품 안에서 강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통해 종교적 믿음을 설파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의 작품에는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바보>에는 더 그런 인물이 나온다. 너무나 순수해서 ‘바보’처럼 보이는 인물.

<바보>는 엔도 슈사쿠의 작품 중 조금 특이하게 느껴진다. 첫 장면부터 색다르다. 평범한 일본의 가정집을 배경으로 아침부터 입씨름하는 남매의 모습이 그려진다. 똑똑하고 빈틈없을 것 같은 누이 ‘도모에’와 게으르고 철없는 ‘다카모리’가 아침부터 남매간에 흔한,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말다툼을 벌인다. 그런데 그날따라 다카모리에게 뜻밖의 편지가 오고, 편지 속에는 놀라운 일이 쓰여 있다. 오래전 다카모리가 잠시 펜팔 친구로 사귀었던 프랑스의 한 청년이 무턱대고 일본에 온다는 내용이 아닌가. 그렇다면 생면부지의 외국인 청년을 이 집에서 머물게 해야 한단 말인가? 도모에는 못마땅하다. 다카모리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자기 앞으로 편지를 보낸 이 친구를 외면할 수도 없어서 그를 마중 나가기로 한다. 생각해 보니 그의 이름은 ‘가스통 보나파르트’로 무려 나폴레옹의 후손이다. 이 이야기에 도모에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은 호기심이 증폭한다. 나폴레옹의 후손이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온다고?

오빠 다카모리를 비롯해 자기 또래 일본 남자를 모두 한심하게 여기던 도모에는 나폴레옹의 후예라는 말에 솔깃해한다. 나폴레옹 황제의 후예라면 왠지 우아하게 잘생긴 얼굴에, 어딘가 늠름한 매력을 발산하는 남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가장 낮은 등급의 선실을 이용해서 저 먼 프랑스에서 일본까지 온 나폴레옹의 후예 ‘가스통’의 행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옷차림이야 그렇다 쳐도 생김새가 영 아니올시다. 모든 점에서 꽝이다. 완전히 한 마리의 말을 닮은 기다란 얼굴. 꼭 도깨비 모양의 참마처럼 생겼다. 굳이 외국 배우와 비교해야 한다면 희극배우 ‘페르낭델’과 닮았다고나 할까. 게다가 행동거지는 또 얼마나 굼뜨고 어리숙한지 지켜보노라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다. 가스통을 자기 집까지 불러들인 체면도 있어서 다카모리는 계속 가스통을 과대평가하려고 애쓰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딱 어린 아이 수준의 정신 연령이다. 나폴레옹은 무슨 나폴레옹의 후예,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어쨌든 먼 나라에서 찾아온 손님이니 다카모리 집에서는 가스통을 환대해주고 그에게 일본의 재미난 곳을 소개해주고자 늦은 밤 환락가로 그를 이끈다. 그런데 그는 참 이상하다. 유흥에도 도무지 재미를 못 느끼는 데다가 일본을 찾은 외국인이라면 마땅히 호기심을 느끼고 좋아할만한 도쿄타워 같은 관광코스도, 가마쿠라의 대불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그가 일본에서 흥미를 느끼거나 관심을 갖고 쳐다본 것은 주인 없는 길거리의 불쌍한 개 한 마리나 어린애들 밖에 없다. 환락가에서 괜히 시비 거는 일본인들에게 두들겨 맞고도 그는 바보처럼 웃기만 한다. 덩치는 산만 한 이가 자기보다 작은 일본인들에게 맞으면서도 한 대 때릴 줄 모른다. 그는 정말 바보가 아닐까 의심이 들 즈음에 뜻밖에도 가스통은 다카모리네 집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일본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다고, 여러 종류의 일본인을 만나고 싶다는 이유가 전부이다.

