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내 부하 해 -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과 함께 어린이 시 쓰기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 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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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와꾸>가 없다.
특정한 패러다임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아직 체계화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간혹, 아이들의 답지가 재미있다고 인터넷에 오르기도 한다.
제시된 지문과 상관없이 답이 나오죠.
ㄹ)을 소리나는 대로 쓰시오. 리을...
'벌'이 뭐라고 소리냈나요? 잉잉잉... 
어디에 감추었나요? 비밀 장소...  

아이들의 자유로운 관찰법을 어른들은 '커트'하는 데 귀신들이다.
이 커트당한 아이들의 영혼에서 두레박으로 길어오르는 시원한 물들이 독자에게 삶의 청신함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
중고등학교 선생님이라도 국어 선생님은 보면 좋은 책. 

유,초등학교 자녀를 기르시는 부모님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
유,초등학교 자녀들에게 글쓰기 방법을 지도하실 때 권해주기 좋은 책. 

아이들의 언어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고마운 선생님.
그 선생님이 세상을 뜬 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글을 읽노라면,
꼬장꼬장한 이오덕 선생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한직의 낙타,란 시가 떠오른다. 

눈을 감으면
어린 때 선생님이 걸어 오신다.
회초리를 드시고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때 선생님처럼 늙었다.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음 직한 동물원의 오후. 

원로라 불러도 좋으실,
그래서 그이들의 나직나직한 목소리를 들으면 한없이 안심이 되는,
그렇지만, 간혹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폭포수처럼 강렬한 메시지가 담기기도 한,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더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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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2-1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글샘 2009-12-18 10:05   좋아요 0 | URL
네? 무슨 당선을요???
 
제안 - 알라딘 조유식 사장에게 편지보내기 카페를 엽니다.

내가 컴퓨터 세상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 아니기에 다른 세상들은 어떤지 잘 모른다. 

간혹 촛불 집회장에 이쁜 언니들이 쏘드같은 블로거들이라고 하니 뭐, 다양한 의견 교환 통로로 쓰이기도 하나보다... 했다. 

내가 쓰는 컴터 세상은 딱, 둘인데, 하나는 다음의 한메일 계정이고, 또 하나가 알라딘의 서재다. 

메일이야 휴대폰처럼 필수품이고, 요즘 다양한 문서들을 받아야 하니 필요한 거고,
알라딘은 읽은 것들을 갈무리해두고, 나중에 정리해서 수업에 쓸 수 있기에 하고 있는 작업이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했고, 많은 양을 적어 두었다.  

요즘 알라딘에서 불매 운동,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 뭐, 이런 의견들을 보면, 딱 내 마음같진 않다. 

그렇지만, 난 이런 블로거들이 이쁘다.
한창 장마철이던 촛불집회장에 '이명박, 어머, ^^ㅣ발'이란 이쁜 글씨를 우비 등짝에 붙이고 다니던 이쁜 언니들처럼, 신선하고 생큼해서 좋다. 

난 '불매' 에 한표를 주진 않았다. 책을 살 거면 알라딘에서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돈주고 책을 거의 사지 않는다. 아이가 문제집 사야된다고 하면 간혹 사는 정도.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이럭저럭 모인 마일리지로 사거나, 학교 도서관에 사두고 보곤 한다.  아프님 서재에 최근 3개월 구매액이 14,000원이라고 올렸는데, 이제 다음 주면 130원으로 준다. 
그리고, 불매 운동에 뭐, 손을 든 건 아니지만, 비정규직 이야기를 주절거려 댓글도 걸긴 했다. 그게 내 마음의 선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알라딘에서 일하던 어떤 이가 사소한 실수(사용자에겐 --일 수 있다.)로 해고 되었고, 그에 대한 입장 해명을 '조유식 사장'에게 요구하는 블로거들의 글을 읽으면서 적어도 '책파는 상인 신드바드' 조유식 사장이라면, 반성문 한 장 정도 써 줄 사람이라고 기대하고 있음을 느낀다. 

