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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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연사가 아닌 변사 사건에는 검시관이 와서 시신의 다잉메시지를 찾는다.
과연 자살인지, 아니면 자살을 위장한 타살인지를...

구라이시란 검시관은 워낙 배울 것이 많아 '교장'이라든지 구라이시 학교란 말로 후배 경찰들을 자극한다작가 오코야마 히데오는 인간의 '사랑'과 '범죄' 사이의 줄타기를 읽어내는 미묘한 눈을 가진 사람이다.

미스테리치고는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고,
간혹 뭔 미스테리가 이렇게 로맨스 같냐~ 하는 생각도 든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도 눈여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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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그리고 분단체제 뛰어넘기 새사연 신서 1
김문주.김병권.박세길.손석춘.정명수.정희용 지음 / 시대의창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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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노무현의 집권으로 수구 친일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진보로 일컬어지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안 없음>만 확인하고는 정치에 염증만 깊어진 현실.

올해 대선에선 이명박이란 비정치적 티켓 외엔 경쟁자도, 대안도 없는 희대의 무관심한 선거판이 조장되고 있는데...

진보란 자들이 집권한 정권 하에서도 경찰은 노동자를 탄압하고,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탄핵하려했으며, 미국의 압박이 심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파병을 서둘렀고, 비정규직 법안이 실시되면서 심각한 사회 양극화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차분한 분석을 드러내고 있는 훌륭한 책이다.

이 사회엔 너무 어른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 자유 토론의 훈련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

박정희를 욕하면, 마치 매국노를 보듯 싸늘한 시선에 둘러싸이기 십상이다.
노무현을 비호하는 발언을 해도 마찬가지로 철부지 보듯 눈을 돌린다.

진보의 대안은 이것이다.

노동 주도형 경제 모델을 만들어 정착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노동 주도형 경제는 근본적으로 상위 1%가 50% 이상의 땅을, 상위 5%가 82.7%의 땅을 소유한 기형적 부의 편중과 빈부 격차를 완화시키려는 최소한도의 노력을 해야할 것이란 이야기다.
가진 자를 위한 정책, 늘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면서, 사실은 외국 자본에게 야금야금 다 빼앗기고 마는, 그래서 국민 경제란 것이 아예 없어져 버리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지적은 옳고 또 옳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통일 지향 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북한에 퍼주기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결국 원조 액수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현실에서, 적극적인 통일 경제 모델은 고 박현채 선생의 민족 경제론과도 많이 통하는 듯 하다.

마지막에선 정치적 풍토 개선을 위한 제도 수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
가장 못 믿는 정치 집단인 국회의 권한이 지극히 크다는 것.

날마다 텔레비전을 켜면, 사채업자들이 돈 빌려 준다는 광고거나, 늙어 병들면 나라에서 안 고쳐준다고 보험들라는 광고거나, 아파트 잘 지어놨으니 하나 사 가라는 광고가 판을 친다.  경제 코너에선 주식인 펀드로 돈버는 기술을 열강한다.
사채업자의 광고에 유명 연예인들이 너도나도 나서는 나라가,
미래를 믿을 거라곤 보험회사밖에 없는 나라가,
지어 두지도 않은 아파트를 평당 수천 만원에 파는 나라, 그래서 돈을 불리는 유일한 방법은 부동산 투기뿐인 나라가,
돈 놓고 돈 먹기의 주식 투자와 재테크에 초딩부터 노인까지 매달리는 나라가,
과연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국가가 아니다. 이건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만이 통용되는 무자비한 살생혈투의 현장이다.

뭔가 비전을 가진 정치가를 기대하기엔 아직도 이 땅에선 레드 컴플렉스가 너무도 큰 걸까?
민주 노동당이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외에 더 세밀한 대안을 내 놓기를 바라는 것이 한갓 망상일까?

국가와 민족을 팔아 자기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한 세력들이 더이상 득세하고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가 자명한 경제 원리인 사회에서 아이들을 기를 순 없다.
그러니,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을 자랑하고 있을 수밖에...

이 책을 읽어 본들, 막연한 정책들이긴 하지만, 이런 정책들을 각종 선거에서 들을 수 있다면 선거를 치르는 국민들도 좀더 진보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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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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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가득한 함민복의 산문집이다.
함민복의 글들을 읽노라면, 이 땅의 가운뎃벌판, 중원에서 태어나서, 주변의 사람들이라고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무지랭이들 뿐인 사람들의 정겨운 체온이 느껴진다.

10만원 수표를 피자값으로 내주며 '잔돈은 됐어요!'하는 여고생도 있다지만,
이 땅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는 하지만 구사할 줄 모르는 한국어'인 잔돈은 됐어요!를 낯설어한다.

그렇지만, 또한 그 낯설지 않은 가난을 뼛속깊이 혐오하며, 그 가난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 달리고,
특히 자식에게만은 그 친숙한 가난의 길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힘써왔다.
그 결과 가난은 조금 멀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은 구만리나 남았고, 길은 갈수록 뻘창으로 변해간다.

