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달래는 순서 창비시선 296
김경미 지음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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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매가 시원스런 이 아줌씨 눈가엔, 살풋 나잇살 넘어선 '기운'이 느껴진다.
김형경을 사진으로 만났을 때와 같다. 그게 뭔지... 나는 모른다. 

토란잎이나, 연잎은 종이 한장 차이란다.
갈매기나 기러기도 거기서 거기란다.
포도잼과 요오드팅크도 섞어도 그만이고,
머리 자르는 거나 쑥부쟁이 꽃 하나 꺽는 거나,
바다나, 강이나, 기차나... 이렇게 흐르던 생각이,
마지막에서 두번째 연,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견딘다
 (고통을 달래는 순서... 17쪽, 부분)

아, 이렇게 끝난다.  

이 책을 사면서... 고통을 달래는 순서를 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넌센스 퀴즈를 들으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사춘기 소녀처럼,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내 마음 한켠에 어둑하니 들앉은 그것이 고통이란 이름인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횡설수설...하더니... 견딘다...로 끝나는 시라고는... 하~~~ 입김 난다. 
그래.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냉면 사발의 달걀을 면보다 먼저 먹냐 마냐는 먹는 사람 지맘이다. 달걀 싫음 안먹음 그만이고. 

군부대 구내 식당에서 만난 군인들을 보고,
야채색 전쟁옷의 머리 짧은 남자들을 구경한다
창밖 라일락꽃잎처럼 그들도 다 합해 한사람같다
 (98, 종군기, 부분)

아, 군인 아닌 사람이 군인을 보면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래, 라일락꽃잎이나 수국꽃잎보면, 그들이 다 합해져 하나처럼 보이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반은 밉고 그렇지... 

해지는 저녁이면 한쪽 어깨에서
크고 작은 못들이 가만히 빠져나간다
액자처럼 몸 기울어 물받이통 내려가는 물처럼
버려지는 것들 

언제나 조금씩 기운 것들이 나를 지킨다(조금씩 이상한 일들 3, 부분) 

허전한 마음을,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버린 내 가슴에 건배라도 하고 싶은 그 시각.
술시(저녁 7-9시)가 되면 왜 남자들이 술집으로 몰려드는지... 왜 물받이통 내려가는 물처럼 쿨컥쿨컥 맥줏잔을 들어대는 것인지를... 조금은 이상하지만, 이해할 줄 아는 시각이 아닐까. 

생각도 늦고 시계도 늦었다 강의하러 뛰듯 걸으며 '시창작가는길' 답장한다는 게 낡은 휴대폰 자음 하나 덩달아 뒤로 늦춰지면서 '시창자까는길'...로(조금씩 이상한 일들 2, 부분) 

그런 날이 있다. 마음만 바쁜데, 시간은 많은 것 같으면서 계속 어딘가 늦게 도착하는데,
꿈만 같이 나는 바쁜데, 세상은 굼실~~ 느릿,
다가왔다 스쳐지나가버리는 그런 날이...
대학 때 친구 수정이가 이딴 생각들을 맨날 메모하곤 했는데...
시창작이나 시창자까는 길이나... 헛헛한 웃음뒤로 입맛이 쓰다.
쓴맛은 왜 목구멍 앞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거냐고... 

새 도마를 샀다. 토끼무늬들이 피크닉을 가고 있다
도마일 뿐이지만 내 음식 밑에서 언제고
그들의 신발과 피크닉 가방이 나뒹군다
라일락 무늬 나무받침에 뜨거운 냄비 얹다가
라일락꽃 비명에 냄비를 놓친 적도 있다
문 열린 것들과 닫힌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자운영꽃잎의 물방울들 나에게 더 잘 전해지듯이
나 그대에게 더 잘 전해지지 않듯이
(화상, 전문) 

아, 섬세하다 섬세하다 해도, 이렇게 섬세한 마음이라니... 어찌 상처받지 않고 살랴.
자운영 꽃잎이나 라일락꽃처럼 작고 섬세한 것들이 그미에겐 더 잘 전해지고,
또, 그의 마음은 세상에 잘 전해지지 않은 마음이라니...
라일락 무늬 받침에 냄비가 비명을 지르고 화상을 입는... 그 마음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아린 것이 마음이 입는 화상이라니... 