사용자에겐 사소한 실수였고, 또는 필요한 해고였다고 할 수 있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절망의 나락일 수 있음을 사용자는 알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편지글이 반짝이고 빛나는 그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여느 책방보다도 <서재의 기능>을 통한 <책에 대한 이야기>의 소통에 도움을 주었고,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의 수준을 뛰어넘는 <분야별 담당자들의 소개>를 통하여 책을 광고하기보다는 알려주는 수준까지 도달했고,
<저공비행>을 일삼는 분의 글처럼 다양한 인문학적 밑바탕이 알라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기에, 블로거들의 귀여운 의견들은 알라딘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으로 보인다.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판같은 공장 시스템에 '양심가진 최부자댁' 경영 마인드를 들이대는 일이 꼭 적확한 빗대기는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책을 통하여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항해하는 <네비게이션>의 역할을 담당해 주었다고 고마워했던 알라딘에서 일어난 '사소한 실수'와 '한 가장의 비극' 사이에서 관심의 촉수를 곤두세웠던 서재인들에게 알라딘의 주인장은 그야말로 신드바드처럼 '모험'을 해봄직도 하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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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12-1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 사람들의 편지글이 너무 눈부신거 있죠...다들 사랑스러워요..

글샘 2009-12-17 11:28   좋아요 0 | URL
음, 저는 별로 안읽어 봤답니다. ㅠㅜ

바람돌이 2009-12-17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제목이 왜이래요? 제가 카페에 올리는 글은 제목 통일해달라고 했는데 말이죠... 하여튼 삐딱선이라니까요... ㅎㅎ 아마 이 다음에 쓰시는 분이 번호때문에 무지 고민하실것 같은데요. ^^

글샘 2009-12-17 11:28   좋아요 0 | URL
ㅋㅋ 정말 고민하실까 가봤더니... 잘만 넘어가셨더군요. 시키는대로는 죽어도 싫다는...

드팀전 2009-12-1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ㅎㅎ...크게 불편하지 않으시면...
 
교육개혁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3
정병호 외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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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의 학창 생활 속에서 오손도손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징그러웠던 과거마저도 추억처럼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결국 나도 교사라는 직업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덜컥 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교사로 살아온 21년. 참 많은 꼴을 당하고 보았다.
선배들이 '초임 시절이 가장 성공적인 교사 생활'을 한다던 말을 들을 때, '쳇, 배부른 소리 하시네~'하면서 속으로 투덜댔다.
내 시간엔 아이들이 떠들고 자기 표현을 막 하지만, 선배 교사들 시간엔 조용히들 있었기 때문이고, 옆의 선생님들 반은 자습 시간에 조용히도 지내는데, 우리반은 늘 난리부르스를 땡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가능성 덩어리>이면서 <엉터리 초보 교사>로 교직을 시작한다.
머릿속의 귀엽고 재치있는 제자들은 현실 속에서 대마왕 왕마녀로 둔갑해 버리고,
교실 속은 날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시끄럽고, 한마디로 엔트로피 법칙이 가장 잘 통하는 공간이란 것을 초보 교사때 실감하면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엉터리 선생때, 멋도 모르고 아이들과 나누었던 편지들(난 21년 전의 편지들을 아직도 창고에 가지고 있다. 간혹 예전 제자들에게 그거 가지고 있단 이야길 하면 엄청 보고 싶어한다. 유치찬란했던 그 아줌마, 아저씨들의 중학생 시절을...), 그리고 운동장 야영을 하면서 운동장에 큰대자로 누워 별을 바라보라고 했던 웃기는 나의 대사들... 소설쓰기반도 맡아서 애들도 써보고 내 소설도 읽어주기도 했던 정말 봉숭아학당같던 시절... 

10년쯤 지났을 때, 나는 드디어 베테랑 교사가 되기 시작했다.
내 수업 시간엔 아이들이 떠들지 않기 시작했고, 교과 내용은 큰 예습 없이도 쑥쑥 정리해줄 수 있어서 아이들이 수업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학생부 선생이라 맨날 무서운 얼굴로 들락거렸지만, 아이들과 만들었던 문집 몇 권은 아직도 내 교직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꽃이다. 

이제 20년이 지난 나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생활지도부장이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아이들과 머리털때문에 싸우고, 학생의 자살 앞에서 망연자실 넋을 잃은 틈바구니로 기어든 브로커들과의 신경전으로 노이로제 생활도 몇 달 했다.
수업은 그야말로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 진행하는 것이고, 1년을 가르쳤어도 아이들 이름이 혀끝에서 맴도는 게 아니라, 1년을 가르쳤는데 처음 만나는 것같은 얼굴의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정말 실패한 교직을 밟고 있는데, 두려운 것은 앞으로 남은 20년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이 책은 위안을 준다. 마치 속미인곡의 보조적 화자가 "글란 생각마오"하는 위로를 주듯. 

