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止를 금지하라 - 지승호의 열 번째 인터뷰집
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멋지고 도발적인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한 마디로 지나치게 '도덕적인' 사회다.
그래서 빨갱이도 안 되고, 좌익이나 좌파도 안 된다.
그 도덕은 '가진자를 지켜주는 도덕'에 불과한 것이다.
너무 도덕적이어서 '헐벗은 자'에게 돈을 팍팍 뿌리는 룸싸롱이 성업중이고,
도덕적으로 '욕망의 카타르시스'를 도와주는 '도우미'들도 숱하게 뛰어다닌다.
이른바 보도방(보*도매방이라는)이란 것들도 실존하는 프리섹스의 나라...

'성매매금지법'이 있다는 것은 '성매매'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반증 아닐까?

지승호는 '상식을 두루 꿰는 교양인'을 지향하는 인터뷰어다. 철학책같은 인터뷰를 지향한단다.
그의 지향은 맥락을 잘 잡고 있다. 우선은 그가 택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각 포스트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인물이어서 그렇다. 철학이 나올 법 하다.
칼럼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까는' 글이기 쉽지만, 인터뷰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어서 '긍정적으로 접근하는'글이어서 좋다는 그는, 강준만이 자료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듯, 인터뷰이들이 대신 말해주는 것으로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펴는 사람이다.

아직도 온통 <금지 세상>인 이 땅에서 힘들고 멀기만 한 사회운동의 길을 '긍정적인 생각'이 세상을 바꿔가는 원천이라고 믿는 박원순.

문학은 인간의 존엄을 가장 높고 크게 세울 수 있는 것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작가 조정래.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연세대 교훈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란다.) 하는 자유주의자 마광수. 유림에선 그를 체제 전복적 인물이라한다는데, 문화 독재의 피해자들이 가득 모인 이 땅에서 마광수같은 자유주의자가 정말 필요하다. 입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봉건적 민족주의에 파묻혀 있는 나라(145)에서 마광수가 글을 쓰면 자꾸 누가 팔을 건드린다. 제발 그와 장정일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길위의 신부 문정현의 '남은 자'가 되겠다는 말씀은 시린 폭포로 쏟아진다.

멕시코가 나프타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어 미국과 높은 수준의 에프티에이를 맺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를 계속 발하던 정태인. 공병호 식으로 스스로 알아서 해라~ 보험이나 많이 들든가, 펀드를 하든가~ 하는 것 자체가 '자산'을 가진 자들의 방식이라고 깐다. 교육이 자산의 분배상태를 개선하던 시대는 가고, 거꾸로 재산 재키기로 작용하는 시대를 잘 읽어준다. 사는 게 무섭다.

삼성 엑스 파일을 까발렸다 엄청 피곤해진 이상호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나치게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많다'는 거란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부 철없는 행위로 치부한다. 모든 운동권은 쉽게 매도된다. 황우석은 그 어른들이 감싸주었듯... 삼성은 그 자체가 어른 행세를 하려 드는 자유주의의 적이다.

사람들이 하나도 진지해지지 않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너무도 행복해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 분노가 느껴지지 않아서 그게 너무 가슴아파요. 온갖 문화의 야들야들한 벨벳처럼 소프트한 양식으로 결박하고 있기때문에 정치적 구호로는 절대 풀리지 않을 이 땅의 문제들이 이제 고착회되어가는 양태를 그는 또렷이 바라본다.

최승호, 한학수 팀은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그저 황우석 신드롬의 두려움은 이 땅에서 언제든 마녀사냥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아 무서울 따름이다.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이런 미친 책을 쓴 넘이 있고, 그 책을 알라딘의 바탕 화면에 확 깔아 뒀더만.

사람이 돈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이건희는 하지 않겠지?
이 땅의 어른스럽고 근엄한 사람들은 어른스럽게 '질서가 있는 자기 주장'을 하라고 공익 광고를 통해 말한다.
돌던지고 머리띠 매는 노동 조합이나 농민 조합 같은 막돼먹은 주장은 '쌍스런' 거라고...
점잖게 타이르신다.