그렇게 가스통은 다카모리의 집을 나와서 떠돌이와 다름없는 생활을 시작한다. 가진 돈이 많지 않아 주로 허름한 여인숙을 찾아다니다 보니 뜻밖의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주로 하층민들과 얽히면서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그의 삶은 흘러간다. 다카모리와 도모에 남매는 가스통이 집을 떠나니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그 어린아이 같은 외국인이 일본에서 잘 버텨나갈지, 대체 왜 일본에 왔을지 궁금해 하면서 그의 행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스통의 뒤를 쫓으면서 도모에와 다카모리는 그에게 서서히 ‘엄마가 불구의 자식에게 느끼는 애련함’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을 갖게 되고 조금씩 연민을 느끼게 된다. 다카모리의 경우에는 조금 더 이 감정이 남달라서 가스통 같은 순수한 남자를 세상이 망가뜨릴까봐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바보>는 가스통이라는 이 말도 안될 만큼 순수한, 그래서 때로는 백치처럼 보이기도 하는 남자의 행적을 쫓으며 신과 인간, 믿음과 구원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가스통의 삶의 추적하는 형식으로 썼어도 됐을 법하다. 그런데 다카모리와 도모에라는 너무나 평범한, 도저히 소설 속 주인공으로는 삼을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엔도 슈사쿠는 이렇게 평범한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들보다) 못나 보이지만 어쩌면 그런 그들이 지니지 못한 고결한 속성을 지녔기에 예수 또는 신의 모습을 닮은 가스통이라는 인물을 뒤쫓게 한다. 그들은 차츰 이 못난 바보 가스통에게 감화 받는다. 이런 구조로 작가는 보통의 인간 안에 깃든 선한 본성이라든가 믿음의 문제를 촉발해 나간다.

나폴레옹의 후예라는 가스통은 왜 고국을 떠나 일본에 왔을까? 언뜻 그의 과거가 스치듯 그려진다. 가스통이 태어난 사부아 지방에서는 얼간이 같은 사람을 포플러나무라고 부른다. 포플러는 성냥 만드는 데만 쓰일 뿐, 재목이나 기둥으로는 쓰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스통의 친구들은 그를 포플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런 세상에서도 가스통은 사람들을 믿고 싶어 한다. 지상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나폴레옹처럼 영리하고 강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이 세상이 영리하고 강한 사람만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나 자기를 따르는 늙은 개와 같은, 약하고 슬픈 사람에게도 무언가 보람이 있는 삶의 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이 낯선 땅에서 그런 삶의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가스통은 일본 곳곳을 떠돌며 어떤 사람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만의 계율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이란 그리 강하지 않다. 번번이 흔들린다. 흔들릴 때마다 그는 믿자고, 속는다고 해도 믿자고 자신을 다그쳐 나간다. ‘의심이 너무나도 많은 이 세계, 서로 상대방의 속마음을 캐려 들고 절대로 상대의 선의를 인정하려고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 문명이나 지식’을 가스통은 먼 바다 저쪽에 버리고 일본에 왔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을 믿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스통의 이 인간이라는 변하기 쉬운 존재를 ‘믿고자 하는 일’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도모에는 우리 인생에서 바보와 위대한 바보라는 두 가지 말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꾸밈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꾸밈없이 모든 사람을 믿으며, 비록 자기가 속고 배반을 당해도 그 신뢰와 애정의 등불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사람, 그 사람은 요즘 세상에서 바보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발산하는 작은 빛을 사람들의 인생에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비추는 위대한 바보이다. (<바보>, 254쪽)


가스통을 지켜보노라면 답답해진다. 너무나 바보 같아서 울화통이 치밀기도 한다. 사람을 믿는 일이 그렇게 쉬울까? 믿을 만한 사람을 믿어야지! 속으로 소리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믿을 만한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가스통 같은 사람은 분명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은 그러하니까. 왜 사람을 믿지 않느냐는 가스통의 말에 “내가 믿지 않는 게 아니야. 다른 놈들이 나로 하여금 사람들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거지.”(165쪽)라고 말하는 살인청부업자 ‘엔도’의 말처럼 나 또한 이 세상에 무언가를 믿는다는 말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바보 같은 일인가 마음속에서는 자꾸 반감이 치솟는다. 착한 사람이라든가 호인이라는 말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이 사회에서는 결국 바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하는 도모에의 말에 더 공감이 간다. 엔도의 말처럼 세상은 선의가 온전하게 통하는 세상이 아니고, 애정이라든지 신뢰라든지, 이런 말들은 그저 쓰기 편하니까 쓰는 표어 같은 말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살인청부업자 엔도가, 도모에가 가스통에게 서서히 감화되듯이, 아니 감화라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가스통의 그 무엇에 이끌리듯이 나도 이 <바보>라는 작품에서 울컥 무언가 느끼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어? 이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인가 코웃음을 치다가도 바보 같은 이 남자, 인간의 나약함과 모자람에 한없는 연민의 마음을 품고 그 못난 인간을 끝까지 믿어보고자 애를 쓰는 이 바보 같은 가스통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스통 자체가 위대하지 않기에, 위대하기는커녕 걸핏하면 울어대고 겁쟁이에다가 남들이 다 무시할 만큼 어리숙한 인간이기에, 그럼에도 그 약함을 짊어지고서 열심히 제 나름대로의 삶을 아름답게 꾸려가려는 모습에 끝내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다가 끝내 이 가스통의 모습이 신이 인간에게 품는 마음과 같다면, 신의 아들 예수가 인간을 향해 품은 마음과 같다면 신이라는 존재는 한번쯤 조용히 믿어 봐도 괜찮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내 마음속에서도 희미한 믿음 같은 게 싹트기도 한다. 엔도 슈사쿠의 문학의 힘은 늘 이처럼 조용조용 속삭이는데도 깊고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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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8-1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잠자냥 2020-08-12 22:18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으시길~!
 