나의 실패는 나만의 실패가 아니었다.
교사들의 식물화 현상(162)이란 낱말을 읽고, 히야, 기막힌 표현이다. 라 생각했다.
교사들은 빨리 공문 처리하기, 꼬투리 잡히지 않을 방식으로 처리하기, 대강 알아서 처리하기, 형식 잘 갖추기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며, 공고한 관료적 행정 구조 속에서 자율성을 발휘하기 보다는 명령, 시달, 침묵, 묵종, 순응 같은 부정적 미덕을 내면화할 가능성이 높다(161)
아, 나는 책 속에 '죽은 영(靈)'으로 활자화된 나의 초상화를 읽으면서 눈물마저 나려고 했던 것이다. 김수영이 살아있는 글자(활자) 속에 죽은 정신을 한탄했듯이, 나도 살아있어 보이는 육신 속의 사령을 눈물겨이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교육> 앞에서 1997년 교육개혁 이후 교사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교사는 성장하는 직업이다.
교학상장,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은 서로 상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의 성장판은 계속 자란다고 한다.(145) 교사의 성장판은 자부심이다.(148)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 성장판이 망실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영이 되어가면서...

꿈꾸는 자가 행복한 까닭 :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고 그래서 그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가득하기 때문이다.(26) - 글쎄, 대한민국 교육에 어떤 희망이 담긴 것일까? 이 책은 주로 '욕망' 또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고, 결국 희망찾기에 성공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적은 것처럼, 절망하고 있던 JM 교사에게 역설적인 위안을 줄 수는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학부모들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촛불을 들고 밤에 지친 몸으로 들어가서도 학원 다녀온 자식 간식 챙겨준다는 역설처럼... 아동기로 집중되어가는 교육게임과 서열 경쟁을 통해 평생을 보장받으려는 지난 시대의 생존 전략이 모두 <낡은 환상>에 불과함을 함께 깨닫고 대안을 모색하여야할 필요성이 시급한 때임을 강조해 말한다.(124)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덕목은 이런 것이다.
생명, 생태, 평화, 인권, 정의, 자유, 관용, 참여, 약자보호, 반차별 등... 정치적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합의하는 가치들.(128)... 그러나... 이런 것들을 배제하는 영 교육과정(null curri)속에는 공교육이 <실패하기>를 희구하는 집단의 입김이 든 것이다.
그것은 교육과정 개발에서부터 적용까지 일관적으로 적용된다.
공교육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답을 찾는 훈련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가르쳐야 함을,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써 보는 일이 꼭 필요한 과정임을.
국가는 알면서 배제한다. 그저 이전 지식의 낡은 틀을 암기하라 강요한다.
그래야, 낙후된 자신들의 '본색'이, '벌거벗은 임금'임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성공한 대안은 없다.
늘 실패한 대안들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움트는 변화의 싹, 암기를 벗어난 사고력을 길러주는 동아리 훈련,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교사들의 힘.
공공의 실험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하고, 그 길이 올바른 길의 하나일 수 있음을 보여줄 때, 교육 개혁은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창의적 교양인으로서의 인재를 운운하면서, 경쟁만을 내세워선 안된다.
'존재하려는 용기'를 가르쳐야 하고, 인적 자원으로서의 인간을 넘어선 인간 냄새나는 존재로서의 '휴먼웨어'를 발견하는 학교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사교육의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그리고 대학 입시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는 전문가의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이웃들의 육성>을 통하여 '인류학적 연구방법'으로 기술되고 있기에 전혀 어렵지 않고, 이물감이 없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읽어보길 권할 만한 좋은 책. 

-- 

이 책에선 외래어표기법을 무시하려는 듯, '엘리뜨, 씨스템, 싸이버, 콘쎕트' 처럼 적고 있다.
뭐, 한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는 것도 좋지만, 엘리뜨...는 좀 아닌 듯. ^^
'버스'를 뻐쓰로 쓰는 등에는 난 찬성인 1인이지만,
암튼 맞춤법에 어긋나게 쓴 데는 뭔지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일러두기를 찾아가 봐도 그런 말은 없다. 음, 다음 판이 나오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일단 의견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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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7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9-12-17 11:29   좋아요 0 | URL
이제 그러려니 합니다.
지금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제소(?)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ㅎㅎ
뭘 적어 내라네요. 올해, 교육청에, 권익보호위원회, 경찰서, 법원 등에 다양한 채널로 많은 인맥을 넓혔네요. ㅎㅎ 한번 읽어 보세요.
 
뿔치 - 제7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미래의 고전 11
보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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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치는 주인공 남자 아이의 이름이다. 살강이라는 아기무당과 뿔치가 펼치는 모험 이야기가 이 책에 가득하다. 