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지만, 돈은 그 사람보다 꽃보다 아름답기 때문이겠지?
돈으로 사람도 살 수 있고, 돈이면 명예 박사도 얻을 수 있는...
그래서 명.박(어, 이거 누구 이름이삼?) 주려는 대학에서 반대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그 삼성에 취업하려는 많은 학생들이 막았다는... 역시 돈이 사람보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래서 장윤정은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오늘 처음 만났지만 내 사랑인걸요~~~'하면서 퇴폐 천민 저질 하류 자본주의 만세 송을 부른다.

'그들이...... 있어...... 진실은...... 외롭지... 않았다'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중간에 찍힌 스물 네 개의 말줄임표가, 금지의 송곳으로 찌르는 듯 하다. 느낌표 하나 붙이기가 그토록 어려운 '진실' 앞에서...

***************

맞춤법 교정 하나!

怒는 '성낼 노'자다. '로'로 소리나지 않는다.
다만 희노애락은 발음이 껄그러워서 '희로애락'으로 변형시켜 쓴다.
'천인공노'에서는 '로'로 적을 이유가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9-06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9-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도서관에서 사줘야 읽으니 늦게 읽게 되네요.
즐건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비? 아빠나 아버지도 아니고?

이런 단어를 찾아 썼을 땐,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인간의 언어는 ‘어휘 목록’과 ‘문법’을 추상화할 수 있다.
이 양자는 뚝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내용이 목록이라면 형식이 문법인 것이다.
어휘들이 쓰이는 양태를 연구하면, 그것이 문법의 범주에 들어와 의미론을 이루기도 하지만, 어휘는 필요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지만 문법을 그닥 잘 변하지 않는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 일은 ‘결핍’의 문법 구조를 재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아프고 외롭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의 쓸쓸함을 감지하게 한다.

그는 결핍의 문법구조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삶의 목록’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그는 날마다 편의점에서 갖가지 사물들을 삶을 확인하듯 사가지고 나오는 사람이고, 옆방의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들을 시시콜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또 그는 편의점에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고, 똑같은 방의 ‘목록’을 가진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래서 그는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온 방을 물고기 비늘처럼 소설의 어휘들로 가득 메운다.

모든 부드러움에는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잔인함이 있다.

이 말만큼 결핍의 문법을 강하게 표출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까?
‘결핍’의 눈으로 보면, ‘가진자’들의 부드러움은 ‘잔인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의 결핍의 근원은 ‘아비’로 보인다. 차마 아버지로 부르기도 싫은 ‘아비’
어느 날 문득 나타나 텔레비전 앞을 차지하고 앉은 ‘아비’

그러나 그 사라진 자리는 무엇으로도 치환할 수 없는 ‘아비’

그래서 그에게 아무리 많은 목록의 인생이 스치고 지나가더라도,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쳐 나가다 자동차에 부딪치고 마는 인생처럼 ‘결핍’은 목마름은 충족되기 힘든 근원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김애란의 소설은 '가슴아림'으로 기다려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에 이 책을 읽어야쥐~하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퇴근을 하고 있는데, 남구청 앞에서 2.5톤 트럭으로 하나 가득 캐비닛을 싣고 가더라. 폐기 처분되는 캐비닛들. 그 속에 13호 캐비닛이 있을 지도 모르고, 거기엔 내 파일이 376번째로 기록되어있을는지도 모를 일인데... 이런, 젠장. 권박사가 어디로 보내는 거야~~~

근데... 왜 캐비닛이라 한 거쥐? 보통 사람들이 캐비넷이라 하지 않나?
직업 근성을 버릴 수 없어,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어라~ 캐비넷이란 단어는 수록되어있지 않았다. 캐비닛이 표준어인 거다. 이거 세상이 나를 버리고 단어 표기법을 바꾼 거 아니삼?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나만 모르고 있을 때.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수십 년간 지식이라 외우고 살았는데, 거기 뭔가 덧붙여 졌다면 모르되 명왕성을 지웠다는 이야기나,
사람들이 다 안다는 유명한 사건을 나는 딴세상 사람처럼 듣도보도 못할 때,
입을 다물고 있어서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죽 둘러보면 남들은 다 아는 눈치다. 이런~