시를 쓰는 그는 강화도의 한 바닷가 폐가에 산다.
그의 이웃들은 "망둥이는 볼따구니 살이 제일 맛있단다.
살아있는 한 호흡을 해야 하니까 계속 움직여야 하는 아가미 근육 살이 제일 쫄깃하고 맛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내 영혼의 어느 부위가 제일 맛있을까?(바다쪽으로 한뼘 더)"하며
물고기로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벽 밖에서 못박을 위치를 잡기 위해 망치를 두드린다. 아니, 그쪽말고 바다쪽으로 한뼘 더... 기준을 바다로 삼는 이곳 사내들처럼, 나도 바다 쪽으로 한뼘 더 나아가 시를 좀더 짧게 쓸 수 있었으면..."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바닷가 사람들이다.

물론 그는 섬아닌 섬에서 외로웠으리라.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그의 글에서 읽히는 선천성 외로움이 느껴진다.

"소리에 어른이신 저 큰 말씀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그래 살아 있네(천둥소리)"

자연 옆에 살면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을 닮은 시인, 함민복.
동네 약사가 아는 시인과 이름이 같다며 바라보는 시인같아뵈지 않는 시인, 함민복.

어쩌면 그의 가장 유명한 글은 시 아닌 다음 수필일 게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운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며 눈물을 땀인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우리가 늘상 부려 쓰는 모국어건만, 그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우리 생활 속에서 언제나 툭툭 부딪치는 말들이다. 그래서 더욱 푸지게만 느껴지는데 그의 삶에 대한 관조는 자못 깊숙하여 때로 서늘하다.

'샐러리맨 예찬'에서 처럼...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삼십 분 육십 분 구십 분 -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짜릿하다. 마치 돼지 자궁에 발톱이 미끈거리는 새끼 잡으려 집어 넣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어미 돼지의 산통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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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8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샘님, 이런 글을 왜 아직 안 읽었던가요. 당장 담아갑니다.
눈물은 왜 짠가?, 제목만 들어본 글인데 저렇게 툭배기 부딪는 말로...
!! 짠합니다. 님의 리뷰 또한..

글샘 2007-09-19 08:53   좋아요 0 | URL
이제 읽으셨죠? ㅋㅋ
눈물에는 0.09%의 염화나트륨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짜다는 설명보다, 정말 짠하죠.

순오기 2007-09-1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복~~~~'눈물은 왜 짠가?'
아~~~~ 찜합니다!

글샘 2007-09-19 08:54   좋아요 0 | URL
딴 글들은 별로인 것들도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가난하게 사는 한 사람의 삶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가난하게 구질구질 사는 거, 읽기엔 별로 유쾌하지 않잖아요.^^

비로그인 2007-09-1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짜다던 눈물이 핑- 했습니다. 좋군요.
덕분에 좋은 시인, 수필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김소향 옮김 / 이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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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업의 잔상 효과랄까... 이 책도 읽어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막상 책을 잡고는 너무 오랫동안 미적거리며 읽게 되었다.
인생 수업에서는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들과 인생의 유한함을 일깨우는 이야기들이 명상적인 그림들과 어울려 독서의 풍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면,
상실 수업에서는 왠지 상실 후의 심리 같은 것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어보인다. 쉽게 읽히지 않고 빡빡한 느낌이 크다.

상실을 겪은 이들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실만으로도 가슴 저린데, 이 책은 그걸 위안해줄 수 없는 책이다.
후벼 파기로는 나을 수 없다.
물론 30분 울 것은 20분 울어서는 속이 후련하지 않은 일이지만,
30분을 울었다고 후련해하는 마음을 생각하는 건 '상실'에 대한 경박한 의견이라 생각한다.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이기도 하지만,
수용까지 금세 가는 슬픔도 있는 법이지만,
결코 수용까지 다다를 수 없는 슬픔도 있게 마련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어느 날 백화점 붕괴사고나 지하철 화재 등의 황당한 사고로 실종되거나,
비행기 사고처럼 생존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고 할 때,
수족보다 중요한 아이를 누군가가 잡아갔을 때,
더 이상의 삶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걸 이렇게 책으로 내는 일이 과연 얼마나 위안이 될는지는 의문이다.

이론적으로 연애 박사가 된다고, 연애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상실도 마찬가지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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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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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뇌쇄적이다. 아주 죽인다는 뜻이다.
치즈와 구더기. 치즈에서 구더기가 꼬이듯이... 하나님의 세계로 정의된 질서를 비웃는 듯한 제목이 글의 내용을 상당한 상징으로 함축하고 있다. 결국 천사나 인간의 존재를 구더기처럼 지저분하게 구물거리는 물적 존재로 파악한 개인은 전통적 종교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불순분자'로 처단되게 마련이었다.