비천과 험담 그치지 않는 입을 만났다
찻집 화장실에 가서 입을 몇번이고 헹궜다
다 헹구고 거울 속 입안을 들여다보니 혀가 두개였다
(무언가를 듣는 밤, 부분) 

아, 다른 이의 험담을 듣고도 귀를 씻지 않고 입을 헹구다니,
온 몸의 세포가 여리고도 여리구나. 그 여린 세포로 세상을 '견딘다'니...
읽는 내 혀가 다 아리다.
혹시, 내 혀는 몇 개냐? ㅠㅜ 

누군가가 머리에 박은
10센티짜리 대못을 꽂은 채 떠도는
고양이 뉴스... 

나는 확실히
사람과 잘 안 맞아 어떻게 사람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죽은 척하는 순간
고양이가 내 두 손을 지목한다
(그날의 배경, 부분) 

나도 어디선가 저 프로그램 본 일 있다. 어느 무지막지한 넘이 못박는 총으로 고양이를 쏘았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그는 종일 앓았던 모양이다. 내 맘이 다 아리다. 

관상에서 제일 나쁜 건 불위에 올려진 물 없는 
주전자 형상이라지 않는가
바닥 확인하고 싶으면 가끔 울어보라 한다
(인간론, 부분) 

아, 눈물 마른 사람은 불위의 물없는 주전자인가.
64개의 '괘' 중에 가장 나쁜 것이 바로 물과 불이 가야할 곳으로 가지 못하는 '미제'다.
미제는 '건널 수 없음'이고 '미치지 못함'이다.
해결할 수 없음이고 답이 없음이다. 오로지 문제만 가득한 것이 미제의 괘다.
수승화강이 길한 원리다.
하늘이 아래 있고, 땅이 위에 있어서 땅은 내려오려 하고, 하늘은 오르려 하는 것이 세상의 원리란다.
그런데, 머리 꼭대기는 물로 활활 타는데, 발밑은 냉랭한 찬바닥이다.
그러면, 온기가 돌지 않는다. 심장은 뜨거워서 고혈압으로 뒷골은 땡기고,
차가운 물은 절대 위로 오르지 못한다.
서로 설렁설렁 엉성하게 통하는 것을 소통이라 했거늘...
수승 화강... 차가운 물기운이 머리로 올라야, 이성은 차갑게... 된다.
화...를 내면 머리가 불이 난다.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아래로,... 그래서 손발이 따뜻한 이가 길한 것이다. 

재수없게도 '물없는 불위의 주전자'를 떠올리면서 어떤 넘 생각을 했다. 욕이 나왔다.
그넘 인상이 딱 그렇다. 주는 것 없이 미운 넘. 

의사의 처방은 항상 속을 따뜻이 하라는 것이다 

전기담요를 먹을까요/ 달걀 비린내 나는 뜨건 백열들이라도 먹을까요/ 장미무늬 양초와 끓어넘치는 주전자를 함께 먹거나/ 홧홧한 박하나 겨자를 얹으면 좀더 빠를까요/ 손 닿지 않는 그 안을 어찌 뜨겁게 달굴까요 

차라리 개미를 믿지. 개미 지나간 길의 온기를 믿지/ 사람이건 꽃이건 비단견직물처럼 매끄러워/ 미덥지 않았다 

책상이나 서랍만이 더러 눈물보여주었다. 

저녁 불빛들로 들판의 겨울 한낮들 덥혀질 때마다 

실은 얼마나 따뜻하고 싶었는지
끝내 말할 수 없었다
(해명, 전문) 

그는 속이 시리다. 그래서 속이 타고, 상한다.
실은 얼마나 따뜻하고 싶었는지... 아,
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이란... 

그의 이유모를 슬픔들을 읽다가, 고개도 주억이다가 만난, 마지막 산문 한 편은...
그의 전 시집 제목 같다.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그의 슬픔은 왠지 금세 조각날 것같은 사금파리같다.
그래서 김형경이 같이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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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05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집 막 사고 싶어졌어요.^^

글샘 2009-01-07 15:49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순오기님 서재의 도적인 듯...^^

2009-01-05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9-01-07 15:49   좋아요 0 | URL
님, 한강을 좋아하시는군여. ㅎㅎ
시작이 좋게 제가 다리를 놔 드려 저도 좋네요.
복받는 한 해!
 