사람들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속내는 모두 다르다. 다만 비슷한 체 하고 살 뿐.
김언수의 '캐비닛'은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좀더 써프라이즈~하게 이끌고 가긴 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중인격을 갖고 살고, 끈적한 관음증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에게 산다는 건 '모욕적인 것'이다. 다만...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그의 소설은 완벽한 <허구>다.
성탑에 갇혀 있다가 화산재가 쌓인 뒤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남은 인간에서부터, 다양한 심토머들의 세계를 실제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그렇지만 그의 구라를 따라 읽다보면, 과장 속에서 읽히는 '삶의 진실'은 평범한 소설에 비해 훨씬 파장이 크게 내 심장을 건드린다. 간혹 불쾌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하기도 한다. 별 미친놈, 소린 잘 안 나온다.

완벽한 '허구' 속에서 '삶의 모욕적 측면'을 이야기하고,
남자 또는 여자로 삶에 대하여, '폭력적인 이분법의 세계'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테제를 발하며,
'아름다운 회오리바람이 은행잎을 둥글게 감아올리는 것을 보고'있는 사람을 '이 새끼가 돌았나?'하며 패는 세상의 패러독스를 드러내고,
혼자 고민을 말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무슨 말인가 속내를 조금 드러내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알지. 어렵게 사는 사람들 많은 거, 하지만 저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허공에서 살고 있는 기분인데, 누구도 몰라주는 사람들이 세상엔 가득하다는 걸 그는 안다.

그렇지만 세상은 부비트랩의 세상이고, 우리 일상엔 상냥한 얼굴을 한 아저씨가 매일 아침마다 출근해서 성실하게 만드는 부비트랩들이 일상의 도처에 불행의 이름으로 깔려있다. 그게 삶이다. 이 정도면, 부처님도 '너 그만 하산해라.' 하실 레벨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의 방식 이외에도 아주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얼토당토않고 무모해 보여도 그것이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한 필연적인 질서라는 것을 모른다. 모르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다.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하는 삶의 궁극적 의문에,
글쎄 꼭 뭘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자네의 시간을 견뎌봐.
인생이란 그저 시간을 잠시 담아두는 그릇에 불과한 거니까...
캐비닛처럼?
그래, 마치... 캐비닛처럼.......

이 인간 정신 병원에 가서 환자들에게 들이밀면, 환자들이 '나 여기서 퇴원하겠어요.' 할 인간이다.
기대된다. 김언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inpix 2007-09-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기대되는 작가예요.^^/

글샘 2007-09-04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쳐라 - 세상을 치는 경허 스님의 죽비소리!
경허 스님 지음, 한용운 엮음, 석성우 옮김,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나를 쳐라!
했더니,
내 몸뚱이를 치더라.
다시,
나를 칠 수 있으면 쳐 봐라!
했더니,
나에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또
내 몸뚱이만 치고 있더라...

내 몸뚱이,
내 직위,
내 이름,
나의 관계가 나를 이루는 작은 부분이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공부하세요~하는 경허스님의 말씀들이 서늘하다.

김홍희의 사진이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부조화스럽기도 하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두 한자.
고요할 정, 맑을 정.
앞의 맑은 것은 보리요, 뒤의 고요한 것은 열반이다. 그야말로 '아멘' 소리가 절로 나오는 구절이다.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
앉으나 서나 같이 다니고 말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함께 한다.
그러나 털끝만큼도 서로 여의치 않음이 그림자와 같으니
부처가 가는 곳 알고자 할진대 다만 이 말소리로다.

부처를 어디 가서 찾을 것인가...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신중하게,
닭이 알을 품듯이 따뜻하게,
늙은 쥐가 쌀독으 쫓듯이 진지하게,
항상 마음을 집중하여 오래 생각하라.

부처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공부를 하는 사람은
마음 움직이지 않기를 태산과 같이 해야하고
마음을 넓게 쓰기를 허공과 같이 해야하며
지혜로 불법을 생각하기를 해와 달같이 해야 하며
남이 나를 옳다고 하든 그르다고 하든
곧은 마음을 끊지 말라.
다른 사람이 잘하든 잘못하든
내 마음으로 예단해 참견하지 말고
좋은 일을 겪든지 좋지 않은 일을 당하든지
항상 마음을 편안히 하고 무심을 유지하라.
또한 바보같이 지내고 병신같이 지내고
벙어리같이, 소경같이, 귀머거리같이, 어린애같이 지내면
마음에 절로 망상이 사라지리라.

