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임진왜란때, 선조는 의주까지 도바리를 쳤고, 병자호란때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꼭꼭 숨었다가 겨우 항복을 하고 기어나왔다. 이 정도 꼬락서니면 국민이란 무지렁이들이 임금이나 양반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겠는지... 하긴, 그 시대면 무식이 판을 치던 어둡던 시대니 그래도 임금님 알기를 하늘처럼 안 백성들도 많았으리라.

그러다가 연경의 유리창엘 갔던 실학자들의 눈은 얼마나 뒤집어 졌으랴.
쩍팔리게도 제 나라 양반이란 것들은 오로지 작은 이익에만 눈을 까뒤집고 꼬시래기 제살뜯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얼마나 구역질이 났겠는가 말이다.
졸나 작은 조선이란 나라에서 '소중화'를 외치며 '설욕을 위해 북벌'이란 허구를 고래고래 외치는 양반들의 꼬락서니가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근본없는' 서인들의 생각과 '양반 근본주의자'들의 생각은 극과 극을 달렸다.
지금에서야 일본의 영향을 받아 '실학' 운운하며 회자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200 여년 전쯤에는 5공 시절의 '폭도' 내지는 '불순 좌경 체제 전복 세력'으로 비쳤으리라. 자유당 정권이 바라보던 빨갱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던 않았으리라.

'열복 熱福'을 앞세운 세력들 앞에선 늘 진보가 죽는다.
'청복 淸福'은 이기려 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가지려 하지도 않고, 뭣 하나 내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모든 정치가가 썩었다면, '청복'을 이야기하는 정치가는 애초에 사기꾼인 셈인지도 모른다.
현실 공산주의가 망한 원인도 그런 것이 아닐는지...

문체 반정을 둘러싼 김탁환의 상상력은 추리소설로 자리잡을 만도 한데, 그의 문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리말을 살려 쓰려한 시도 자체를 나쁘다 볼 수는 없지만, 그의 문체는 고전 소설이나 역사 소설을 풀어내기에 조금 가볍고 둔감하단 느낌이 자꾸 들었다. 낱말의 뜻을 각주로 달아둔 것도 눈에 거슬렸다.

백탑파 서생들의 아름다운 정신 세계를 그리는 데 그닥 성공하고 있어보이지 않는 이 소설에서, 이명방이란 인물이 위기에 빠지고 극적으로 반전을 이루는 일이 다소 작위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공부가 좀더 진하게 녹아들어 있었더라면... 정말 세상을 바로 보는 사람들이 천대받는, 억울하고도 비극적인 당대 사회 현실을 더욱 적실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올바로 보는 사람들이 역시나 홀대당하는 현대와 더 여실한 관계가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열하'를 읽었기 때문에 조선의 문풍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열하'라도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힘이 살아 있었다...는 것이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인듯 싶은데... 그 시대 달빛 아래 백탑 옆에서 그 인물들과 두런거리며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지 못한 이 작품에 별 다섯을 주긴 아깝다. 그의 앞의 작품들을 읽지 않은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박지원을 높게 평가하는 글들은 반갑다. 그럼에도, 정말 박지원의 생각을 올곧게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요즘엔 세상이 정말 바뀌는 시기인 모양이다. 날마다 뉴스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황당한 꼬리를 물고 들어서고 있으니 말이다. 통일부를 외교부에 섞는다는 발상은 북한을 같은 민족이라기 보다 상대 국가로 보고, 통일에 대한 허상을 깬다는 속내가 드러난 것같고, 일본에게 사과하라는 말은 하고싶지 않다는 말도, 일본에게서 단기적으로 얻어낼 것이 있으면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정말 가벼운 발상이라 여겨진다.

박지원들이 박해받던 모습이 이백 여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살아날까 두렵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에서 만난 사람들 -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한겨레 21에 하종강이 실은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진짜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주역이 아니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 자기를 위해 맹목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이 사회의 모순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하종강이 적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많은 사람을 감옥에서 괴롭힌 '장기수 배출 최우수국'이다. 이 책에 실린 강용주 같은 분들은 '계속 온 몸으로 말해오고 있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민노총의 멋진 총각 한혁씨 이야기에서
돈이건 내 몸뚱이건, 능력이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모든 것은 이 더러운 자본가 세상을 뒤엎기 위한 투쟁에 쓰여야 할 소중한 혁명의 자산이며, 혁명이 내게 잠시 관리를 위탁한 것이다...는 말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도 있어 세상은 완전히 썩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단지 몇 명의 학생들에게 희망을 걸고, 계속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훌륭한 교사가 될 자신이 없더라고, 그렇게 참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계속 해야지. 그렇지만 나는 도저히 자신이 서질 않는거야. 이게 도대체 수업인가 싶은 생각만 들고... 자신이 없으면서도 적당히 수업을 하면 월급은 꼬박꼬박 받을 수 있지. 그렇지만 그것은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
이렇게 교단을 떠나서 버스 운전을 하는 이병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수업 듣기를 원하지 않는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는 것보다, 버스 기사는 최소한 사기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양심가. 그에 비하자면 나는 얼마나 양심불량인지...