여느 판타지에서는 시련을 극복하는 주인공에 상대편에는 <이름을 말하기도 어려운 자>라든지 하는 <절대 강자>가 반동 인물로 등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부정 不淨 한 아이'라는 딱지가 아이들에게 붙어 다니고,
그 부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용궁을 찾아 떠나는 여정과 거기서 만나는 모험이 주된 이야기다. 

이 소설이 단순한 판타지에 머물지 않는 것은, 그들의 부정이 극복 대상일 뿐이지 않다는 데 있다. 그들의 부정은 '악', 또는 '적'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력의 원천'인 것이다. 

어린이 소설 치고는 후반부가 상당히 철학적인데,
부정은 이름이 부정일 뿐... 하는 구절은 '상'을 극복하라는 금강경의 논리와도 통하는 것이다. 

그들의 '부정'이 생명력의 샘물이 되는 구절을 읽으면서, 광주가, 용산이 독재자의 죄악이었고 부정함이었던 바, 결국은 민중의 생명력을 응집시키는 활화산이 될 것처럼 상징적으로 읽을 수 있는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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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촌에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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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면 그 무게 중심이 광화문에 있다.
조선이란 나라는 마치 서울이란 도시 위에서 한 판의 <풍수지리도>를 펼친 것 같고,
600년의 고도 서울은 무학 대사의 <설치 미술>인 듯 싶기도 한 것이다. 

그러던 것을, 식민지 시대, 조선의 혈맥을 끊기 위해
왕궁터를 허물고 거기 날 일자(日) 조선 총독부를 짓고,
근본본자(本) 시청을 지었다. 그래서 다시 북한산과 이어지는 맥으로하여 대,일,본을 서울 시내에 박아 놓으려 했던 것이렸다. 

한강의 북쪽, 한수북을 풍수에서 <양>이라 일컬어 한양이라 했고,
거기서 십리 더 가라 해서 왕십리란 말도 났다 한다.
갈라진 봉우리 관악산의 화기를 억누르려 숭례문 현판을 세로로 적었다고도 하는데,
그 숭례문은 불길한 대통령의 취임식 직전에 후르르 타 내려앉아 버렸다. 

서울의 광화문 앞자리는
국사 시간에 3국의 패권을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사람이 가진다고 했듯,
그만큼 상징적인 자리다. 

박정희는 광화문에 자기 못생긴 글씨로 현판을 매달았고, 그 앞을 국화 상여에 둘려 죽어나왔으며,
노무현은 그곳이 징허고 징해 시골에 내려가 살려고 했으나 다시 그 앞을 국화 상여에 둘려 나오고 말았다.
그 징헌 터에 화안하게 켜졌던 촛불의 민심은 아랑곳 않고, 외국인들 와서 스노보드는 타도, 열댓 명 모여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만 내면 수천 명 전경이 둘러싸는 광장이 되어버렸다. 

천하디 천한 대통령이 요즘 자꾸 '국격'이란 말을 들먹인댄다.
인격이 없는 국민에게 들이대는 '국격'이란 '국수주의'에 다름아니고, 독일어로 말하면 '나치즘'이 그것이다. 내셔널리즘. 

국가가 주인인 곳에, 국민은 없다.
'공'적인 사업이 전멸한 곳에 '공인'도 없고, '공인'을 참칭한 자들의 '사익'만이 들뛸 뿐이다. 

그런 가벼운 나라에 겨우 한 쪼가리 넝마처럼 남은 고장이 '북촌 한옥 마을'이다.
예전엔 당당하게 세도를 부리던 자들의 넓디 넓은 집들이 이제는 모두 쓸모를 잃어버리고 식당이나 가겟방으로 변해버렸거나, 숫제 돈치레에 둘려 무너져 내린다. 

그래도, 아직 몇 집은 늘씬한 지붕 용마루와 새색시처럼 살풋 들어올린 처마마루가 남아있다. 

아마도, 이 책이 찍어져 나오는 동안, 피맛골은 불도저의 불세례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전에 청진동 해장국집, 청진옥이 없어진단 말도 들리곤 했다. 

전통이라곤 모르던 동네 인사동이 마치 전통을 대표하는 것처럼 돈을 벌고 앉은 품세를 보면,
이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대유적으로 보여주는 듯 싶기도 하다. 

작가의 발품이 일구어낸 이야기들은 반갑고 다사랍지만, 간혹 쓸쓸하고 자주 서럽곤 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이 글자로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스노보드 눈썰매장 사이로,
이 나라의 <인격>들이 스물스물 얼음녹듯 사라져버릴 노릇이니,
두툼한 이런 책들의 이야기들이 추운 겨울날 난로가에서 두런거리는 목소리들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듯 노변정담에 밤깊어가는 줄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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