마음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너무 잘난 체 하고 말이 많았다. 총총.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07-09-0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만 방심해도 흐트러져 버리는걸요..
아집과 미움과 욕심으로 얼룩진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절망입니다.
어떻게 한 순간 한 순간을 지킬 수 있는지..
세속에서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ㅠㅠ

글샘 2007-09-03 08:37   좋아요 0 | URL
사람은 다 그렇죠^^
그래서 마음을 바라보라는 거겠죠.
 
장건우한테 미안합니다 높새바람 15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고 조금 불쾌하다. 작가의 시선이 지나치게 두갈래여서 그런 듯 하다.
작가는 교사의 편애를 두 종류로 생각한다.
하나는 기득권을 가진 아이들에게 향하는 편애.
이거야말로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고 교사로서 극복의 대상이다.
간부, 공부 잘 하는 애, 이쁜 말 잘 하는 애 들에게 사랑이 쏠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다른 하나는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결핍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각별히 관심을 가지고 애정 표현을 하는 교사들이 있다.
과연 이런 경우도 편애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선 장난을 건 여자아이들을 좀 가난하고 부모가 없는 집 아이들이라고 해서 선생님이 관심갖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상정했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담임 선생님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여기서, 가진 자들의 시선을 느낀다.

나도 그런 경험이 많다. 특히 '특수학급 아이들'은 대표적인 '왕따'케이스고,
담임으로서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어야 할 필요성을 갖게 하는 아이들이다.
많은 수업에서 보통 아이들은 특수 학급 때문에 피해를 겪기도 한다.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사춘기 아이들에게 자기 조에 특수아가 하나 들어서 조별 활동을 망치는 일은 짜증나게 마련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처음엔 도와주자는 의견에 동의하던 순한 아이들도 나쁜 감정을 갖고 스트레스를 발산한다.

잘 씻지도 않고, 말도 함부로 하는 아이가 특수 학급 아이라고 비호받는 경우 오히려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차별에는 오랜 역사에서 가진 자의 힘이 골수에 맺혀있기 마련이다.
여성의 문제, 빈민의 문제, 비정규직 문제, 장애인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
그 차별은 일거에 퇴치될 수 없는 구조적인 것에 가깝다.
학교는 그 모든 문제가 함축되어 나타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학교에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가난과 학벌이 대물림되는 현실을 보면, 교사의 애정에 의한 역차별은 현장에서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을 하게 되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는 교사도 싫다.
냄새나고, 공부도 못하고, 잘 해 준다고 부모에게서 고맙다는 이야기 한 번 들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의 좋은 점을 한 가지 찾는 일은 평범한 아이들에게서 좋은 점 열 가지 찾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이 책에 나온 선생님이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각별히 써주었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장난 끝에 다른 아이를 때리고 오는 놀이처럼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놀이를 했을 때, 그 문제를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은 교사의 오류라 생각한다.

반장 엄마들이 보통 그렇게 싸가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겪어 보면, 가난하고 못배운 부모들이 학교에 대한 나쁜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고, 학교에 시비붙기 좋아한다.

간혹 싸가지 없는 학부모가 무슨 운영위원 같은 걸로 튀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 대부분 왕따되기 쉽다. 후덕하고 지적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성격도 원만하고 자신감도 있어서 원만한 아이로 자랄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건우의 선생님, 친구들, 가족 관계를 좀 도식적으로 나눈 것 같아서 이 소설에 별 다섯을 붙이지 않았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7-08-3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어떤 분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 분 교실에 자폐아가 하나 있답니다. 멀쩡하게 잘 생긴 앤데, 남자애들이 걔를 미워하고, 놀려먹고, 부려먹으려고 하죠. 쌀쌀맞게 대하고. 그래서 한번 그 분이 운동장에 남자애들을 굴렸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으로 걔를 다정하게 대하진 않는다고. 오히려 반발심으로 더 못살게 굴죠. 결핍이 있는 아이에 대한 관심은 또 그 아이를 더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고.

프레이야 2007-08-3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조심스럽지만... 음.. 님의 글 마지막 단락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요..
현장에 계신 님의 시선은 이해가지만요..