80년대의 열악한 운동 상황과 연관지어 황정란씨의 일갈을 매섭다.
본인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좋은 뜻으로 들어왔던 젊은 실무자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옳은 게 아니라는...

이 다음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이 되어야지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모르지만, 꼭 해야하는 일...이라는 풀꽃 세상의 정상명의 이야기는 옳고, 또 옳다.

남들이 보면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은 결코 대단하지도 않고 투철한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들...을 하종강은 많이도 만난다. 풀무학교 정민철에서 나온 이야기.

간호사 김용금 이야기에서 "어느 시인이 그랬지요. 짐이 무거워 투정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짐때문에 자기가 바르게 중심을 잡으며 걷고 있더라고... 노동조합은 내 인생에 그런 의미"라는 이야기엔 뼈가 있다.

협박으로 정신병에 걸린 권기한씨가 그 고통을 이겨낸 단 한마디는 이 책의 모든 인터뷰의 골간을 꿴다.
"내가 하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 잘못을 뜯어 고치는 일이니까요.
동지들을 두고 떠나는 것, 그것이 나에겐 더욱 힘든 일이에요."

이 어두운 사회가 그나마 이만큼 환해 진 것은 이런 빛과 소금같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겉만 보고 썩은 내 진동한다고 코를 돌릴 것이 아니라, 내가 소금으로 녹아 들어야 할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는 용기를 내어야 함을 다시 읽는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8-01-1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미루고 또 미루는 책인데요.

글샘 2008-01-14 12:46   좋아요 0 | URL
부끄럽죠. 많이 부끄럽죠.
그래서 매일 성경 읽듯 뭔가 읽어얄 것 같네요.

순오기 2008-01-1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놓고 펼치지 못하는 책이에요.
글샘님 말씀처럼 읽어야 할 것 같군요. 섬김이 뭔지 제대로 배우려면... 감사합니다!
 
수런거리는 뒤란 창비시선 196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이란 접두사는 사랑스럽다.
첫사랑, 첫걸음마, 첫만남, 첫출근...

문태준을 알게 되고 그의 시집을 거꾸로 읽어 올라간 모양이다.

그것도 모른 채, 이 시집이 언제 나온 것인지도 생각해 보지 않고 읽은 나는, 이 시집이 '가자미'에 비해 물기없는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관념적이고 사물에서 인생을 얽어내려한 작위가 너무 보였기 때문이랄까.
그의 가자미에서 훨씬 물오른 언어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시집들을 출간일 순으로 검색해 보고서야, 휴 =3=3 안도의 낮은 숨을 내쉬었다.

첫번째는 기억에 남지만, 왠지 그 때는 낯설고 익숙하지 못한 추억도 동반하는 것이니까, 문태준도 지금은 그렇지 않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콩 2008-01-1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자미> 읽고 너무 아팠어요. 저랑 동갑이라는데 이런 시를 쓰다니.. 시인은 타고날까요?

글샘 2008-01-15 13:53   좋아요 0 | URL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전에는 이런 말들이, 늙은 사람이 힘내려고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요. 요즘 생각해 보니, 나이 든다고 다 철드는 건 아니란 말인 듯... ㅠㅜ
 
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철학자 김상봉과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만남이 이뤄졌다.

김상봉은 서로 주체성이란 개념을 이야기한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주체적인 존재이면서 영향을 미치는 사회를 바라는 뜻인 듯 하다.

서경식은 일본 내의 타자이면서, 한국내에서도 '우리'에 들지 못한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 나라'는 왜 지금 여기에 와 있는가...
한국 내의 수많은 '그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한국의 '우리'는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가...

