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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미숙. 지는 지가 되게 똑똑한 줄 안다.
내가 보기엔 헛똑똑이에 가깝다.
왜냐면... 공부에 대해서, 고시생만큼도 모르는 사람 같아서 그렇다.
물론 그가 말하는 공부는 고시생의 단기목적성 공부와 다른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공부를 하면 '파워'가 생기고, 고시생의 공부는 '포스'를 획득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그렇지만... 세상이 이런 이분법을 제대로 번역해 낼 수 있던가 말이다.
고미숙의 '파워풀'한 공부는 '인생 역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그런 공부로 인생 역전을 이룬 이들은 '성자'로 추앙받는 이들이다.
많은 이들은 의사가 되고 법관이 되어 '포스'를 팍팍 뿜으면서 돈도 팍팍 쓰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앉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산다. 그걸 의미 없다고 한 마디로 일갈하면 끝인가?
물론 고미숙이 역설하는 공부와의 사랑을 평생 유지해야 한다는 데 나도 동감이고,
못배우고, 어려운 사람일수록 인문학을 접해야 한다는 희망의 인문학에도 전적으로 감동이지만,
문제를 그렇게 쉽게 보는 것이 아닐까 싶어 그의 시선이 가볍게 느껴진다.
요즘 교무실에서 인간들이 읽는 책을 보면, 전원 주택이나 재테크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주로 '어학'책들을 공부한다. 나도 한 몇 년은 일본어에 푹 빠져서 공부한 적도 있지만, 그래서 얻은 것도 많지만, 책 속으로의 도피였단 생각도 든다.
사람들과 같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얻은 고미숙은 분명 부러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의 공부가 '일반화'되기엔 한국적 삶이 너무도 팍팍하다.
호모 쿵푸스가 '파워'를 획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나는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읽는다.
한국이라는 척박한 토양은 모든 인문학적 기반을 해체하고 만다.
대한민국이 생긴 것은 불과 60년 남짓하고, 그 이전엔 식민지였고, 세계대전 버금가는 전쟁을 치렀다.
한국인들에게 '공부해라' 그것도 '고시, 취직 공부'말고 '인생 공부'를 해라고 말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는 철저히도 지켜지지만(이사가도 예비군 통지서는 꼬박꼬박 배달되고, 세금 고지서도 나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교육의 의무도 근로의 의무도 국민을 배신한다.(의무 교육인 초등학교에서도 툭하면 돈을 내야 하고, 이랜드 아줌마들은 70만원 받을 권리도 빼앗겨 버린 지 오래다.)
전에 장택상이란 인간의 딸이 미국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한국에서 잘난 체 한 책을 마구 깐 적이 있다. 그 책에 너무도 감동받은 사람들이 내 리뷰에 댓글을 단 걸 보면, 황우석이나 심형래에 맞선 진중권이나 피디수첩 팀이 가엾게 느껴졌다.
공부의 달인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다니... 생활의 달인을 열심히 보더니 거기 빠지셨나?
뒷면에 1060 세대 공감이란 제목도 붙어 있는데... 그럼 70대 이후엔 뭐지?
고미숙씨 60 살고 말 거셔? 진정한 공부의 시작은 70 이후가 아닐까?
늙을 '로'자 쓰는 '노자'가 공부의 진정한 경지가 아닌가 말이야.
그리고 공부하세요! 하고 대갈통을 톡! 치는 체벌이 지상파 방송을 타는 현실에서,
<Boys, be Homo Kunfus!>란 문장은 이상하지 아니하신가?
나는 영어를 잘 모르지만, 비 동사는 2형식 문장을 만들고, 그 주격 보어의 자리에는 형용사나 명사 등이 들어간다고 알고 있다. 그럼 호모 쿵푸스는 형용사? 명사라면 부정관사 a가 들어가야 정상 아니셔?
이쁘게 생겨서 대갈통을 톡! 쳐도 패널들이 즐거워하던 그 이쁜 아나운서는 그룹의 며느님이 되어 1080 세대 공감이 이뤄지는 날까지 한국에 있지 않고 미국으로 튀셨더만. ㅎㅎㅎ 可笑
고미숙은 수유연구실(무슨 너머하는 이름은 너무 길어서 다 못외움)을 마치 아주 기본적인 학습 공간인 줄 아는 모양인데... 착각도 심한 거 아닐까? 그리고, 자기네가 대학보다 낫다고 뻐기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뻐기기 시작하면, 거기서는 '파워'가 나오는 게 아니라 '포스'가 뿜기는데... 그가 그토록 비판하는 그런 힘 말이다.
<소통보다는 독백에 더 가까운 글쓰기. 온라인 상으로는 정신없이 자기 생각을 쏟아내고, 실제 현실에서는 거의 자폐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는 기이한 캐릭터>라는 말을 읽으며 뜨끔하다. ㅋ
'내 마음은 책을 열면 곧 거기에 있다.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이 보일 것이요, 정신은 또 천만 배나 잘 알게 될 것이다.'라고 이탁오가 '분서'에서 말했단다. 그런데... 내가 뜨끔한 온라인 상의 글쓰기와 이탁오의 책이 뭐, 그렇게 다른 것 같지도 않은데...
고미숙이 뛰어넘은 건지, 아직 거기 머문 건지 모호한 <착상은 흥미롭지만 논리가 거칠다>도 내가 딱 봉착한 문제들이다. 그래서 난 별볼일 없다고 무시하는 '박사' 공부엔 관심이 없다. 거친 논리가 먹히는 인터넷 글쓰기가 더 체질에 맞기 때문이다.
공부는 평생의 일대사다. 맞다. 인생 공부는 끝이 없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공부는 한 순간에 이뤄진다고.
계합의 순간을 만나야 한다고.
그렇지만 그 순간을 맞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
글공부 같이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래서 좋지만, 쉽게 만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고미숙은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클림트의 키스를 보고, '포스'가 전해지는가?하는 말은 좀 서운하다. 그는 파워와 포스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 모양이지만, 분명 내겐 파워가 전해지는 것이어서...
고미숙은 대안 학교에 '공부'가 없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이 세상이 공부를 싫어하는 듯 하다며 안타까워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공부가...
이 세상이 모두 영상만 좇아가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쉰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이미 '부처님 말씀'도 계시고, '성경'도 계시니 말씀입죠.
그래서 고전을 읽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죠.
암송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외치면서,
왜 '불경'과 '성경'은 열심히 안 읽는지 조금 의문이긴 하지만...
고미숙이 좀 더 많이 내공을 쌓고, 그래서 유목민적 기질만이 드러난 책이 아니라,
이아무개 선생처럼 유목민적 깊이를 느끼는 책을 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