글샘 2007-09-01 00:36   좋아요 0 | URL
불쌍한 아이들이 선생님의 사랑으로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는 좀 식상하지 않나요? 하긴 춘향이나 인어아가씨처럼 <동적인 인간형>이 이야깃거리가 되긴 하겠지만 말이죠.
인간관계는 그렇게 도식적이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습니다. 오해하실 수 있으면, 바로 읽으신 것 같네요.^^

프레이야 2007-09-01 11:12   좋아요 0 | URL
앗, 님의 댓글을 보고 나니 제가 단락을 잘못 쓴 거네요.
제가 조심스럽다고 쓴 표현은, 마지막단락이 아니고 마지막에서 두번째 단락이요..^^ 글샘님.
마지막단락은 동감이구요.^^

글샘 2007-09-03 08:39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그 대목에서 좀 야릇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밑에 드팀전님께서 개념 설명을 잘 하신 것 같네요.^^

드팀전 2007-09-0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이거 의외로 철학적인 과제를 던지는 책이군요..^^ 미국에서도 '어퍼머티브 액션'이라 그래서 '사회적 소수'에 대한 의도적 배려가 수정헌법과 늘 씨름을 하잖아요.
전 글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겠습니다.공부못하는 것들이 착하기라도 하면 봐줄텐데 그렇지도 않지요.부자인 것들은 공부도 잘하는데 착하기도 하지요..미워할 구석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물론 그들도 개인적 외로움과 컴플렉스와 고민이 있습니다.누구나 다 그렇듯이^^ 결국 문제를 개인으로 소급해버리면 답이 안나와버립니다.또한 그걸 '도덕적 신념'에 기대어'가난하지만 아름다운'으로 낭만적으로 믿어버려도 실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겁니다.이 둘 다가 '가난'을 정면으로 대하는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교사들이 이 다층적 개인들을 한 공간 안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끌어간다는 것은 보통 과제가 아닐것이라고 생각합니다.오히려 교사입장에서는 '수능성적향상'이라는 하나의 부여받은 목표가 있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지요.


제가 글샘님의 글을 읽고 알라딘 소개글을 봤습니다.이런 글이 나오더군요.

"길지 않은 이 한편의 동화는 가진 것 많은 아이나 가진 것 없는 아이나 아이들은 다 똑같은 아이이며 아이들 하나하나가 다 고유한 인격체라는 것을 넌지시 보여주는 것이다."

글샘님이 '가진자의 논리'라고 하는 함의가 저 안에 있습니다.맞지요^^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좋은 주제 인듯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틀린 바가 없지만 저 안에는 분명 문제제기의 소지가 숨어있다는...

'탈정치'와 '정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글샘 2007-09-01 00:46   좋아요 0 | URL
음, 제가 하려는 이야기의 핵심을 콕 찌르셨군요.
역시 사회과학도의 시선은 명쾌합니다.
담임했던 아이들을 몇 년 지나서 만나 보면, 제가 의도했던 [친절함]은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았던 [친절함]에서 아이들이 공평함을 이야기하더라구요.
교실이 분명 정치임엔 분명하지만 그 속에서 '고유한 인격체'들과 벌이는 실랑이는 '탈정치적'인 면도 많습니다.
교사가 탈정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은 그래서 관리자나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진학 공부와 상충할 경우도 많이 생기죠.
장자에서 백정이 말하듯이, 도가 튼 사람은 칼을 상하지 않고 소를 가르듯, 도를 얻은 교사라면, 정치에 다치지 않으면서도 관리자나 학부모,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하겠지요.

'고유한 인격체'들을 완전 평등하게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도 정치적입니다.
작은 정치의 공간, 교실에 서면, 언제나 저 숱한 소수자의 문제들이 '가진자의 편에 선 교사의 시선'에 파묻히기 쉽습니다.

저도 이 단순한 이야길 읽고, 그냥 복잡해졌던 건데, 드팀전님 이야길 읽으니 제가 고민했던 부분의 개념이 서네요. 답은 없지만...^^

BRINY 2007-09-0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답은 없지만...^^;;

글샘 2007-09-03 08:39   좋아요 0 | URL
정말 답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