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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평점 :
편지를 쓴다는 일은... 휴대 전화라는 편리한 이기에 묻혀 이젠 잊혀져버린 일이 되어버렸지만... 글자가 생긴 수천 년 전부터, 현대까지 ... 서로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며 정을 나눌 수 있던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널찍하게 펼쳐진 편지지를 책상앞에 놓고는... 우선 한숨을 한 번 몰아 쉬고...
머릿 속에 든 것들을 속살거리고 풀어 내노라면, 상대방에 대한 정이 새록새록 새삼 솟구치는 법이다.
퇴계 1501-1570 고봉1527-72
스무 살이 넘게 차이가 나는 이 두 사람이 조선 초기의 성리학의 기틀을 닦는 데 큰 공을 세운다. 그 성리학은 아직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큰 틀이 되어 사고를 넓히기도 하고 제한하기도 하는 일이다. 서로 묻고 답하며 의문을 풀어가는 글들은 아름답다.
조선은 성리학적 세계관을 세뇌시키는 데 그만큼 큰 공력을 들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기도 했다. (아, 한 세계관을 퍼뜨리기 위해서 문자까지도 창제한 조선이여!) 그리하여 유교적 가치관이 가득 담긴 소학을 언해하고, 삼강행실도를 그림까지 넣어서 출간했으며, 두보의 우국충정이 담긴 시들의 언해사업까지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러나... 성리학적 세계관이란 관념론으로 무장하고 서구 문명의 벼락을 막아내려던 조선 후기의 흥선대원군의 바가지는 단박에 깨져버리고 마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책의 편지글들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부러웠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면서도 '지음'인 듯,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황은 정도전 실패의 유교 이상주의 이후 조선 성리학의 정통으로 인정하며, 중국 근대 사상사 양계초는 공자급의 이부자로 부를 정도였다. 정도전은 세조가 다섯 번 찾았으나 절개를 버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의 편지글들에서 두고두고 읽고픈 부분들을 베껴 둔다.
44 이치에 정밀하지 못하고 의지가 굳지 못하면 스스로의 결정이 마땅함을 잃게 됨을 면하기 어렵다.
45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고,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48 매번 사색하다가 의심이 생겨 여쭈어볼 곳이 없을 때면, 문득 선생을 더 이상 뵐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말없이 아픔을 삼키려 하지만 스스로 그칠 수가 없습니다.
82 하고 싶은 말을 만 분의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83 산천이 막혀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 답장도 제대로 이을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만 간절합니다.
107 검소함을 덕으로 삼아 자취를 감추는 것이 비로 처세의 법이지만, 몸을 세우고 도를 믿는 것도 실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거취의 어려움은 한때이지만, 처세의 마땅함은 후세에 널리 전해지는 것이니, 이것으로 헤아리고 결단하신다면 그 속에 반드시 하찮은 것과 소중한 것,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이 있을 것.
112 앞뒤를 돌아보지 않거나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서 유독 벼슬에 나아가는 한 가지 일에 대해서만 모조리 옛 도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이것은 이른바 한 다리는 짧고 한 다리는 길다는 것이니, 어찌 엎어지는 화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에 대장부의 일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머뭇거리면서 감히 분발하여 곧추 나아가 일을 맡겠다고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22 이익을 위해 뜻을 굽힌다. 학자들의 병폐... 곡학아세
131 마치 낚시에 걸린 고기처럼 갇혀있으면서도 다시 뻔뻔스레 녹이나 타먹을 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탄식
133 독서당 : 젊은 문인들이 독서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설치, 들게 되면 따로 번거로운 일을 맡지 않음 湖堂
241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생각이 없으십니까. 제가 이토록 낭패하여 구차히 여러 가지 일에 묶여 있으면서,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고 밤낮 근심하고 두려워하게 된 까닭은 오로지 헛된 이름이란 두 글자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서 지나치게 추켜세워 임금께 아뢰었다 하더라도 그대는 오히려 마땅히 힘써 막고 덜어내어 저로 하여금 하늘을 속이는 죄를 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터인데, 지금 도리어 저를 크게 높여 임금의 귀를 어지럽혔습니다.
*********** 옥에 티가 아닐까 싶은 곳들...
429쪽에 빔과 신령함을 논한 곳에서 빔을 이라고 한 주장... 이란 구절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빔을 신령함이라고 한 주장...이 아닐까 한다. ‘형체를 넘어서는 빔(형이상)’과 무극이태극 등을 이야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434쪽의 ‘찐덥지 않았는데’는 ‘미덥지’의 오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