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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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을 줄은 몰랐다. 책이 출간됐을 때만 하더라도 솔직히 ‘응? 책까지 냈어?’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람 중에 하나이다. 더욱이 나 또한 이 책에서 말하듯이 왜 네 번이나 성폭행당할 때까지 참았을까? 생각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김지은에게 2차 가해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듯, 김지은과 안희정의 관계를 불륜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일을 네 차례나 당할 때까지 참았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렇게 책까지 내야만 했을까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 난 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김지은입니다> 출간 소식이 의아했던 까닭은, 김지은 그녀 자신은 이 일을 누구보다도 잊고 싶어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일과 함께 모두가 그녀를 잊고 일상으로, 안희정에게 성폭력을 당하기 이전, 미투를 하기 이전의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김지은은 그런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2차 가해를 하는 이들 때문에 그런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직 멀어 보인다. 김지은 편에 서서 증언을 해주었던 동료들 또한 부당한 해고나 교묘한 압력 등을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떠나 미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 그에 비해 안희정 편에 서서 증언하거나, 가해자를 편들며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 이들은 그 후 빠르게 승진을 하는 등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또는 그 권력에 기생해서 보란 듯이 살아가고 있다.

성범죄자 안희정은 어떤가? 감옥에 갔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끝장 났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한국 사회가 보란 듯이 증언해주고 있다. 그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특별히 감옥에서 풀려나 장례를 치르고, 전직, 현직 총리부터 시작해 정치권의 여러 인사들이 조문을 했다. 게다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문재인은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이름이 박힌 조화를 성범죄자에게 버젓이 보내기도 했다. 대통령이 성범죄를 저질러 형을 살고 있는 이에게 조화를 보내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사정이 이러하니, 장례식장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권력자임을 과시하며 오랜만에 정치 놀이를 즐겼던 안희정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자신이 건재하다고 생각하며 이렇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치 예전에  정치자금 문제로 감옥 다녀온 것을 영웅시하고 자랑으로 여겼던 것처럼(이 책에는 그런 안희정의 태도와 그런 그를 신격화한 안희정 캠프의 분위기가 묘사되어 있다) 또 그렇게 여길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미투당한 가련한 피해자 안희정으로 정신 승리하면서, 또 그런 그를 그렇게 옹호해줄 수많은 안희정 지지자들은 그가 형을 마치고 나오면 다시 그 밑으로 속속 모여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성범죄를 저지른 자인데, 한국인들이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그러나 지금 한국이 성범죄를 저지른 권력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안희정에 이어 오거돈, 박원순에 이르기까지 충남지사, 부산시장, 서울시장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자들의 성범죄가 잇따라 일어났다. 심지어 안희정은 1심에서 무죄를 받기도 했다. 박원순 사태를 보면 한국은 정말 가해자 천국이다.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피해호소인’이라는 참으로 신기한 말까지 만들어 내면서 가해자인 박원순의 죄를 덮어주기에 집권 여당을 비롯해 그의 지지자들까지 합쳐 모두가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하기에 정신이 없다. 미통당 성폭력특위 위원으로 이수정 교수가 합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제는 이수정 교수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까지 그들은 마다하지 않고 있다.