그래도 계속 가라
조셉 M.마셜 지음, 유향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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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술격 조사, 라는 퐝돵한 '품사'가 한국에 있다.
미친 짓거리다.
어떤 미친 개가 힘이 아주 세었다. 그래서 그 개는 '야옹'하고 짖었다.
그 다음부텀은... 그 동네 개는 어떻게 짖었을까?
한국이란 나라는... 그 나라 똥개들은 '야옹'하고 짖을 줄 아는 카멜레온 유전자를 안고 있다. 

영어에는 수만 개의 '일반 동사'와 "Be"동사가 있다. 
독일어에도 수만 개의 "일반 동사'와 "Sein" 동사가 있다. 
일본어에도 동사 외에, 조동사로 '데스'를 상정한다. 
중국어의 '是'는 널리 쓰이는 동사다.
스페인어를 뒤적거렸더니, 거기도 'Ser'동사라고 특별한 취급을 해 줬다. 

라틴어에서 발전한 불어, 독어, 영어권에서는 당연히 <비 동사>라고 불리우는 그 넘을,
어떤 넘이... '조사'라고 불렀다.
아직도,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서술격 조사'라고 배워가지고 온다. 

' 이/가, 를, 에, 에서, 만, 도, 조차...'
이런 넘들이 '조사'다. 

'이다, 이고, 이지 이면, 일수록, 일락말락, 일똥말똥...'
이렇게 끝도없이 활용하는 그넘을 어느 미친 넘이 앞에 적은 '조사'와 같은 넘인데,
변태같이 '활용한다'고 말했는가.  

어렸을 때, 난 생로병사가 네 가지 고통이란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역시 어렸던 거다. 늙고 병들고 죽는 건 불쌍한 일이다. 그럼, <생>은????????? 

태어나는 건 축복받은 일이라매? 그래서 생일날 잔치도 하잖여? 이랬다. 

사는 게 정말 고통스럽던 적이 있었다.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다.
공개된 비밀이던 <과외>자리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명문대'를 다니고 있었지만,
그때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매일 터지는 최루탄과 위장취업 또는 공활이란 막막한 미래와, 이 땅의 비겁한 역사는 치욕스런 하루하루를 내게 떠안길 뿐이었다. 그렇게 세상 모든 고민을 혼자 안고 허탈하게 살았다.
그러다 87년을 맞았고, 졸업을 하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을근들근 싸우면서 20년을 살았다. 

아, 이젠 알겠다. 왜 사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인 것인지...
이 책의 제목이 왜 The art of Perseverence인지... 인내의 기술... Keep going...은 앞만보고 가라...인데, 거기 <그래도>가 붙은 이유를... 

세상은 뻔히 '동사'인 것도 '조사'로 만들 수 있는 모순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질곡의 역사가 인류라는 종족 옆에 찰싹 붙어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라는 입에 발린 말을 씨불르는 인종들은,
언제나 폭탄을 터트리며, 어린 아이들과 민간인을 잡아 댄다.
아마도... 평화의 적은 어린 아이들인 모양이다. 예수님이 착각하고 계셨던 겨... 아매도... 

인디언 할아버지의 조용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책은... 참 좋다.
인생은 오르막길이고,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으며,
힘들기만 한 것이라는 걸 할아버지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들려 주신다. 

헛되고 헛된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것들을 얼마나 많이 가졌고, 또 가질 수 있는가를 놓고 자신과 남들을 비교하면서 불행의 나락에 빠진다. 가장 많이 가져야 가장 훌륭하다는 생각으로...(77) 

그래... 부처님이 말한, "집착"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이 말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많이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8-10살때...ㅠㅜ)
많이 가지지 못한 나 자신을 너무 싫어했다.(만화를 많이 본 탓이리라.) 
어린 아이가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고? 난 낯선 사투리를 쓰는 다섯 살 배기 악동들하고 정말 '친구'를 먹을 수 없었다. 머라캐쌓노... 하는 아이들 앞에서 충청도 말을 쓰는 얼굴 하얀 아이는... 그냥 만화방 안에서 종일 그림 감상이나 해 대야했다. 난 나이는 어렸지만, 이미 노인이었던 모양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푸념이 있다. 아마도, 이 말도 하나의 진리일 것이다.
나는 '킵, 고잉...'을 읽으면서,
죽지 못해 산다... 는 바삭거리는 노인의 거센 숨결을 느낀다.
마침 책 표지에도 회색 톤의 옅은 사막이 서걱거리며 펼쳐져있다. 

