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누구인가 - 살아있는 동안 꼭 생각해야 할 34가지 질문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백종유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철학을 읽히려는 의도는 많지만, 철학은 참 재미있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학생용으로 철학 통조림같은 책들이 나온 걸 봤는데, 별로 재미 없었다.
Wer bin ich, und wenn ja, wie viel?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많이?
이런 제목인데...
철학 개론치고는 아주 멋드러진 철학 개론서다.
철학이란 것이 인간의 '인식'에서 시작하는데, 요즘엔 생각, 과 사랑까지도 뇌과학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찌릿거리는 뇌파의 움직임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으로까지 연구되는 바, 이 책에서도 다양한 재미있는 읽을거리들을 제공한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려고 억지로 스토리를 짜는 것은 재미없다.
이 책의 장점은 많은 삽화(에피소드)들을 끌어들여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과 마주 놓을 때,
독자의 머릿속에 번득, 스쳐가는 유추의 향연을 누리도록 글을 쓴다는 것에 있다.
인류의 기원을 이야기하면서 '루시 인더 스카이 윗 다이아몬드'란 노래와 '루시'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그런 것.
니체의 약력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니체의 삶에서 분출되었던 다양한 사고력들이 그의 인생과 가지는 연관성 같은 것들을 이야기해 줘서, 고리타분한 철학 개론서보다는 독서의 맛을 흠뻑 음미할 수 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철학은 '금속 공학'의 유의어이므로, 결코 그 뻣뻣함을 버릴 수 없다.
그렇지만, 작가가 34가지 꼭지로 정리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고, 낙태, 안락사, 육식 등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이르게 된다.
철학의 강물 속에 머리를 묻어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소제목들을 벽에 적어 두고 곰곰 느껴보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무의식을 다루는 절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주인이 따로 있다니>란 제목을 붙인 걸 보고 그의 통찰에 깜짝 놀란다.
그가 인용한 많은 실험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원숭이의 '조립' 실험이다.
원숭이의 각 신체 부위를 절단하여 봉합했더니 모든 곳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났는데, 뇌에서는 어떤 거부반응도 관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곧 뇌의 이식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것이고, 뇌를 이식한다는 것은, 곧 몸을 바꾼다는 뜻도 된다. 몸을 바꾸는 일은 '나'가 '나' 아닌 존재로 되는 일이며, '아'와 '비아'의 역설적 통합이 되는 것인데... 과연 철학은 이런 경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부분부분을 잘라서 읽어도 좋은 글들이 많다.
그가 주워 섬기는 많은 삽화들이 엮이어 이루는 매트릭스 속에는 철학이 다루는 온갖 대상들이 부유한다.
결국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그러나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환원론적으로
'인간의 특성'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보는 일은 또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인간의 특성들을 합쳐서 36.5도로 유지하고 원심분리기라도 돌리고 전극이라도 연결하면 '인간'이 된다는 것인지... 따져보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