나는 좀 궁금하다. 문재인과 민주당을 지지하고, 안희정을 지지하고, 박원순을 지지한다는 그들은 무엇 때문에 문재인과 민주당과 안희정과 박원순을 지지했는가? 십대들이 아이돌을 좋아하듯이 그들의 외모와 스타성을 보고 지지하고 좋아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18세 이상의 성인이 어떤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그 정당의 정치인을 좋아하고 지지한다는 것은 그 정당의 이념, 기치, 그 정당에 속한 정치인의 생각, 신념, 가치관, 태도 등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이리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런 정당이나 정치인이 평소 자신들이 주장한 신념이나 가치관에 어긋난 행동과 태도를 보였을 때는 마땅히 질책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애정이자 믿음이자 이성에 근거한 지지라고 생각한다. 문재인과 안희정과 박원순 같은 이른바 이 땅에서 ‘진보’라고 부르는 그들이 평소에 내세웠던 기치는 그들이 실제로 보여준 행보와 얼마나 어긋났는가? 미투를 지지한다고 말했던 안희정은 뒤에서는 김지은 뿐만 아니라 여러 여성들을 성희롱, 성추행했으며, 인권변호사이자, 누구보다 여성 인권에 더 민감했던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은 성추행으로 고소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다면 충격과 함께 실망과 배신감이 먼저 들어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 마땅한 감정이 아닐까? 박원순이 그럴 리가 없다고, 안희정이 그럴 리가 없다고 내내 가해자들을 두둔하면서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은 물론 그 정치인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희정-오거돈-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잇따른 성범죄에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는 집권 여당, 그래서 이수정 교수까지 놓치고 마는 여당의 안일한 태도를 비난하고 꾸짖는 게 그 당의 지지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미통당에 합류했다고 이수정 교수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아끼는 민주당의 혁신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이렇게 말하면 나 또한 미통당 지지자로 몰아가겠지만 미안하다, 나는 미통당 증오하는 사람이다. 박원순의 죽음에 누구보다 심란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는 계속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숨기고 덮고, 어서 빨리 이 사태가 가라앉기만을 바라며,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히기만을 바라며, 병폐의 근원을 바로잡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김지은입니다>의 김지은은 미투로 안희정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 기록을 이렇게 책으로 남겼다. 가해자의 목소리와 가해자를 편드는 수많은 2차 가해자의 목소리가 더 큰 세상에서 피해자의 이런 기록은 더없이 소중하다. 김지은의 이 기록이 없었다면 나는 안희정을 성폭력을 저지른 성범죄자로만 기억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착취와 인권침해까지 일상적으로 자행한 참으로 저열한 인간이다. 2차 가해에 동참한 이들은 김지은이 안희정을 마치 아이돌처럼 좋아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고 말한다. 모두 안희정 측이 만들어낸 유언비어이다. 오히려 안희정은 김지은을 24시간 내내 대기시키며 종 부리듯이, 사적인 일까지 아무렇지 않게 시켰다. 김지은은 안희정의 비서이자 그의 아내 민주원의 비서이기도 했다. 연예인 매니저가 집안일까지 거들거나, 그의 가족 운전기사 노릇까지 했다는 기사가 나면 사람들은 그토록 비분강개하면서 왜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일을 시키고, 아내 민주원의 운전사 노릇까지 한 김지은에게는 오히려 안희정을 좋아해서 스스로 그런 것이라고, 그러니까 이상한 여자라고 몰아세우는 걸까? 그들의 선택적 판단에는 참으로 기가 찰뿐이다.

김지은은 권력에 도취된 자들, 대통령을 만들려고 모였다는 이들, 대통령 캠프라는 이름 아래, 불공정함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들이 모인 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정과 불의를 폭로하기도 하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대의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사사로운 사건으로 치부된다. “너희들은 대통령을 만들러 온 거야, 원래 정치권은 이래”라며 폭력은 묵인되고, 또 그들 자신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노래방에서 여자 후배를 옆에 앉혀 술을 따르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머리나 뺨을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고, 볼을 비비거나 껴안기도 한다. 술자리를 지키라며 새벽까지 집에 가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며 신사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을 홀렸던 안희정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만 만들면 이 모든 폭력과 부정과 불의는 다 묵인해도 되는 일일까?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매뉴얼을 알게 되고 매우 놀랐습니다. 거의 24시간 대기 업무에 문자와 카톡으로 지시를 하고, 높은 신뢰 관계를 요구하는 비서에게 업무 이후에 온갖 개인적인 심부름을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며 성폭력까지 일삼았다는 것은 공공기권의 기관장으로서 도덕성은 물론 인간성까지 파괴한 끔찍한 처사입니다. (<김지은입니다>, 140쪽)