이 책은 다 좋은데, 단 하나... 단단한 표지로 만든 것과 종이 질이 너무 두꺼운 것이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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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05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고 올라도 힘들다구요? 그렇긴 하죠. 근데도 사람이란게 이렇게 생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건 무엇때문일까요? 그럼에도 계속 가라고 하는 건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요?
 

무섭고, 징그럽다. 

생각대로 하면, 

되는~ 뭐든 다 되는... 이 더러운 나라가... 

 

미국의 버스 흑백좌석 분리에 대한 투쟁사

"1955년 12월 1일, 어느 추운 겨울 오후, 로자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이 앨라배마 주도 몽고메리의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마흔 두 살의 재봉사였던 이 여성은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만원 버스에 올라타, 중간께 통로쪽 좌석에 앉았다. 근처에는 다른 흑인 승객 세 명이 자리 잡고 있었고, 바로 앞줄까지는 시의 인종분리 법규에 따라 백인 전용으로 지정된 좌석들이었다. 이 백인 전용칸의 빈자리들은 순식간에 들어찼고 어느 정류장에서 한 백인 남자가 올라탔을 때는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버스 운전사는 고개를 돌려 이 여성과 그 곁에 앉은 세 흑인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강요에 가까운 명령조였다. 그러자 다른 흑인 셋은 순순히 일어나 좌석을 비우고 버스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섰다. 그러나 이 여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운전사가 백인 승객한테 자리를 내주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이 여성은 '노'라고 대답했다. 그 '노'라는 한마디에 이 여성은 체포됐다." (마틴 루터킹, 마셜 프래디)

공판은 12월 5일 월요일, 이 날을 기점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다른 동료 민권 운동가들은 버스 보이콧 운동에 나서기로 결의 한다.

"버스보이콧 운동이 있기 전에는 버스운전사들이 흑인들을 '검둥이' '검은 원숭이' '검은 젖소'라고 부르는 일도 많았다. 흑인 승객들은 앞문으로 타서 차비를 내고 나면 다시 내려서 뒷문으로 가서 버스에 타야 하는데, 차비를 내고 나서 뒷문으로 올라타기 전에 버스가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일은 빈 좌석이 있는데도 흑인이기에 서서 가야 하는 경우였다." (마틴 루터 킹 자서전)

"카풀 작전에서는 무려 2백명이 넘는 손수 운전자들이 자원해 하루 약 2만번 꼴로 봉사 운행하는 실적을 기록한다. 45군데의 차량 대기소와 42군데의 합승 정류소 목록이 흑인 사회에 배포됐다." (마틴 루터 킹 자서전)

월요일 아침, 킹 목사와 아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는 앞으로 전개될 역사적 사건의 첫장을 놓치지 않고 지켜볼 준비를 갖췄다. 마침 집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킹 목사는 창문에 서서 항의 운동의 시작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서막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30분이 지루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내가 '여보, 여보 빨리 와 보세요'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커피 잔을 내려놓고 창문으로 다가 서자, 아내가 기쁜 표정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버스를 가리켰다. '여보, 버스가 비어 있어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우리집을 지나가는 사우스 잭슨 노선은 몽고메리 내에서 흑인 승객이 가장 많은 노선이었고, 그 중에서도 첫차는 언제나 만원 이었다." (마틴 루터 킹 자서전)

오전 9시 30분, 즉결 재판소에서 재판이 열렸다. 흑백 분리에 관한 시 조례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시 재판이 시작됐다. 유죄였다. 벌금 10달러와 재판 비용을 합쳐서 총 12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파크스 부인은 항소를 재기했다. 이 사건은 흑백분리 법률을 위반한 죄로 흑인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날 밤, 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우리는 결단코 이곳 몽고메리에서 일하고 싸울 것입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는 날까지!" 킹 목사의 연설이었다.

