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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지구는 전혀 팽창하지 않는데, 이넘의 인간들이란 악머구리떼가 들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어지간한 거리는 한나절이면 날아갈 좁은 곳이 되어버렸다.
80일만에 세계 일주를 한 것이 놀라운 일이던 것이 불과 한 세기 전의 일인데...
휴가철이 갓지났다. 휴가철이면 도로가 북새통이고, 홀랑벗은 젊음들이 해수욕장에서 뜨겁게 타오른다.
그러나... 휴가에서 돌아온 정신으로, 삶을 돌아본다면...
휴가... 쉬는 틈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먹고, 마셨으며, 쓸모없이 버려댔는지를 반성할 수 있을까?
큰 조직은 통일성과 조직성을 추구하여 개인과 보다 작은 무리들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결국 정체와 부패를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지속하는 세계 평화를 성취하기 위하여 현재의 정치경제 제제를 분산된 작은 단위들을 이루도록 재조정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옳고, 또 옳으신 말씀이다.
이 땅에 지방 자치제가 시행된 것이 12년 되었다.
한국은 1 특별시, 1 자치도, 몇 광역시와 몇 도로 이뤄져 있다.
그렇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설특별시와 경기특별도의 한 덩어리와 기타 시골로 나누어지는 것이 이 나라의 실상 아닐까?
스와라지는 자기 통치, 자기억제라는 말이란다. 자치에 가까운 말인데...
국가에서 행하는 자치제가 아닌, 그야말로 소규모 단위의 자치가 가능한 살림살이를 말한다.
세계가 이미 그물보다 촘촘하게 엉키고 설켜 있어서,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을 만드는 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다.
무서운 일이다.
이미 한 세기 쯤 이전에 간디가 겪은 일들은, 지나간 과거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간디의 스와라지는 '자치'를 통한 부의 획득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의 스와라지는 가난한 사람의 스와라지다.
스와라지의 정의는 진실과 아힘사(비폭력)를 통해 구축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의 스와데시(외래품 배척을 통한 자립 경제)란 철학은 외세를 반대하는 차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의 꼬락서니가, 푸지게 먹고 버리는 <향유국>과 굶주려 죽을지언정 쓰레기조차 먹지 목하는 <빈곤국>으로 전락해버릴 것을 미리 내다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향유국>의 배부름이 이웃을 생각하지 못할 때, 간디는 그 배려의 부족을 <악>이라 부른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개성을 잃어버리고 기계의 한 톱니가 되어버리는 것은 인간의 존엄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다. 옳다. 정말 옳다. 그러나... 이미 인간은 톱니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필요없으면 제거해 버리는 이랜드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불필요한 톱니는 제거하면 그만이다. 역시 배려의 부족은 <악>이란 말이 옳고, 또 옳다.
도시화, 국가주의, 세계화라는 <종기 또는 부스럼>을 어떻게 해야할까?
간디의 대답은 마을의 마음이다. 과연 역사의 흐름을, 시간의 방향을 거스르는 <타임 머신>을 인류는 개발할 수 있을 것인가?
잭 런던은 '강철 군화'에서 <형제 인류애 시대>를 꿈꾸었지만... 그 형제는 인류애는 커녕 돈에 욕심이 멀어 날마다 더 큰 싸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간디의 비폭력, 비협력, 시민불복종은 시대를 타지 않고 모든 활동의 주제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이란 가장 폭력적인 힘의 행사 앞에서 비폭력, 비협력을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재 시대의 점거 농성, 각종 시위들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귀여운 수준의 저항들이었는지... 그 시절의 언론들은 엄청 겁주면서 보도하곤 했지만...
간디의 교육관 한 마디.
교육에는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두뇌는 손을 통해 교육되어야 한다...
아이가 신발 끈도 맬 줄 모르고, 스스로 제 먹은 밥그릇 치울 줄도 모르는 세상.
정크 푸드는 먹고나면 몽땅 버리면 그만이고, 신발도 좀 신다가 버리면 되는 세상.
컴퓨터 키보드를 조금만 누르면 남에게 상처도 주고, 싸움도 할 수 있는 세상.
배가 불러 터진 인간들에게, 류영모 선생도 그러셨듯, 겨우겨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좀더 가난하게 살라고... 예수님 말씀처럼 가난한 자에게, 어린 아이와 같은 자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 인간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아멘'이 아닐까? 됐으니 그만 집어 치우슈~ 하는 야유 대신, 아멘! 됐거든요.
간디의 노동관 중, 대중의 병은 돈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일의 부족>이란 말이 마음에 찔렸다.
도시 생활자가 많아지고, 도시가 삶의 중심이 되면서, 노인이나 장애인 또는 조금 부족한 사람들은 '일의 부족'을 더욱 심하게 느끼게 되었다. '중간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던 학교 교육도 고도로 기계화된 세상에서는 별로 필요없게 되어버렸다. 대중은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일이 부족한 것이다... 이랜드에서 파업하던 아줌마들이 그랬다. 일이 하고 싶다고...
그의 양생법도 읽을만 했는데, 변비엔 오래 걸으란 말이나, 하반신욕을 하라는 말, 깨끗한 공기와 열린 곳에서 살면 병이 없다는 말... 참 지키기 어려운 말이다. 가까운 곳엘 가도 차를 갖고 다니고, 반신욕을 할 정도로 여유를 탑재하고 있지 못한 우리는 꽉꽉 막힌 곳에서 에어컨을 켜고 살아야 웰빙인 줄 착각한다.
이제 나도 절반 가량 살았다.
나머지 절반 가량은 내가 분해될 흙에 가까이 돌아가 살아야겠단 생각을 늘 한다.
돌틈 사이에 끼어 살면서 하늘도 네모나다고 생각하는 빠빠라기가 흙을 꿈꾸도록 만드는 간디 선생의 글은, 간디를 얼마나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던가... 무지를 깨쳐주는 독서였다.
소크라테스는 역시 훌륭했다. 네가 무식하단 걸 너는 모르냐? 그렇습니다.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