질문과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되지만,
김상봉의 5.18 이야기는 심정적으로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한계를 노정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과연 한국 사회가 5월과 6월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언론이 툭하면 '폭력'으로 몰아붙이는 그 '정신'이 다시 분출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고통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함석헌의 '뜻'과 '씨알'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뜻'은 의미 meaning 에 부가적으로 의지 will의 의미가 들어있다.
씨알은 민중에 비하여 훨씬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단어다. 민중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모자란 존재처럼 보이는 반면, 씨알은 가능성의 총합이고 힘을 내정한 존재로 읽혔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변혁을 주도하던 사람들은 이미 가진자의 편에 서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국가보안법 철폐나 탄핵 반대, 파병 반대, FTA 반대 등에 힘을 모을 수 있던 사람들의 세력이 너무도 미약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두렵기도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생각 많은 사람들'의 뜻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서 다시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김상봉이 말미에서 이야기한 '고통에 대한 경악과 절망에서 시작하는 철학'만이 인간의 편에서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이런 철학적 대담을 나누기에 서경식 일가만한 슬픔을 가진 이들도 드물지 않을까. 디아스포라로서 '한국'이란 국적을 가지고 '일본땅'에 살면서 '한국 학교'에서 간첩으로 잡혀 20년 가까운 기간을 형제가 감옥살이를 한 그런 지겨운 일가의 비극을...

서준식 씨가 유럽으로 훌쩍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내심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가끔 홍세화씨의 강연 모습을 보면, 그도 빠리의 택시 운전사 시절을 그리는 꿈을 꾸지 않을까...하는 몽상도 해 본적이 있다.

서경식 씨의 고통에 대한 천착이 김상봉과 어울려 한국 사회의 지금을 읽어주는 대담은 <가슴 답답한 한국인>들이 반드시 어울려 들어야 할 이야기다.

가슴 답답함에서 온 슬픔은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그 슬픔은 낯을 찡그리고 피부를 상하게 하지만, 그 고통에 대한 인식에서 김상봉이 이야기하는 <서로 주체성>을 회복하게 할 것임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세상이 하루하루 밝아오는데,
학벌사회, 자본신권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일은 무섭기만 한데,
섬진강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 덩치 큰 서경식 선생님과 깐깐한 몸매의 김상봉 선생님의 따로 또 같이 걷는 걸음이 '우리' 안에 있음에 낮게 한숨을 쉰다.

섬진강가 그 찻집에, 나도 가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08-01-1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너무 밝은 면만 보시네요.글샘님답게..신자유주의도 어둡고 학벌사회도 어두운데 우문인가요?

만약 '타자'가 지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옥만은 아니겠지만..)만약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을숙도 하구언처럼 이미 '나'와 '타자'가 도대체 구분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의 주인공들처럼..
재미있는것은 이미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또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만나는 제목이네요.

글샘 2008-01-12 19:24   좋아요 0 | URL
현답을 듣기 어려운 시대이니 우문일 밖에요... ㅠㅜ
서경식 선생님을 모신 이유가 바로 그 '우리'아닌 '우리', 한국인 아닌 한국인의 경계선을 철학적으로 논해보려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밝은 걸 봤나요? 요즘 밝은 게 도통 안 보이는데...
 
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뜬한 잠.

어느날 문득, 주문하지 않은 책이 도착하여 들뜬 마음으로 열어본 책.
고마운 이의 선물이었다.

박성우는 거미에서 이미 나이에 비하면 걸쭉한 관조를 느끼게해준 작가였다.

가뜬한 잠... 이란 시 제목을 보면서 상상한다.

91년 현충일.
여든이 훌쩍 넘으셨던 할머니의 부음을 듣던 날.
아침 나절에 과수원에서 떨어진 과일도 몇 개 주워 오셨다던데,
점심 주무시고, 빨래도 가지런히 개켜 두시고는,
주무시듯 영면하셨다고 했다.
할머니 운구를 가리운 작은 방 병풍 위에 제법 큰 나비 한 마리 만 하루 반을 지키고 있더라.

'가뜬한'에서 가벼우면서도 거뜬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한잠 자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힘을 거뜬하게 되찾을 수 있는 단잠.

두번 째 시집에서 두런거리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 동네 담뱃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거나,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던 투의 주절거림과 조금 퇴색한 사진의 추억들이 가득 담겨있다.

그 사진들에 담긴 피사체들은 찡그렸거나 한편 구질구질하기도 하지만,
그 오랜 시간 저편에서...
역설적으로 가난과 함께 있던 '다사롭던 기억들'을 그는 잊지 않고 감광해낸다.

암실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인화지의 피사체처럼,
가만히 생각하면 한 잠 자고 일어나던 가뜬하던 꿈결같은 시간이 떠오르는데,
다 읽고난 이제는
그 모두가 사라져버린 백일몽이 아닌가 싶은 헛헛함을 끝내 이길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