시민들의 결의문 두 번째 항목은 이랬다. "(2) 승객들은 버스에 승차한 순서대로 안되, 흑인 승객들은 버스 뒤쪽에서부터 앞쪽으로 차례대로 앉고, 백인 승객들은 버스 앞쪽에서부터 뒤쪽으로 차례대로 앉는다." (마틴 루터 킹 자서전)

1955년 12월 5일은 그렇게 저물었다. 1956년 1월 26일 시 당국은 강경책으로 선회하면서 킹 목사를 교통법규 위반으로 구금한다. 2월 21일에는 몽고메리 대배심이 킹 목사 등 민권 운동 지도자들을 승차거부 금지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죄로 기소한다. 보이콧 운동에 대한 보복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굴욕적인 태도로 버스를 타느니 존엄을 지키며 걸어 다니는 것이 훨씬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영혼을 혹사하느니, 다리를 혹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우리는 몽고메리 시내를 걸어 다니기로 결정했습니다. 쇠약해진 불의의 벽은 밀려드는 정의의 망치에 두들겨 맞아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자서전)

3월 22일, 법원은 킹 목사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나는 웃으면서 법정을 나섰다. 나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내 죄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나의 죄는 사람들을 불의에 항거하는 비폭력적인 운동에 참여시킨 죄이며, 사람들에게 자기 존중과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주입시킨 죄이며, 사람들이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생명권, 자유권, 그리고 행복 추구권을 누리게 되길 갈망한 죄였다."(마틴 루터 킹 자서전)

승차거부 운동이 천신만고 끝에 놀랍게도 1년을 채울 즈음이었다. 몽고메리 시 당국은 마지막 숨통을 짓누르는 통렬한 일격을 날렸다. 카풀 사업이 시 운송 사업 법규상 무인가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주 법원에 카풀에 대한 금지 명령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1956년 12월 13일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아이러니컬한 날이었다. 바로 이 날, 몽고메리 법원은 카풀 금지를 결정했다. 하지만 미 연방 대법원은 버스 내 흑백분리를 결정한 앨라배마주 조례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1956년 12월 20일 마침내 버스 내 인종분리를 금지하는 명령이 몽고메리에 내려졌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이 킹 목사 집에 몰려들었다.

"우리가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자 카메라 촬영이 시작됐고, 기자들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이윽고 버스가 다가와서 문이 열렸다. 내가 버스에 올라서자 버스 운전사가 상냥한 미소를 띄며 인사했다. 내가 요금함에 요금을 넣자 운전사가 말했다.
'킹 목사시죠?'
'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당신을 태우게 되다니 무척 기쁩니다.'
나는 운전사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웃음 띈 얼굴로 좌석에 앉았다."
(마틴 루터 킹 자서전)

정규직과 비정규직 분단국이 된 우리나라

2008년 12월 18일 부산의 한 중견 조선업체는 "정규직 직원의 좌석 위치는 1~23번, 협력업체 직원은 24~45번"이라는 내용의 통근버스 좌석지정제 시행 안내문을 공지했다. 직원들의 통근버스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리로 분리해 운행하겠다는 것이다.

당초 이 회사의 통근버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먼저 탄 사람이 순서대로 앉았다. 그러나 정규직 직원들이 불만을 제기하면서 사측과 정규직 노조가 노사 협의를 통해 정규직 직원에게 앞자리를 배정하는 좌석 분리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오늘(3일) 아침 이 소식이 실린 경향신문 1면 기사를 보고 한동안 멍했다. 초등학교 2학년 딸 아이가 읽고 있던 로자 파크스의 위인전이 생각났다.

"로자 파크스 위인전 좀 찾아 줄래?"
"아빠 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설명을 해주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서로 한동안 말문을 닫고 있었다.

좌석 구분이 합헌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수치스런 미 연방대법원 판결로 기록되는 플레시 (plessy v. Ferguson 1896) 사건에서 할란 (John Marshall Harlan) 판사가 8대 1로 소수의견을 냈다.

