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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평점 :
그렇게 그들은 만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상류층 여성이 집시와도 같은 극작가의 그 한 마디에 홀딱 넘어가 버린다.
그리고 둘은 먼 곳으로 달아나서 살지만, 상류층 여성과 기인 극작가의 삶은 힘들기만 하다.
시아버지의 등장으로 마리안네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묀켄은 늦어도 11월에는... 그때까지는 극을 무대에 올리고 데리러 오겠다고 한다.
늦어도... 늦어도... 묀켄은 늦지 않았다. 그러나...그들은 가장 행복한 상태로 대단원을 맞는다.
통속 소설같지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는 질문에 '사랑은 변하는 것'이란 실존의 문제를 읽어낸 이 소설에 사르트르가 칭찬을 보낸 것도 이해가 갈 일이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70%의 물과, 나머지의 C,H,O,N,S... 찌꺼기들...의 덩어리...
그렇지만, 존재의 이유는 그 실존이 수시로 퍼뜩거리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삶이, 특히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 사랑의 감정이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평화로운 상류층 부인의 삶을 포기하고 싶진 않겠지만, 그 생활을 해 본다면 까짓거 그것도 별로 나을 것도 없으리란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때 실존에 다가서는 묀켄의 목소리를 거부할 만큼 인간의 본질은 탄탄하지 않다.
존재의 가벼움을 노래한 조지훈의 풀잎 단장을 읊조린다.
마리안네가 이 시를 들었다면, 빙긋 웃으며 가벼이 고개 주억거릴지도 모를 일이며...
풀잎단장 /조지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 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