안희정 캠프에서 일하며 그의 권력에 취해 또 다른 작은 권력자들이 된 그들은 김지은의 미투가 있은 뒤에는 거짓이야기를 만들어 유포하는 데 앞장선다. 2차 피해의 대표적 가해자 23명 중에는 현직 국회의원 보좌진, 안희정 지지 페이스북 운영자, 안희정 경선 캠프의 전 온라인 담당자도 포함되어 있고, 그들 중에는 실형을 선고 받은 이도 있다. 그런데 안희정 사건이 후로도 박원순의 성추행 추문에 또 다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차 가해자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거나 피해자 변호인단이 의도가 있어서 꾸며낸 일이라는 둥 온갖 유언비어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기록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 측은 성범죄 사건을 ‘합의에 의한 관계’ ‘불륜 관계’로 정의하면서 ‘법적 문제’에서 ‘도덕적 문제’로 전환시키고, ‘꽃뱀’ 담론을 끌어와 생존자를 가정 파탄을 초래한 ‘가해자’로 안희정과 그의 주변 사람들을 피해자로 이미지화 했다.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페미니즘 담론을 재해석하여 성폭력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전략을 취하며 성폭력 문제를 개인화했다. 가해자의 가족, 특히 아내들은 적극적으로 2차 가해에 동참한다. 한국 사회는 오직 가족과 관련해서 의리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 여성의 명예와 평판은 여전히 정상가족을 잘 유지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 결과 친족 성폭력의 피해자에게 친엄마가 나서서 침묵을 종용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안희정의 아내 민주원은 대표적인 2차 가해자이다. 민주원은 상화원의 부부 침실에 김지은이 들어왔다고 위증하며 김지은을 이상한 여자로 몰아갔으나, 그날 상화원의 숙소 옥상에서 안희정은 다른 여성을 만났다. 안희정이 미처 착신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 여성이 보낸 “옥상에서 2차를 기대하고 있어요”라는 문자가 김지은의 수행폰으로 연동되어 날아 온 것이다. 실제로 검찰 조사와 재판 중 안희정은 그날 밤 그 여성을 옥상에서 만나고 돌아왔다고 진술했고, 전화 내역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민주원은 안희정과 계속 같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안희정이 옥상에서 다른 여성을 만나고 온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고 재판정에서 진술했다. 김지은은 이 책에서 위증한 이들도 처벌받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나 또한 그렇다. 민주원의 위증은 그냥 그렇게 조용히 파묻고 말 것인가?

안희정은 감옥에 가 있지만 그의 권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에 따르면 미투 이후 모든 과정은 위력 그 자체였다. 안희정은 전지적 상사로, 그가 누군가를 자를 때는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는 한마디면 됐다. 별정직은 도지사에게 절대적인 채용과 면직 권한이 있었기에 지사의 말 한마디면 바로 해고 할 수 있었다. 안희정은 침묵만으로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지위를 갖고 있었다. 안희정은 30대에 대통령을 만들었고, 이후 재선 도지사, 유력 대선 후보로서 권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과 친분 관계를 맺어왔다.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촘촘했다. 관계가 곧 권력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안희정은 도지사직을 내려놓았지만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안희정의 증인으로 나섰던 일부 사람들의 직급이 급상승했다. 오랜 시간 대의라는 명분으로 뭉쳐 주류로 살아온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과 관계 맺은 광범위한 사람들이 건재한 이 사회에서 김지은 같은 피해자가 기댈 곳은 정의롭게 나서주는 소수의 몇 사람뿐이다.