"우리 헌법은 색맹(color-blind)이며, 시민들 사이에 계급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정하지도 않는다." (미국법의 역사, 로렌스 M. 프리드만)

우리는 분단국이다. 남북 분단뿐 아니라, 영호남 분단국이고, 빈부 분단국이다. 여기에다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단과 차별마저 인정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최재천 법무법인한강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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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1-0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아고라 펌글~

바람돌이 2009-01-05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조가 노사협의를 통해... 아 정말 이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제대로 나서지 않는건 알지만 설마 이런 일까지라뇨. 혹시 이 노조 회사측에서 만든 어용노조일까요? 그런데 이런 좌석 배정을 그 회사 직원들이 허용한단 말입니까? 이건 쥐박이가 벌이는 일보다도 더 우리의 앞을 어둡고 막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순오기 2009-01-05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미치겄다~ 정말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다니...
미국의 승차거부운동이 아이들 그림책으로도 나왔는데 '사라 버스를 타다'
 
빌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 - 케냐에서 발견한 아프리카의 맨얼굴, 그리고 몹쓸 웃음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김소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나를 부르는 숲의 유쾌한 작가 빌 브라이슨이 이번엔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케냐에 간 빌은 죽음과 농담 사이를 절묘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땀을 흘린다. 

2002년 9월 말에서 10월 초까지 그의 아프리카 기행의 고갱이에 선 것은 '사람'이었다. 

그 척박한 땅에도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움을 그는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나이지리아, 파라과이, 마다가스카르, 앙골라에 이어 6번째로 부패한 케나에서 사라지는 공공자금이 1년에 100억 달러에 이른단다. 음, 좀 심하긴 하지만... 여기도 전 대머리와 노 가리같은 넘은 뭐, 비슷한 넘들이었쥐.  

그냥 우물을 만들어 줬더니 관리가 안 되던 마을에, 관리를 시켰더니...
효과가 있었다.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건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건 '자립'하는 것.(109)
그게 인간의 본성이에요.
맞아요. 그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죠. 

아, 참 슬픈 이야기다.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자립을 이야기하는 일은...  

고고학자가 되고 싶지만, 등록금이 없어 꿈도 못꾸는 젊은이와,
불모지를 농토로 가꾸는 농부...  

'케어'라는 단체가 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인데...
이런 사회적 기업가들의 활동이야말로 지구의 꿈이라고나 할까? 

아, 그럼 뭐하냐... 수천 년 걸려 세워 놓은 문명도,
하루 아침의 폭격에 피투성이가 되고 흙먼지에 날리게 된 것 또한 인간의 하는 짓이거늘...
미국의 검은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폭격에 묵묵부답인 것은 한통속임을 웅변하는 것 아니랴. 

109쪽의 '증발양'은 '증발량'으로 고쳐야 옳다.
'양'은 맨 앞에 쓰일 때나 쓰이는 것이다. 다른 단어의 뒤에서는 무조건 '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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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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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살라가 인도의 여러 가지 복합 향신료라고 한다. 우리말의 짬뽕 비슷한 것인데 인도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의 용어라고 한다. 인도에서 2년 너머 살아본 이가 그렇다니 믿어 준다. 

인디아에 대한 책은 두 종류다.
하나는 류시화 류의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이옥순 류의 객관적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인디아는 모든 이가 철학을 하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한 류시화의 책을 믿고 인디아에 가서 털린 이들도 많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인디아에 살아본 사람들 말로는 사람들이 순박하고 믿을만 하기도 하단다.  

이 책은 객관적 시선으로 레포트를 작성하듯이 다양한 분야를 적은 책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겠다.
이옥순의 책보다 더욱 객관적이다.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이옥순의 책 제목에서 보듯, 인도에 대해 착각하지 마라~하는 시선보다는, 인디아는 그야말로 복합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제목이 '맛살라'인 듯 하다. 

11억 이상의 인구가 사는 나라.
그리고 정말 오랜 문명 발상지로서 다양한 종교적 배경이 얽히고 설킨 나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복잡한 정치에 얽혀 아직도 카슈미르 분쟁과 테러가 이어지고 있는 나라.
그렇지만, 19의단을 외우는 수학 선진국이자, 대단한 경쟁력을 가진 인도공과대학을 가진 나라.
IT 산업의 필두를 달린다는 나라이며, 6명이나 노벨상을 타게한 나라...  