요즘 허생전을 가르치고 있다.
조선 시대, 그것도 병자호란이 지난 시기, 청나라라는 세계적 제국의 현실을 부정하고 오로지 명나라라는 명분에 얽매이다 조선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명분에 얽매인 양반 관료들의 모습과 현실에 눈뜬 민중들의 모습을 어슴푸레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또렷한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진 못하다. 전형적인 민중의 모습을 지닌 등장 인물이 안타까웠다.
박지원의 허생전은 당시 발설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만약 조선 시대, 그 북벌론이 승하던 시기에(힘도 없는 것들이 용심만 남은 북벌론) 청나라와 적극적인 교류를 펼쳐야 한다는 허생전을 양반들이 읽었다면, 그도 역시 모가지가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역사 책에서는 거짓말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 숨쉬고 있었는지는 읽을 수 없다.
그저, 권력을 잡은 자들 중심으로 모든 정치, 문화, 사회, 예술, 경제의 흐름 등을 엉성하게 얽을 따름이다.
소설 속에선 사람이 살아 숨쉰다.
조정래가 태백 산맥에서 숱한 민중들에게 '죽산댁, 외서댁, 소화, 염상진, 염상구...'등과 같은 이름을 부여하여 그 역사를 살아 꿈틀거리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허생전의 허생도 조선의 허술한 경제적 유통 구조, 명분만에 매여 당쟁을 일삼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 등을 살아있는 목소리로 보여주고 있다.

카를로 진즈부르크의 치즈와 구더기는 '미시사'에서 유명한 작품이란다.
역사 전공은 아니라서 그의 책이 얼마나 큰 상징을 띠고 인용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역사 탐구는 역사 복원에 큰 밑바탕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 주인공 메노키오는 방앗간 주인으로 종교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시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미시사란 것이 한 사람의 역사를 복원하는 상세한 과정이다 보니, 마치 메노키오란 주인공을 둘러싼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
마치 김성한의 '바비도'를 읽는 기분이다. 6차 교육과정 고교 교과서에 '바비도'란 소설이 실렸다가, 특정 종교의 반발로 다음 해 삭제된 일이 있었다. 남의 나라 종교가 이 땅에 들어와 부리는 기승이란... 그저 웃어 넘기기엔 지나치단 느낌이 많이 든다.

메노키오는 법정에서 '라틴어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제 생각에 라틴어로 말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소송때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몰라 좌절하기 때문"이라고'(84) 기술한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 법전을 읽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든 사람은 성령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제의는 '인간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으며, 장사에 불과하다.(86) "여러분은 사제와 수사에게 가느니 나무에게 고백하러 가는 게 낫다."는 말은 지금 교회나 그 때의 교회나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지배적이고 착취적인 입장에 섰던 것인지를 보여준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계신 위대한 주님에게 고백하고 자신의 죄 사함을 간청하는 일"이라고 하여 종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형식적이고 고압적으로 변질된 종교의 개혁을 암시한다.

재판은 그가 도대체 어디서 이런 불량스럽고 이단적인 생각을 주워들었는지를 심문하지만, "저는 결코 이단자와 교류한 적이 없"으며 "생각할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보다 숭고하고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원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의 지식은 '몇 권만의 책을 우연한 기회에" 읽었을 따름이라고 한다. (168) 사실 인간이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은 책을 읽고 눈이 뒤집혀서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독재 하에서 눈을 뜬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리영희 선생의 '우상과 이성'이나 한완상 교수의 '민중과 지식인'에 노출되어 그리 된 것이 아니었다. 도도하게 흐르는 하부 문화의 저류가 인간을 눈뜨게 만드는 것이다. 한 권이 책이 인생을 바꿀 수는 어찌해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하부 문화에 자기가 노출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권의 책이 자기를 바꿨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 면에서 메노키오의 몇 권의 책은 심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국가의 수가 많듯이 어느 계율이 옳다고 할 수 없다.(177)는 상대주의적 항변은 16세기 '종교 개혁과 민중 문화의 변화'라는 하부 문화와 가톨릭 교회의 권위 사이에서 고뇌하는 당시의 민중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듯 하다. "그대는 어느 법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느냐고 묻는 자와 "어느 법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답하는 자의 싸움은 결국 어떤 형상으로 돌아갈는지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묻는 자는 답하는 자를 벌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결국 묻는 자는 답하는 자에게 이길 수 없다.

루나르도와의 대화(291)에서 메노키오는 수사가 되기를 원하는 루나르도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고 전한다. 그 이유는 "그건 동냥아치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미시사를 읽는 재미다.
개인의 삶을 유추해 가면, 거기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 담론이 가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시기가 오면, 온갖 개인들의 미시사가 담긴 '자서전 류'가 판을 치게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 미시사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아전인수'식의 오류를 지나치게 범해버리면, 독자를 기분나쁘게 만들거나 독자를 눈멀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만...

치즈에서 구더기가 만들어진 것과 마찬가지로...(193)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신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고 혼돈과 무질서하고 거대한 <물질>로부터 탄생하였다는 설명을 하는 메노키오의 입을 통해 이 미시사가가 보여주는 역사는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다.

'성스러운 권위'에 앞서는 '혼돈'과 '자연스럽게 생겨난 존재인 인간들'의 이야기는 신화에도 원용된 바 있는 소재로 "치즈와 구더기"라는 원형적 심상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시사를 통하여 당시 역사를 가진자의 것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시점 전환하는 아름다운 책으로 치즈와 구더기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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