상사에게서 교수에게서 선배에게서 힘의 작동 원리에 따라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함께 적용되는 것이 위력이다. 위력의 무서운 점은 위협적인 말을 듣지 않아도, 스스로 몸이 굽혀진다는 것이다. 위력은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다. 타인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형적, 무형적인 힘이다.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한 경우는 물론,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사를 제어할 경우도 포함된다. (<김지은입니다>, 174쪽)


최초 언론 고발 이후 안희정은 합의되지 않은 관계였음을 인정했고,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했으며, 미안하다고도 했다. 범죄에 사용한 휴대폰을 파기했다.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했고, 증거를 스스로 없앴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 심문을 하지 않았다. 묻지 않았다. 재판부가 김지은에게 했던 것처럼 안희정에게도 16시간을 질문했다면 1심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안희정의 권력은 그렇게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처음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선 김지은의 선배는 지속적으로 압박과 위협을 받았다. 정치권의 의원들에게 회사를 그만둘 것을 종용받았고, 또 다른 선배 역시 자녀의 어린이집에 누군가 접근해 오는 일을 겪어 경찰에 신고했다. 증언을 한 후배는 모해위증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나중에 무죄 받음). 그리고 지금까지도 불이익과 부당함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성폭력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권력자이다. 권력을 가진 가해자 편에 서는 일은 쉽다. 잃을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해자와 연대하기보다는 가해자 편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2차 가해를 한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기에 가해자들은 여전히 조직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피해자를 향한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2차 가해다. 가해자는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가 그 힘 밖으로 나오려면 그 분야에서 쌓아온 자신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 한다. (<김지은입니다>, 296쪽) 


사람들은 김지은에게 묻는다. 꼭 얼굴을 드러냈어야 했느냐고, 김지은은 말한다. 가해자에게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한 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문제 제기를 한 후 그녀가 조용히 묻히고 사건도 사라지는 것이었다고. ‘나’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또 다른 피해자가 계속 양산되는 결과가 가장 두려웠다고. 왜 네 번이나 당했느냐고도 묻는다. 김지은은 이렇게 묻고 싶다고 말한다. “왜 직접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는가?” “왜 세 번이나 입장을 번복하였는가? 일관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왜 검찰 출두 직후 휴대폰을 파기했는가?” 왜 법원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가해자 안희정에게 이렇게 묻기보다는 피해자에게 힐난하듯이 질책하듯이 비난하듯이 질문하는 것일까? 피해자는 모든 것을 잃는 싸움을 하고도 만신창이가 되는 반면 가해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듯이 대한민국에서 많은 여성들은 김지은의 모습으로 살아가곤 한다. 성폭력을 일상폭력으로 불러야 할 만큼 직장에서, 가정에서, 연인관계에서, 학교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김지은입니다>는 그런 모든 이들을 위한 용기 있는 기록이다. 가해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이 책을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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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10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수정 교수 욕하는 글들을 보고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이수정 교수가 그간 쌓아온 업적이 ‘미통당의 성폭력대책 특별위원회에 합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아닌게 되더라고요. 순전히 자기 노력과 실력 경험으로 또 여성을 비롯한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보를 이어간 사람인데, 그런 분이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회‘에 들어가게 된건 당연한 처사 아닌가요. 그 일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정치인이 되지는 않을거라는 이수정 교수의 인터뷰가 계속 실려야 하다니...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어요.

잠자냥 님의 이 책에 대한 리뷰 기다렸는데 읽게 되어 너무 좋네요.
왜 네 번이나 참았냐, 왜 그토록 오래 말 안하고 있었냐 등의 말들을 하는 2차가해자들이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입니다. 잠자냥 님과 함께 더불어 권합니다.

잠자냥 2020-08-10 14:20   좋아요 0 | URL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민주당에 독이 된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렇게 무턱대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암튼 요즘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 행태는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책을 뒤늦게라도 읽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게 책 보내 주신 분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저도 어쩌면 은근한 가해자 시선을 거두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끔찍하기도 합니다.

독서괭 2020-08-1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 읽고 있는데 잠자냥님 생각에 깊이 공감합니다.

잠자냥 2020-08-11 12:30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끝까지 잘 읽으시고 주변 분에게 추천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
 
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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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 이 책을 잡는 순간 이 기막힌 스토리에 누구라도 마지막 페이지를 보지 않고서는 책을 덮을 수 없을 것이다. 소름끼치도록 잘 짜여진 이야기. 그저 전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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