이 책에서 가장 멋진 장면은... '가방 두 개만 들고 떠난 대통령' 이다. 칼람 대통령... 아, 이런 분이 있었기에 인디아는 아직도 민주주의 국가로 생생한 미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핵을 갖춘 대통령. 그러면서도,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받은 펜 2개의 선물도 돌려준 사람.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마음 속에 있는 신성한 빛이 사라진다는 생각을 들려주는 위대한 사람.
그의 자서전 <불의 날개>를 기회가 되면 읽어 보고 싶다.
박정희가 그만두면 놀려고 지은 대구 인근의 대학교와, 정(희)-(영)수 장학회를 둘러싼 어마무지한 재산으로 아직도 아무 것도 없이 실세를 잡고있는 모 공주와 비교한다면... 이 나라야말로 민주주의의 바닥이다. ㅠㅜ 

한국 기업이 인도에서 설치는 것은 돈벌자고 하는 짓이고, 중국의 인건비가 비싸서 일어난 일이니 별로 뉴스거리도 아니다. 

308쪽부터 실린 한국 전쟁의 '반공포로 제3국 송환'이라는 기록에 대한 내용은 다른 책에서 읽어보기 힘든 것이어서 흥미롭다. 그러나... 이승만은... 중립국임을 내세워 소련에 우호적인 노선을 걷는 인도의 네루 수상이 공산당보다 더 나쁘다...는 멍청한 이야기는 헐~소리가 절로 나게 한다. 남한에서 인민군 포로에 대하여 송환조치를 하지 않고 남한에 풀어줘버린 이야기가 쏘옥 빠진 것은 역사를 비틀어 보이게 할 수도 있어 좀 아쉽다.
특히 그 88인 중 한 명인 현동화 옹 이야기를 하면서, <소모적 친일 논쟁에 대해 이제는 그만> 하는 말을 하고 싶다는 말을 옮긴다. 소모적 친일 논쟁이라니... 음, 일본의 군국주의가 얼마나 철저하게 진행중인지... 새로 바뀌는 일본의 교육과정에는 곳곳에 '국가'와 '국기'에 대한 강조가 넘쳐나는 현실인데... 이놈의 나라는 자기나라 역사 교과서 조차도 시궁창으로 끌고들어가는 판국이니... 참, 한숨만 폴폴 날 뿐이다. 

대장금 같은 한류 문화(이제 한류도 점차 숨이 죽고 있지만)에 대한 자부심,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에 대한 자랑, 한국 공연의 자랑에 대한 것들은 내가 외국에 있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외국에 가면 고향 까마귀도 반가운 것이라 하니, 객관성을 잃을 수도 있겠어서 하는 소리임.) 내 생각에는 부채춤과 북춤 같은 것이 과연 우리 문화라고 할 수 있나???하는 생각을 한다.  

가수라는 아이들이 나와서 흑인 그룹처럼 오, 예, 체키럽.... 하고 있는 판국에 부채춤은 웬 전통??? 

자, 이 책은 서평단 도서로 받은 것이니, 설문 몇 가지... 

이 책을 권하고 싶은 대상은 : 인도에 여행을 가거나, 인도 레포트를 쓰실 분...
인도 문학을 공부하거나 종교를 연구해 보실 분, 요약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보라고 권하는 책 : 이옥순 교수의 인도 이야기들...(책이 많음),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등(류시화 글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지만, 별로 객관적이던 않음.)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
미국 MIT 교수가 인도 지원자에게 묻는다.
"인도에도 유명한 공대 IIT가 있는데 왜 여기로 왔냐?"
인도 학생의 명답,
"IIT에 떨어져서..." 

하긴, 서울대학교 떨어지고도 아이비리그 대학에 잘도 들어가지만...
서울대학교의 삽질이란... 교수들이 연구 안 하고, 아이들 제대로 공부 시키지 않고,
아이들은 고시 열심히 하고, 알바 열심히 하는 어두운 학교...
서울 공대는 서울대에서 제일 점수 낮은 학교... ㅠㅜ
IIT가 공대임을 생각하면, 서울대 신드롬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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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9-01-01 13:16   좋아요 0 | URL
인도는 그 신화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